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4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12장 13절 – 25절 – 사람의 호응보다 주님을 기뻐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말씀으로 채우고자 나아갑니다.
내 안에 나를 주장하려는 죄의 성품을 주님이 아십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고 내가 아닌 주님이 내 삶을 주관하여 주옵소서.
먼저 주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마음을 주옵소서.
옛 사람이 아닌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풍성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인도하심 가운데 걸어가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18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20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니 그들의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21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22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나의 묵상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마가 요한의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로데 라는 여자 아이가 문 열어주는 것을 잊고 베드로가 왔음을 알린다.
그러나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아이가 미쳤다고 이야기하며 그의 말을 거부한다.
그리고 베드로가 아닌 그의 천사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천사는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들의 말은 베드로를 지키는 천사가 그의 죽음을 알려주려고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모습은 당시 교회의 성도들조차 베드로의 구출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야고보 사도의 순교에 이어 베드로의 순교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계속되는 문의 두드림을 통해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들어오게 되었고 옥에서 나온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주의 형제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풀려난 것을 알리라고 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베드로는 핍박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며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 때 잠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본장의 마지막 절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등장하며 13장부터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이방인 사역이 주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날이 지나 헤롯은 베드로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파수꾼을 심문하고 죽이게 한다.
그리고는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베드로의 처형을 위해 유대지역에 머물렀으나 이 일이 실패로 끝났고 유대인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 지역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대지역의 왕으로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과 가치관으로 물들어 있었기에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통치를 이어가는 것이었으며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을 누리는 것이었다.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누가는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두로와 시돈이 무역의 도시라는 것을 감안하여 무역에 관한 분쟁으로 추정한다.
두로와 시돈은 항구 도시로서 레바논에서 나무와 목재를 들여와 유대지역에서 양식과 곡물로 바꾸었다.
그래서 헤롯은 두로와 시돈의 분쟁에 대한 조치로 양식과 곡물을 팔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에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은 왕의 신하 블라스도를 통해 헤롯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헤롯은 만남의 날을 정했는데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 날이 황제의 생일이었다고 기록한다.
이때 헤롯은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을 했다.
요세푸스는 당시 헤롯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는데 그는 은색의 얇은 옷을 입었고 은색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효과로 인해 왕으로서의 위엄과 화려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두로와 시돈 사람뿐만 아니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서 그는 백성들이 외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말은 헤롯의 모습과 연설을 들은 자들이 그를 신으로 여기는 외침이었다.
당시 모인 사람들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두로와 시돈 이방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이런 외침이 가능했다.
그리고 헤롯은 그들의 말을 좋아했고 즐겼던 것이다. 결국 그의 교만한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끝맺는다.
헤롯은 이후 장에 문제가 생겨서 5일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의학적 소견으로는 장속의 회충으로 인해 장 폐색증이 와서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사실을 누가도 알고 있었겠지만 누가는 그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더불어 누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교회가 성장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의 부조를 마치고 마가 요한과 함께 돌아왔음을 기록한다.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면 핍박이 온다.
그러나 그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말씀을 선포할 때 말씀이 흥왕하고 믿는 자가 많아진다.
초대교회의 모습과 현실의 교회의 모습을 비교하면 탄식만 나오게 된다.
핍박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피하기에 급급하며 상황에 타협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의 불신을 심판하는 모습보다 교회의 불신을 심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헤롯이 연설했던 목소리에 대한 평가다.
헤롯은 은색의 빛나는 옷을 입고 백성들 앞에서 연설한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환호했고 신처럼 추앙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야기로 유창하게 연설했던 것이다.
본문에는 2가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소리이여 다른 하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목소리이다.
두 목소리는 분명한 차이를 가져왔고 다른 열매를 맺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소리는 핍박을 가져왔으며 죽음의 위협을 불러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는 사람들의 지지와 환호를 가져왔으며 신처럼 대우받게 만들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는 목소리는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결과를 가져 왔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목소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다.
하나님의 백성이 선포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것은 사람들의 호응과 환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가 드러나며 핍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열매를 맺게 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원자 되심에 감사하며 기꺼이 그를 위한 핍박도 자원함으로 감당한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목적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호응과 환호는 사람이 드러나며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적 즐거움으로 끝난다.
고난과 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나의 모습에서 이런 모습은 쉽게 드러난다.
나의 만족을 위한 삶으로 나아가려는 죄의 습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이 주인 되지 않는 모든 상황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호응과 환호가 아닌 하나님의 주되심의 선포와 고난을 가져온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난이 없는 신앙의 삶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말씀과 멀어진 신앙인지를 보여준다.
고난은 단순히 핍박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유혹과 시험, 분노하게 되는 상황, 다양한 방해로 나타난다.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그 모습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고난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들을 이기게 만들고 그것을 통해 믿는 자들이 생기게 만든다.
내 안에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길 소망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그 모습을 위해 날마다 내 안에 복음이 선포되고 나의 만족이 아닌 주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 가운데 나의 죄악이 드러나고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다시 바른 길을 잡아 주시고 어긋난 모습을 조정해 주시는 은혜도 발견합니다.
주의 손길에 반응하며 주를 따르는 자 되게 하옵소서.
고난과 방해의 상황이 와도 말씀을 더욱 붙잡는 자 되게 하시고 말씀을 통한 열매를 얻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내 주인 되심을 선포하며 사람이 아닌 주님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주의 은혜로 변화시키실 것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