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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1997년 당시 26세에 영입한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든 펑키 스타일의 모터사이클백이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2012년 말 발렌시아가는 또 한 번의 모험을 단행했다. 29세 대만계 미국인 알렉산더 왕(Wang)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것. 처음엔 발렌시아가의 전통과 알렉산더 왕의 독특한 개성이 잘 어우러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왕의 지휘하에 작년과 올해 선보인 디자인은 호평을 받고 있다.
파리 본사에서 만난 이사벨 귀쇼(50) 발렌시아가 사장(CEO)은 "어떤 기업이라도 오랜 세월 경영을 하면서 몇 번쯤은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 위기를 혁신으로 이끄는 것이 새로운 인재 영입"이라며 "단순히 당신이 가진 유산을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기서 무엇인가를 더 창조하고 한발 더 나가려면 그에 걸맞은 재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명품 구두 브랜드 세르지오 로시와 보석 브랜드 반 클레프 애펠 CEO를 거쳐 2007년 발렌시아가 CEO에 올랐다.
"물론 당신 앞에 남은 유산이 너무 크다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항상 '과거의 유산'이라는 말이 따라붙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것이 짐이 되지 않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도록 하는지는 당신의 뿌리를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는지, 당신의 유산과 현재가 어떻게 대화를 시도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발렌시아가 직원들이 과거의 유산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사료(史料) 보관소(archive)에 가보는 것이다.
"일종의 가족사진이 담긴 사진첩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일반인에게 공개하진 않습니다. 발렌시아가 직원만 볼 수 있는 거죠. 가족사진을 외부인에게 막 공개하진 않잖아요? 그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원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의 뿌리로 되돌아가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어요. 또 우리는 전통과 접촉하고, 소통하고, 공부하고, 더 파고, 원할 때면 그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런 유산이 주제나 스타일 측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나요?
"(6월에 열린) 파리 남성복 프레젠테이션에서 알렉산더 왕은 창업자 발렌시아가의 전매특허인 코쿤 스타일(어깨 부분이 강조되고 허리가 불룩 튀어나온 스타일)을 남성복에 처음 가져왔어요. 애호가라면 한눈에 이번 남성복이 발렌시아가의 전통 여성 스타일을 재해석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창업자 발렌시아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당대 유명 디자이너들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2차 대전 당시 원자재 부족으로 파리 부티크들이 일제히 문을 닫을 때 부족한 원단으로도 풍성한 실루엣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독특한 재단 방식을 고안했고, 코코 샤넬이 심플의 미학을 강조할 때 화가 벨라스케스로부터 영감을 받아 화려한 소재와 강렬한 색감의 드레스를 선보였다. 디오르가 허리를 잘록하게 하고 엉덩이를 강조한 모래시계 모양의 '뉴룩'(New Look)으로 세계 유행을 주도할 땐 거꾸로 허리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코쿤 스타일을 창조했다.
귀쇼 사장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대담한 발상과 한 시대의 유행에 국한되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는 열린 시각은 발렌시아가만의 타협할 수 없는 철학"이라며 "이것이 창업자가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이며, 다른 명품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에 "사진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해서인지 귀쇼 사장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검정 원피스, 샌들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콧대 높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사장답지 않은 털털한 모습은 예상 밖이었지만, 어쩌면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브랜드 내부의 유연함이 장 폴 고티에의 조수로 활동했던 26세 무명 디자이너(게스키에르)와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중퇴한 29세 미국인 디자이너(알렉산더 왕)를 과감하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할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왕은 발렌시아가의 영입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귀쇼 사장은 전했다. 왕은 "어, 그건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두려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를 설득하셨나요?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발렌시아가의 사료 보관소를 본 것이었어요. 발렌시아가가 남긴 유산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뭔가 새로운 것을 더 창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작년 2월 왕의 데뷔 무대가 된 가을·겨울 컬렉션에선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이미지의 20대 디자이너가 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브랜드를 어떻게 요리했을까'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왕은 부드러움을 대변하는 니트 소재를 뻣뻣하게 가공해 석고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가죽 제품도 고급스러운 대리석 질감이 나게 가공했다.
옷으로 조형물이 주는 느낌을 표현한 것은 창업자 발렌시아가의 장기이기도 했다. 패션 역사가 엘리사 디망은 1967년 패션 잡지 '보그'에 게재된 발렌시아가의 웨딩드레스를 가리켜 "두껍고 뻣뻣한 질감의 웨딩드레스는 강철덩어리를 재료로 해서 사물의 순수함을 표현한 미니멀리스트 조각가 도날드 저드의 작업을 연상케 한다"고 표현했다.
창의력이 벽에 부딪힐 땐 전통에서 해답을 찾는다
2015년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왕은 발렌시아가가 여성복에서 주로 구현했던 전매특허인 코쿤 스타일을 남성 코트에 처음 적용하고, 바지에도 개더(옷감을 여러 겹으로 겹쳐 성기게 꿰맨 것)를 하나만 넣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두 개를 넣음으로써 여성 드레스 치맛단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느낌을 살렸다. 합성 소재와 천연 소재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질감을 표현했던 창업자처럼 왕 역시 양가죽을 종이처럼 얇고 가볍게 잘라서 종잇장 같은 독특한 질감이 나게 한 남성 재킷도 선보였다.
"저는 과거 발렌시아가의 유산과 왕의 창의력의 조합이 매우 긍정적인 결과물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왕은 '제로'에서부터 시작해 이미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알렉산더 왕)를 만들었지만, 발렌시아가에선 자신이 사업을 시작할 때 갖지 못했던 전통과 뿌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어요. 창의력이 벽에 부딪힐 때면 전통에서 해답을 찾고, 유산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왕은 발렌시아가의 유산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골라 편향적으로 취하지 않았고 조형, 색상, 디자인, 재질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발렌시아가의 문화유산을 빠르게 흡수하고, 글로벌한 시각으로 해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1980~90년대 미국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을 추구하는 알렉산더 왕은 고급스럽고 우아한 발렌시아가의 이미지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발렌시아가 고유의 정체성이 희석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나요?
"브랜드가 가진 스타일이라는 것은 정기적으로 재탄생되고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과거에 추구해 왔던 것과 다소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 나올지 몰라도 길게 보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브랜드 안에 희석되고, 브랜드의 일부분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브랜드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게 되지요.
'아레나'('모터사이클 백'의 정식 명칭)만 놓고 보더라도 발렌시아가라는 브랜드가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가방은 큰 인기를 끌었고 그로 인해 발렌시아가가 갖고 있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긴 역사를 놓고 볼 때 어느 한 제품이나 하나의 스타일이 전통적인 모습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해도 그것은 우리의 일부분일 뿐이지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정체성이 희석됐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오히려 그런 다양한 시도가 녹아들어 발렌시아가라는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융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 유지와 기업 이윤 추구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그건 제가 날마다 당면하는 과제예요.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흑과 백처럼 뚜렷하게 대조되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회색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지난 5월 발렌시아가는 중국과 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전시회를 진행했어요. 왕이 발렌시아가 사료 보관소에서 직접 보석과 의류를 40여점 골라 전시했고, '과거와 현재로의 시간 여행'을 주제로 베이징에서 패션쇼도 진행했습니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장기적인 비전을 고려해 볼 때 발렌시아가의 브랜드 스토리를 아시아 시장에 알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지만, 경제적으로 볼 때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두 가지 목표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장기적 비전을 위해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 할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옷은 입는 순간에야 생명력을 얻게 된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코코 샤넬, 크리스찬 디오르 등 당대 라이벌들이 주도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스타일을 추구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그저 남들과 달라 보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허리 부분이 불룩 튀어나온 풍성한 실루엣이나 손목을 드러내 손동작을 강조한 일명 '4분의 3 소매(7부 소매)'는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하고, 옷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의상 실루엣을 변화시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패션 철학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었다.
역사학자 폴 존슨은 살아 있을 당시 언론 기피증이 있었던 발렌시아가를 직접 만난 뒤 책 '창조자들'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했다.
"발렌시아가는 엄격하고 완고했지만, '드레스는 사람이 입는 순간에야 생명을 얻게 되며, 창조적 행위를 완성하는 사람은 (옷이 아니라) 옷을 입는 이들'이라는 창조적 겸손함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옷을 입을 여성이 신체에 이런저런 결함이 있고, 몸이 늙었을지언정 자신이 만든 옷과의 '신비한 결합'을 통해 계층도, 나이도 잊어버리는, 신과 천사의 세계로 도달하는 것을 꿈꿨다."
귀쇼 사장은 의상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바탕으로 한 '유행 거스르기'야말로 발렌시아가가 오랜 세월 고객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이유라고 분석했다.
"발렌시아가의 옷을 입으려는 사람은 '무언가 다른 것'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합니다. 단순히 예쁘거나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는 걸 넘어서서요. 발렌시아가를 입을 때면 자신이 특별하고, 남들과 다른 존재로 변신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 '남들과 달라지고자 하는 욕망'을 발렌시아가가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자라'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발렌시아가 같은 브랜드가 갖는 존재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마디로 말할게요. 패스트 패션은 고급 브랜드가 될 수 없습니다. 패스트 패션의 핵심은 의상이 창조되는 순간의 노력과 수고를 모조리 건너뛰는 것이니까요. 패스트 패션 역시 분명히 좋은 점이 많지만, 그것으로써 충족시키지 못하는 수요와 욕구는 항상 존재합니다. 앞으로 명품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패스트 패션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품질, 디자인, 표현 방법에 더 집중하고, 마케팅도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