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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5:8-14]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
얼마 전 읽은 책 중에
이런 시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엄마>
내가 자는 줄 알고
우리 엄마 부엌에서
과자 봉지 뜯는다
과자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려고
방으로 들어가다
문에 부딪쳐
과자 다 쏟는다
내가 쿡쿡 웃으니까
너도 먹을래? 한다
내가 안 먹는다고 하니까
괜히 조심했네, 한다
이상하게 아이들은 빨리 자라고 하면
더 안 잡니다.
그래서 황금 같은
야식 타임을 즐기기 힘들 때가 있죠.
저희 아이들이 왜 그런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 방에 누우면 무서워요.
갑자기 도둑이 들면 어떡해요?
괴물이 나타나면 어떡해요?”
아이들도 매일 밤 잠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밤새 고민 하기도 합니다.
또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니 삶의 짐이
크게 느껴지더라구요.
경제적인 것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이들이 아프면
또 그날은 완전 뜬눈으로 지새죠.
2000년 전 베드로가
오늘 이 본문을 쓸 때도 똑같았어요.
믿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많은 고난과 고통을
염두에 두고 베드로전서를 기록했죠.
이 서신이 쓰였던 시기를
A.D 60년 전후로 봅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인들을 향한
로마의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소수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엄청났습니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베드로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됐던 그들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큰 위로를 받았어요.
과연 오늘 본문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비밀 그 위로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 함께 본문을 통해서
그 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죠.
‘근신하라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마귀라는 존재 때문이랍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인지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정사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
믿으십니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거나
또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게 과연 육적인 것인가? 영적인 것인가?’
이 마귀라는 이름 자체에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베드로는
마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 등장한
마귀의 속성 3가지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마귀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1) 마귀는 우리의 적(enemy)입니다.
여기서 ‘적’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법정 용어이지만,
본문에서는 원수와 적대자를 의미합니다.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뜨리려고 합니다.
이들은 졸지도 않고 믿는 자들 앞에
장애물을 가져도 놓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6.25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38도선을 넘어오면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3일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나라 군의 3분의 1이
농번기 휴가를 떠났습니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이처럼 우리가 긴장의 끈을 놓고 있으면
적은 그 틈을 파고 듭니다.
마귀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우리의 대적입니다.
우리가 자고 있는 그 사이에,
졸고 있는 그 틈을 비집고 공격해 옵니다.
아무리 대단한 영적인 리더라 하더라도
대적 앞에 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당합니다.
그 대표적이 예가 다윗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
안정적일 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전쟁터로 나가야 할 때임에도 머물렀더니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잠깐의 영적 나태함 때문에
다윗은 밧세바를 범했고,
우리아까지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 마저도 넘어졌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날마다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귀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을 이렇게 합니다.
2)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다.’
‘우는’이란 단어는 굶주림에 시달려서
계속 으르렁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왜 사자는 으르렁거리는 걸까요?
소리만으로도 겁을 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제 사자의 으르렁 소리를 듣고 싶어서
유튜브에 ‘으르렁’을 검색했습니다.
그랬더니
가수 엑소의 <으르렁>이 나왔습니다.
마귀의 또 다른 별명이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잘 속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당장이라도
눈 앞에 펼쳐질 것처럼 속입니다.
우리는 이 소리를 듣고 두려움을 느끼죠.
그러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 그랬습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진영 앞으로 나와서
무얼 했나요?
계속 소리만 질렀습니다.
“나랑 싸울 자 없냐? 진짜 없어? 정말이야?”
그리곤 다시 퇴장합니다.
40일 밤낮으로 이 짓거리만 했던 게
골리앗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렇게 골리앗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사울 왕은 텐트 깊은 곳에 숨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만 냅니다.
우리는 이 소리가 두려워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가 내는 소리에 속지 마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마지막으로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마귀의 최종 목표는
구원의 은혜에서
우리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마귀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는 게 아닙니다.
가만 보면 마귀는 부지런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이 정도면 됐어’라고 쉬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 틈을 절호의 찬스로 여기고
공격합니다.
어제 내가 신앙이 좋았다가도
오늘 틈이 생기면
마귀가 당장 달려온다는 말입니다.
아침에 말씀 읽다가 은혜를 받더라도
집에서 작은 일로 인해 감정이 상하면
하루 종일 마귀에게 삼킴을 당합니다.
작은 고민이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것,
이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현미경으로 작은 물체를 보면
수천, 수만 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보지 못하던
박테리아와 같은 것을
현미경을 통해 보게 되었죠.
현미경으로 된 안경을 쓰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진짜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눈 앞에 있는 문제만 가만히 보다가
옆에 있는 해결책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귀가 바로 이렇게 우리 눈에
잘못된 현미경 안경을 씌웁니다.
그러면 작은 박테리아 같은 문제를
태산처럼 크게 보고 두려워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걸 느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노회 대회를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성경공부를 지도해 주시던
선생님의 차가 신호위반 차량과
충돌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은
안전벨트를 하셨던 터라
크게 다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어요.
그 차에 하나뿐인 제 동생이 타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동생은
안전벨트를 안 하고 있었어요.
대신 엄마 품에 안겨 있었죠.
다시 말해 저희 엄마도 같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동생은 엄마의 보호 아래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갈비뼈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그땐 제 인생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이대로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꼈어요.
10살짜리 남자 아이가 버티기엔
버거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어느 집사님 댁에서
저를 돌봐주셨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밤새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살려 주세요.”
그러다 나중엔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왜 저한테 이러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이 너무 크면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며”
따진 적 없으신가요?
혹시 지금 그런 순간에 계신 분 있나요?
우리에게 찾아온 고난은
우리만 겪는 게 아닙니다.
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 외칩니다.
“너희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게 무슨 말인가요?
믿음이 있으면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존 번연의 책 <천로역정>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길을 가다가
멋진 궁전을 보았습니다.
얼른 그리 들어가 쉬려고 했습니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기대감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사자 두 마리가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죠.
바로 그 때 저 멀리서 외칩니다.
“그 사자는 두려워할 게 아닙니다.
사슬로 매여 있습니다.”
이 말을 믿고 크리스천은
당당히 궁전에 들어갔습니다.
마귀가 바로 이런 모습 아닙니까?
엄청난 이빨과 으르렁거리는 소리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전능의 팔로 붙잡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10절을 만납니다.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나의 직장과 일터, 사업의 터가
흔들리고 있습니까?
자녀를 키우는데 답이 없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내가 온전하게 할 거야.
굳건하게 할 거야. 강하게 할거야.
터를 견고하게 할거야!”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걸 바라본 게 다윗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서 이런 말을 했죠.
“이전에 함께하셨던 만군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주실 거야!”
그리고 물맷돌을 던졌을 때
거대한 골리앗도 한 방에 나가떨어졌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삼키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방패만 든든하다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것을 삶에서 직접 경험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가 왕이 아닌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이유로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아침 일찍 왕이
사자굴에 찾아갔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사자의 밥이 되어야 할 다니엘이
멀쩡한 모습으로
왕의 말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엄청난 괴수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려든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은혜”입니다.
아들이 무섭다고 하면 제가 하는 게 있어요.
같이 자는 겁니다.
그러면 저희 아들이 이렇게 말해요.
“아빠, 아빠랑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이걸 묵상하다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시편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신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런데 마귀가 자꾸 우리 눈을 가립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해요.
이럴수록 주님 앞에 가만히 머무십시오.
우리가 먼저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이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께는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인천 청라 국제 신도시
모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어느 목사님과 식사 교제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배설교학 석박사과정을 하면서
만나게 된 분인데
참 좋은 분이십니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가
목사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자리도 잡고
잘 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갑자기 방향을 트시더랍니다.
그리곤 한국에 와서
목회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끄셨다고 해요.
처음에 목회를 하면서 어떻게 할지 몰라
힘드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주신 마음이 있으니
하나님께 매달리며
성실하게 목회를 하셨어요.
생각보다 잘 적응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목사님을 음해하는 세력이
생긴 거예요.
그들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면서
교회를 떠났다고 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현실 앞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으셨답니다.
지치고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시작하셨대요.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왜 저만 이래요?”
그런데 얼마 후에 하나님의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음성을 들으셨데요.
“내가 너를 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다 아신다고 하니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탕인 거죠.
그렇게 다시 한번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기로 합니다.
청라 신도시에서 교회는 다시 부흥했고,
지금은 재적 1,200명이 넘게 성장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이 참 고달프죠?
아이 키우는 게 어렵습니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고민이 많아요.
자녀가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더 할 게 많습니다.
너 없으면 못 산다고 해서 결혼했는데
이제는 너만 아니면 살 것 같으십니까?
우리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세요.
너만 겪는 고난이 아니고,
잠깐이면 끝날 거라고 말입니다.
마귀는 문제에 확대경을 가져다가 댑니다.
그래서 100만 배나 더 큰 걸로 착각하게 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 문제도
넉넉히 이길 힘을 주시는 분이세요.
그 고난이 끝날 때까지
우리를 굳세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은혜 안에 서라!
우리는 은혜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달려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 안에서
이기는 싸움을 싸워갑니다.
우리 모두 은혜로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