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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봐주고 집에 가려는데 며느리가 봉투를 주길래..” 버스에서 열어보고 다시 돌아갔다
금요일 저녁 일곱 시 반,
도어록이 풀리는 익숙한 전자음과 함께 며느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양손에 서류 가방과 장바구니를 든 며느리의 얼굴은 한 주간의 고된 회사 생활에 짓눌려 흙빛이 되어 있었습니다.
현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 던지다시피 하고 들어오는 아이의 처진 어깨를 보는 순간,
온종일 다섯 살배기 손주 녀석을 안고 업느라 쑤셔오던 내 허리의 뻐근함도 잠시 잊히는 듯했습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서준이 밥은 잘 먹었나요?
오늘도 정말 고생 많으셨죠."
며느리는 거실 바닥에 블록을 늘어놓고 놀던 아이를 안아 올리며 겨우 메마른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밥 한 공기 뚝딱 비우고 낮잠도 푹 잤단다.
너도 밖에서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 얼
른 손 씻고 옷 갈아입으렴.
나는 이제 슬슬 일어나마."
무릎을 짚고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침 여덟 시에 이 집에 발을 디딘 후로 반찬을 만들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느라 쉴 틈 없이 돌아간 하루였습니다.
나이 예순여섯에 남의 살림을 거들며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뼈마디가 녹아내리는 육체 노동이자 정신을 바짝 조여 매야 하는 살얼음판 같은 일이었습니다.
가방을 챙겨 메고 현관으로 나서 신발을 신으려 몸을 굽히는데,
며느리가 방에서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나와 내 앞을 막아섰습니다.
"어머니, 잠깐만요."
며느리의 손에는 빳빳하고 하얀 은행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두 손으로 그 봉투를 내 가방 앞주머니에 조심스레 밀어 넣었습니다.
"어머니, 이번 달 수고비예요.
매번 약소해서 너무 죄송해요.
주말 동안 병원도 좀 다녀오시고, 맛있는 것도 사서 드세요."
"얘는, 매달 뭘 이런 걸 챙기니.
내 새끼 자식 봐주는 건데..."
입으로는 매번 하던 겉치레 말을 읊조렸지만,
주머니에 묵직하게 꽂히는 봉투의 두께감에 내심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속물이었습니다.
지난 2년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버스를 타고 오가며 손주를 도맡아 키워온 대가였습니다.
자식의 맞벌이를 돕는다는 모성애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지만,
사실 매달 며느리가 쥐여주는 백오십만 원 남짓의 수고비는 은퇴 후 연금 외에 쏠쏠한 내 용돈벌이이자,
자식 집안에서 내 존재의 쓸모를 증명하는 알량한 훈장 같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안녕!"
현관문이 닫히고 복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삭신은 쑤셔왔지만 발걸음은 묘하게 경쾌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침을 좀 맞으러 한의원에 가고, 남편과 좋아하는 장어나 한 번 구워 먹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집으로 향하는 301번 버스가 라이트를 깜빡이며 다가왔습니다.
주말을 앞둔 퇴근길 버스는 사람들로 제법 붐볐지만, 운 좋게 버스 중간쯤의 빈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차창에 이마를 기대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간판들과 가을밤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방 앞주머니에 꽂혀 있던 며느리의 봉투가 떠올랐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슬쩍 보며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습니다.
겉면에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단정하게 적힌 며느리의 반듯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투 입구의 테이프를 살짝 뜯어내고, 손가락을 넣어 지폐 묶음을 가볍게 세어보려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손가락 끝에 바스락거리는 지폐의 감촉 외에, 빳빳한 종이 한 장이 함께 걸려 나왔습니다.
돈을 감싸고 있던 것은 편지지가 아니라, 며느리의 수첩에서 찢어낸 듯 모서리가 거칠게 뜯겨나간
스프링 노트 한 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적어둔 감사 편지인가 싶어 봉투 속에서 그 종이를 조심스레 펼쳐 들었습니다.
버스 안의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 종이에 적힌 것은 감사의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며느리가 매일 밤 책상머리에서 혼자 머리를 싸매며 적어 내려갔을,
피눈물 나는 '월간 가계부와 지출 정산 내역서'였습니다.
아마도 돈을 봉투에 넣는 과정에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계산 메모지가 실수로 지폐 사이에 끼어들어
함께 들어간 모양이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종이에 빽빽하게 적힌 볼펜 글씨들이 내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대출 원리금 상환: 180만 원
관리비 및 공과금: 45만 원
서준이 어린이집 및 교재비: 40만 원
보험료 및 적금: 60만 원
시어머니 육아 수고비: 150만 원
남편 용돈: 30만 원
내 용돈: 0원 (카드 한도 초과 /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 도시락 대체)
마이너스 통장 잔액: -2,400만 원...
그 밑에는 며느리가 몇 번이고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줄을 그어가며 고뇌한 흔적들이 처절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빨간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작은 메모 하나가 내 눈을 사정없이 찔렀습니다.
‘어머니 수고비 절대 밀리지 말 것.
조금이라도 깎거나 늦으면 서운해하심.
내 질병 휴직 급여 끝나면 다음 달부터는 정말 카드 리볼빙 막아야 함.
점심값 아끼고 옷 사지 말기.’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달리는 버스의 소음도, 안내 방송도, 주변 승객들의 웅성거림도 순식간에 진공관 속에 갇힌 것처럼 먹먹하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귓가에서 거대한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려왔습니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매달 며느리가 건네는 백오십만 원을 당연한 권리인 양, "남들은 이백만 원도 넘게 준다더라"며
은근히 생색을 내고 목에 힘을 주었던 내 지난날의 추태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맞벌이하며 대출 이자에 허덕이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세상에서,
제 자식과 며느리가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지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요.
며느리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낡아빠진 단벌 셔츠에 밑창이 닳은 플랫슈즈를 신고 다녔습니다.
왜 옷 한 벌을 사 입지 않느냐는 내 무심한 핀잔에 "요즘 유행하는 옷이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요"라며 배시시 웃어넘기던
그 아이의 얼굴이 비수처럼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그것은 유행 탓이 아니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드릴 수고비 백오십만 원을 단 하루도 밀리지 않기 위해, 제 점심값을 굶어가며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고
제 한 달 용돈을 '0원'으로 지워버린 어미의 눈물겨운 사투였습니다.
나는 자식을 돕는 자비로운 시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자식의 피와 살을 갉아먹으며 제 노후의 푼돈을 챙기고,
"내 손주 내가 봐준다"는 거룩한 명분을 내세워 젊은 부부의 숨통을 사정없이 조이고 있던
'합법적인 채권자이자 기생충'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내가 늙어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놓고, 정작 내 손으로 아이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었구나.'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고 묵직한 오열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 죄책감에 얼굴이 화끈거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무릎 위에 놓인 하얀 봉투가 마치 벌겋게 달아오른 숯덩이처럼 내 허벅지를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이 돈은 며느리의 피눈물이었고, 내 아들의 마른 한숨이었으며, 그들이 지켜내야 할 가정의 마지막 비명소리였습니다.
"이번 정류소는 행복아파트, 행복아파트입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가방을 움켜쥐고 내리는 문 앞으로 달려가 하차 벨을 눌렀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고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삐걱거리는 무릎의 통증도 잊은 채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찬바람이 사정없이 뺨을 때렸지만 춥지 않았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정류장으로 달렸습니다.
방금 전 내가 타고 왔던 그 길을 되짚어 가는 버스를 향해, 미친 사람처럼 손을 흔들며 올라탔습니다.
아들 내외의 아파트 단지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밤 여덟 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헐떡이며 14층 복도를 걸어갔습니다.
1403호 현관문 앞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습니다.
심호흡을 세 번 하고, 벨을 누르는 대신 도어록 비밀번호를 천천히 눌렀습니다.
삐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습니다.
거실에서는 마침 며느리가 주방 싱크대 앞에 서서 서준이의 식판과 젖병을 씻고 있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며느리가 고무장갑을 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 어머, 무슨 일이세요?
물건 두고 가셨어요?"
당황해하는 며느리의 낯빛을 마주하는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키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나는 신발을 벗지 않고 현관문 앞에 그대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그 하얀 봉투를 꺼내 들었습니다.
노트 쪽지는 봉투 안쪽에 깊숙이 숨겨둔 채였습니다.
며느리에게 그 처절한 가계부를 내가 보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상처 입은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어른의 마지막 예의였습니다.
"지우 엄마야."
내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파르르 떨려 나왔습니다.
며느리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고무장갑을 벗으며 다가왔습니다.
"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나는 며느리의 거칠고 차가운 두 손을 와락 맞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바닥 위에 하얀 봉투를 얹어두고 손가락을 꼭 쥐어 닫아주었습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수고비에 무슨 문제라도..."
"지우 엄마.
내 말 잘 듣거라."
나는 며느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내 눈가에서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내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았다.
내 새끼들 힘들다고 해서 돕겠다고 와놓고는, 내가 늙은이 욕심에 눈이 멀어 너희한테 몹쓸 짓을 하고 있었더구나."
"어머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희 둘이 새벽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 피 같은 돈이다.
그 돈을 내가 매달 백오십만 원씩 꼬박꼬박 챙겨 받으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하는 양 굴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도저히 집으로 발길이 안 떨어지더구나."
며느리는 영문을 몰라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 아니었으면 저 회사 진작에 그만뒀어요.
이건 어머니가 당연히 받으셔야 할 몫이에요.
서준이 키워주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아니다, 지우 엄마."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습니다.
"서준이, 다음 주부터 동네 구립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거라.
알아봤더니 맞벌이 부부는 종일반 대기 1순위라 바로 들어갈 수 있다더구나.
다섯 살이면 이제 또래 친구들이랑 부대끼며 사회성을 배워야 할 나이다.
할머니 치마폭에 싸여있는 것보다 어린이집에서 전문 선생님들 손에 규칙적으로 크는 게 아이한테도 백배 낫다."
며느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어머니... 그래도 어떻게..."
"그리고 나는, 이제 매일 출퇴근 안 할 거다."
내 말에 며느리가 굳어버렸습니다.
나는 며느리의 손을 더 따뜻하게 꼭 쥐어주었습니다.
"내가 네 친정엄마 노릇은 못 해줄망정, 자식들 목을 조르는 시어머니가 되어서야 쓰겠니.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서 서준이 데려오는 거, 너희 퇴근할 때까지 한두 시간 간식 먹이고 책 읽어주는 거,
그건 내가 매일 기쁜 마음으로 와서 해줄게.
그건 노동이 아니라 할머니로서 누리는 온전한 기쁨이니까.
하지만 돈은 단 십 원도 받지 않겠다."
며느리의 눈에 차오르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 도로 가져가서, 너희 대출금 갚는 데 보태고, 서준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 차곡차곡 넣어두렴. 그리고 무엇보다...
지우 엄마 너, 점심 굶지 말고 따뜻하고 맛있는 밥 사 먹어라.
예쁜 옷도 한 벌 사 입고.
어미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집안에 온기가 도는 법이란다."
"어머니..."
며느리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혼자서 짊어졌을 가난에 대한 공포,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속으로 삼켰을 서러움이 그 뜨거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오는 듯했습니다.
나는 며느리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마르고 앙상한 며느리의 등을 토닥이며, 내 가슴속에 맺혀 있던 오랜 오만과 가짜 모성을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미안하다, 지우 엄마야.
어미가 철이 늦게 들어서 우리 며느리 고생을 너무 늦게 알아챘구나.
이제 서러워하지 마라.
너희 가정은 너희 힘으로 단단하게 세워가되, 내가 뒤에서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줄 테니 걱정 말고 씩씩하게 살아라."
한참을 부둥켜안고 운 뒤, 나는 며느리가 쥐여주려는 차 한 잔도 마다하고 돌아섰습니다.
더 머무는 것은 며느리에게 또 다른 감정의 수발을 요구하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현관문을 나서는 내 등 뒤로 며느리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어머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시 아파트 밖으로 나왔습니다.
가을밤의 공기는 한층 차가워져 있었지만, 가슴 안쪽은 무쇠 난로를 품은 것처럼 뜨겁고 충만했습니다.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고, 매달 들어오던 백오십만 원이라는 든든한 쌈짓돈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날아갈 듯 가벼웠습니다.
나는 그 돈을 포기함으로써, 돈보다 천 배 만 배 더 값진 '어른으로서의 존엄'과 '가족 간의 진짜 평화'를 되찾은 것입니다.
자식에게 돈을 뜯어내어 채우는 노후는 아무리 통장이 불어나도 영혼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진짜 품격 있는 부모는 자식의 삶을 갉아먹지 않는 독립된 어른입니다.
내게는 매달 단정하게 들어오는 국민연금이 있고, 비록 크지는 않지만 내 발 뻗고 누울 소박한 집 한 채가 있습니다.
반찬값을 조금 아끼고, 헛된 사교 모임을 줄이며, 내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 다니면 내 노후는 그것으로 충분히 차고 넘쳤습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검푸른 하늘에 박힌 별들이 티 없이 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시간에 쫓기며 남의 집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마주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집안을 정갈하게 정돈할 것입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오후에는 동네 산책로를 걸으며 내 하체 근육을 우직하게 단련할 것입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어린이집 문을 열고 나오는 손주 녀석을 환한 미소로 맞아 안아줄 것입니다.
돈의 대가가 아닌, 순수한 사랑의 온기로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거닐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늙어가는 내가 내 삶의 주권을 지키면서도 자식에게 가장 지혜로운 그늘이 되어주는 완벽한 방법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피로와 욕심에 찌들어 있던 늙은이의 얼굴 대신, 비로소 맑고 은은한 기품이 깃든 진짜 '어른의 미소'가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참으로 아름다운 고부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