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가락 탐구란에 올릴려고 하였으나, 자격이 되지않는지 올릴수 없어 여기에 올립니다.
가야와 신라의 태동
내가 여기에 쓰는 글은 어떤 사료나 근거를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본인의 풍수지리 공부와 기감에 의하여 이때까지 알아낸 역사를 이곳에 옮기고 있으며, 우리가 짐작하는 여러 부분의 역사 사실이 이 글과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혹, 이 글을 읽는 분은 여기에 적힌 글이 우리가 아는 역사나 내 집안의 가족사와 틀린다고 딴지를 걸지않았으면 합니다. 나도 내 기감으로 찾아낸 자료인 만큼 인정해 주시고 단지 역사를 공부하는 학인의 하나의 생각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신라가 사로국으로 개국한 것보다 가야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가야는 알려진대로 몽고지역의 흉노왕 선우씨의 신하인 휴도왕 김류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고 곽거병에 의한 흉노의 정벌에서 휴도왕과 혼야왕이 기련산쪽으로 밀리면서 혼야왕이 휴도왕을 살해하고 4만여 흉노족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을 하고 이때 김류의 장자인 일제와 그 가족이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한고조에 중용되면서 김해 김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휴도왕 김류에게는 장자인 일제, 차자인 륜 삼자인 롤이 이었고 차자인 륜의 후손으로 큰아들 롱과 둘째인 안생이 있었다한다. 김해김씨 족보에는 안상이라 하는데, 안상이 아니고 안생이라고 한다. 안생의 아들에 외동인 창이 있었고 창의 장자에 보징이 있었고 차자인 섭이 있었는데, 이 섭이 수로왕의 고조부이다. 섭의 아래로 오형제를 두었는데, 셋째가 혜호요 혜호의 다섯 아들 중에 장자가 이름이 헬인데 우리말로 탕이다. 탕에게 두 아들이 있어 큰아들이 톨효로 현재의 소리로 비화 둘째아들이 톨타로 현재의 소리로 비량이라고 읽는다.
이 일족이 몽고 평원과 만주를 지나 현재의 원산에서 배 12척에 식솔 125명을 태우고 동해를 거쳐 김해로 들어올 때 단지 비화의 식솔만 오고 형제간인 비량의 식솔은 위쪽에 남겨두고 내려온다. 이때 비화의 아들로 큰아들 太露 둘째가 首露 셋째가 仲露 넷째가 旺露 다섯째가 竝露 여섯째가 末露 이렇게 여섯 형제와 두 명의 부인을 데리고 김해에 도착한다.
김해에 도착한지 14년 후에 이들 6형제가 비슬산에 수도하던 밎딪록 선인을 모시고 육가야를 탄생시킨다. 밎딪록 선인은 현재의 발음으로 투추선인이며 뜻은 뭋율이라 하는데, 뭋은 여러가지 즉 가지가지에 율은 음악을 나타내는데 악기를 잘 다루었다 한다. 다룬 악기는 북, 해금, 아쟁 ,징 피리 이렇게 다섯 가지를 다루었다한다.
가야의 뜻은 코핵소라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물어보니 두레 즉,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김해에 도착한 후 14년 동안 태로는 창녕 불사국의 맏공주에게 장가를 가고 수로는 김해 구야국의 맏공주에게 중로는 고령 반로국의 장녀에게 왕로는 현재의 문경 함창에 있었던
고순서국의 맏사위로 들어가는데 나라의 명칭이 고순시국이 아니고 고순서국이라 한다.
막내인 말로는 고성의 고자미동국의 맏공주에게 장가를 갔지만 다섯째인 병로는 현재의 함안에 있은 안라국에서 사위로 둘 수 없다하여 전투를 벌이고 안라국왕을 죽인 후 아라가야를 개국하는데, 이때, 6형제의 맏이인 태로가 비슬산으로 가서 투추선인을 모시고 김해 구지봉에서 구지가를 부르면서 육형제가 육가야의 왕으로 등극하여 개국한다.
태로는 창녕으로 가서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비화가야를 둘째인 수로는 김해에 티루가야(금관가야)를, 셋째인 중로는 경북 고령에서무우가야(대가야)를 넷째인 왕로는 문경함창에서고령가야를 다섯째인 병로는 경남함안에서아라가야를 여섯째인 말로는 경남 고성에서모주가야(소가야)를 개국한다. 여기서 티루는 우주, 无憂는 우환이 없는 것을, 高靈은 높은 정신을, 아라는 피어오르다는 뜻으로 모주는 핵심 중심 이런 뜻이다.
여기서 투추 선인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은 이씨요, 이름은 밎딪록으로, 그의 아호에서도 볼 수 있듯 뭋율에 능했다. 하지만 그 보다도 감여학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었다. 구지봉에서 육가야의 개국을 집정하였는데 이때의 나이가 43세. 옛날에는 노년으로 접어든 나이다. 이 분이 육가야를 개국시키고 100세까지 세수를 누렸는데, 그 동안에 여럿 곳에서 풍수로 재혈을 하였다. 저 유명한 수로왕의 유택과 허황후의 유택, 그리고 티루가야의 왕궁터, 수로왕비의 유택, 비화가야 태로왕의 유택과 비화가야 왕궁터 관룡사의 약사전, 모주가야 말로왕의 유택과 모주가야 왕궁터 연화산 옥천사의 대웅전 그리고 김해 구지봉의 가야 개국신화가 있는 터 등 현재까지 내가 확인한 게 이 정도이다.
다시 역사로 돌아가서 육가야와 주변 왕국의 개국시기이다.
육가야가 개국할 때 태로가 22세 수로가 20세 중로가 18세 왕로가 17세 병로가 16세 말로가 16세인데 말로는 배다른 형제다. 이때 사로국의 박혁거세는 15세로 가야 개국후 3년뒤에 18세의 나이로 사로국을 개국하였다. 이 문제 때문에 경주까지 가서 박혁거세 왕에게 물어보았지만 역시 육가야 개국 3년 후에 사로국을 개국하였다는 같은 답변이였다. 육가야 개국 후 15년 후에 성산 벽진에서 박주로가 나이 20세에 미지국의 2녀의 지아비로서 붓출가야(촛불가야: 벽진가야)를 세우고 다시 육가야 개국 20년 후에 박주로의 동생인 박벽로가 20세에 합천 옥전에서 다라국의 둘째 공주의 지아비로서 금추가야(쇠징가야)를 세운다.
그리고 아라가야를 세울 때 패망한 안라국의 왕족이나 귀족등 유민들은 배를 타고 대마도에 모여 다시 일본의 쿠우슈우에 있는 시가현과 나가사끼현에 자리잡고 안라국 패망 25년에 안라국의 마지막왕의 동생을 왕으로 삼고 임라가야를 세운다. 여기에서 15대 275년간 존속하다가 신공황후에게 멸망한다. 또 진주지방에는 죤풍가야라는 일본에 뿌리를 둔 나라가 육가야 개국 후 29년에 나라를 세우고 7대에 101년간 존속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결국 모주가야에게 멸망당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야와 주변국의 개국 시기는
김해김씨 족보와 사학계에서는 티루가야가 490년간 존속하였다 하는데, 내가 수로왕과 구형왕에게 물어본 바로는 533년을 존속하였다한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티루가야(금관가야)의 멸망시기를 신라 연대기대로 532년으로 잡았을 때 가야는 B.C. 2년에 개국하였다할 수 있다. 그러면 신라는 AD.2년에 개국하였다 할 수 있는데, 신라의 마지막왕인 57세 경순왕(57세가 맞음 53세 신덕 54세 경명 55세 경청 56세 경애 57세 경순)에게 물어본 바로는 929년간 신라가 왕통을 이어받았다하니 신라가 멸망한 935년을 기준으로 볼 때 AD6년에 신라가 개국하였다 할 수 있고 사서에 갑자년이라 하였으니, ,AD,4년에 신라가 개국한 것이 맞다고 본다 그러면 가야의 개국년도는 A.D.1년이 되고 티루가야의 멸망은 534년이요. 무우가야가 멸망하면서 가야의 명맥이 끊어진 게 564년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하나. 이런 계산이 맞다고 한다면 신라 왕들의 보위 연도도 변경될 가능성이 많다.
오늘은 간략하게 여기까지만 적고 이후에 시간 되는대로 또다른 가야사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아주 흥미롭습니다.^^
흠... 일반적으로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개국 했다고 하는데 새로운 주장이군요.^^
1개의 가야국에 백성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나라가 될야면 큰 고울이 여러개 이상은 있어야 합니다 6 가야국이라고 한다면 큰 고울이 수십개 이상은 있어야 나라가 형성아 됩니다 지금에 경산도와 전라도의 틈새에 큰 고울이 몇개 있습니까 1개의 가야국도 있기 힘듭니다 거기에 시골 촌구석은 많아도 큰 고울은 없으니 반도땅에서의 공간은 의문이 들죠 가야가 반도땅에 있을 공간이 없다면 대륙에 가야가 있는 것이 사실이 됩니다 ,,,,,
^^ 아직도 웃기는 논리를 버리지 못했군요.
한국을...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과 비교하면 수십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나라가 아닌가요?
유럽의 여러 나라들 중에 대한민국(남북한)보다 큰 나라가 몇 나라나 되는지 공부를 해 본 다음에 댓글을 올리세요.
더이상 쪽 팔리지 않으려면... ^^
원래는 오사카에 살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나고야로 옮겨와... 종국엔 교토에서 죽은 것이 팩트인데...
당시 오사카, 나고야, 교토가 국가체계를 갖출 정도의 도시였나요?
이건 답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