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열전구 /김응숙
조심조심 책상 맨 아래 서랍을 열자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온다. 동시에 냉랭한 사무실의 공기를 밀어내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인큐베이터처럼 환하고 따뜻한 서랍 속에는 탁구공보다도 작은 오골계 알들이 한가득 들어 있다. 서랍 위에 달려 있는 백열전구는 어미닭인양 끊임없이 알들을 향해 밝고 따스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이미 부화하기 시작한 알들의 내막에 생긴 실핏줄들이 환한 불빛에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갓 깨어난 병아리 한 마리가 체액에 털이 흠뻑 젖은 체 삐약삐약 힘차게 울어댄다.
지난겨울 친구가 책상 서랍을 이용해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는 계획을 이야기 했을 때 나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간혹 화면이나 사진을 통해서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는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인공 부화기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책상 서랍에서 병아리를 부화시키겠다니. 하지만 그 착상의 기발함에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친구는 병아리 부화에 관한 온갖 정보를 수집해 서랍 부화기를 완성했다. 열을 감지하는 온도계와 그에 따라 작동하는 타이머, 알을 굴려 주는 장치 등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부화기의 중요한 장치는 백열 전구였다.
백열전구는 이름 그대로 열을 내는 전구이다. 텅스텐으로 된 필라멘트에 전기가 흐르면 온도복사에 의해 대부분의 에너지는 열로 바뀌고, 단지 5% 남짓만이 빛을 낸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열로 인해 불빛이 노르스름해 지는 것이란다. 다시 말하자면 백열전구의 빛은 밝기 뿐 만이 아니라 따뜻함을 품은 빛인 것이다. 어미닭이 제 품의 따뜻함으로 잠든 알을 깨웠듯이 백열전구의 따뜻한 빛이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이리라.
서랍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노란 백열전구의 빛이 문득 나를 사십여 년 전으로 데리고 간다.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들창이 하나 있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에 면해 있어서 창에는 항상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다. 그 창은 밖을 내다보기에는 흐리기도 하거니와 너무 작았다. 게다가 들창이라 바람이 불면 받혀놓은 작대기가 굴러 떨어지면서 저절로 닫히곤 했다. 한 낮에도 반쯤 감긴 졸린 눈으로 희뿌연 잔광만을 여과하던 창이 그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것은 밤이 되어서였다.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문패도 없는 길가 단칸방을 집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유일한 표식이었다.
당시 나는 야간 중학교 학생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밤 열시가 가까워져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달음치기도 일쑤였다. 그 시절 부산의 변두리 지역이었으니 가로등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버스에서 내려 그나마 알록달록한 불빛이 내비치는 시장거리를 벗어나면 달빛만이 발 앞을 비추어주었다. 시장 뒤편 주택가를 거쳐 보리밭을 지나고, 언덕으로 난 흙길 신작로를 한참이나 올라가야 슬레이트 지붕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동네가 보였다. 그 중 불 켜진 들창이 보이는 맨 앞집이 우리 집이었다.
그 불빛은 언덕을 반쯤 올라갔을 때부터 별빛처럼 보이다가 언덕 위에 올라서고 나면 방금 뜬 달처럼 나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노르스름하고 따뜻한 불빛이었다. 그제야 괜히 총총거리던 걸음이 느긋해지고 어둠에 눌려있던 가슴도 펴지곤 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밤이 되면 전기세 한 푼이 아까워 책을 읽는 자식의 머리 위 전등도 꺼버렸다. 어둠보다 더 어둡게 가라앉은 동네에서 오직 우리 집 들창만이 마치 등대처럼 노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두운 밤길을 더듬으며 돌아올 딸을 위해 어머니는 온 식구가 잠든 뒤에도 전등을 끄지 않으셨던 것이다. 월말마다 집주인으로부터 억울한 전기세 풀이를 당할 것을 뻔히 알고 계시면서도 말이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얼굴에 침과 콧물이 얼룩덜룩 묻은 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깊은 꿈나라에 들어 있었다. 하루치의 양식과 맞바꾼 노동으로 피곤하신 아버지와 어머니도 가늘게 코를 골며 잠들어 계셨다. 식구들은 따뜻하고 노란 백열전구 불빛 아래서 마치 한 둥지의 새들처럼 그렇게 몸을 부대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백열전구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형광등이나 LED등처럼 밝고 효율이 높은 등을 사용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정부시책인가 보았다. 수긍은 가지만 왠지 마음이 쓸쓸해진다.
주위에서 따뜻한 것들이 자꾸만 사라져가는 것 같다. 털신, 벙어리장갑, 군고구마, 삶은 계란, 난로, 그 위의 도시락, 아궁이, 따뜻한 음색의 LP판, 그리고 백열전구까지. 무엇이든 가까이 두면 닮기 마련이다. 예전 그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에도 이런 것들이 곁에 있어서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울어대던 병아리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사이 알 하나에 가는 금이 그어진다. 병아리들의 부화가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백열전구의 따뜻한 불빛이 노랗게 새어나오던 들창이 있는, 그 아래 서로서로 머리를 맞대고 곤한 잠을 자던 작은 단칸방이 나와 동생들의 부화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백열전구의 따뜻한 불빛 아래서 저녁밥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나갈 꿈을 꾸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머리를 굴리고 머리가 커지면서 나는 부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백열전구는 사라지더라도 세상의 또 다른 많은 부화기들의 등에서 언제나 따뜻한 불빛이 쏟아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