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뿜으며 꼬리치는 길…영주 소백산 고치령
그냥 걷고 싶은 계절. 바람이 낙엽을 굴리고, 하늘을 한 뼘 더 밀쳐낸 창끝같은 낙우송이 울창한 그곳을 찾아 떠난다. 골을 파고 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햇살 가득한 능선을 타고 넘는 산길. 소백산 끝자락 영주와 단양을 잇는 고치령 길. 나무들이 뿜어내는 공기는 달고, 겨울
둥지를 짓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맑은, 그런 오솔길이다.
영주 단산면 좌석리. 부석사 못미쳐 꺾어지는 소백산 연화동 계곡 바로 옆으로 고치령 길이 놓여 있다. 첫머리는 강원도 심산의 계곡길 같다.
바위계곡 옆으로 소나무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운치있는 길이지만 계곡 옆으로 길을 더 넓히는 공사를 하느라 약간 어수선하다. 계곡을 가로지르면
호젓한 숲길이 터진다. 등산로처럼 좁지 않고 승용차가 다닐 만큼 넓다. 가을볕에 잘 다져진 흙길이 대부분이지만 경사가 급한 아리랑길에는 시멘트
포장도 되어 있다. 숲길은 요즘 이깔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쭉쭉 뻗은 파스텔톤의 이깔나무들이 푸른 침엽수와 대조를 이룬다. 화려하지 않지만
수채물감이 한지에 뚝 떨어져 은은하게 번진 것처럼 단풍이 곱고 환하다. 나무 끝에 가을이 걸려 있는 오솔길 사이로 터진 하늘이 눈 시리게
푸르다.
긴 호흡에 느린 걸음으로 만나는 숲길은 지루하지 않다. 나무들도 제각각 표정이 있는 데다, 그 사이를 오가는 다람쥐와 청솔모의 모습이
정겹기 때문이다. 때론 쭉쭉 뻗은 낙우송 틈새로 소백능선이 아스라히 보인다. 파도처럼 일어섰다, 다시 숨을 죽이며 산꼬리를 겹치고 있는 수많은
산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그 많은 산들이 산허리를 포개서 만든 능선이 바로 고치령까지 이어져 있다.
고치령은 한때 소백산을 넘는 세가지 길 중 하나였다.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로 ‘영남대로’라 불렸던 죽령 길과 영월 하동과 이어지는 마구령
길, 그리고 단양 영춘과 이어지는 고치령 길 등이었다. 세 길은 모두 백두대간 주능선 중 하나다. 백두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태백산까지 흘러내린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꺾어진다. 대간은 마구령과 고치령을 거쳐 국망봉과 소백산 비로봉을 지나 죽령을 넘고 대야산, 속리산으로 뻗어간다.
고치령 정상(770m)은 그리 높지 않다. 정상에는 이정표만 하나 덜렁 꼽혀 있다. 정상에는 태백산신과 소백산신을 함께 모셨다는 성황당이
있었지만 이태 전 불에 타 없어져버렸다. 두 산신을 함께 모신 것은 바로 고치령이 태백산 줄기가 끝나고 소백산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 영험한
곳으로 소문이 나 산아래 마을사람들의 지성도 대단했고, 타지에서도 무속인들이 많이 들락거렸다고 한다.
바로 이 두 산신이 단종 임금과 금성대군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격하돼 영월에 유배됐을 당시 세조의 동생이자 단종의 삼촌이었던 금성대군은
영주 순흥도호부 부사와 함께 단종 복위운동을 벌였다. 순흥과 영월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 바로 고치령 길. 마구령보다 고치령이 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성대군의 밀사들이 단종 복위를 꿈꾸며 고치령을 넘나들었을 법하다. 하지만 관노의 밀고로 복위운동은 수포로 돌아가고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복위운동의 근거지였던 순흥도호부에서는 대학살이 이어졌다.
정상을 넘으면 마락리 마을이 나타난다. 계곡이 깊어 말이 떨어져 죽었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인데 지난 태풍때 비 피해가 심했던지
복구공사가 한창이다. 마락리 마을에는 모두 12가구가 산다. 대부분이 노인들. 한때는 소백산을 넘는 지름길로 박가분을 파는 방물장수나 봇짐을
짊어진 보부상들이 들락거렸다지만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다.
마락리에서 아직도 지게를 짊어지고 다니는 양재수씨(77)를 만났다. 그가 얘기하는 고치령 얘기 한토막.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영주 부석장이 엄청 컸더래요. 그래서 영월이나 영춘 대신 고치령을 넘어다녔지 뭐요. 새벽에 나가믄 한밤중에
돌아오는 하룻길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엄청 많았더래요. 아직도 마락리 사람들은 고치령을 넘어다닌다니까요”
고치령에서 더 내려가면 의풍리. 의풍리는 요즘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영월과 단양, 그리고 영주의 경계지점으로 지금까지 산들에 가려진
두메산골로 숨겨진 곳이지만 이제 비좁은 길을 넓히고 포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동안 번성했다가 다시 잊혀진 고치령 길. 역사의 흔적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있지만 북적거리던 옛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간간이
산간마을 사람들이 들락거리거나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들를 뿐. 그래도 늦가을 고치령의 풍광은 참 아름답다.
이 나라의 고갯길을 찾아다니며 몇해 전 ‘마음도 쉬어넘는 고개를 찾아서’란 책을 냈던 시인 김하돈은 고치령 같은 옛길을 걷는 재미를 이렇게
표현했다.
‘길도 때로는 꼬리를 친다. 팽팽하게 당겨진 연실이 빈 겨울하늘 너머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탱탱 끌어당기듯이, 길도 가물가물 멀어지며
다가서며 내내 꼬리치는 길이 있다. 사는 동안 그저 무심히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생각들이 웅웅거리며 몰려나와 문득
어디론가 끌고가는 미증유의 오솔길. 행여 그 길 끝에 천년만년 기다려온 새아침이라도 열리는지, 더러는 새도록 잠 못이룬 그리운 임이라도
오시는지, 설레며 두근거리며 걷는 길이 있다. 흙먼지 폴폴 일어 바람 한올 지나가면 신작로 따라 아득히 서서 울던 미루나무 슬슬 또
뒷걸음질치는…’.
▲여행길잡이
중앙고속도로를 탄다. 풍기(북영주)IC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 첫번째 4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이다.
부석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단산면 옥대리 3거리에서 좌석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면 고치령 길이다. 좌석리 소백산 매표소를 지나면 고치령
옛길이 시작된다. 연화동 계곡과 헷갈리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11월15일부터 소백산은 산불방지 기간으로 등산객을 통제하지만 고치령은 다닐 수
있다. 좌석리에서 고치령 정상까지는 5㎞, 정상을 넘어 마락리까지는 4㎞ 정도 걸린다. 조금 더 내려가면 의풍마을이 나타난다. 고치령 길은
지프가 다닐 수 있지만 초입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승용차는 조금 버겁다.
고치령은 번듯한 식당 하나 없는 곳이다. 931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 맛집을 만날 수 있다. 순흥묵집(054-632-2028)은 조밥과
함께 양념을 한 묵을 썰어 내놓는 집으로 제법 이름난 곳이다. 3,500원. 부석사 관광단지 내의 종점식당(633-3606)은 산채비빔밥과
산채백반이 이름난 집. 백반이나 비빔밥을 시키면 구수한 청국장이 따라나온다. 백반 6,000원, 비빔밥 5,000원. 숙소 역시 대부분 민박.
좌석리와 부석사 관광단지 내에는 민박집이 없다. 코리아나호텔(633-4445)이 좋다.
부석사가 가깝다. 부석사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라는 배흘림 기둥의 무량수전이 있는 곳. 은행잎이 떨어져 카펫처럼 깔린
낙엽길 진입로가 뻗어 있다. 무량수전 바로 앞 안양루에 서면 소백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 뒤편에는 부석사 유래를 간직한 부석(浮石)이
있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를 사모하다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된 선묘낭자가 거대한 돌을 띄워 나쁜 무리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054)633-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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