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평생 왼손잡이로 살아오면서 더러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그런대로 큰 문제없이 적응해왔다. 불편했던 이유는 모든 도구가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왼손으로 가시개질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금세 엄지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손잡이가 오른손에 끼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초딩 때는 학교 가는 날을 제외하곤 매일 농사일을 했는데, 호미와 왜낫도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져 있어 매우 불편했다. 하는 수 없이 호미질과 낫질을 할 때는 양손을 번갈아 사용한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오히려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중학교 때 탁구를 잘 친 것도 짝잽이 덕이 컸다. 나는 오른손잡이들이 치는 공에 익숙하지만 상대방은 내 공을 받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종족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인류의 10~12%가 왼손잡이로 태어난다. 유물이나 고대벽화 분석에 따르면, 이 비율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유지되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나 어릴 때만 해도 왼손잡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편견이 심했다. 내 고향 가은면 성저리는 150호 가량 되는 어법 큰 동네였는데, 동네 전체에 왼손잡이는 나 혼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사람들은 후천적 교정에 의한 현상이 아니었나 싶다. 내 경우도 어머니의 엄한 훈육으로 수저질과 글씨 쓸 때만 오른손을 사용하게 되었다. 왼손으로 밥을 먹다가 들키면 밥그릇을 빼앗기고 한 끼를 굶어야 했고, 글씨를 쓸 때도 왼손을 사용하다가 들키면 회초리로 뒤지게 맞았다. 왼손을 쓴다고 얻어맞다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다들 왼손잡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한 편견은 우리나라가 가장 심한지, 왼손잡이 비율을 보면 미국인이 15%, 일본인이 12%인 데 비해 우리나라 사람은 5.8%에 불과하다. 서양에는 아리스토텔레스‧알렉산드로스‧시저‧잔다르크‧다빈치‧뉴턴‧괴테‧나폴레옹‧베토벤‧안데르센‧니체‧처칠‧아인슈타인‧피카소‧마리린 먼로 등 예로부터 왼손잡이인 유명 인사들이 많았고, 현대에도 제럴드 포드‧빌 클린턴‧오바마 미국 대통령, 빌 게이츠 등 왼손잡이 유명인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정대현‧장원준‧정우람‧유희관‧유현진‧차우찬‧김광현‧양현종 등 왼손잡이 투수들이 프로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이나영‧박신혜 등 예쁜 여배우들이 왼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 옛날에 비해 왼손잡이들의 지평이 헐썩 넓어졌다.
미국의 딘 켐벨은 1976년 국제왼손잡이협회를 창설하고 자신의 생일인 8월 13일을 세계 왼손잡이의 날로 정했다. 협회는 신문도 발행하는 등 왼손잡이의 인권을 신장하고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로부터 방향을 가리킬 때 우좌라고 하지 않고 좌우라 했고 조선조의 정승도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다. 용어도 좌가 앞에 오는 좌지우지는 긍정적으로, 우가 앞에 나오는 우왕좌왕은 부정적으로 쓰인다. 하필 손을 사용하는 습관에서만 왼손잡이를 나쁘게 보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왼손잡이는 모든 동작을 왼손으로만 한다. 왼손잡이들은 단추를 잠글 때, 왼손에 차고 있는 시계의 용두를 뽑아 시간을 맞출 때, 교통카드를 꺼내 개찰구에 댈 때, 오른쪽에 필기판이 붙어 있는 강의용 의자에 앉아 필기를 할 때, 그리하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필기를 해나가다 보면 손바닥 아래쪽에 볼펜 똥이 시커멓게 묻어날 때 불편을 느낀다. 깡통따개, 컴퓨터 마우스 위치, 카메라 오른쪽에 붙어 있는 셔터 등도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지고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왼손잡이들은 오랜 세월 적응해온 덕분에 대부분 불편을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수만 년 동안 인류의 10~12%가 왼손잡이로 태어났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습관일까, 아니면 유전일까? 왼손잡이는 모두 태생적이므로 물려받은 습관은 아니고, 아직까지는 왼손잡이를 유발하는 유전인자도 찾아내지 못했다.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한 아이는 왼손잡이로, 한 아이는 오른손잡이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어 유전적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유전도 어니고 훈련에 의해서도 아니라면 뇌 구조의 차이 때문일까? 인간의 뇌는 거의 비슷하게 생긴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져 있다. 19세기 후반에 뇌수술 기술이 개발되어 외과의사들이 처음으로 두개골을 절개하여 뇌의 구조를 확인했을 때, 모든 외과의들은 뇌의 부위별 기능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865년 프랑스 외과의사 폴 브로카(1824~1880)는 왼쪽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가 오른쪽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보다 언어 구사능력이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그는 언어중추가 뇌의 좌반구 전두엽에 있다는 논문을 썼고, 그의 이름을 따서 그 부위를 ‘브로카 영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각국의 수많은 의사들이 연구를 지속하여 뇌 각 부위의 기능을 하나씩 밝혀냈다. 현재는 영상의학의 발전으로 모든 부위의 기능이 거의 다 밝혀져 있다.
인체의 육체적 기능과 관계된 신경을 뇌로 연결해주는 운동경로와 감각경로는 목 뒤쪽에 있는 뇌간(腦幹)에서 서로 교차된다. 그 결과 신체의 오른쪽에서 발생하는 감각이나 운동은 좌뇌로 전달되고, 왼쪽의 것은 우뇌로 전달된다. 이 현상을 뇌의 편측성(偏側性)이라고 한다. 감각이나 운동 이외의 기능은 편측성이 전혀 없다. 한때 의학계를 중심으로 좌뇌형 인간은 합리적이고 우뇌형 인간은 감성적이라는 편견이 나돌기도 했지만, 모두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우뇌가 더 발달한 사실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이 현상 또한 오랜 훈련에 의한 후천적인 결과다.
뇌기능 연구에서 뇌량(腦梁)도 빼놓을 수 없는 부위다. 뇌량은 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통로다. 좌반구와 우반구에는 각각 전두엽‧측두엽‧두정엽‧후두엽이 있는데, 신체적‧정신적으로 각각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이 네 부위는 뇌량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어느 한쪽이 손상을 입었을 때는 뇌량을 통해 상호 보완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왼손잡이의 발생기전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의사들이 구체적으로 기능이 밝혀진 뇌의 각 부위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거듭했지만, 상굿도 왼손잡이 기질을 지배하는 뇌 부위는 확인하지 못했다. 언젠가 그걸 밝혀내는 의사는 노벨생리의학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더 똑똑하다는 얘기 역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왼손잡이는 일상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고루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오른손잡이에 비해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반드시 이해력이 빠르거나 신체적 기능이 더 뛰어나게 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오랜 세월 편견에 맞서 오면서 사회적 적응력이 다소 발달했을 가능성은 높다.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은 서양에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데, 수만 년 전부터 집단생활을 해온 동물로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은 본능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인생의 종점에 거의 다다른 요즘, 왼손잡이로서 사회적으로 큰 불이익 당하지 않고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점지해주신 삼신할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첫댓글 내 어릴때(초등학교 입학하기전4살이후) 어머니가 광목으로 끈을 만들어 밥먹을때는 왼손을 끈으로 허리에 묶어 오른손으로 밥을먹게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배울때는 왼손이 묶여 있던 기억이 새롭네
막나딸!
극성에 글은 오른쪽 손으로 쓰네.
참 멋진 글! 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