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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기차란 귀가 멍하도록 달려야 하는데
서대전ㅡ익산 ktx는 그러지 못하다.
다소 쌀쌀한 날씨
대구에서 대전 다시 익산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전날 걸었던 물고기 천국 대전천 후기글 쓰며 가다보니 익산역에 도착했고
택시로 미륵사지로 찾아왔다
미륵산 아래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미륵사지
불교 의식 깃발을 세웠던 당간지주와 미륵사지 서쪽 석탑 그 뒤로 미륵산 그 옆에 동탑 보이는데
탑 뒤로는 동원 서원 부처님을 보셨던 금당터가 넓게 자리한다.
동원(東院) 9층 석탑
1974년 동원의 탑 터를 발굴하면서 서쪽의 미륵사탑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었음을 밝혔다고 적었는데
9층석탑 높이는 모두 27,8m이며 1992년도에 복원한 탑이다
비록 복원한 탑이지만 옛 백제인들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었는데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한 67m의 황룡사(黃龍寺) 9층목탑을 만들었던 아비지란 인물도 백제인이 아니었던가
익산에는 산이라 할 만한 산이 없는데 어디서 이 많은 돌을 가지고 정과 망치로 정교하게 깎고 다듬었는지
미륵사지 석탑 7세기(639년)에 미륵사지가 처음 지어질 당시 세워진 세 기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석탑의 석재들이 없어져 원래의 모습은 알 수 없다.
옛 사진 비교 해 보시고
너무 깨끗하게 복원해서 옛 정취는 묻어나지 않으나
그 당시에 이곳에 섰던 많은 백제인들이 어떤 소망을 빌었을지 ...
아마도 밥 숟가락 놓으면 전쟁하던 시절이니 싫든 좋든 전쟁터 끌려나간 지아비나 아들이 무운장구(武運長久)하길 빌었을 것 같고
백제 30대 무왕께서는 수, 당과 외교적으로 교류를 하려고 했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러한 답답하고 고립된 상황에서 백제의 꿈이 20년 정도 남았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께서 탄현과 기벌포를 지켜야 한다며 충언을 한 성충을 끝내 외면했는데 본인이 마지막 백제왕이란 느낌을 받았을까?
미륵사지에서 발굴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석재 부재물
백제의 기원은 B.C 18년 1대 온조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31대 의자왕까지 660년 7월까지 약 700년간 이어진 한국의 고대국가로 신라와 고구려 사이에서 끊임없는 싸움을 하였다.
결국 의자왕을 끝으로 멸망하였는데, 안타까운 건 옥천군 서하천 옆을 지키던 관산성에서 아들 창을 응원차 갔던 26대 성왕의 안타까운 죽음과 642년 대야성 전투 때 백제 의자왕, 윤충장군 ㅡ신라 선덕여왕,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과 딸 고타소의 죽음으로
극한의 대립이 이어져 신라는 당나라에 17년간 공을 들인 끝에 나, 당 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백제가 망한다.
백제의 멸망과 연관성 있는 두 사건은 원수는 원수로 갚아 주던 전투에서 비롯된것은 아닐지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기록에는 백제무왕과 왕비가 사자사에 가는 길에 이곳 미륵산인 영화사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세 곳에 각각의 탑과 법당을 짓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적었다.
이곳 미륵사지는 1980년대부터 1994년까지 발굴 조사하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건물터에서 온돌이 발견되는 등 건물터와 유물로 보아 미륵사는 1600년대까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날씨는 쌀쌀하고 좀 더 둘러보고 싶지만 택시 요금 미터기 속에 천리마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리니 마음만 급하다
텅 빈 미륵사를 구경하고 나와
미륵산 아래 금마면 신룡리 기도원 아래 도착한다.
지도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며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동문 앞에 서니 돌이 나라를 지키는 곳 앞에 선다.
백제 무왕시절에 세운 성으로 길이는 1,8km이며,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과 싸워 항복을 받았다는 성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로 보던 견훤의 부하 겸 의형제였던 수달장군과 걸걸한 목소리의 애술장군이 생각난다
대단했던 수달장군이 왕건에게 사로잡혀 궁예앞에서 당당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고 불구덩이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받아들이던 모습을 보여줬는데 견훤이 "뭐야!~주거서 수달이가 죽었어 "라며 울분을 토했고, 고려의 맹장(猛將) 유금필 장군만 보면 오줌지리던 귀여운 애술장군은 견훤이 가장 사랑했던 장군이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그렇다는 이야기다
미륵산성의 정문 격인 동문(東門)을 통해 올라오면 오래된 성돌(城石)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반면 새로 복원한 돌은 아직 때가 덜 묻어있다
묵직한 느낌의 옛 성위에 서서
왕건과 신검의 전투
백제 왕궁(전주시 승암산)이 바로 코앞에서 벌린 전투로 평야와 만경강이 앞을 막을 뿐 직선거리로 30km가 안된다
이 싸움으로 신검은 아버지로부터 신임을 잃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해는 떠올랐고
미륵산 올라가는 길에 본 옛 성벽
익산 제일의 미륵산 정상에 아침 일찍 찾아왔건만 부지런한 산꾼들이 벌써 청량한 겨울 날씨를 즐긴다.
미륵산에서 본 익산평야와 멀리 금강이 흐르는곳이겠고 그 너머 서천이나 부여쯤 되겠다
익산은 북쪽에는 금강, 남쪽에는 만경강이 있고
그사이에 드넓은 평야지대가 있지만, 산은 미륵산 이외 거의 없다
지역으로는 동쪽으로는 전주와 완주
북쪽으로는 논산
남쪽으로는 김제와 정읍
서쪽으로는 군산과 서천, 부여가 자리한다
*다른 대부분의 도시들은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산이지만 익산은 집 나오면 들판만 있으며
그나마 서쪽에 바둑 돌만한 85m의 배산이 하나 서있을 뿐이다.
미륵산 정상에서 동, 북쪽 방향이니 대둔산인 듯 서있고
읽어 보시고
지나간 경로
오늘 내려갈 탑천
능선 하나로 물줄기가 갈라지는데
반대쪽 능선은 익산천 발원지로 금마저수지를 거쳐
만경강으로 흘러드는데 자칫하면 익산천으로 내려갈 수 있어 지도를 잘 봐야 한다
정상에서 10미터 내려서면 모노레일이 있고 그 아래
옛 성터 축대가 보인다
내려온 곳
내려갈 곳
거의 중턱까지 내려왔는데 이런 축대가 있다
예전에 작은 암자가 있었던 곳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계곡으로 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물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 야생 버섯 2천 종 중의 하나인 버섯
아무도 찾지 않은 계곡이건만
커다란 바위아래 한 사람 겨우 누울 자리 앞에 돌로 담을 쌓았는데 누가 왜 여기 와서 이래 놨는지
누가 살았을까?
깊은 산중 계곡에 오래된 뭔가 있나 살펴보니
이런 돌의자가 하나있다
산아래에서 만들어 지게에 지고 왔을 리 만무하고
인근에 뭐 있나 살펴보니 예전에 체석장으로 사용했을 법안곳이 있다
체석장? 인지 뭔지 모르겠으나 바위를 깨고 고만고만한 돌을 무더기로 쟁여 두었다
왜 이곳에 이런 돌이 있는지 근래에 쌓아두었다면
어딘가 사람의 흔적이 있겠지만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어 보인다
돌의자 있는 곳에서 내려온 곳
계곡을 빠져나오니 베데스다 기도원이 나온다.
기도원옆길로 나오면 대나무 군락지대가 나오는데
대숲을 지날 때면 늘 한기(寒氣)를 느끼는데 나만 그런지...
잡풀 우거진 묵은 텃밭이 마루금인데 계곡하나 사이로 익산천과 탑천이 갈라진다
가끔 발원지를 찾아 내려오다가 능선 하나를 잘못 내려와 다시 올라간 일이 더러 있었는데 오늘은 잘 내려왔고
물은 이제 넓은 들판 사이로 흘러 만경강까지 흘러가는데 아직까지 물은 깨끗하게 흐른다
모래가 물가에 쌓여있지만 물은 겨우 흐를 뿐이고
시멘트 방수로 위로 물이 흐르는데 마치 소가죽을 벗겨 양탄자처럼 깔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흐르는 물은 깨끗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미륵산과 그 옆에 용화산(321m)이 있고
용화산 뒤로 흐르는 물은 익산시 성당포구로 흐르는 산북천이다
주말이라 자전거 타시는 분들을 자주 만나고
하천 건너 신기마을 덕천서원이 보인다
임진왜란 때 이곳 출신으로 금산성전투에 잠가해 순절하신 오응천, 오웅필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이 고장 출신의 유림과 후손들이 성균관의 승인을 받아 건립한 건물이 보인다.
한번 가볼까 하다가 대구까지 오고 가는데 시간이 걸리니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서해바다로 흐르는 하천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달나라에는 찰떡 아이스를 만든다는 옥토끼가 살고
익산 탑천에는 쓰레기를 서해바다 용왕님 면전으로가보내기 위해 기다린다
탑천은 익산시에서 발원해서 군산시를 지나는데
"탑천에 쓰레기 버리지 않으면 10년 징역에 처하는 법을 만들었나 쓰레기가 너무 많다"
이곳 익산시만 이런 모습인지 아니면 아랫동네 군산시도 이런 모습인지... 누가 누가 잘하나 내기하는 건 아닌지 걸으며 생각해 봐야겠다
일부구간이지만 하천정비하곳도 지나서
하
지나온곳으로 익산시가 보이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작은 송사리나 피라미는 보이지 않는다
배수갑문
미륵산 서남쪽에서 흘러온 가양천이 탑천에 합류되어 만나는 배수갑문이다
가양천물이 더러워 그런지 이곳에서부터 물은 더럽고 냄새도 난다
오송역으로 가는 선로가 있고
돈키호테가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들판에는 온통 송전탑이 서있다
서해바다 용왕님께 보내드릴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고
주위 1km 인근에는 사람 사는 집이 안 보인다
하천에 쓰레기 버리려고 이고지고 오지는 않았겠지만 그 수고로움을 쓰레기봉투 몇 장으로 해결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앞에 쓰레기봉투를 두면 보기 싫은 점도 있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 같고
집 앞에 둘 쓰레기 여기다 버리면 집 앞은 깨끗하겠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함에도 조상님께 제사 지낼 때 쓰던 병풍이 밖으로 나와있는데
요즘은 조상님들께 제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많아 여기에다가 버린 듯
익산평야
우리나라 농사면적 156만 ha 이중에 논농사면적은 76만 ha 밭농사 74ha
우리나라 쌀 생산량은 모두 3백70만 톤으로
지역별로 나눈다면 당진이 가장 많은 11만 톤
그다음 해남 9만 4천, 서산, 9만,
호남평야에 속하는 익산시 8만 톤
김제 7만 8천 톤, 정읍시 7만 8천이다
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익산평야지대도 들판 위로 대형 축사와 태양열판이 곳곳에 보이는데 호남평야도 돈 안 되는 벼농사 대신 태양열판이나 축사가 많이 들어서있다
전국 97만 농가에서 약 370만 톤의 쌀이 생산되는데
90년도 무렵에 1인당 110kg 정도의 쌀을 먹었지만 지금은 65kg의 쌀을 먹는데 밥공기도 작고 라면이나 빵으로 식사를 때우다 보니 쌀은 더 먹는 것 같다
논농사 1천 평 지었을 때 순수익은 대략 150만 원이고
200평 기준으로 30만 원이라 생각하면 될듯하다
농사에서 일한 소득은 평균 900만 원이고 농업 외 소득이 2500 만원 내외라고 한다
그리고 참고로 벼 재배면적 2만 ha는 10만 톤 분량이며 1인당 연간 50kg을 먹는다면 190만 명이 먹있는 량으로 당진평야에서 년간 11만 톤 생산되니
인구 2백10만 명인 도시로는 충청남도가 있으니 비교해 보면 좋을듯하다
쓰레기
쓰레기
타이어,물통,의자도 있으니 필요하신분들은 구르마 끌고 가보시기 바랍니다.
쓰레기
그동안 하천을 지나며 쓰레기는 주로 평야지대 인근에 많았는데 서해로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쓰레기 천지였다고 볼 수 있겠다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쓰레기 버리고 불 지르기 좋은 점이 이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첩첩산중의 경상도의 하천은 주위에 사람이 많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좋아 쓰레기는 잘 버리지 않는다.
익산시에서 쓰레기 버리고, 태우자고 단체문자를 보내셨나
이 정도면 할 말은 없으니 익산시 하천인근의 사람들 환경 점수는 몇 점을 드려야 할지
아래 군산시땅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군산시 쓰레기
아침에 쓰레기 태우고 갔는지 매캐한 불 냄새가 난다.
인적이 드문 하천길은 이런 모습인데
아래로 내려가면 이런곳도 고속도로처럼 느껴진다
주위로 집이 안 보이는데
어디서 쓰레기를 싣고 와서 버리는지
하천 양쪽 모두 풀로 가득하고
녹음방초(綠蔭芳草)
지난여름에 이곳에 왔더라면 고생 좀 했을 듯
얼반 고생했을 길
그래도 지금 계절이 가장 좋고
쓰레기
하천길
멀리 집이 보이긴 한데
쓰레기
하천 제방 위로 억새가 많이 자라 진행하기 어렵고
낚시꾼 몇 분이 보이는데
물고기는 잡아서 뭐 하느냐 여쭈어보니
매운탕이나 찜으로 해서 먹는단다
웃으며 "물이 더럽다"고 하니 바닥은 더러워도 물은 깨끗하다고 하시는데 잠시 서서 지켜보다 진행한다
내려가야 할 곳
방생한다며 붕어빵 들고 하천에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설마 쓰레기 방생한다며 이렇게 하진 않았을 터
쓰레기봉투 큰 것 하나에 모두 들어갈 분량으로
이 녀석들이 뭘 잘못하게 있다고 엄동설한에 이곳 다리밑에 나와있는지
쓰레기 버리는곳에 쓸만한 물건은 안 보인다.
오산천이 탑천에 합류하는 지점
군산시 구간부터 제방 위로 억새가 많이 자라
하천 양쪽 모두 다 이렇다
한여름에는 장화 신고 진행해야 할 듯하다
젖소 키우는 축사 있는 곳
축사 분뇨가 빠져나가는 배수로인데
축사 배수로에서 빠져나온 분뇨가 넓은 논에 가득한데 논둑 너머 하천이다
비 오는 장마철에는 하천으로 그대로 들어갈 듯하다.
쓰레기
집에서 집 앞으로 여행하던 쓰레기가 하천옆까지 세계 여행하듯 나와있는데
이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일것 같고
쓰레기
소각장
쓰레기
쓰레기
한,두곳이라면 못본척 지나가겠지만
과연 이런분들이 환경이 뭔지 알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하천 제방길
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김장하고 남은것들도 나와있고
이제 거의다와가는데
쓰레기만 많이보고 내러왔던것 같다
왼쪽에는 만경강
오른쪽에는 내려온 탑천
거품물고 있는 만경강 물고기
물고기 사서 방생하고 갈까해서
팔라고 하니 "하루종일 두사람이 잡은건데 약으로 쓴다며 안판다"고 한다.
"미안하다"
날머리 옴서감서 (오며가며)
입석갑문 아래로 지나온 탑천이고
좌측의 넓은 강은 만경강이다.
만경강
입석갑문
만경강 낚시꾼
만경강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 밤재에서 발원해서 대야저수지,소양천 전주천을 합류시킨뒤 익산의 탑천을 마지막으로 거느린뒤 서해바다로 향하는 80km의 강이다.
이곳에서 익산 택시를 불러 놓고 기다렸다가 대구로 나간다.

첫댓글 시팔 욕 밖에 할 말 없네요
태우지 말고 길가에 놔 두기만 해도
관청에서 수거 할건데
민생지원금에다 쓰레기봉투 몇장 끼어주면
이런일 없지 않을까 싶네요
서해로 흐르는 물은 대부분이 쓰레기나 불법 소각하는 장소가 많은데 좀 심각한 부분이죠. 인근 마을 동장님들이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자기 동네만큼은 깨끗하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그래도 힘들겠죠
대구에서 먼곳 대전천(금강),탑천(만경강) 까지 두번에 걸쳐 사람있는 곳과
없는 곳을 비교가 됩니다.
차들어가는 산골짝에도 버리는 물건들이 많지요?
미륵사지 모처럼 잘보고 갑니다.
사진 글 잘보고 갑니다.
이틀간 여기 저기 쫓아다닌다고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재밌는 하천길이 되었습니다.
27일부터 일주일간 3대 용문길이 있어 배낭도 꾸려놔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이번 주에 하천 하나 걸음하면 올해 하천은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느타리버섯으로 추종됩니다
익산가실것이었으면
미주님 지리산 혼자갔다
비가와서 익산미륵산 갔다왔었는데요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시겠죠? 안 그래도 익산에 갔어 미주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글 감사드리고요. 클럽 지맥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산행하다 가끔 쓰레기 보게되면 맘이 편치 않은데 이곳은 들녘이고 시골이라 그런지 쓰레기 천지네요 ㅠㅠ
오지를 다니시다 보면 돌탑이나 석재 생활기구 같은 옛날 조상님들이 만들고 쓰던 것들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방생하려 붕어를 사시겠다는 마음~
혼자서 걸으시는 걸음이지만 이제 적응하셔서 혼자가 편하실지도요^^
하천길에 쓰레기가 참 많이 보이죠? 서해로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쓰레기가 많고 그리고 불법으로 소각한 곳이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마을을 관리하시는 이장님분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익산이면 고향근처라 익숙합니다. 쓰레기가 많긴 하네요! 시골분들이라 아직도 쓰레기를 태우시는 군요! ㅠㅠ 옛날에는 동네에서 많이 태우기도 했죠!
강 건너면 논산인데 깽이선배를 만나지 않으신 듯 합니다.ㅎㅎ 이번주에 서천에 가는데 한 주 늦게 가셨다면 뵈러 갔을텐데~ 아쉽습니다. 간만에 혼자 고향에 가거든요!ㅎㅎ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서해안은 저녁노을이 멋진데~ 보셨는지 모르겠네요!ㅎㅎ
익산 인근이 고향이신가 봅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 인근으로 흐르는 하천은 대부분 쓰레기 없이 깨끗하고 맑게 흐르는데 서해로 흐르는 하천은 왜 그런지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쓰레기는 보이는데 인근으로 민간은 보이지 않고 왜 그런지...
글 감사합니다
하천이나 냇가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어디를가나 흔히볼수 있는광경이지만 유난히 많이 있네요
이제 서서히 날씨가 추워지면서
물줄기 찿기도 힘들어 지겠네요
탐천 발원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