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일치] 한반도 판 몰타회담을 기다리며 / 이원영
발행일2018-12-16
[제3124호, 22면]
우리 시간으로 지난 12월 1일, 미국의 41대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향년 9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부자가 모두 미국 대통령을 지냈기에 아버지 부시라고 지칭됐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약 한 달 후인 1989년 12월 2일과 3일, 지중해의 몰타에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과 이틀 동안 미소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 회담에서 동서 양 진영이 새로운 협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내용의 ‘몰타 선언’을 발표해 냉전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몰타 선언은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91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구 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했고, 주한 미군의 핵무기 철수를 선언했다. 당시 북방외교를 선언했던 노태우 정부는 1990년에는 구 소련과, 1992년에는 중국과 수교했으며, 1991년에는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2년,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비핵화 공동선언)이 발효됐으며, 비핵화의 구체적 이행과 실천대책을 합의하기 위해 ‘남북고위급회담 분과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렇게 몰타 선언 이후 한반도에는 새로운 평화 정착의 가능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1992년 시작된 제1차 북핵위기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북폭 계획으로 북미 관계는 전쟁 직전의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 위기는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을 통해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로 일단락됐다. 반면에 남북관계는 김일성 주석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을 김영삼 대통령이 수락해 최초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보였지만, 회담 직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뒤이어 한국에서 있었던 소위 ‘조문 파동’으로 다시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이후에는 이와 반대로 남북관계가 해빙 분위기가 됐을 때에 북미관계의 긴장이 고조됐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21세기 한반도 판 몰타회담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신’(에페 2,15-16)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반도 판 몰타회담이 열리더라도 항구적인 평화를 향해 우리 스스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남북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