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목에 진주목걸이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 알아주는 이 없어 8억 작품이 200만 원 고철로
데니스 오페하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리 시립미술관 등을 포함한 여러 세계적인 미술기관과 갤러리에서 300회에 가까운 개인전을 개최했다. 오펜하임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위장지(Impersonation Station)'라는 작품을 서울 올림픽공원에 설치하면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해운대 해변에 ‘꽃의 내부’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이 작품은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국제공모를 거쳐 2010년 12월부터 3개월여 공사 끝에 완공했으며, 국비와 시비 8억 원이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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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구 관광시설사업소가 지난해 12월 해수욕장 호안도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꽃의 내부'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고철로 처분해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런데 데니스 오펜하임의 ‘꽃의 내부’ 작품을 지난달 11~17일 해운대구청이 철거한 뒤 폐기해 버린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확인 결과 작품에 있던 철골 구조는 고철로, 플라스틱 등은 폐기물로 각각 처리됐다. 게다가 해운대구청은 철거·폐기에 관한 소식을 부산비엔날레 조직위는 물론이고 데니스 오펜하임의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가 관리를 맡아왔다. 사업소 측은 폐기 이유로 부식과 민원 제기를 들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작품이다 보니 1년이 지나자마자 파손되기 시작했는데, 2016년 태풍으로 물에 잠긴 뒤 부식이 심해져 철거가 불가피했다고 한다. 사업소는 2013년 이후 보수유지·철거·이전을 두고 부산미술협회 등과 계속 논의한 뒤에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계적 작가의 작품이 부산 미술계나 해운대주민들에게 공개적인 의논이나 설명도 없이 철거된 것은 해운대구청의 문화적 인식이 얼마나 저급한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밖에 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작품은 부산의 대표적인 예술문화행사인 부산비엔날레에서 국민의 세금 8억원을 들여 설치한 작품이다. 단순히 해운대구청에서 도시미관을 살리기 위해 세운 시설물이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에는 작품을 설치한 이후로 지금까지 망가지고 방치될 때까지 해운대구청에 작품관리에 대한 충분한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부산비엔날레 측도 책임이 크다. 적어도 부산비엔날레 측은 작품의 가치를 알았을 것이고, 더구나 해당 작품이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닌,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관광지 중심지에 있었는데 여태 상황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지금 해운대는 난개발과 교통지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대한 선호도도 이전만 못하다. 서울에서 2시간이면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강릉까지 도착할 수 있고, 저가항공 덕분에 이웃 일본까지는 이전보다 훨씬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 해운대에 볼거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해운대는 지금 멀쩡히 설치되어 있던 세계적인 미술가의 작품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해운대의 문화적 자산을 하나 더 잃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