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8막62장 (3부)
작년에 이어 올해 아내가 환갑연을 치루었다.
올해로 61세가 된 아내는 건강 관리를 잘하여 몸맵시가 좋았고 주위의 부러움을 한껏 받는 각선미를 자랑하였다.
나하고는 한살 차이 이나 머리카락이 전무한 나는 대머리가 되였고 약간 배가 나온 나와 아내가 걸을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았다.
아내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였다.
IMF시절 나의 옆자리를 지켜주었고 내조의 힘으로 자식들을 치과의사와 중소기업회장 외아들 며느리로 키웠으니 모두 아내의 노력과 은덕 덕분이다.
또 아내는 알찬 부업으로 나의 빈자리를 메꾸어 주었고
내가 건축사업 진행중 자금이 어려울 때는 돈을 융통하여 전주노릇을 톡톡히 한것이다.
현모양처의 구색을 갖춘 아내는 집안에서도 맏며느리감이라는 칭송을 받았고 나의 부모님들께도 상당히 정성을 들여 모시는 것을 보고 내가 무안할 지경이였다.
그런 아내가 환갑이 된것이다.
가끔 마다 나는 농담조로 이야기하였다.
"시집은 더럽게 못왔어도 자식 복이 많고 말년이 웃음꽃이 만개한 인생을 즐긴"다는 칭송을 아내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 하곤 하였다.
나는 그런 아내가 좋았다.
나의 천생연분이였다.
젊은 시절 길거리를 배회하던 수많은 처자중 17지구 의료보험조합에서 만난 아내는 나의 영윈한 친구이자 연인이였다.
아내의 환갑연.
찌들어 가는 경제 때문에 환갑기념 여행을 못갔어도 조촐한 부페식당을 예약하여 가까운 친인척이 모두 모였다.
마이크를 잡고 답례사를 하던 아내.
나는 빔프로젝트를 대여하여 회갑연 중앙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3시간짜리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신혼여행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아내와 나의 고귀한 사진을 편집하여 무한대로 틀고 있었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환갑 부터라고 ..
나는 간만에 술에 만취하여. 색동저고리를 입은 정민이와 채담이,채이에 포위당한 아내를 보았다.
모두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였고 인생 최대의 인생 축하연을 즐기게 되였다.
아름다운 추억은 머리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것..
오늘의 환갑연도 칠순때 보면 무어라 할꼬...
그렇게 부부는 모두 환갑을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