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안 요 14:27
사람들은 누구나 평안을 간절히 소원합니다. 동시에 누구나 ‘환경이 바뀌면 평안해질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그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안을 어떻게 누릴수 있을까요?
첫째,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사야 26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나 감당할 수 없는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앙망하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시련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새 힘을 주십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방의 온도는 불을 지속적으로 펴야 따뜻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지속적인 앙망함이 환경을 바꾸거나 능히 감당케 하시는 은혜를 입게 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을 믿고 앙망함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이 평안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둘째, 죄사함의 은혜를 입을 때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한 호교의 왕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갈등으로 아들 크리스파스를 죽인 후 죄책감으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전에 사죄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신관은 로마 신전에서는 사죄의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플라톤 철학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죄의 길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골도바의 감독 호레야스를 통하여 십자가의 무한의 은혜를 듣고 제자가 되고 비로소 평안을 얻었습니다. 사죄는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인데 죄를 사함받는 길은 은혜밖에 없습니다. 참 평안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합니다. 평안은 십자가의 사죄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셋째, 진정한 사랑으로 이웃을 대할 때 평안을 끼치는 예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이사야40장1절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지난 2일 경향신문에 나온 글입니다. 올해 28살인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에서 나왔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21살까지 폭행, 절도, 사기, 도박 등으로 소년부 재판을 14번 받았습니다. 보호관찰 같은 처분을 7번 받았고 소년원에도 두 번이나 갔습니다. 그렇게 비행청소년의 삶을 살다가 보호관찰을 받던 중 잠시 지방에 다녀왔는데 보호관찰소에서 마음대로 지역을 벗어났다고 구속영장 신청했습니다. 보호관찰소를 옮겨달라고 그렇게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더니 이렇게 영장을 신청하니 김씨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법무계장이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했습니다. 그건 김씨를 살려달라고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는데 울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김씨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살면서 자기를 위해 울어준 사람이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그 이후로 완전히 변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수한 성적을 받고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지금 소년원에서 나온 아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도와주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