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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MOTOR TREND > COME THE WEIRD > SPECIAL REVIEW
뒤가 날렵한 쿠페형 SUV는 확실히 이상한 SUV다. 하지만 이들은 나쁜 남자의 매력을 담고 있다. 이달 주제는 쿠페형 SUV로 잡았다. 크로스오버의 한 종류인 쿠페형 SUV는 SUV의 터프함에 쿠페의 멋을 더한 차다. 쿠페 스타일 SUV를 생각하면 쌍용 액티언이 먼저 떠오른다. 액티언은 세계적으로 쿠페형 SUV 바람이 몰아치기 직전에 나온 차다. 이런 차가 유행할 것을 감지하고, 작은 회사의 이점을 살려 발 빠르게 내놓은 차였다. 프레임 보디로 만든 억지가 안쓰러웠지만, 그런 차를 양산한 당시 쌍용차의 결단이 흥미로웠다. 자동차를 고를 때 항상 앞선 콘셉트에 큰 점수를 줬던 난 앞으로 다가올 쿠페형 SUV 세계를 맛보고 싶어 1세대 액티언을 샀다. 덩치는 커다란데 트렁크에 골프백이 두 개밖에 들어가지 않는 걸 보면 쿠페 스타일 SUV가 틀림없었다. 이상하게 높은 트렁크 바닥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개가 갸웃했지만 이유를 알 순 없었다. 껑충한 키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프레임 때문에 무게중심은 낮을 거라고 자기최면을 걸었다. 도심형의 세련된 차가 되기 위해 일부러 저속 기어를 없앤 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액티언을 타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니, 위원님이 어떻게 그런 차를 타세요?”였다. 이상하게 생긴 차라는 질책이었다. 나 역시 앞모습은 좀 별로였지만 쿠페다운 루프라인이 무척 예뻐 보였다. BMW X6보다 앞서 나온 액티언을 한동안 즐겼다. 액티언에서 우락부락함을 즐긴 건 아니다. 단지 유쾌한 무지(無知)를 즐겼다. 액티언이 출시된 지 한참 후 BMW에서 X6가 나왔다. 터프함이 생명인 SUV에 멋을 내겠다고 패스트백을 갖다 얹은 디자인은 한마디로 무모해 보였다. 뭐 이런 차가 다 있나 싶었다. 도심 한가운데를 무지막지하게 큰 차를 타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이기적으로 보이는데 멋까지 내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나만의 안전이 중요하다고 내세우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SUV로 스포츠카 같은 멋을 내겠다는 발상이 어이없었다. 투박한 차를 쿠페로 만드는 게 너무하다 싶었다. 기능을 중시하고 실용적인 유럽인들이 좋아할 차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그 무지막지한 차의 디자인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보다 럭셔리한 차가 없어 보였다. X6의 우람한 자태는 쿠페형 SUV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줬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크기에, 기름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차는 무모할수록 폼이 난다. 일부러 비효율을 추구하면서 그 안에서 멋을 찾는다. 쿠페형 SUV는 터프한 차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안전을 도모하면서 멋을 부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만들어졌다. 쿠페형 SUV는 ‘나쁜 남자’의 매력을 담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중형 SUV인 GLE 쿠페에서도 그런 무모함을 볼 수 있다. 웅장한 차에 묘한 권위가 서렸다. 나쁜 녀석이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폼을 잡는 데 덩치 큰 차를 다루는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다. 오늘 부른 시승차 GLC 쿠페와 X4는 같은 콘셉트지만 크기를 작게 만들었다. 같은 모양이지만 작아진 크기는 X6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GLC 쿠페는 단단하고 멋지고, 무지하기보다는 세련됐다. MERCEDES-BENZ GLC COUPE 벤츠가 쿠페 스타일 SUV를 선보인 건 BMW가 X6를 출시하고 한참 후다. 벤츠에게는 이런 무모한 차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X6가 히트작이 됐다. 벤츠는 이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객이 원하면 어떤 차도 만들겠다는 벤츠의 큰 꿈은 쿠페형 SUV 모델을 더하면서 상당히 복잡한 SUV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모델이 늘면서 이름도 복잡해져 간다. GLC와 GLC 쿠페는 완전히 다른 모델이다. GLC 쿠페는 생각보다 예쁘다. 예쁜 모습은 원래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C 클래스와 함께 쓰는 플랫폼 때문인지 요즘 벤츠에는 비슷비슷한 차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모든 벤츠가 같은 얼굴로 만들어지니 이런 생각이 들 만도 하다. GLC 쿠페는 SUV인 만큼 키가 크고, 쿠페라 보디라인이 둥글고, 벤츠라 얼굴이 눈에 익는다. GLC보다 공간이 제약되고, 뒤 시야가 안 좋다. 차에서 조금 불편하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건 일부러 그렇게 한 거다. 스포티함을 마음에 품고 서스펜션을 단단히 조였다. 조금은 허영심에 들떠 있어서 값도 약간 비싸다. 폼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다. GLC 쿠페는 GLC보다 낮고 길게 만들어 자세를 가다듬었다. 가로로 된 테일램프는 S 클래스 쿠페를 닮아 보인다. GLC 쿠페만의 실루엣이 고혹적이다. 다만 멋으로 덧댄 발판은 필요 없어 보인다. 타고 내릴 때 괜히 바지만 더럽힐 것 같다. SUV답게 적당히 높은 운전석은 넓은 시야를 보여준다. 그만큼 운전이 편하다. 대시보드와 도어 안쪽을 감싼 가죽 등 실내의 고급스러움이 AMG 급이다. 뒤를 돌아보면 시야가 좁은데, 쿠페다운 맛을 부추긴다. 시야는 조금 답답하지만 아늑한 뒷자리에 만족한다. 그래서 쿠페인 거다. 뒷자리 공간이나 트렁크 크기는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GLC 쿠페는 모두 스포츠 서스펜션을 얹었는데 차가 부드럽게 달린다. 디젤 엔진이라는 걸 잊은 채 부드럽기만 하다. 고속으로 치닫는 엔진은 아니지만 항상 안정되고 조용하다. 2.2리터 디젤 엔진은 힘도 적절해 2톤에 달하는 시승차를 0→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시간 8초대로 몰아가는 운동성능을 보인다. 넘치는 힘은 아니지만 부족함은 없었다. 스티어링은 예리하고 승차감은 푸근하다. 네바퀴굴림까지 더했으니 두루 쓰기 편한 차로 제격이다. 이렇게 멋진 차가 이 정도 실용성을 지녔다면 GLC보다 GLC 쿠페를 고를 만하다. 자동차를 고를 때 폼은 중요한 거다. BMW X4 M 스포츠 패키지를 더한 X4는 카리스마 넘치는 X6의 축소판이다. 보디가 새빨간 시승차는 두꺼운 타이어가 박력을 더하지만 X6의 우락부락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쿠페형 SUV는 조금 겉멋이 들어야 하는데 너무 얌전한 것 아닌가 싶다. 구형 X3와 같은 대시보드 디자인을 보면서 X4만의 특별함을 찾으려 애썼다. 쿠페 스타일 SUV는 시야가 답답한 뒷자리가 가장 큰 단점이다. 하지만 뒷자리를 무시하면 운전석의 내가 존재감을 찾는다. 그게 쿠페의 원리다. 운전석에 앉자 사이드 볼스터가 몸을 꽉 잡는다. 넓적다리를 받쳐주는 시트 앞쪽 받침이 편하다. 참고로 벤츠는 자동이지만 BMW는 손으로 앞쪽 받침을 당겨야 한다. 수동식은 오히려 스포티하다고 우길 수 있다. 황토색 시트가 화려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때가 잘 타는 재질 같았다. 뒷자리는 좀 낮게 앉지만 등받이 각도가 편하다. 뒤 시야도 GLC 쿠페보다는 좀 낫다. 그런데 쿠페의 성격상 그게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은 X4는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190마력은 운동성능에 부족함이 없었다. 가끔 기분을 내고 싶으면 시프트 패들로 엔진을 다그치면 된다. 고속에서도 네바퀴굴림의 안정감이 듬직하다. 아주 조금의 차이지만 GLC 쿠페와 비교해 X4가 상대적으로 거칠고 투박하다. BMW인 만큼 스포티한 감각을 느끼고 싶다. BMW로서 나무랄 데가 없긴 하지만 데뷔한 지 벌써 4년째인 X4는 어딘가 나이가 묻어난다. 대시보드의 재질은 개선이 필요해 보이고, 디자인도 살짝 다듬어주고 싶다. 지난 몇 달 동안의 판매량을 보면 X4보다 X3가 많이 팔렸고, GLC보다 GLC 쿠페가 많이 팔렸다. 고객의 선택은 정확하고 옳았다. 신형 X4의 스파이샷이 인터넷에 떴다. 내년에 2019년형이 나올 예정이란다. 새 차는 보닛이 부풀어 오르고, 뒤창도 GLC 쿠페처럼 둥글려진다. 한층 나아진 모습이 기대된다. 신형 X3의 대시보드를 가져다 쓴다면 훨씬 세련된 차가 될 거다. EPILOGUE 자동차 회사는 항상 틈새시장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더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벤츠가 E 클래스로 CLS를 만든 건 신의 한 수였다. X5를 쿠페로 만든 X6 역시 SUV 라인업에 새로운 장르를 더할 수 있었다. 물론 팔리기도 많이 팔렸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나 포르쉐 마칸 역시 쿠페형 SUV 시장에서 경쟁한다. SUV 시장이 커지면서 멋을 중시하는 쿠페 스타일 모델의 등장은 당연한 순서였다. X6와 X4는 모양은 같지만 전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크기만 다를 것 같았던 GLE 쿠페와 GLC 쿠페의 감각은 사뭇 달랐다. 쿠페형 SUV는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X4와 GLC 쿠페는 라이벌이 분명하다. 복잡해지는 차들이 재미를 더해간다.
발행2017년 9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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