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중등교원 양성소 단기과정을 수료한 상태였는데 마침 김동혁(라파엘) 향제님(후일 사목회장)이 대마면에 개교했던 '대마 재건 중학교' 과학 교사로 재직하던 때 였다. (라파엘형제님)은 카톨릭농민회, 신용협동조합운동,재건국민운동, 협동조합운동등 계몽과 재건운동등을 수녀원에서 세속으로 돌아와서 군청에 근무하던 세시리아 자매님과 열심히 일을 하셨고 본당에 신용협동조합을 개설하여 초대 이사장에 이금림자매를. 다음에 라파엘 형제가 정헌수 로베르또 형제를 사무국장으로 하여 열심히 초기 신협운동을 하며 신협을 국내에 처음 1962년도 부산진 성당의 메리가별 수녀님의 정신에 대해 강의를 하시기도 했고 광주 카톨릭 회관에서 제주 이시돌 목장의 진달래 신부라는 별명을가진 벨기에 신부님인 지 디디에르신부님(진달래 담배와 장화를 즐겨신던 신부님)과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님의 강의를 듣게하는등 초기 농촌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나는 신부님 또는 염삼공소의 강 방지거 회장님등과 함께 대마면에 두군데 군남,염산,법성 공소, 백수 대전리에 교리반등을 개설하고 당시 카톨릭 통신교리를 기반으로 교리 봉사자 역활을 하며 일주일 내내 150킬로메터 이상을 움직이며 하느님 말씀의 전파에 열심이었고 미사 또는 공소예절등 갈신부님을 모시고 참례하는등 분주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