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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쿰란
[역경의 열매] 김석태 (21~24·끝) 산 것이 아니라 살아진 삶… 매 순간이 하나님의 섭리
[역경의 열매] 김석태 (21) 진정한 정의와 자유는 오직 하나님 앞에 설 때
김용현2026. 3. 3. 03:07
에밀 브루너의 책 ‘정의와 자유’에서
무신론 주장 마르크스 철학 이념 깨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자유·책임만이
이념 한계 넘어 세상 변화시킬 수 있어
인간이 만든 이념의 한계를 비판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역설했던 스위스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1889~1966). 김석태 사관에게 깊은 철학적 통찰을 안겨준 책 ‘정의와 자유’의 저자다. 국민일보DB
가만히 지난 삶을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20년, 이북 공산 치하 5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3년의 시간이 조용히 지나간다. 그중 해방 직후 이북에서 보낸 5년의 공산 치하와 인민군 징집 경험은 내게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겼다. 공산주의라는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거두어가는지 곁에서 지켜보고 겪어야 했다.
남한에 내려와 보니 지식인 중에서도 공산주의가 내세우는 평등이라는 구호에 마음을 기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 본질을 미처 보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 안타까움 속에서 내게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 하나 있다.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의 강의를 정리해 대한기독교서회에서 펴낸 ‘정의와 자유’다. 이 책은 그가 1949년 일본 국제기독교대학에 초빙교수로 머물 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진행한 14번의 공개 강의 속기록이다. 이 귀한 강의록을 우리말로 옮긴 전택부 선생은 광복 후 서울 기독교청년회(YMCA) 재건을 이끌고 평생을 한글 사랑 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브루너는 카를 마르크스의 철학을 찬찬히 해부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사유재산을 없애면 완전한 자유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브루너는 그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빗나가는지 다음과 같이 짚어낸다. “자본주의는 ‘정의 없는 자유’로 인도하고, 공산주의는 ‘자유 없는 정의’로 인도한다.”
마르크스는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면 국가 권력도 차츰 사라질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브루너의 통찰은 매섭다. “공산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자본은 중요한 경제요인입니다. 다만 다른 점은 이 자본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의 소유라는 것뿐입니다.” 공산주의는 자본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국가가 유일한 자본가가 돼 개인의 경제와 사상, 생활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브루너는 그 근본적인 한계가 무신론에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신은 인간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실재적인 존재가 아니고 다만 인간의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그는 무신론을 자유의 기본원리로 선포했습니다.”
신을 부정하고 인간을 거대한 국가의 부속품으로 여긴 결과, 인간의 인격과 도덕은 자리를 잃고 말았다. 내가 이북에서 숨죽여 겪어야 했던 사상 통제와 강제 징집이 바로 브루너가 말한 ‘자유 없는 정의’의 민낯이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겪은 사실이 학자의 분석과 이토록 정확히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싶다.
브루너의 강의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방의 자본주의는 왜 진정한 정의와 자유를 지켜내지 못했는가. 브루너는 그 근본적인 해답을 오직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카를 바르트와 함께 당대 신학계를 이끌었던 그는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자유와 책임만이 이념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백년의 세월을 살아온 나의 굳은 고백이기도 하다. 그의 강의는 이데올로기 논쟁을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더 깊은 신앙의 자리로 안내한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석태 (22) 진짜 정의와 자유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바탕 둬야
김용현2026. 3. 4. 03:06
‘정의 없는 자유’ 초래한 자본주의
사람을 수단 삼았고 불평등 낳아
세상을 바꾸는 힘은 자신을 꺾고
이웃 섬기는 ‘변화된 인격’에 있어
오리 전택부 선생이 지난 2008년 6월 자택에서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서 있다. 뒤에는 ‘낙도안덕(樂道安德)’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국민일보DB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는 과연 온전하고 정의로운가. 에밀 브루너의 강의록 ‘정의와 자유’는 공산주의의 모순을 짚어내는 데서 문제의식을 끝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서방 세계를 이끌어 온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철학의 한계로 향한다.
브루너는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철학이 인간을 철저히 자유로운 존재로 보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고 부연한다. 브루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자유주의 철학의 잘못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악의 요소에 대한 무시’였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탐욕을 간과한 채 제한 없는 자유 방임에 맡겨둔 결과 자본주의는 이익을 내기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삼았고 불평등을 낳고 말았다. 공산주의가 자유를 빼앗았다면 자본주의는 ‘정의 없는 자유’를 초래했다는 매서운 통찰이다. 북한의 공산 체제와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진짜 정의와 자유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브루너는 그 해답을 오직 기독교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게끔 요구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점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피조물이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브루너는 훌륭한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어떤 사람이 민주주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영악스러운 두목 노릇을 할 수가 있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폭군 노릇을 한다면 그는 멀쩡한 위선자입니다.”
어떤 훌륭한 제도나 이념도 인간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악을 스스로 뽑아내지 못한다. 브루너는 강의 후반부에서 당시 세계적으로 일어나던 도덕재무장(MRA) 운동을 예로 든다. 세상을 바꾸려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인격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마음이 새롭게 변화될 때 비로소 대립이 끝나고 형제애가 싹튼다고 믿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꺾고 이웃을 섬기는 ‘변화된 인격’에 있다. 이념만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평생을 구세군 사관으로 살며 얻은 흔들림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나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이 뼈아픈 일침을 반드시 읽기를 바랐다. 이 귀한 강의록은 오리 전택부 선생(1915~2008)의 정성 어린 번역 덕분에 우리말로 빛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출판사가 문을 닫았고 책은 시중에서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절판 상태가 됐다. 나는 전 선생이 살아 계셨던 2007년 어떻게든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나오도록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석태 (23) 전택부 선생과 에밀 브루너의 소망 담은 300권의 책
김용현2026. 3. 5. 03:06
브루너의 강의록 ‘정의와 자유’
출판사 문 닫으며 절판 상태
귀한 강의가 잊히는 것 아쉬워
전 선생에게 한글판 출판 요청
한국교회·청년들 꼭 읽기 소망
오리 전택부 선생이 김석태 사관과 이종우 목사의 도움으로 복간한 에밀 브루너의 저서 ‘정의와 자유’ 표지. 오른쪽 사진은 청년 시절 태극기를 배경으로 열정적으로 강연하고 있는 전 선생. 대한기독교서회, 청소년과놀이문화연구소 제공
2008년 가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평생을 한글 사랑 운동과 기독교청년회(YMCA) 재건에 바쳤던 오리 전택부 선생의 빈소는 조문을 온 지식인과 교계 인사들로 붐볐다. 향년 93세. 한국 기독교계 거목이 영면에 든 자리에 오랜 지기인 신애교회 이종우 목사와 함께 조문을 위해 참석했다. 우리는 빈소를 나서는 사람들에게 책을 한 권씩 나눠줬다. 고인이 생전에 우리말로 번역했던 스위스 신학자 에밀 브루너의 강의록 ‘정의와 자유’ 복간본 300권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이 책을 나눌 기회가 생긴 것은 1년 전 일 덕분이었다. 책은 1956년과 74년에 출간되었다가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절판된 상태였다. 나는 귀한 강의가 그대로 잊히는 것이 아쉬웠다. 국한문 혼용으로 된 낡은 초판을 다시 읽다 보니, 혼란스러운 시대에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곧장 전 선생에게 순 한글로 이 책을 새로 출판하자고 요청했다. 내 뜻에 깊이 공감한 이 목사는 출판 비용 300만원을 헌금했고 마침내 책을 새로 찍어낼 수 있었다. 자신이 번역했던 책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을 보고 전 선생은 기뻐했다. 2007년 11월 쓰인 복간본 서문에는 잊혀가던 책을 펴낼 수 있도록 뜻을 모은 나와 이 목사에게 전하는 과분한 인사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새로 나온 책 300권을 챙겨 들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간 이유는 이 책이 품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와 에밀 브루너가 한국을 향해 남긴 각별한 당부 때문이었다. 브루너는 이 책에서 공산주의를 ‘자유 없는 정의’로, 자본주의를 ‘정의 없는 자유’로 비판하며 두 이념의 맹점을 극복할 참된 길은 오직 기독교적 인격의 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56년 저자 서문에서 49년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이 책이 한국 실정에 매우 잘 맞는 내용이란 것을 느낍니다. 만약 이 책으로 인해서 진리와 비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생겨나서 한국의 모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극단적인 이념 대립으로 처절한 환난을 겪은 우리에게 이 책의 내용은 뼈아픈 통찰이었다. 브루너는 “한국이 역사상 그 어떤 나라보다도 정의와 자유의 결여로 고통받았기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소망이 불타고 있는 나라”라는 말을 남겼다.
전 선생 역시 복간본 서문에서 브루너의 이 말을 인용하며 “한국교회와 청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다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는 소원을 남겼다.
우리는 고인의 이 소원이 빈소를 찾은 이들의 가슴에 심어지기를 바랐다. 이데올로기의 빈 껍데기가 아니라, 사리사욕 없이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이 땅의 상처를 치유할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 장례식장에서 건네진 300권의 책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향해 고인과 내가 남기는 기도였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석태 (24·끝) 산 것이 아니라 살아진 삶… 매 순간이 하나님의 섭리
김용현2026. 3. 6. 03:21
인민군·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남고
동역자 아내와 만남 모두 주님의 뜻
무력은 결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해
세상 바꾸는 진짜 힘은 찬양과 기도
1990년 3월 호주의 한 사회사업시설을 방문한 김석태 사관(왼쪽)과 아내 임정선 사관. 김 사관이 세 번째 군복이라 회고한 구세군 정복을 부부가 나란히 갖춰 입은 모습이다. 구세군 제공
내 인생이었지만 내 계획과 내 마음대로 흘러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백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나는 내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진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내 삶의 매 순간을 이끌었다.
평생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 임정선 사관은 내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당신은 참,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네요. 인민군, 국군, 그리고 구세군까지요.”
아내 말대로 나의 백년은 세 벌의 군복으로 엮여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됐다. 낙동강 전투에 투입될 위기 앞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귀순을 결심한 뒤 유엔군을 만나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뒤 국군의 군복을 입었다. 앞선 두 군복이 이념에 휩쓸려 입어야 했던 옷이었다면 마지막으로 입은 세 번째 옷은 사람을 살리는 구세군 사관의 군복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맨몸으로 겪어내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게 있다. 무력은 결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진짜 힘은 무기가 아니라 찬양에 있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인 수만 명의 찬양 소리가 전쟁터의 전차보다 더 강하다. 나는 교회가 찬양으로 온전히 뜨거워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피 흘림 없는 무혈통일을 허락하실 것이라 굳게 믿는다. 백 세가 된 지금도 내가 매일 하루 세 번씩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다.
100년의 세월을 건너온 신앙인으로서 오늘날 한국교회에 남기고 싶은 당부가 있다. 교회가 정치의 바람에 너무 쉽게 휩쓸리거나 겉치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질 때일수록 교회는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으리으리한 예배당을 짓고 교세를 자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은 성도들이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 굳게 뭉쳐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위기라고 말하는 교회가 진정으로 살길이다.
내 책상 위에는 늘 성경책이 놓여 있다.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성경의 조그만 글씨를 거뜬히 읽어 내려간다. 50대 초반 노안이 심하게 와서 안경이 없으면 글을 한 줄도 읽지 못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60대가 넘어가며 흐릿했던 활자가 다시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남은 삶 동안 눈을 밝혀 말씀을 더 깊이 읽고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소박하지만 벅찬 은혜였다.
인민군에서 탈출해 목숨을 건진 것도,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도, 평생의 동역자인 아내를 만난 것도, 잃어버렸던 시력을 기적처럼 되찾은 것도 내 능력이 아니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되던가. 세상을 구원하는 힘은 오직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십자가 신앙에 있다. 이제 백세가 된 내게 남은 역할은 하나뿐이다. 매일 말씀을 읽고 찬양하며 이 땅에 평화통일이 임하기를 묵묵히 기도하는 일이다. 내가 살아온 백 년, 참으로 모든 것이 은혜였다.
정리=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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