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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사소(十思疏)
임금에게 올린 10가지 내용의 소(疏)이다. 당(唐)나라 위징(魏徵)이 당 태종(唐 太宗)에게 올린 상소로 천자가 마땅히 생각하여야 할 열 가지를 열거하여 경계하게 한 내용이다.
十 : 열 십(十/0)
思 : 생각 사(心/5)
疏 : 소통할 소(疋/7)
출전 : 정관정요(貞觀政要) 제1편 논군도(論君道)
십사소(十思疏)는 임금에게 올린 10가지 내용의 소(疏)이다.
① 위징(魏徵, 580 ~ 643)
중국 당(唐)나라 위징(魏徵)이 태종(太宗)에게 올린 10가지 내용의 소(疏)이다. 소 가운데 '인주(人主)가 시작은 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경우는 드무니 어찌 취하기는 싶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와 같은 내용 등으로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켜야 할 내용들이다.
위징(魏徵)은 당나라의 정치가이다. 자(字)는 현성(玄成)이며, 당 태종을 섬겨 간의대부(諫議大夫), 좌광록대부(左光綠大夫)에 임명되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직간(直諫)으로 이름이 높았고 당 태종과의 문답은 대부분 '정관정요'에 실려 있으며,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는 그 중 가장 유명한 글이다.
거록(巨鹿) 곡양(曲陽) 사람으로, 대중(大中) 6년(852년) 11월에 세워진 위공선묘비(魏公先墓碑)에는 위징의 할아버지는 교(釗), 아버지는 완(琬)으로, 부인은 하동 배씨(河東裴氏) 집안의 여자였다고 전한다.어려서 집이 가난하였고, 수 말기에 이밀이 지휘하던 와강군(瓦崗軍)에 들어갔다가 이밀이 패한 뒤 당에 귀순하였다가 다시 두건덕의 포로가 되었는데, 두건덕은 그의 재능을 아껴서 자신의 휘하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두건덕이 패한 뒤에 당으로 돌아가서, 태자 이건성(李建成)의 측근으로서 태자선마(太子洗馬)라는 지위에 올랐다.
당시 이세민의 인기와 권력을 불안히 여긴 태자 이건성에게 위징은 이세민을 독살하여 제거할 것을 진언했지만 이건성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결국 현무문의 변으로 이세민에게 살해당했다. 위징은 이를 당연한 결과라 받아들이고, 이세민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각오하였고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세민은 위징을 문책하던 중, 이세민의 형인 이건성이 위징 자신의 충언을 듣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것과 자신의 주군을 보필하기 위하여 충언을 한것은 자신의 죄가 아님을 말하였고, 자신이 이세민에게 위협적인 존재였음을 당당히 인정하였기에, 이세민은 그의 솔직함을 높이 사서 그를 간의대부로 삼았다.
뒤에 비서감(秘書監), 시중(侍中) 등의 직책을 두루 거쳤으며, 태종에게 2백 회가 넘는 간언을 올렸다. '자치통감' 권196에 보면,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몹시 슬퍼하며, 옆에서 따르던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사람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서 의관을 바로잡고, 옛 것을 거울로 삼아서 역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아서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음으로서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태종은 위징이 죽기 직전, 그의 장남 숙옥(叔玉)에게 딸 형산공주를 시집 보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생전에 위징이 태종에게 올렸던 간언서의 부본을 사관(史官) 저수량에게 보여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위징이 명성을 얻기 위해 그런 것이라 의심하면서 위징과 했던 약속을 깨고 형산공주를 장손의에게 시집보냈을 뿐 아니라, 위징의 무덤에 세웠던 묘비까지 부숴버렸다(묘비의 글은 태종 자신이 친히 쓴 것이었다).
또한 생전에 위징은 중서시랑(中書侍郎) 두정륜(杜正倫)과 이부상서(吏部尙書) 후군집을 재상이 될 재목(宰相之才)이라며 천거했는데, 위징이 죽은 뒤 두 사람은 위징과 사사로이 파당을 맺었다는 당 태종의 의심을 사서, 두정륜은 죄를 지어 쫓겨나고 후군집도 모반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정관 18년(645년),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탄식하며 "위징이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魏征若在 不使我有是行也)"이라며 한탄하고, 부숴버렸던 위징의 묘비를 다시 세우게 했다.
태종의 명으로 편찬하게 한 '수서'의 서론(序論)과 '양서', '진서', '제서(齊書)'의 총론(總論) 등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그의 발언은 '정관정요'에 대부분 수록되었다. "사람의 인생에 의기(意氣)가 있다면야, 구구한 공명(功名) 따위 무슨 문제가 되랴"라는 구절로 유명한 '술회(述懷)'라는 시를 읊었다.
② 김흔(金訢, 1448 ~ ?)
조선시대 성종 11년(1479) 10월에 직제학(直提學) 김흔(金訢)이 임금에게 올린 10가지 내용의 소(疏)이다. 김흔의 시에 이르기를, "천리의 먼 길에 장정(長亭)과 단정(短亭)이라. 남관(藍關)의 눈 내리는 저녁에 행인마저 적구나. 한통의 상소(上疏)로 본분(本分)을 다하고서 염장(炎瘴)에 보내졌으나, 만 번 죽더라도 성명(聖明)에 보답할 뿐이로다. 태산(泰山), 북두(北斗) 같은 성명(聲名)이 역사[汗竹]에 남았구나. 홍모(鴻毛)같은 신세를 부평(浮萍)처럼 맡기었네. 지금도 회천(回天)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군왕에게 보내어 시비(是非)의 평론(評論)을 구하지 마오"라고 하였다. 임금은 이 시를 홍응(洪應)에게 명하여 쓰게 하고 옷 1령(領)을 하사 하였다.
김흔(金訢)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성종 때 진사시와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홍문관직제학· 공조참의 등을 지냈다. 문장에도 능하여 율시에 특히 뛰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군절(君節), 호는 안락당(顔樂堂)이며, 시호는 문광(文匡)이다. 성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우신(友信)의 아들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인(門人)이다. 1468년(세조 14) 진사시와 1471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제수받았고,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다.
1479년(성종 10) 통신사(通信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쓰시마섬[對馬島]에 다녀왔으며, 1481년에는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의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이후 1484년 홍문관 직제학(直提學)에 승진되고, 1486년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제수받았다. 이 무렵 병으로 여러 차례 사직하기를 원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1489년 행호군(行護軍), 1490년 행부사과(行副司果)를 지냈다. 문장에도 능하여 율시(律詩)에 특히 뛰어났으며, 문직으로 '안락당집(顔樂堂集)'을 남겼다.
[용례]
명종실록 권제10, 42장 뒤쪽, 명종 5년 5월 30일(계사)
君臣之間 相得益章他日 輔養成就之效 詎可量耶 臣竊聞 成廟朝直提學 金訢 進十思疏 成廟答以御札 復賜衣靴
임금께 군신의 사이에 서로 잘 만난 것이 더욱 빛나니, 후일 보양 성취의 효과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신은 삼가 듣건대 성종조 때에 직제학 김흔이 십사소(十思疏)를 올리니, 성종은 어찰로 답하고 다시 옷과 신을 하사하여 포장하였다 한다.
인조실록 권제49, 20장 뒤쪽, 인조 26년 5월 27일(신묘)
右議政 南以雄 上答曰 臣竊思 唐臣魏徵 上太宗十思疏 誠合 殿下今日之藥石 玆不避竊吹雲英之嫌 謹錄以呈
우의정 남이웅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당나라의 신하 위징이 태종에게 올린 십사소(十思疏)가 진실로 오늘날 전하를 위한 약석에 합치된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재주도 없으면서 많응 영걸들 틈에 끼어있는 혐의도 피하지 않고 삼가 기록하여 올립니다" 하였다.
십사소(十思疏)
사마천(司馬遷)이 아첨배의 행적을 모아 기록한 사기(史記) 영행열전(佞幸列傳)의 총평이다. "미자하(彌子瑕)의 행적은 후세 사람에게 '아첨해 총애를 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 족하다. 비록 백 세대 이후도 마찬가질 터다." 아첨배를 일컫는 '영행(佞幸)'의 영(佞)은 아첨, 행(幸)은 권력자가 가까이 둔다는 의미다.
미자하는 위 영공(衛靈公)을 모셨다. 위나라 법은 임금의 수레를 허락 없이 타면 발뒤꿈치를 잘랐다. 미자하가 어머니의 병 소식을 들었다.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1호 차를 탔다. 영공은 "효자다. 어머니를 위해 발목을 내걸다니"라 칭찬했다. 미자하가 영공과 과수원에 갔다. 복숭아가 달았다. 먹던 반쪽을 바쳤다. 영공이 "제 입 대신 나를 생각했구나" 칭찬했다.
미자하의 미색(美色)이 시들었다. 영공이 돌변했다. "일찍이 수레를 속이고, 먹다 만 복숭아를 바쳤다"며 내쳤다. 여도지죄(餘桃之罪)의 고사다. 사마천은 '내로남불'을 꾸짖었다.
현대판 간신(奸臣)을 풍자한 국민청원 '시무 7조'가 청와대 답변을 기다린다. 대통령 기록물이다. 대한민국 역사로 백 세대에 전할 국가 기록인 만큼 답변은 대통령이 직접 하면 낫겠다.
역사의 명군(名君)은 간신(諫臣)이 만들었다. 위징(魏徵)은 당(唐) 태종에게 열 가지를 생각하라는 상소문 '십사소(十思疏)'를 올렸다.
좋은 물건을 보면 만족을 생각해 스스로 경계하고(思知足以自戒), 하고 싶은 일에는 그칠 때를 생각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思知止以安人), 위태로운 일에는 겸허함을 생각해 스스로 수양하고(思謙沖而自牧), 두려움이 넘칠 때는 냇물보다 낮게 임하는 강과 바다를 생각하고(思江海下百川), 사냥을 즐길 때는 절제를 위해 세 방향에서만 짐승을 몰고(思三驅以爲度), 나태가 두려우면 시작과 끝을 삼가고(思愼始而敬終), 불통이 걱정되면 마음을 비워 간언을 들으며(思虛心以納下), 간사한 자가 우려되면 몸을 바르게 해 악한 사람을 물리치고(思正身以黜惡), 상을 내릴 때는 까닭 없이 잘못 내리지 말 것이며(思無因喜以謬賞), 벌을 내릴 땐 노여움에 형벌을 남용해선 안 됨을 생각하라(思無因怒而濫刑).
위징은 마오쩌둥 조차 '모순론(矛盾論)'에 인용했다. '겸허히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편벽되게 한쪽만 믿으면 아둔해진다(兼聽則明 偏信則暗).'
십사소(十思疏)
위징(魏徵)은 십사소(十思疏)를 통해 당 태종(唐 太宗)의 14가지 잘못된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이는 당 태종(唐 太宗)의 정치적 약점을 지적하고 더 나은 통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십사소(十思疏)는 당나라 초기 명재상 위징(魏徵)이 637년 당 태종(唐 太宗) 에게 올린 14가지 간언문이다. 위징(魏徵)은 이 글에서 당 태종의 잘못된 정책과 행동을 직언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십사소(十思疏)는 다음과 같은 14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거만함을 경계하고 위험을 생각하라:
당 태종의 군사적 승리에 대한 만족감과 안일함을 경고하고, 끊임없이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가 자만심에 빠져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2. 사치를 삼가고 검약하게 살라:
궁궐의 사치와 방탕한 생활 방식을 비판하고, 검약하고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와 귀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을 누리고 있으며, 이는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3. 덕을 쌓고 백성을 사랑하라:
군사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백성을 위해 덕을 쌓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라:
혼자 결정을 내리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법을 공정하게 시행하라:
법을 지키지 않는 귀족과 관리들을 처벌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 농업을 장려하고 백성들을 안정시키라:
농업 생산을 늘리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 정책이 실패하여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7.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라:
외부의 위협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사력을 남용하여 백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8. 교육을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라: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소홀히 하여 백성들이 무지하고 미신에 빠지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9. 형벌을 신중하게 시행하라:
무분별한 형벌은 백성들의 원망을 사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형벌이 너무 잔혹하여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10. 재정을 절약하고 낭비를 줄이라:
국고를 아껴 쓰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필요한 건설 사업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11. 간신들을 물리치고 착한 신하들을 등용하라:
나라를 해치는 간신들을 물리치고 능력 있는 신하들을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리들이 무능하고 부패하여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12. 친척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지 마라:
공정성을 위해 가족과 친척들에게 특혜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제가 친척들을 편애하여 정치를 왜곡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13. 여색에 빠지고 음주에 탐닉하지 마라:
사적인 욕망에 휘말려 정무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4.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라:
모든 일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십사소(十思疏)는 당 태종에게 강력한 경고와 조언을 담은 중요한 간언문이다. 위징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당 태종의 잘못된 정책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그의 용기와 정직성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십사소(十思疏)는 당나라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위징의 간언 덕분에 당 태종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정치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정책 개선은 당나라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십사소(十思疏)는 당 태종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그는 위징의 진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개선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 태종은 더욱 현명하고 훌륭한 군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십사소(十思疏)는 단순히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통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위징의 용기와 헌신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십사소(十思疏)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가치를 지닌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불필요한 건설 사업에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문제, 외교 정책이 무책임하여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문제, 황제와 귀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을 누리고 있으며, 이는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문제, 간언을 억압하고 비판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문제들이다.
고문관지(古文觀止)
제7권 육조당문(六朝唐文)
제7편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
작자(作者) : 위징(魏徵)
위징(魏徵)이 당태종(唐太宗)에게 간한 십사소(十思疏)
이 편은 고문관지(古文觀止) 제7권 육조당문(六朝唐文)의 일곱 번째 편으로 당(唐)나라 위징(魏徵)이 당 태종(唐 太宗)에게 올린 상소로 천자가 마땅히 생각하여야 할 열 가지를 열거하여 경계하게 한 내용이다.
이를 십사소(十思疏)라고 하며, 정관(貞觀) 11년(637년) 4월에 위징이 상소(上疏)한 것으로 정관정요(貞觀政要) 제1편 논군도(論君道)에 기록되어 있다.
위징(魏徵)은 당(唐)나라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로 간의대부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고 재상을 지냈다. 자(字)는 현성(玄成). 시호 문정공(文貞公)이다. 수(隋)나라 말 혼란기에 이밀(李密)의 군대에 참가하였으나 곧 당 고조(唐 高祖)에게 귀순하여 고조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유력한 측근이 되었다.
황태자 건성이 아우 세민(世民: 후의 太宗)과의 경쟁에서 패하였으나 위징의 인격에 끌린 태종의 부름을 받아 간의대부(諫議大夫) 등의 요직을 역임한 후 재상(宰相)으로 중용되었다. 특히 굽힐 줄 모르는 직간(直諫)이 유명하며, 주(周)· 수· 오대(五代) 등의 정사편찬(正史編纂) 사업과 '유례(類禮)', '군서치요(群書治要)' 등의 편찬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고문관지(古文觀止)
제7권 육조당문(六朝唐文)
제7편 간태종십사소(諫太宗十思疏)
작자(作者) : 위징(魏徵)
정관(貞觀) 11년(637년) 4월에 위징이 또 상소하였다.
臣聞求木之長者(신문구목지장자)
必固其根本(필고기근본)
신이 들으니 나무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는 반드시 그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欲流之遠者(욕류지원자)
必浚其泉源(필준기천원)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원하는 이는 반드시 샘의 원천을 깊게 파며,
思國之安者(사국지안자)
必積其德義(필적기덕의)
나라가 안정되기를 생각하는 이는 반드시 도덕과 인의(仁義)를 쌓는다고 합니다.
源不深而豈望流之遠(원불심이기망류지원)
샘이 깊지 않은데 어찌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바라겠습니까?
根不固而何求木之長(근불고이하구목지장)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데 어찌 나무가 성장하기를 바라겠습니까?
德不厚而思國之安(덕불후이사국지안)
雖在下愚(수재하우)
知其不可(지기불가)
而況於明哲乎(이황어명철호)
덕이 두텁지 않은데 나라가 안정되기를 생각하는 것은 비록 신이 비천한 지위에 있고 식견이 얕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 줄 아는데, 하물며 명철한 폐하께서는 어떻겠습니까?
人君當神器之重(인군당신기지중)
居域中之大(거역중지대)
군주는 제위(帝位)의 중요한 위치에 처하여 천지간에 큰 위치를 차지하고,
將崇極天之峻(장숭극천지준)
永保無疆之休(영보무강지휴)
하늘같은 존엄을 누리고 영원히 한없는 아름다움을 보전합니다.
不念於居安思危(불념어거안사위)
戒貪以儉(계탐이검)
편안히 살며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를 경계하여 검소함을 행하며,
德不處其厚(덕불처기후)
情不勝其欲(정불승기욕)
도덕은 그 두터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성정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斯亦伐根以求木茂(사역벌근이구목무)
塞源而欲流長者也(색원이욕류장자야)
또한 뿌리를 자르고 나무가 무성하기를 바라며, 샘의 원천을 막고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註]
○ 貞觀(정관) : 당(唐) 태종(太宗)의 연호(年号: 627~649). 정관의 치(貞觀之治)는 당나라의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의 치세를 일컫는 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대 가운데 하나로 이때 태종을 보좌했던 재상으로는 위징, 방현령, 장손무기 등이 있다. 태종은 이들의 보좌를 받으며 밖으로는 돌궐을 제압하는 한편 토번을 회유했으며, 안으로는 조용조 제도와 부병제, 균전제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과거제를 정비했다. 이로 인해 당나라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 長(장) : 생장하다. 성장하다.
○ 浚(준) : 준설하다. 깊이 파다.
○ 下愚(하우) : 매우 우둔한 사람. 소인.
○ 神器(신기) : 제위(帝位). 군주의 권력은 신에게서 받는다고 여겼으므로 신기라고 한 것이다.
○ 域中(역중) : 천지지간(天地之間)
○ 無疆(무강) : 끝이 없다.
○ 休(휴) : 아름답다. 훌륭하다.
凡百元首(범백원수)
承天景命(승천경명)
莫不殷憂而道著(막불은우이도저)
功成而德衰(공성이덕쇠)
고대의 모든 제왕들은 하늘이 부여한 중대한 사명을 계승하여, 크게 우려한 뒤에는 도가 드러나지만 공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군주의 덕이 쇠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有善始者實繁(유선시자실번)
能克終者蓋寡(능극종자개과)
豈其取之易而守之難乎(기기취지이이수지난호)
시작을 잘한 이는 실로 많았으나 끝맺기를 잘한 이는 대체로 적었으니, 이 어찌 취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昔取之而有餘(석취지이유여)
今守之而不足(금수지이부족)
何也(하야)
옛날 천하를 취할 적에는 여유가 있었으나 지금 천하를 지키는 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夫在殷憂(부재은우)
必竭誠以待下(필갈성이대하)
既得志(기득지)
則縱情以傲物(즉종정이오물)
크게 우려할 때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여 아랫사람을 대하였으나 뜻을 얻고 나서는 자신의 성정을 마음대로 행동하여 남들을 오만하게 대합니다.
竭誠則胡越為一體(갈성즉호월위일체)
傲物則骨肉為行路(오물즉골육위행로)
정성을 다하면 북방의 흉노와 남방의 월(越)도 일체가 되고, 남들에게 오만스럽게 대하면 골육(骨肉)도 길 가는 사람처럼 낯설어집니다.
雖董之以嚴刑(수동지이엄형)
震之以威怒(진지이위노)
終茍免而不懷仁(종구면이불회인)
貌恭而不心服(모공이불심복)
비록 엄한 형벌로 감독하고 기세등등한 노여움으로 떨게 하더라도 끝내 구차히 재난을 벗어날 뿐 군주의 인덕(仁德)을 생각하지 않고, 모습으로만 공손히 할 뿐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怨不在大(원부재대)
可畏惟人(가외유인)
군주를 원망함은 큰 데에 있지 않으니 두려워할 만한 것은 단지 백성입니다.
載舟覆舟(재주복주)
所宜深慎(소의심신)
奔車朽索(분거후삭)
其可忽乎(기가홀호)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기도 하니 마땅히 매우 신중해야 하며, 엎어지려는 수레를 썩은 고삐로 모는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註]
○ 凡百元首(범백원수) : 모든 군주. 고대의 제왕을 말한다.
○ 承天景命(승천경명) : 하늘이 부여한 중대한 사명을 계승하다. 景(경)은 크다.
○ 莫不(막불) : 하지 않는 자가 없다.
○ 殷憂(은우) : 깊은 우려.
○ 蓋(개) : 대개.
○ 傲物(오물) : 남을 깔보다.
○ 行路(행로) : 길. 세상살이. 즉 남남이 됨을 비유한 것이다.
○ 董(동) : 감독하다.
○ 奔車朽索(분거후삭) : 엎어지려는 수레를 썩은 고빼로 몰다. 奔은 賁과 통용되어 엎다(覆)라는 뜻이다.
君人者(군인자)
誠能見可欲(성능견가욕)
則思知足以自戒(즉사지족이자계)
군주 된 사람은 정말 욕심낼 만한 것을 보게 되어도 만족할 줄 알아서 스스로 경계할 것을 생각해야 하며,
將有所作(장유소작)
則思知止以安人(즉사지지이안인)
어떤 것을 건축하려 할 때는 그칠 줄 알아서 백성들을 편안히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念高危(염고위)
則思謙沖而自牧(즉사겸충이자목)
높은 자리에 있어 위태로울까 염려되면 겸허할 줄 알아 스스로 수양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懼滿溢(구만일)
則思江海下百川(즉사강해하백천)
자만하여 넘칠까 두려우면 강과 바다가 온갖 하천의 하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樂磐遊(낙반유)
則思三驅以為度(즉사삼구이위도)
사냥을 즐길 때는 법도에 따라 짐승을 세 번 몰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恐懈怠(공해태)
則思慎始而敬終(즉사신시이경종)
게을러질까 근심되면 처음과 끝을 신중히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慮壅蔽(려옹폐)
則思虛心以納下(즉사허심이납하)
상하가 의사소통이 막힐까 걱정되면 허심탄회하게 아랫사람의 뜻을 받아들일 것을 생각해야 하고,
想讒邪(상참사)
則思正身以黜惡(즉사정신이출악)
비방과 간사함을 단절시킬 것을 생각하면 몸을 바르게 하여 악을 물리칠 것을 생각해야 하고,
恩所加(은소가)
則思無因喜以謬賞(즉사무인희이류상)
은혜를 베풀 때에는 기쁨 때문에 상을 잘못 내려준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罰所及(벌소급)
則思無因怒而濫刑(즉사무인노이람형)
벌을 시행할 때에는 노여움 때문에 형을 함부로 준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註]
○ 知足以自戒(지족이자계) : 만족할 줄 알아서 스스로 경계하다. 노자 도덕경 44장에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게 되며, 머무를 줄을 알면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知足不辱 知止不殆)'고 하였다.
○ 將有所作(장유소작) : 어떤 것을 건축하려 하다. 作은 건축하다.
○ 安人(안인) : 안민(安民). 백성을 안정시키다.
○ 念高危(염고위) : 황제의 높은 자리에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하다.
○ 謙沖而自牧(겸충이자목) : 겸허할 줄 알아 자신을 수양하다. 謙沖(겸충)은 겸허하다. 牧(목)은 다스리다.
○ 百川(백천) : 온갖 하천. 즉 하천이 강과 바다를 이룬다는 뜻.
○ 磐遊(반유) : 사냥을 하며 즐기다.
○ 三驅(삼구) : 세 번 몰도록 함. 군주가 사냥할 때 세 번 몰도록 하여 먼저 나온 짐승은 놓아준다. 이를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好生之德)으로 여겼다.(九五,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 吉) '역경(易經) 비괘(比卦)' 혹은 한 방향은 열어두고 세 방향에서 짐승을 몰았다고도 한다.
○ 慮壅蔽(려옹폐) : 상하의 의사소통이 막힘을 염려하다. 壅蔽(옹폐)는 상하의 의사소통이 막히다.
○ 想讒邪(상참사) : 참소와 간사함을 생각하다.
○ 黜(출) : 물리치다.
總此十思(총차십사)
弘茲九德(홍자구덕)
簡能而任之(간능이임지)
擇善而從之(택선이종지)
이 열 가지의 생각을 종합하고 아홉 가지 미덕을 넓혀,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임용하고 선행을 하는 사람을 가려내어 그의 주장을 따르면,
則智者盡其謀(즉지자진기모)
勇者竭其力(용자갈기력)
仁者播其惠(인자파기혜)
信者效其忠(신자효기충)
지혜로운 이는 지모(智謀)를 다하고 용감한 이는 힘을 다할 것이며, 어진 이는 은혜를 펼치고 신의가 있는 이는 충성을 다 바칠 것입니다.
文武爭馳(문무쟁치)
君臣無事(군신무사)
可以盡豫遊之樂(가이진예유지락)
문관과 무관이 경쟁적으로 노력하여 군주와 신하 간에 폐를 끼칠 일이 없으며, 진정으로 나들이의 쾌락을 누릴 수 있고,
可以養松喬之壽(가이양송교지수)
鳴琴垂拱(명금수공)
不言而化(불언이화)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처럼 장수를 누릴 수 있으며, 비파를 울리고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고도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으며, 말하지 않아도 교화될 것입니다.
何必勞神苦思(화필로신고사)
代下司職(대하사직)
役聰明之耳目(역총명지이목)
虧無為之大道哉(휴무위지대도재)
어찌 굳이 정신과 생각을 고달프게 하고 아랫사람이 맡은 일을 대신하여, 총명한 귀와 눈을 피로하게 하면서 무위(無爲)의 대도(大道)를 훼손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註]
○ 弘茲九德(홍자구덕) : 아홉 가지 미덕을 넓히다. 구덕(九德)은 충(忠), 신(信), 경(敬), 강(剛), 유(柔), 화(和), 고(固), 정(貞), 순(順)을 말한다.
○ 簡(간) : 선발하다.
○ 效(효) : 바치다.
○ 豫(예) : 기뻐하다.
○ 松喬之壽(송교지수) :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처럼 장수하다. 적송자와 왕자교는 전설 중의 신선이다.
○ 垂拱(수공) :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장을 끼다. 편안하게 정치하여 잘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 無爲(무위) : 도가(道家)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행위.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음을 말한다.
[원문]
諫太宗十思疏
作者:魏徵 唐朝
本作品收錄於
古文觀止
卷七 六朝唐文
臣聞求木之長者, 必固其根本; 欲流之遠者, 必浚其泉源; 思國之安者, 必積其德義. 源不深而豈望流之遠? 根不固而何求木之長? 德不厚而思國之安, 雖在下愚, 知其不可, 而況於明哲乎? 人君當神器之重, 居域中之大, 將崇極天之峻, 永保無疆之休. 不念於居安思危, 戒貪以儉, 德不處其厚, 情不勝其欲, 斯亦伐根以求木茂, 塞源而欲流長者也.
신이 들으니 나무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이는 반드시 그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원하는 이는 반드시 샘의 원천을 깊게 파며, 나라가 안정되기를 생각하는 이는 반드시 도덕과 인의(仁義)를 쌓는다고 합니다. 샘이 깊지 않은데 어찌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바라겠습니까?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데 어찌 나무가 성장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덕이 두텁지 않은데 나라가 안정되기를 생각하는 것은 비록 신이 비천한 지위에 있고 식견이 얕으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인 줄 아는데, 하물며 명철한 폐하께서는 어떻겠습니까? 군주는 제위(帝位)의 중요한 위치에 처하여, 천지간에 큰 위치를 차지하고 하늘같은 존엄을 누리고 영원히 한없는 아름다움을 보전합니다. 편안히 살며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를 경계하여 검소함을 행하며, 도덕은 그 두터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성정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또한 뿌리를 자르고 나무가 무성하기를 바라며, 샘의 원천을 막고 물이 멀리까지 흘러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凡百元首, 承天景命, 莫不殷憂而道著, 功成而德衰. 有善始者實繁, 能克終者蓋寡, 豈其取之易而守之難乎? 昔取之而有餘, 今守之而不足, 何也? 夫在殷憂, 必竭誠以待下; 既得志, 則縱情以傲物. 竭誠則胡越為一體, 傲物則骨肉為行路. 雖董之以嚴刑, 震之以威怒, 終茍免而不懷仁, 貌恭而不心服. 怨不在大, 可畏惟人. 載舟覆舟, 所宜深慎, 奔車朽索, 其可忽乎.
고대의 모든 제왕들은 하늘이 부여한 중대한 사명을 계승하여, 크게 우려한 뒤에는 도가 드러나지만 공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군주의 덕이 쇠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시작을 잘한 이는 실로 많았으나 끝맺기를 잘한 이는 대체로 적었으니, 이 어찌 취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천하를 취할 적에는 여유가 있었으나 지금 천하를 지키는 데에는 역량이 부족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크게 우려할 때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여 아랫사람을 대하였으나 뜻을 얻고 나서는 자신의 성정을 마음대로 행동하여 남들을 오만하게 대합니다. 정성을 다하면 북방의 흉노와 남방의 월(越)도 일체가 되고, 남들에게 오만스럽게 대하면 골육(骨肉)도 길 가는 사람처럼 낯설어집니다. 비록 엄한 형벌로 감독하고 기세등등한 노여움으로 떨게 하더라도 끝내 구차히 재난을 벗어날 뿐 군주의 인덕(仁德)을 생각하지 않고, 모습으로만 공손히 할 뿐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군주를 원망함은 큰 데에 있지 않으니 두려워할 만한 것은 단지 백성입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기도 하니 마땅히 매우 신중해야 하며, 엎어지려는 수레를 썩은 고삐로 모는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君人者, 誠能見可欲, 則思知足以自戒; 將有所作, 則思知止以安人; 念高危, 則思謙沖而自牧; 懼滿溢, 則思江海下百川; 樂磐遊, 則思三驅以為度; 恐懈怠, 則思慎始而敬終; 慮壅蔽, 則思虛心以納下; 想讒邪, 則思正身以黜惡; 恩所加, 則思無因喜以謬賞, 罰所及, 則思無因怒而濫刑.
군주 된 사람은 정말 욕심낼 만한 것을 보게 되어도 만족할 줄 알아서 스스로 경계할 것을 생각해야 하며, 어떤 것을 건축하려 할 때는 그칠 줄 알아서 백성들을 편안히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높은 자리에 있어 위태로울까 염려되면 겸허할 줄 알아 스스로 수양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자만하여 넘칠까 두려우면 강과 바다가 온갖 하천의 하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사냥을 즐길 때는 법도에 따라 짐승을 세 번 몰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게을러질까 근심되면 처음과 끝을 신중히 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상하가 의사소통이 막힐까 걱정되면 허심탄회하게 아랫사람의 뜻을 받아들일 것을 생각해야 하고, 비방과 간사함을 단절시킬 것을 생각하면 몸을 바르게 하여 악을 물리칠 것을 생각해야 하고, 은혜를 베풀 때에는 기쁨 때문에 상을 잘못 내려준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벌을 시행할 때에는 노여움 때문에 형을 함부로 준 것은 없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總此十思, 弘茲九德, 簡能而任之, 擇善而從之; 則智者盡其謀, 勇者竭其力, 仁者播其惠, 信者效其忠. 文武爭馳, 君臣無事, 可以盡豫遊之樂, 可以養松喬之壽, 鳴琴垂拱, 不言而化. 何必勞神苦思, 代下司職, 役聰明之耳目, 虧無為之大道哉?
이 열 가지의 생각을 종합하고 아홉 가지 미덕을 넓혀,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임용하고 선행을 하는 사람을 가려내어 그의 주장을 따르면, 지혜로운 이는 지모(智謀)를 다하고 용감한 이는 힘을 다할 것이며, 어진 이는 은혜를 펼치고 신의가 있는 이는 충성을 다 바칠 것입니다. 문관과 무관이 경쟁적으로 노력하여 군주와 신하 간에 폐를 끼칠 일이 없으며, 진정으로 나들이의 쾌락을 누릴 수 있고,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처럼 장수를 누릴 수 있으며, 비파를 울리고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고도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으며, 말하지 않아도 교화될 것입니다. 어찌 굳이 정신과 생각을 고달프게 하고 아랫사람이 맡은 일을 대신하여 총명한 귀와 눈을 피로하게 하면서 무위(無爲)의 대도(大道)를 훼손시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 十(열 십)은 ❶지사문자로 什(십), 拾(십)은 동자(同字)이다. 두 손을 엇갈리게 하여 합친 모양을 나타내어 열을 뜻한다. 옛날 수를 나타낼 때 하나로부터 차례로 가로줄을 긋되, 우수리 없는 수, 다섯은 ×, 열은 Ⅰ과 같이 눈에 띄는 기호를 사용하였다. 나중에 十(십)이라 썼다. ❷상형문자로 十자는 '열'이나 '열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十자는 상하좌우로 획을 그은 것으로 숫자 '열'을 뜻한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十자를 보면 단순히 세로획 하나만이 그어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막대기를 세워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이렇게 막대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숫자 10을 표기했었다. 후에 금문에서부터 세로획 중간에 점이 찍힌 형태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十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十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모양자 역할만을 할 뿐 의미는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十(십)은 ①열 ②열 번 ③열 배 ④전부(全部), 일체(一切), 완전(完全) ⑤열 배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해 가운데 열째 달을 시월(十月), 충분히 또는 넉넉히로 부족함 없이를 십분(十分), 어떤 분야에 뛰어난 열 사람의 인물을 십걸(十傑), 보통 4km 거리를 십리(十里), 사람이 받는 열 가지 고통을 십고(十苦), 열 살로부터 열아홉 살까지의 소년층을 십대(十代), 썩 잘 된 일이나 물건을 두고 이르는 말을 십성(十成), 오래 살고 죽지 아니한다는 열 가지 물건을 이르는 말을 십장생(十長生), 실을 십자형으로 교차시켜 놓는 수를 일컫는 말을 십자수(十字繡), 열 번 찍어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뜻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여러 번 계속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면 기어이 이루어 내고야 만다는 뜻의 말을 십벌지목(十伐之木),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는 쉽다는 말을 십시일반(十匙一飯), 열에 여덟이나 아홉이란 뜻으로 열 가운데 여덟이나 아홉이 된다는 뜻으로 거의 다 됨을 가리키는 말을 십중팔구(十中八九), 열 번 살고 아홉 번 죽는다는 뜻으로 위태한 지경을 겨우 벗어남을 일컫는 말을 십생구사(十生九死),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있다는 뜻으로 세상 사람을 속일 수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십목소시(十目所視), 십년 동안 사람이 찾아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이란 뜻으로 외부와 접촉을 끊고 학문에 정진함을 비유하는 말을 십년한창(十年寒窓), 열흘 동안 춥다가 하루 볕이 쬔다는 뜻으로 일이 꾸준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중간에 자주 끊김을 이르는 말을 십한일폭(十寒一曝), 오래 전부터 친히 사귀어 온 친구를 일컫는 말을 십년지기(十年知己),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의 성격이나 사람됨이 제각기 다름을 일컫는 말을 십인십색(十人十色) 등에 쓰인다.
▶️ 思(생각 사, 수염이 많을 새)는 ❶회의문자로 田(전; 뇌)와 心(심; 마음)의 합자(合字)이다. 思(사)는 '생각하다'의 뜻이다. 옛날 사람은 머리나 가슴으로 사물을 생각한다고 여겼다. ❷회의문자로 思자는 '생각'이나 '심정', '정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思자는 田(밭 전)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소전에서는 囟(정수리 신)자가 들어간 恖(생각할 사)자가 '생각'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囟자는 사람의 '정수리'를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정수리에는 기가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囟자는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니 恖자는 머리(囟)와 마음(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깊게 생각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囟자가 田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思(사, 새)는 성(姓)의 하나로 ①생각, 심정(心情), 정서(情緖) ②의사(意思), 의지(意志), 사상(思想) ③뜻 ④마음 ⑤시호(諡號) ⑥성(姓)의 하나 ⑦어조사(語助辭) ⑧생각하다, 사색하다 ⑨그리워하다 ⑩슬퍼하다, 시름 겨워하다 그리고 ⓐ수염이 많다(새) ⓑ수염이 많은 모양(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생각할 륜(侖)이다. 용례로는 돌이키어 생각함을 사고(思顧), 생각하고 궁리함을 사고(思考), 사유를 통하여 생겨나는 생각을 사상(思想), 정을 들이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함을 사모(思慕), 마음으로 생각함을 사유(思惟), 여러 가지 일에 관한 깊은 생각과 근심을 사려(思慮), 생각하여 헤아림을 사료(思料), 생각하여 그리워함을 사련(思戀),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간직함을 사복(思服), 생각하고 바람을 사망(思望), 사물의 이치를 파고들어 깊이 생각함을 사색(思索), 서로 엉킨 많은 생각이나 생각의 실마리를 사서(思緖), 정의의 길을 그려 생각함을 사의(思義), 한 시대의 사상의 일반적인 경향을 사조(思潮), 마음 먹은 생각을 의사(意思), 생각하는 바를 소사(所思),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을 묵사(默思), 고통스러운 생각을 고사(苦思), 깊이 생각함 또는 그런 생각을 심사(深思), 묘한 생각을 묘사(妙思), 객지에서 갖는 생각을 객사(客思), 지나간 뒤에 그 사람을 사모함을 거사(去思), 곰곰이 잘 생각함을 숙사(熟思), 생각이나 느낌이 많음을 다사(多思), 저녁 때의 슬픈 생각을 모사(暮思),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사무사(思無邪), 어떠한 문제를 생각하여 해석이나 구명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을 사고방식(思考方式), 사모해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사모불망(思慕不忘),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생각과 사물을 제 분수대로 각각 나누어서 가름을 일컫는 말을 사려분별(思慮分別),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평안할 때에도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말고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한 때일수록 위험이 닥칠 때를 생각하여 미리 대비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안거위사(安居危思),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또는 애쓰면서 속을 태움을 일컫는 말을 노심초사(勞心焦思),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 또는 신중을 기하여 곰곰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심사숙고(深思熟考), 능히 보고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통의 이치로는 추측할 수 없는 일을 이르는 말을 능견난사(能見難思),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또는 눈앞의 즐거움에 겨워 근본을 잊게 될 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몹시 뒤섞이고 착잡하여 어수선하게 생각함 또는 그 생각을 일컫는 말을 호사난상(胡思亂想),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리지 못할 생각이나 평범하지 않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비이소사(匪夷所思), 낮에 생각하고 밤에 헤아린다는 뜻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깊이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주사야탁(晝思夜度), 물을 마실 때 수원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근본을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음수사원(飮水思源), 일을 하면 좋은 생각을 지니고 안일한 생활을 하면 방탕해 진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노사일음(勞思逸淫) 등에 쓰인다.
▶️ 疏(소통할 소)는 ❶형성문자로 踈(소)의 와자(訛字), 疎(소)와 동자(同字). 뜻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음(音)을 나타내는 짝필(疋; 발, 소)部와 물의 흐름을 뜻하는 글자 㐬(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물이 잘 흐르게 한다는 뜻이 전(轉)하여 잘 통하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疏자는 '소통하다'나 '트이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疏자는 疋(발 소)자와 㐬(깃발 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㐬자는 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그린 것으로 본래 의미는 '떠내려가다'나 '흐르다'이다. 여기에 발을 뜻하는 疋자가 더해진 疏자는 길을 가는데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즉 길을 걷는 것이 물 흐르듯이 매우 순조롭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疏(소)는 (1)죽은 사람을 위하여 부처 앞의 명부(名簿)에 적는 글 (2)임금에게 올리던 글 등의 뜻으로 ①소통하다(疏通--) ②트이다 ③드물다 ④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⑤깔다 ⑥멀어지다 ⑦멀다 ⑧새기다 ⑨상소하다(上訴--: 상급 법원에 재심을 요구하다) ⑩빗질 ⑪주석(註釋) ⑫채소(菜蔬)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라질 소(消), 놓을 방(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막힐 조(阻)이다. 용례로는 대수롭지 않고 예사임 또는 하찮게 여겨 관심을 두지 않음을 소홀(疏忽), 막히지 아니하고 서로 통함 또는 뜻이 서로 통함을 소통(疏通), 사귄 사이가 점점 멀어짐 또는 따돌려 멀리함을 소외(疏外),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않고 버성김 또는 서먹서먹 함을 소원(疏遠), 당사자가 어떤 주장이나 사실에 관하여 법관에게 아마도 확실하리라는 의식을 생기게 하는 일 또는 이를 위하여 당사자가 증거를 제출하는 일을 소명(疏明), 변변치 못한 음식 또는 거친 음식을 소사(疏食), 아내를 박대함 또는 아내를 미워하여 아내로 생각지 않음을 소박(疏薄), 자질구레하고 까다로운 예절이나 형식을 찾지 않고 언행이 수수하고 털털함을 소탈(疏脫), 면밀하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함을 소졸(疏拙), 죄수를 너그럽게 다스려서 놓아 줌 또는 데면데면하고 방자함을 소방(疏放), 탐탁지 않게 여기어 헤어짐을 소산(疏散),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음이나 소식이 뜸함을 소음(疏音), 하는 일이니 생각 등이 찬찬하지 못하여 거칠고 엉성함을 소루(疏漏), 상소에 대하여 내리는 비판을 소비(疏批), 서로 사이를 벌어지게 하여 물리침을 소척(疏斥), 성품이 소탈하고 바른 말을 잘 함을 소당(疏讜), 사람 됨이 데면데면하고 어리석음을 소당(疏戇), 사람 됨이 데면데면하고 그름을 소류(疏謬), 어떤 대상이 별로 대한 적이 없어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지거나 서먹함을 느끼는 상태에 있음을 생소(生疏), 임금에게 글을 올림을 상소(上疏), 몰래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을 밀소(密疏), 언행이 들뜨고 거침을 부소(浮疏), 스스로 해명함을 자소(自疏), 친함과 친하지 아니함을 친소(親疏), 도량이 넓고 소탈함을 방소(厖疏), 어리석고 데면데면함을 용소(庸疏), 재주와 능력이 열등함을 재소(才疏), 거칠고 반찬 없는 밥이라는 뜻으로 안빈 낙도함을 일컫는 말을 반소사(飯疏食), 거친 음식과 나물국이란 뜻으로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이르는 말을 소사채갱(疏食菜羹), 마음속으로는 소홀히 하고 겉으로는 친한 체함을 일컫는 말을 내소외친(內疏外親), 사소한 부주의를 일컫는 말을 반점소루(半點疏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