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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건너지 말라 / 한서노회
다윗의 생애 가운데 영화로운 때가 있었는가 하면 고통스러운 통한의 때도 없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을 괴롭힌 인물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한 사람 시므이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시므이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사울의 족속이며 게라의 아들입니다. 그는 사울 왕가의 몰락을 다윗에게 돌리면서 극단적인 저주를 다윗에게 퍼부었습니다. 시므이는 백성과 용사들이 보는 가운데 다윗과 그의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했습니다.
사울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며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다고 악담을 했습니다(삼하 16:5-8).
시므이가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몽진(蒙塵)하는 다윗에게 왜 이런 일을 했습니까?
① 시므이는 영적 통찰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울 왕을 폐하시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일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기쁘신 뜻을 모르는 인본주의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습니다. 영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② 그는 다윗을 저주할 때 독한 말로 저주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8절에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독한 말로 저주했으니 용서를 받을 수 없는 큰 죄악입니다. 열왕기상 2장 44절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고 했습니다.
③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면서 저주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13절에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고 했습니다.
④ 피흘린 자 비루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7절에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고 했습니다.
⑤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를 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8절에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비새 장군이 참다못해서 『왕이여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히소서』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분해하는 아비새에게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고 했습니다(삼하 16:10).
계속해서 다윗은 사무엘하 16장 11-12절에 『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원수의 저주를 저주로 대하지 아니하는 성군이었습니다.
다윗과 그의 종자들이 피난할 때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렸습니다. 다윗은 그와 함께한 백성들과 피곤한 몸으로 한 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압살롬의 반역이 끝나고 다윗은 예루살렘 성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때 제일 먼저 환영나온 사람이 시므이입니다. 베냐민 사람 천명과 함께 요단강을 밟고 건너와서 다윗을 환영했습니다. 다윗왕 앞에 엎드린 시므이는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와 같이 살려고 하는 것은 충성처럼 보입니다.
사무엘하 19장 19-20절에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는 고로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비새가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저주하였으니 죽어야 마땅하다고 하자 다윗이 죽이지 아니했습니다. 사무엘하 19장 23절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윗은 그의 임종 시에 솔로몬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는데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저주했다"라고 옛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니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하여금 부왕 때 오만 방자한 요압을 죽이게 했습니다. 솔로몬은 요압을 대신하여 브나야로 하여금 군대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부왕의 유언을 따라 시므이를 불렀습니다.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말하기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가지 말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고 했으나 시므이는 결국 그 약속을 어기므로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는 행악자의 최후를 맞게 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시므이에게 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기드론 시내는 감람산에서 발원하여 사해로 들어가는 시내입니다. 이 시내는 예루살렘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예루살렘 성과 경계가 같은 곳입니다.
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는 말은
Ⅰ. 예루살렘에서 나가지 말라는 금족령 (禁足令)입니다.
본문 2장 36절에 『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척으로 베냐민 지파의 영향력 있는 인사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일종의 주거 제한령입니다.
솔로몬은 다윗 왕의 유언에 따라 대적자를 처단하므로 왕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왕권을 내심 인정치 않고 있던 아도니야는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아도니야와 뜻을 같이 했던 아비나답과 요압도 각각 파면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시에는 아군이 아니면 모두 적입니다.
다윗 왕가에 대해 저주했던 일로 용서는 받았으나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는 부왕의 유언에 따라 솔로몬 왕은 시므이에게 일대 단호한 조치를 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용서는 조건 있는 용서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위임되는 조건입니다. 결국 시므이의 용서는 솔로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내가 맹세로 죽이지 않기로 했지만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인정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부왕의 뜻을 받들어 예루살렘에서 시므이에게 금족령(禁足令)을 내렸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요 솔로몬의 통치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6-27절에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시므이는 이러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는 말은
Ⅱ. 구속의 은혜에 보은적 삶을 살라 는 말입니다.
본문 2장 8절에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악한 말로 저주한 시므이를 다윗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압살롬의 난을 평정하고 환궁하는 다윗 앞에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자 시므이가 용서를 구하는데 시기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므이는 자신을 살려준 왕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솔로몬 왕의 조치에 순복해야만 했습니다.
너는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말라는 말은
Ⅲ. 예루살렘을 떠나면 죽는다는 말입 니다.
본문 2장 37-38절에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고 했습니다.
시므이는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갔습니다. 시므이는 그 종을 찾기 위해 나귀에다 안장을 지우고 두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솔로몬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므이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본문 2장 42-43절에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부왕 다윗에게 행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여 시므이를 쳐서 죽게 했습니다. 이 계약은 하나님과 솔로몬왕과 시므이 사이의 계약입니다.
만약 누구든지 이 계약을 깨뜨리면 하나님의 저주가 따릅니다. 만약 시므이가 예루살렘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솔로몬도 부왕 다윗의 유언을 더 이상 옹호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고 솔로몬과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시므이가 죽은 것에 대하여 솔로몬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시므이를 다시 한번 용서해 준다고 하면 솔로몬이 한 말이 무슨 권위가 있겠습니까?
솔로몬 왕의 공의는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시므이가 왜 죽었습니까?
첫째 솔로몬왕의 공의에 도전했습니다.
둘째 솔로몬과의 약속은 자신이 죽고 사는 생명적 약속임을 잊어버렸습니다.
셋째 물질에 눈이 어두웠습니다.
당시에 종은 재산과 같은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죽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생각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삶에만 너무 집착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의 불신 때문입니다.
다섯째 시므이는 이미 다윗의 손에 죽기로 작정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부 하나님께서 심판의 권을 아들에게 다 맡기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은 죽이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살려주시는 법입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오늘의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받았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들의 삶의 무게와 욕심에 눌려 하나님 말씀을 떠나 세상으로 가면 용서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택자들은 어떠한 연약 중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아니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을 위하여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기드론 시내는 영적으로 교회와 세상의 경계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경계입니다. 생과 사의 경계입니다. 말씀을 떠나가면 구속의 약속이 성립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므이는 생명의 약속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 벌써 불신앙입니다. 그는 솔로몬 왕과의 계약조건에 처음부터 유기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지상의 그의 몸된 거룩한 교회에서 열매를 봅니다. 오늘의 예루살렘인 교회를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지 맙시다. 오늘의 예루살렘인 교회에서 구원의 은총에 보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면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살게 된 것을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 시간도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게 하시며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못하도록 강권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