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리라”(수 1:9) 아멘
옛날 동로마 제국에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마차를 타고서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거의 성에 가까이 왔을쯤, 어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서서 ‘내가 이 성에 꼭 들어가야겠는데, 당신의 마차 옆에 나를 좀 태워 가 줄 수 없겠소.’라고 했고, 친절한 이분은 ‘그럼요. 할머니! 타세요.’
그런데 마차를 몰고 가다가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눈 생긴 것과, 코 생긴 것들이, 어찌나 흉하게 생겼는지!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당신은 도대체 누구세요.’ 이에 할머니는 ‘나는 호열자(虎列刺)라고’ 했습니다. 일명 콜레라 귀신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깜짝 놀라서 ‘그런데, 이 성에는 무엇 하러 오셨습니까? 사람을 죽이러 오셨습니까? 당장 내리십시오.’ 그러자 그 할머니 말이 ‘나는 내릴 수 없어! 당신도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콘스탄티노플에 들어가서 그저 사람 다섯 명 이상은 죽이지 않을테니! 그것은 분명히 믿으시오.’
그러면서 자신 가슴 속에서 비수를 끄집어내어 그 사람에게 주면서 하는 말이 ‘이 비수를 가지고 나를 찌르면 내가 이제라고 금방 죽는데, 내가 들어가서 다섯 사람 이상 죽이면, 이 비수로 나를 죽이시오. 분명, 다섯 사람 이상은 안 죽일테니까!’ 그러는 사이 마차는 성안에 들어섰고, 할머니는 내려서 어느 집으로 급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했는데, 이 집 저 집에서 호열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 틀이 못되어 벌써 2,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화가 난 그 사람이 비수를 가지고 그 할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집집마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집에서 할머니를 발견한 그 사람이 할머니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하는 말, ‘당신이 왜 나를 죽이려고 합니까? 분명 나는 다섯 사람밖에 죽이지 않았소.’ 이에 ‘아니 다섯 사람밖에 죽이지 않았는데, 벌써 5,000명 이상 죽었습니까?’ 이에 할머니는 ‘난 실상 다섯 사람밖에 죽이지 않았는데, 그 밖의 사람들은 무서워서 죽었습니다.’
이처럼, 무서워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서워서 심령도 죽고, 무서워서 육신도 죽고, 무서워서 사업도 실패하고, 무서워서 시험에도 낙제하고, 무서워서 경기하다가 지고, ...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기쁘고 즐겁게 살게 하시려고 부르셨다는 것을 ‘믿으면’ 그 두려움이 사라지고 ‘감사’로 바뀝니다.
그래서 전도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즉, ‘최선의 시간’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시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9xNfmsN_8hQ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에게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이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 바로 앞 8절에서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여...”(수 1:8 상) 여기서 주의하여 보아야 할 것은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가 아니라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어라’입니다. 이는 바로 뒤 “주야로 묵상하라” 할 때, 이 ‘묵상’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가’인데, 이의 원뜻이 ‘짐승들이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중얼거리는 듯,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롬 10:9~10)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God is with us.)하시는 줄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2025년 7월 9일(수) 수요 정오 예배가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로운 동행을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달라야 하며, 우리의 생명이 달라야 하고, 삶의 목적이 달라야 하며, 삶의 원리도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들 가운데 어떤 두려움도 걱정도 근심도 전쟁에 능하신 주님께 맡기도 나갑니다. 승리하게 하시길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과 기도로 주안에서 늘 평안 하십시오. 변 요한목사입니다.
531비전(행 4:4, 2:41; 눅 15:4)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오늘 클래식 곡은 ‘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가 1904년에 작곡한 피아노 소품 ‘기쁨의 섬’(L'isle joyeuse L.106)입니다. 특히 이 곡은 ‘회화적 색채감이 넘치며, 뛰어난 기교가 요구되는 난곡’이며, 프랑스 화가 ‘앙투안 와트’의 작품 ‘시테르섬으로의 출범’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으로 처음 ‘가면’(Masques L.150)과 함께 ‘베르가 마스크 모음곡’에 포함시키기 위해 작곡되었지만, 나중에 따로 떨어져 나온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이후 작곡가 본인의 지시로 지휘자 ‘몰리나리’가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였는데, 마치 원래 관현악을 위해 작곡된 곡처럼 매우 자연스러우며, 또한 이 곡은 ‘반음’이 전혀 없이 여섯 개의 온음만으로 이루어진 온음계(whole-tone scale)와 5개 온음과 2개의 반음으로 짜여진 온음계(diatonic scale)가 두루 사용되며, 온음계에서 사용되는 리디안 선법, ‘교회선법’(Church mode)이 그들을 잘 중화시킵니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엄청난 테크닉으로 인해 ‘슈퍼 비르투오스’(Super Virtuoso)로 불리는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연주입니다.)*카톡에서 본문 문서선교로 보낸 글을 보기 위해 클릭하면 상단 위에 이어폰이 나옵니다. 이것을 누르면 AI가 이 글들을 읽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