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지우다
이순희
찌든 때를 지우는 법을 찾아보다가
때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다
때-
시간의 어떤 순간
끼니 또는 식사시간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
때-
옷이나 몸 따위에 묻은 더러운 물질 또는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불순하고 속된 것
까닭없이 뒤집어 쓴 더러운 이름
한 단어가 전혀 다른 뜻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연관성을 붙여보려고
시간, 끼니, 기회, 더러움, 속된 것, 누명을 나열해 봤다
인생살이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묻어 있다
때는
밥이고 기회이고 순간이다
때는
더럽고 속되고 덧없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시를 쓰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고, 삶을 사는 것는 시를 쓰는 것이다. 시는 삶의 번역이고 기록이지만, 그러나 이 삶을 번역하고 기록하는 것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동안의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이 언어와 언어, 또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이며, 새로운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어(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언어와 언어가 결합하거나 충돌할 때 그 의미는 어떻게 변형되며,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어떠한 역사 철학적인 문맥 속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될까라는 문제는 매우 어렵고도 힘든 사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순희 시인의 [때를 지우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에서 “찌든 때를 지우는 법을 찾아보다가” 너무나도 손쉽고, 너무나도 뜻밖에 얻어낸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순희 시인은 “찌든 때를 지우는 법을 찾아보다가” “때”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졌던 것이고, 그 결과, ‘때’란 말이 동음이의어로서 “전혀 다른 뜻을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는 “시간의 어떤 순간/ 끼니 또는 식사시간/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옷이나 몸 따위에 묻은 더러운 물질 또는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불순하고 속된 것/ 까닭없이 뒤집어 쓴 더러운 이름”이다.
산다는 것이 때를 기다리며 좋은 기회를 엿보는 것이고, 산다는 것이 좋은 기회를 엿보다가 더러운 때를 묻히며 속되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때와 때의 언어의 동일성에 주목하고, 이 동일한 언어가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가를 고찰하며, 그것을 좀 더 깊고 심오하게 역사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것이 이순희 시인의 [때를 지우다]라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때를 지우다]는 ‘때의 시학’이고, ‘때의 철학’이며, 우리들의 인생은 ‘때’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날 수가 없다. 때는 밥이고 기회이고 순간이고, 때는 더럽고 속되고 덧없다.
때와 때 사이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이 다 묻어 있다.
때와 때는 상호이질적이고, 놀라운 충돌이며, 때와 때의 결합에 의하여 우리들의 인생을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가 명령하고, 때가 심판한다.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