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여정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
2025.3.13.사순 제1주간 목요일 에스4,17;12,14-16,23-25 마태7,7-12
“주님, 제가 부르짖던 날, 당신은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히 세우시니,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시편138,4)
오늘 시편 화답송 후렴입니다. 참으로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특히 사순시기는 기도와 회개의 때입니다. 살아있을 때 기도지 죽으면 기도도 못합니다. 기도하라고, 회개하라고, 사랑하라고 연장되는 날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확증편향, 무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무엇보다 길을, 희망을, 빛을 잃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사순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성규49,3-4)
참으로 하느님 앞에 회개할 때 겸손과 더불어 본연의 참나를 회복합니다. 하느님 없으면 참된 겸손도 불가능합니다. 사람이라면 종파에 관계없이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이요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요즘 회자되고 있는 도올의 시국선언도 하나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서두와 끝부분만 인용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위기가 덮여 있습니다. 나는 이땅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 도덕과 장구한 질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중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피 끓는 호소가 남녀노소, 이념과 관계없이 민족의 양심을 깨우기를, 우리의 시인 한용운의 시 한 구절을 읽습니다.
‘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말하고 노는 때에 더 울게 됩니다. 님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여 좋은 말을 합니다마는, 나는 그들의 위로하는 말을 조소로 듣습니다. 그때는 울음을 삼켜서 눈물을 속으로, 창자를 향하여 흘립니다.’”
저 또한 재작년 2023년 8.15 광복절부터 기상후 만세칠창으로 시작하고 만세칠창후 잠자리에 듭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이어 자신의 신원을 새로이 확인합니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예수님파 주님 ‘사랑의 전사’이다.”
옛 현자의 충고도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수없이 많은 용서를 받았다. 그러니 타인에게도 관대하라.”<다산>
“사람이란 어리석더라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총명하더라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는 어둡기 마련이다.”<송명신언행록>
타인은 물론 자신을 용서하며 자신에게도 관대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기도와 믿음, 삶에 대한 참 귀하고 필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결코 좌절이나 절망함이 없이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투지의 자세로 항구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요 믿음이요 삶의 자세입니다. 끝까지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부단히 청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적 탄력좋은 삶입니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지 않고 한결같은 신망애信望愛의 삶을, 진선미眞善美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하고 항구히 기도하고 살다보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바에 이르게 되고 그대로 응답됩니다. 우리 방식대로가 아닌 하느님의 참 좋은 최상, 최선의 방식대로 응답됩니다.
당장은 모르지만 삶의 뒤안길을 보면 저절로 응답된 삶이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가 청하는 분은 초월자 철학의 차가운 하느님이 아니라 너그럽고 인자하신, 다정하고 따뜻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아버지께 대한 한없는 신뢰와 사랑을 날로 깊이하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감사와 행복의 고백기도입니다. 몰라서 불만에 불행이지 알면 알수록 감사요 행복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믿습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감사와 행복의 자각에서 저절로 황금률의 지혜와 사랑에 이르게 됩니다. 참사람의 기초가 되는,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황금률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오늘 이런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믿음과 삶의 모범이 제1독서의 에스텔 왕후입니다. 언젠가 갑자가 이런 기도가 아니라 평소 기도로 축적된 내공의 믿음의 삶이 기도로 표출된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요 삶입니다. 기도가 삶의 꼴을 형성하고 이런 믿음과 삶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기도입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압니다.
우리의 영원한 정주처이자 피신처이자 안식처는 주님뿐이요, 이런 주님께 바치는 에스텔의 기도가 참 절박합니다. 흡사 인격화된 “한반도의 대한민국”이 드리는 기도같습니다. 위기중에 있는 작금의 이 나라의 각계 각층의 지도자들이 필히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몸은 위험에 닥쳐있습니다.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핵무기를 능가 압도하는 기도의 힘, 믿음의 힘, 미사의 힘, 하느님의 힘입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미친 광신도狂信徒가 아닌 참 빛의 광신도光信徒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당신께 피신처를 둔 백절불굴의 기도의 전사, 믿음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 살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 주소서.”(시편51;12,14).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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