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풍수지리
『청오경』에 나오는 반고에 관한 신화
[ -盤古- ]
『청오경(靑烏經)』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반고혼윤 기맹대박(盤古渾淪 氣萌大朴) 분음분양 위청위탁 생노병사(分陰分陽 爲淸爲濁 生老病死) 수실주지 무기시야(誰實主之 無其始也)〉 "반고적 혼돈 상태에서 기가 싹터 크게 밑바탕이 되었는다. 이것이 음양으로 나뉘어 맑고 탁한 것이 이루어졌으며, 생노병사가 이루어졌다. 누가 이를 실제로 주관했으며 그 시작이 없다."
여기서 반고(盤古)를 오랜 옛날이라는 뜻으로 태고(太古)와 비슷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의미로는 같겠지만 반고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혹 『청오경』원서를 강의하거나 읽는 사람을 위해서 그 신화를 소개한다.
※ 참고도서
위엔커(袁珂) 저 / 전인초·김선자 역, 『중국고대신화』, 1992, 민음사
반고(盤古)의 신화 ①
하늘과 땅이 갈라지지 않았던 시절, 우주의 모습은 어둑한 한덩어리의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의 시조 반고(盤古)가 바로 이 큰 달걀 속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큰 달걀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곤하게 잠자며 1만8천 년을 지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릿한 어둠뿐이었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던 반고는 어디선가 큰 도끼를 하나 갖고 와서 어두운 혼돈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큰 달걀이 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었던 가볍고 맑은 기운은 점점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뒤섞여 있어 갈라지지 않았던 하늘과 땅이 도끼질 한번에 갈라지게 된 것이다.
하늘과 땅이 갈라진 후 반고는 그 하늘과 땅이 다시 붙을까봐 걱정이 되어 머리로는 하늘을 받치고, 다리로는 땅을 누르고 그 중간에 서서는 하늘과 땅의 변화에 따라 자신도 변화에 갔다. 하늘이 매일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매일 한 길씩 낮아지니, 반고의 키도 역시 매일 두 길씩 자라났다. 이렇게 1만8천 년이 지나니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낮아졌으며 반고의 키도 한늘만큼 땅만큼 자랐다. 이 거대한 거인이 마치 큰 기둥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버티고 서 있어서 하늘과 땅이 다시는 어두운 혼돈으로 합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고독하게 힘든 기둥 노릇을 한지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이제 하늘과 땅의 구조가 견고해져서 다시는 합쳐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반고는 휴식이 필요해졌고 마침내 인간과 마찬가지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가 죽어갈 때 그의 몸에는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나온 숨길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는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로 변했으며,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쪽 눈은 달로 변했다. 손과 발, 그리고 몸은 대지의 사극(四極)과 오방(五方)의 빼어난 산이 되었다. 피는 강물이 되었으며, 핏줄은 길이 되었다. 살은 밭이 되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이 되었으며,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변했다. 이와 뼈, 골수 등은 반짝이는 금속과 단단한 돌, 둥근 진주와 아름다운 옥돌로 변했다. 쓸모없는 몸의 땀조차도 이슬과 빗물이 되었다. 죽어서 변신한 반고의 몸 전체는 새롭게 탄생한 세계를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또 반고가 울어서 흘린 눈물은 강물이 되고, 그가 토해낸 숨은 기나긴 바람이 되고, 그가 낸 소리는 천둥소리, 눈의 빛은 번개가 되었다고도 한다. 반고가 기뻐하면 햇빛이 빛나는 맑은 날이, 노하면 하늘에 구름이 겹겹이 끼는 흐린 날이 되었다. 눈을 뜨면 밝은 낮이 되었다가 눈을 감으면 어두운 밤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 것이다.
반고(盤古)의 신화 ②
먼 옛날 고신왕(高辛王)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황후가 갑작스럽게 귓병에 걸려 무려 삼년 간을 앓게 되었다. 백방으로 치료를 해보아도 별 효험이 없었다. 그러다가 귓속에 금빛 벌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꼭 누에와 같고 길이는 대략 세 치 정도였다. 그 벌레가 귓속에서 나오자마자 황후의 귓병은 금방 낫게 되었다.
황후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그 벌레를 표주박[호(瓠)] 속에 넣고 쟁반[반(盤)]으로 덮어두었다. 그러자 그 쟁반 속의 벌레는 어느 날 한 마리 개로 변하였는데, 온몸이 찬란하게 오색으로 반짝거렸다. 그래서 쟁반과 호주박 속에서 나왔다고 하여 개 이름을 반호(盤瓠)라고 하였다. 고신왕은 이 개를 보고 매우 기뻐하여 늘 곁에 두고 잠시라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갑자기 방왕(房王)이 반란을 일으키니 고신왕이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여 "방왕의 머리를 베어 바치는 자가 있다면 공주를 그에게 주리라"라고 신하들에게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방왕의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왕이 그 말을 한 바로 그날 반호가 궁전에서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그 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 하며 며칠을 계속 찾았으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다.
반호는 그때 궁전을 떠나 곧바로 방왕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왕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어댔다. 방왕은 이 개를 보자 매우 흡족해 하면서 신하들에게 "고신씨는 곧 망하리라! 그의 개까지도 내게로 투항해 오니 내가 이길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어 이 좋은 징조를 기념하였다. 그날 저녁 몹시 흥겨웠던 방왕은 잔뜩 취해 군중의 천막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반호는 이 기회를 틈타 맹렬하게 방왕의 머리를 물어 자른다음 바람처럼 고신왕에게 돌아갔다.
고신왕은 자신의 애견이 적의 머리를 물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기쁨에 넘쳐 맛있는 고기를 많이 먹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반호는 음식은 먹지 않고 고민스러운 듯이 방구석에 누워만 있었다. 고신왕이 불러도 일어서지 않고 그렇게 이삼 일을 보냈다. 고신왕은 걱정이 되어 생각 끝에 반호에게 물었다. "나의 충견아! 왜 음식도 먹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느냐? 공주를 아내로 맞아 들이고 싶은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 것이란 말이냐? 그건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개와 인간은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란 말이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반호는 곧 사람의 말을 하였다. "임금님 걱정마세요. 임금님께서 저를 금으로 된 종 속에 넣어주시면 일곱 낮 일곱 밤이 지나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답니다." 고신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이하게 여겼으나 결국은 반호를 황금으로 된 종 안에 넣어두고 그가 어떻게 변하는가 보기로 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 엿새째가 되었다. 공주는 반호가 혹 굶어죽을까 걱정이 되었다. 살그머니 황금의 종을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반호의 몸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고 머리는 여전히 개의 모습이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
반호와 공주는 결혼식을 올렸는데 공주가 개머리 모양의 모자를 썼다. 이들은 인적이 없는 깊은 산의 굴 속에서 살았다. 공주는 화려한 옷을 던지고 서민들의 옷을 입고 친히 일을 했는데도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반호는 매일 사냥을 나가 그것으로 살았는데도 부부는 화목하고 행복한 생활을 했다. 몇 년 후 이들은 3남1녀를 낳았는데 자식들을 데리고 궁중으로 갔다. 그리고는 고신왕에게 아이들에게 성(姓)을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큰아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접시에 담았으므로 성을 반(盤)이라 하였고, 둘째는 바구니에 담았으므로 남(藍)이라 했다. 셋째아들은 무슨 성이 좋을까 고민하는데 마침 하늘에서 우르릉 하는 천둥소리가 들려와 성을 뇌(雷)라 하였다. 딸은 용감한 병사를 남편으로 삼았으니 남편의 성을 따라 종(鐘)이라 하였다. 반·남·뇌·종의 네 성씨를 가진 아이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였고 그 자손들이 번창하여 국족(國族)이 되었다. 이들은 반호를 그들 공동의 조상으로 모셨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들이 중국 남방의 요(瑤)·묘(苗)·여(黎)족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반호>라는 두 글자는 음이 비슷한 <반고>로 바귀어 불려지고 있으며, 요족 사람들은 반고를 제사지낼 때 매우 경건하게 반왕(盤王)으로 칭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삶과 죽음, 수명, 부귀와 가난 등을 모두 주관하는 신이라고 여기고 있다. 가뭄이 들 때마다 반왕에게 기우제를 올린다. 또한 반왕의 형상을 만들어 밭길을 행진하면 곡식들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청오경』에 나오는 반고에 관한 신화 [-盤古-]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풍수지리,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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