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박철웅 >수필
강이 발원하여 굽이굽이 육백 리 길을 돌고 돌아 곡선으로 휘어지듯
물길이 흐르고 닿는 곳에서.
강을 끼고 있는 지역들은 강의 환경에 맞게 식생활과 문화가 형성되었고 발전하여 꽃을 피우고 살아간다. 강물을 이용하여 농토가 주류를 이루는 마을과 배를 띄워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곳도 있다, 강물이 생명 줄 역할을 한다. 문화적 정서를 제공하는 공간적 배경으로 영향력을 미치기에 충분하다.
나는 섬진강 유역 댐이 있는 주변 상류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나의 선조들은 강물의 사계절이 변화하는 그곳에서 질곡 같은 인생의 전부와 희로애락 (喜怒哀樂)을 느끼며 한평생을 강에 묶여 살았다.
봄이 오면 온 산이 이름 모를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났고, 여름에는 물속에서 멱을 감으며 서산에 지는 노을이 기울 무렵까지 송사리 떼를 몰고 다녔다, 가을엔 강이 내려다뵈는 산비탈 논밭에 황금빛 들녘이 또 하나의 강물로 출렁거렸다. 겨울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강설의 운치를 그려내는 눈오는 풍경 속에서 꿈을 꾸는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강물에서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물 흐름 속에서 배웠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가치관을 정립시키고 꿈을 설계했었다. 성장해 가면서 변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도시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감성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으로 도시로 진출하여 도시의 문화를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도전적 사고와 바탕으로 자라 온 동급생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무리였다. 뒤늦게 이성을 바탕으로 가치관을 설정하며 중요한 청년의 시절을 혼란스러움으로 방황하며 배회하고 보냈었다.
도시인의 모습을 흉내 내고 따라가려다가 보니 추상적인 게 희망의 꿈 인양 마음속에서 싹을 틔웠다. 흩날리는 봄 향기처럼 젊은 날의 꿈은 눈비 맞는 날을 예측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져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렸다.
그때는 실현성 없는 꿈들의 뒤 그늘이 훗날에 가을 낙엽의 추한 모습으로 뒹굴 걸 미처 예견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누추함이 동반하는지도 몰랐었다.
인생을 우연성에 기대며 계획하지 않은 일 행운을 바라보고 따라가며 살아가던 지인의 실패 낙오된 자의 비통함을 곁에서 보았다.
생각해 보니 큰 꿈을 이루어 가는 것도, 이름 나타내는 것도 좋겠지만, 전문적인 기술 하나 잘 배워서 살아간다 해도 인생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거늘. 나 역시 왜 그렇게 허황한 꿈을 갈구했는지 알 수 없었고 이제야 눈앞이 선명해진다. 뒤늦게 육십을 넘어서야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진솔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았어야만 했던 것을.
강물의 유속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마음속에 같은 기억을 회상케 하는데, 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둑에서 회한의 눈물을 떨군다. 이제 내 고향 생명의 강가에서 인생의 꽃을 다시 피워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