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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죽음 9:1~6
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2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그 모든 것이 일반이라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아니한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일반이니 선인과 죄인, 맹세하는 자와 맹세하기를 무서워하는 자가 일반이로다
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4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5 산 자들은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니라
6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없어진 지 오래이니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 중에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현재를 즐거워하는 삶 9:7~10
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8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9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10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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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의인과 악인, 선인과 죄인의 결국이 똑같습니다. 그래도 산 자에게 소망이 있음은 자신이 죽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해 아래서 사는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 자기가 수고하고 얻은 몫입니다. 스올에는 일도 계획도 없으니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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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0 아직 살아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말씀요약:
의로운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모든 사람 앞에 놓은 운명은 다 같다.
그래도 산 자에게 소망이 있음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죽은 사람은 사랑이나 미움이나 질투도 사라져 버렸고 해 아래서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에도 참여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너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시라 하신다
또 하나님께서 해 아래서 네게 주신 일생 동안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
그리고 무엇이든지 네 손으로 할 만한 일을 찾으면 온 힘을 다해 하라고 하신다.
묵상: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이 모든 것을 연구하고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다.(1)
의로운 사람이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1)
지혜자의 최종 결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해 아래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에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피해서는 살아 갈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무당이나 우상이나 점쟁이나 오늘의 운세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 앞에 놓인 운명은 다 같다고 하신다.(2)
참 불공평해 보이는 말씀인 것 같다.
나의 사상 속에는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 받는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의인이나 선한사람 정결한 사람과 예배하는 사람은은 무언가 조금 나은 것이 있고
악인이나 나쁜사람 부정한 사람과 예배도 않는자는 쪼끔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의 운명이 다 같다고 하신다.(3)
인생의 최종 종착역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산 자에게 소망이 있음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5)
왜 살아 있다는 것이 중요한가?
살아 있는 동안 복음을 듣고 믿을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면 회개할 기회도 있고 예수님 믿어 구원을 얻을 기회도 있다.
하지만 이미 죽어 버렸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사랑이나 미움이나 질투도 사라져 버렸고 해 아래서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에도 참여 할 수가 없다.(6)
그래서 개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 보다 났다고 하신다.(5)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의인이나 악인이나 정결한 사람이나 부정한 사람이나 다 똑 같다면
이렇게 살거나 저렇게 살가나 자기손 마음대로 흔들면서 살면 된다는 말씀인가?
성경은 그렇게 함부로 살아라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1. 너는 가서 기쁨으로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시라 하신다.(7)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라는 말씀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아멘.
내 삶이 이런 기쁨의 삶 축제의 삶이 되길 기도한다.
2. 하나님께서 해 아래서 네게 주신 일생 동안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9)
왜 하필이면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하시는가?
예배를 충성스럽게 섬겨라, 회사에서 큰 일을 해라, 자녀를 잘 양육해라 하지 않으시고
왜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하시는가?
하나님도 가화만사성 이라고 깨달의 셨는가?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는 의미는 가장 작은 것에서 부터 충성을 하라는 말씀이다.
가정이 엉망인데 예배 봉사에 열심을 내고 성경 공부에 미쳐 다니지 말라는 말씀이다.
일터가 아니라 가정을 먼저 잘 세우자. 아멘.
3. 네 손으로 할 만한 일을 찾으면 온 힘을 다해 하라고 하신다(10)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내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돌린다.
죽으면 열심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이다. 아멘.
맡은 일에는 작은 일이라도 온 힘을 다해서 섬기자 .
적용:
기쁨으로 네 음식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시라고 하신다.
세상이 알수도 없는 기쁨 빼앗기지 말자.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내 안에 기쁨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자.
네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하신다.
아내와의 관계가 멀어지면 모든 것이 다 엉망임을 알고
살아 있는 동안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자.
아내가 좋아하는 언어는 섬기는 언어이다. 청소 설걷이 기쁜마음으로 돕자.
온 힘을 다해 하라고 말씀하신다.
메너리즘에 빠져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잘하자.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숨을 쉬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의로운 자나 지혜로운 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 영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인생 되게 하옵시고
제게 맡겨 주신 모든 일들 책임감 있게 잘 감당 하는 삶 되게 하옵소서.
최선을 다해서 기쁘게 감당해야 할 곳이 가정임을 배웁니다.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먼저 아내와 화목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네 안에 기쁨을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게도 빼앗기지 않도로 인도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할 승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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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있는 삶(9:1~6)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피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을지 미움을 받을지 알 수 없음은 그것이 미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각 사람의 행위와 결말을 아십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타락한 인간은 악을 꾀하다가 결국 영원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직 살아 있는 자는 장차 죽을 줄 알고 삶을 소중히 여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비천해도 산 자가 죽은 자보다 나은 것입니다.
- 묵상 질문: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공통적인 일은 무엇인가요? 산 자가 죽은 자보다 나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게도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나요?
최선을 다하는 삶(9:7~10)
성도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맺어 주신 배우자와 사랑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락하신 복입니다. 여러 여자가 아닌 한 명의 아내와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음란을 멀리하며 깨끗하고 단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기본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인생의 낙을 누리기 원한다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죽으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 맛보는 행복은, 그러지 못한 사람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성도는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의 행복을 누리나요?
- 적용 질문: 최선을 다해 기쁘게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늘 제게 붙여 주신 사람들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가정 공동체 안에서 깊은 사랑과 쉼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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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어떤 분이십니까?
1절 세상 이치를 잘 깨닫는 지혜자의 일이나 선을 행하는 의인의 일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전도자는 의인들이 행한 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내 선의가 미움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악인의 속임수에 세상이 환호로 화답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미래의 궁극적인 주권자는 하나님밖에 없음을 신뢰하면서 당장 열매가 없더라도 상관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할 용기와 담대함을 구합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교훈은 무엇입니까?
2,3절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에게 죽음은 모든 것을 끝장낼 뿐 아니라, 살면서 간직하고 지킨 도덕적 가치를 의미 없는 것으로 돌리는 악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선하고 의롭게 맹세를 지키며 사는 것이 전부 의미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미친 듯이 살다가 죽는지도 모릅니다. '해 아래' 시각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분을 주로 모시고, 그 주를 살리신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죽을 때까지 선하고 의롭게 살 이유가 있습니다.
4-6절 삶의 한계를 절감하며 차라리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복되다고 말하던 전도자는(4:2), 여기서는 삶을 긍정합니다. 죽은 후에는 죽음을 인식할 수조차 없으니, 죽음 앞에서 맘껏 좌절할 수 있는 삶이 낫다고 합니다. 미움과 시기로 가득한 삶이지만 어딘가엔 사랑과 위로가 있고, 시행착오와 실패뿐인 인생 같지만 때때로 보상과 성취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 너머를 담대히 말할 수 있지만, 삶을 긍정하고 죽음의 잔혹함을 인정하는 전도자의 현실주의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거기서 참된 소망이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7-10절 인생은 헛되지만 일상에서 가정생활까지 하나님이 기쁘게 즐기라고 주신 복이 있고 누려야 할 관계가 있습니다. 일이 허무한 수고로 끝나기도 하지만,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허무한 죽음을 앞둔 지혜로운 인생의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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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전도자는 살아 있는 것의 가치에 주목합니다. 산 자라면 죽음 때문에 고뇌하기보다 일상의 즐거움을 회복하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인간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의인에게 일어나는 불행조차 그분의 손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록 우리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모를 때도 있지만 그 시작과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많은 은혜를 받아도, 당장 아무런 보응과 보상이 없다 해도 섣불리 하나님의 뜻을 속단하고 재단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3절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때가 되면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홀로 마주해야 합니다. 의인이라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의미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며 살다가 죽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이후에 심판이 있기에(히브리서 9장 27절), 영원한 형벌을 받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말고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붙잡고 순례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4~6절
전도자는 죽음의 잔혹함도 인정하지만 살아 있는 삶도 긍정합니다. 마치 오늘만 있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데서 참된 소망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죽은 자에게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천해도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삶은 죽음보다 값집니다. 그러니 오롯이 내 몫으로 주어진 오늘 하루를 귀히 여기십시오. 오늘을 소중히 여길 때 소중한 하루가 될 것입니다.
7~10절
죽음의 얼굴이 그토록 차가우니, 살아 있는 동안 하루의 근심을 내려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시며,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매무새를 단장하고, 곁에 있는 가족과 행복하게 살라고 조언합니다.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염려가 차오르고 일상의 삶부터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산 자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소박한 일상을 챙기고, 주어진 일상을 누리십시오. 내가 기뻐하면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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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도자는 전도서 8장에서 의인이 선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상보다는 도리어 악인이 잘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삶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이런 삶을 뒤로 한 채, 하나님이 인정하신 삶을 즐기라고 합니다. 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온 마음을 쏟아 부었지만, 악인들에게 묻혀버리기도 하였고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허무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전도자는 계속해서 악인들과 의인들을 비교해 나가는데, 핵심은 의인이 악인과 비교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서 악인이 성공하기도하고 의인이 실패하기도 하는데, 결국에는 사람이 세상에서 의롭게 사는 것과 악하게 사는 것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운명이 같기 때문이지만, 전도자는 할 수만 있다면 삶을 즐기라고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발견하면 힘을 다하여 일하라고 합니다. 그런 이유도 죽음 앞에서는 지식도 지혜도 계획도 없기 때문으로 보았습니다.
[1](전도서 9:1~2) 그 누구도, 지혜자조차도,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까닭을, 사랑받거나 미움 받는 까닭을 사람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하나 확실한 것은 죽어야 한다는 운명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닥친다는 사실입니다(2절). 여기서 ‘맹세’는 이른바 정결함의 맹세를 가리킨다고 봅니다(욥기 31장과 욥기 31:6절 참조). 악인이 이런 ‘맹세’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은 틀림없습니다.④
[2](전도서 9:3~6)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죽어야 하므로,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봅니다(2절).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의인이 자기의 의로써 얻는 바가 무엇인가? 죽음이라는 일반적인 운명 앞에서는 옛 지혜론의 낙관론이 통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4절의 하반절의 속담이 맞다면, 가장 비참한 삶(‘개’는 가장 멸시받는 짐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조차도 죽음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만 죽은 사람과 다르다면,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3절의 하반절은 전도자의 부수적인 생각을 드러내는데, 그 뜻이 문맥상으로 아주 확실하지는 않다고 봅니다.④
[3](전도서 9:7~10) 7~10절에서 전도자는 자기의 세계관을 결론짓는다고 봅니다(2:24와 관련 구절 참조). <전도서>의 다음 부분(9:11~12:7)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전도자에게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 근거를 삶과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8절의 ‘희게 하며’는 ‘새로 빨며’를 뜻하는데, ‘희다’와 ‘향 기름’은 둘 다 기쁨과 교양 있는 삶의 표입니다.④
[1]전도자는 꽤 많이 탐구하고 연구한 것 같습니다. 그가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악인이든지 의인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깨달은 것처럼 의인이든 악인이든 죽음 앞에서는 동일한 것이며, 별 다른 것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발견한 희망은 바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있으면서 받은 고난 때문에 죽은 자가 더 낫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가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사랑과 미움도 있고 심지어 시기하는 마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2]전도자는 오랜 만에 참으로 귀한 지혜를 깨닫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시간과 삶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이든지 힘을 다하여서 즐겁게 살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깨달은 것처럼 우리의 삶(의인이든 악인이든)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곧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비하신 삶인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이끄시고, 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발견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삶은 나의 수고에 대한 보상입니다. 그래서 즐길 권한도 있고 행복하게 살 권한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귀한 삶을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다시 오지 아니할 오늘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