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고 놀 때 참으로 신명나게 놀았다. '신명나게'는 '신나게'의 다른 표현이다. 당시 놀이는 꼬마들에게 중요했고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고 약속하고 무슨 놀이를 할까가 최대 관심사였다. 사실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렇게 해도 부모들은 공부하라고 독촉하지도 않았고 밥 때도 모른채 하루 종일 밖에서 뛰어 놀아도 꾸중하지 않았다. 너무나 신명나게 놀기에 바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대 요즘 아이들을 보면 참 안스럽다.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지 부모들이 짜준 과외스케줄대로 온갖 학원들을 다니느라 놀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니 신명나게 놀 놀이도 시간도 찾지 못한다. 이미 아이들에게서 신명은 떠나가고 없다. 아직 어린 손자 손녀들을 바라보면서 저녀석들도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아이들의 신명은 놀이에서 나온다. 그런대 그 녀석들이 뻘뻘 땀 흘리고 놀 놀이도 없고 저녁 때를 넘길 때까지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보기 어렵다. 이런 모습은 도시 생활환경, 놀이 공간부족, 주거 상황 등과 관련이 높다. 어떤 이유든 아이들 간의 관계를 지탱해 주는 핵심은 놀이이고 이런 놀이의 힘은 함께 어울려 노는 신명과 신명풀이 인데, 요즘 아이들의 놀이는 컴퓨터 게임 등 전자시스템에 의존하는 혼자만의 놀이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놀이로는 신명을 발산할 수 없다. 그 결과 요즘 아이들은 아이답지 못하고 놀이신명도 느끼지 못한 채 덩치만 커지고 있다. 이것은 상당부문 부모의 탓이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학원을 맴돌게 하고 학원이 끝나면 학습지선생님과 문제집 풀이를 하게 하며 친구들과 바깥에 나가 놀기보다 집에 머물기를 부모들은 원하고 있다. 부모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놀이를 제대로 찾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아이들은 놀이도 잘 알지 못하지고 놀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컴퓨터나 TV앞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일부 연예인들의 천박한 언행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것은 방어기제없이 연예인들의 언행을 그대로 수용해서 모방하려는 심리작동이다.
그 결과, 아이들은 그 나이에 불러야 할 동요는 잘 모르면서 연예인들이 부르는 노래는 잘 부르는 기이현상을 보인다. 더욱 나아가 온갖 자태로 몸을 흔들며 공연식의 춤을 추는 일가견을 보이기도 한다. 더욱 과관인 것은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 박수와 함께 파안대소하는 부모들의 모습이다. 분명 이것은 아이들 놀이의 신명이 아니라 일종의 광기일 뿐이다. 광기와 신명은 다르다. 아이들이 이런 광기가 아닌 놀이에서 신명을 드러내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이 놀이에는 팽이치기가 적격일 것이다. 팽이치기는 좁은 공간에서 친구들과 땀흘리면서 쉽게 신명에 취할 수 있는 놀이의 하나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70을 지난 내 동년배들은 천연두, 콧물, 미제(美製)깡통 분말우유, 토끼털 귀마개, 검정 고무신, 썰매, 박달나무 팽이들은 동심, 향수 그리고 추억과 동격언어들이다. 그 중 썰매타기와 팽이치기는 당시 아이들이 배고픈 줄도 모르고 저녁 늦도록 신명나게 즐겼던 놀이였다. 썰매타기는 얼음이 있어야 했지만 팽이치기는 언제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놀이였다. 그런 팽이치기는 요즘 아이들의 놀이와 다른, 동적이자 신명발산용 놀이였기에 영육(靈肉)을 단련시킨 세대들은 지금의 20~30대와 다르게 고난과 역경도 좌절하지 않고 팽이처럼 우뚝서서 돌아가는 끈기와 의지를 배울 수 있었다. 힘없이 쓰려지려는 자신을 팽이채로 치면서 세상을 향해 다시 뛰어 나가도록 힘을 다시모으니 지혜를 팽이놀이에서 배웠다고나 할까?
회고해 보면, 팽이는 무겁고 크며 벌어진 틈없이 단단해야만 전투적인 팽이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 무겁고 단단할수록 관성력이 큰 과학 원리에 따라, 큰 직경에다 높이가 낮은 앉은뱅이 팽이가 전투적인 싸움팽이로 적격이었다. 마치 인생사에서 자신을 낮추고 내공을 튼튼히 해야 이 어려은 경쟁사회에서 인정받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듯이... 무겁고 단단한 팽이를 만들려면 오줌통에다 사나흘 담가두는 방법을 아이들 알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채 이른 새벽, 동구 밖 남새밭에 오줌통을 이고 갖다 뿌리면 팽이를 찾느라고 코를 감싸고 밭이랑을 헤맸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또 팽이는 팽팽 잘 돌아야 했기에 팽이 밑 뽀쪽한 부분에다 쇠구슬이나 대못을 잘라 박았다. 쇠구슬이 귀해 아이들은 방앗간 연장통을 기웃거리곤 했다.
요즘 문방구에서 파는 팽이들은 그 옛날 갖가지 기교를 부려 깎은 수제팽이에 비할 바 못 된다. 아이들은 팽이에다 물감을 동그랗게 칠해 모양을 내었는데 힘있게 돌아가는 팽이는 아이들에게 무지갯빛 꿈을 안겨주었다. 자신들의 예술적 기교를 팽이 표면에 펼치고 만족해 하는 어린이들의 천진스런 미적감각이라 할까? 팽이종류도 원기둥 모양에 밑으로 내려가면서 원추형이 되는 '말 팽이', 위 아래를 원추형으로 깎아 만든 '장고팽이', 허리가 길고 가운데에 오목하게 줄을 넣는 '줄팽이' 등 깍은 모양만큼이나 종류가 많았다. 바늘과 실처럼 팽이치기에는 팽이채가 필요했다. 팽이채는 팔 길이만한 막대기에 무명천이나 명주실을 꼬아만든 노끈을 메면 되었고 거기에다 적당히 물을 적셔 휘두르면 채찍처럼 ‘따닥’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팽이를 감아 돌려주었다. 침을 한번 손바닥에 칠한 후에 팽이채를 힘있게 쥐고 팽이를 내려치는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팽이치기의 진미는 뭐니뭐니해도 팽이싸움에 있었고 그것이 곧 이 놀이의 신명표현이다. 서로 팽이를 돌리다가 상대방의 팽이에 힘껏 부딪치게 해 팽이를 넘어뜨리는 '박치기', 팽이를 서로 힘껏 부딪치게 한 다음 돌기를 겨루는 '오래 돌리기', 팽이를 몰고 일정지점을 돌아오는 .몰고 돌기' 등 팽이싸움방법도 다양했다.
산업화 이후 이른바 '플라스틱 문화'가 들어오고 수입완구와 장난감이 홍수를 이루면서 어느 새 옛날 팽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속 모델로 최근에는 '탑 플레이트'란 이름의 수입산 팽이가 아이들 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손자 녀석이 문방구에서 팽이를 샀다고 내게 보여주었다. 자세히 보니 합성수지 재질에 톱니바퀴가 내장되어 있고 손잡이를 당겨 돌리도록 되어 있었다. 이 수입 '변종팽이'는 효과음은 물론이고 회전할 때 발광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오직 실내용이었기에 온몸으로 치던 팽이놀이의 기상과 신명은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힘있게 팽이채를 휘두르고 아이들의 꿈과 열망을 쏟아부을 팽이가 아니라 팽이를 던져 돌아가는 모습만 보는데 만족해야 할 이름만의 팽이일 뿐이었다. 플라스틱팽이들은 모두 물러가고 나무로 만든 전통팽이가 제 자리로 돌아와 아이들 옆에 있어야 한다. 이 팽이로 아이들이 신명나게 놀고 전투적인 신명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신명나는 팽이치기를 할 수 있도록 환경과 마련해 주고 시간을 할해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더 건강해지고 팽이놀이에서 신명을 알고 인생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