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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즉전(曲卽全)
굽은 나무는 몸을 보전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면서 지나치게 곧거나 굽힐 줄을 모르면 누군가의 타켓이 되어 지위는 물론 목숨도 보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曲 : 굽을 곡(曰/2)
卽 : 곧 즉(卩/7)
全 : 온전할 전(入/4)
자전육혜(我全六慧)는 나를 보전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한다. 살아가면서 나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이든 나를 보전하여야 이룰 수 있다. 내가 사라진 이후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 중에는 무리하여 자신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고 곤혹을 겪다가 죽기도 한다.
예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잘 보전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자신을 잘 보전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지혜롭게 천명을 다하여 살라는 뜻이다.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나를 보전(保全)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하였다. 그것은 곡즉전(曲卽全), 왕즉직(枉卽直), 와즉영(窪卽盈), 폐즉신(敝卽新), 소즉득(少卽得), 다즉혹(多卽惑)이다.
곡즉전(曲卽全)이란 '굽은 나무는 몸을 보전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면서 지나치게 곧거나 굽힐 줄을 모르면 누군가의 타켓이 되어 지위는 물론 목숨도 보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과 삶을 유연하게 관리하여 자기를 보전하고 목적을 이룬다는 의미다. 이는 겸허하고 유연하게 살라는 뜻이지 비굴하게 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1. 곧고 강한 길만 고집하는 자는 위험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은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다. 오르막이 있고 내리막도 있다. 그런데 계속 순탄하고 곧고 큰길만 가다 보면 스스로 오만해지기 쉽다. 그리고 그 길은 모든 사람이 선호하는 길이기에 시기하는 자와 경쟁하는 자가 넘치게 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하면 오만해져 자신을 망치기 쉽다고 한다. 그것은 선각자들의 입으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진리다. 요즈음 젊은 날 한때 성공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람이 나중에는 세상에 오점을 남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런 것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얻고 가요경연에서 우승하여 인가 스타가 되었다고 10대, 20대의 젊은이인데도 ‘00거리’하며 그의 거리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 사람의 삶의 성공과 인격을 평가하려면 나이 들어 죽을 무렵에 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차를 몰고 갈 때도 곧은 길도 있고 굽은 길도 있다. 곧게 쭉 법은 길은 속도를 내어 힘차게 달릴 수는 있지만 나태하고 오만하여 과속하므로 큰 사고를 내고 심지어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도 많다. 지나치게 곧고 큰길을 달리는 사람은 자신이 그 속도와 분위기에 취하여 겸허함을 잃고 나태하고 오만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구불구불 굽은 산골길을 운전하여 갈 때는 매우 조심하므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 구불길을 갈 때도 자기의 운전 능력만 믿고 곧은 길을 갈 때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를 수 있다. 어쨌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는 언제나 곧고 큰길도 있지만 굽은 길도 많다. 곧고 큰길이 건, 굽은 길이건, 그 어떤 길이건, 길을 갈 때 중요한 것은 오만함을 버리고 겸허함을 간직하여야 목숨을 보존하고 목적지에 잘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목적한 바를 이루고 천명(天命)을 누리려면 목숨을 잘 보존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목숨을 보존하고 삶을 이어가는데 장애물은 굳이 건강의 문제만 아니다. 삶을 무리하므로 혹은 지나치게 강하게 사람들을 대하므로 그 역풍을 맞아 목숨과 삶을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역풍을 맞는 사람치고 유연함을 간직한 사람은 없다. 성정(性情)과 언행이 저급하거나 지나치게 강하여 맞는 역풍이 더 많다. 그래서 노자는 지나치게 곧은 나무는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나치게 곧은 길만 고집하는 자는 늘 위험하다.
목적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자는 위험하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그 앞에 장애물이 있는지, 복병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는 길에 취하여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목숨을 잘 보존하고 천명을 다하기 어렵다. 그래서 노자는 목숨과 삶을 보전하여 목적을 이루고 천명을 다하기 위해 곡즉전(曲卽全)의 지혜를 배울 것을 설파하였다. 분명한 것은 곧고 강한 길만 고집하는 자는 위험하다.
2. 노자(老子)가 말하는 곡즉전(曲卽全)
곧은 나무는 몸을 보존하기 어렵지만 굽은 나무는 몸을 보전하기 쉽다. 곧게 잘 자란 나무는 다 자리기도 전에 좋은 재목이라고 베어간다. 베어가지 않으면 누군가 시기하고 탐욕이 생겨 나무에 상처를 내고 만다. 그러나 구불구불하게 못생긴 나무는 그런 염려 없이 제 수명을 다 누릴 수 있다. 이것은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이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는 자연 귀의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이룰 수 있고 스스로 겸허하여 잘난체하지 않으며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자기 몸을 보전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연의 이치는 화창한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다. 화창한 날만 생각하여 궂은 날도 화창한 날에 행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문제를 일으키고 몸을 보전하지 못하고 제대로 목적을 수행할 수 없다. 또 인생길에는 곧고 쭉 뻗은 신작로의 길도 있지만 구불구불한 산골길도 있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산골길을 곧은 신작로를 갈 때처럼 가다간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그러한 사람은 똑똑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부귀와 공명을 탐내어 자기의 지혜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많다. 특히 요즈음 정치인들이 그런 사람이 많다.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온갖 언행을 드러내다가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은 그런 것들이다.
그들은 일시적으로는 뜻을 이룰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그 과정에서 부정과 불의에 빠지기 쉽다. 또 그런 사람은 자기의 욕망에만 매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피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 원망을 사게 된다.
욕망만을 향해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자는 자기를 돌아보는 삶의 여유와 유연성을 잃고 오만해지기 쉽다.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그래서 결국 탄핵의 화살을 맞게 된다. 장자도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복을 구하되 나는 홀로 몸을 굽혀 보전하려 한다."
3. 곡즉전(曲卽全)의 지혜
조선시대 남이(南怡) 장군은 장래가 촉망되고 기개 넘치던 장수였다.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승승장구하였다. 젊은 나이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당상관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최연소 병조판서에까지 오른다. 그의 포부는 대단하였으며 기개 또한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혈기 왕성한 20대의 남이는 그칠 것이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직선의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기개와 열정은 그의 '북정가'에도 잘 나타나 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리오.
그러나 그런 남이를 시기하고 견제하는 자들이 많았다. 남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남이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한명회, 신숙주 등 수하의 간신 유자광의 음모에 의해 고문을 받고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는 풍운아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는 향연 25세로 삶을 마감했다. 남이는 곧고 굵게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았지, 자신을 살피고 유연할 줄 몰랐다. 겸허의 소중함을 체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곡즉전(曲卽全)의 지혜를 몰랐던 것이다.
곡즉전(曲卽全)의 지혜는 아무 곳이나 굽히고 자신을 숨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굴하라'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소신을 지키고 주체성을 간직하되 겸허하고 유연하라'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거슬리지 말라는 것이다. 곧은 길은 곧은 길대로 조심스럽고 당당하게 가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굽은 길은 굽은 길에 맞게 가라는 것이다.
곡즉전(曲卽全), 굽은 나무는 자신의 몸을 보존한다. 결코 오만하거나 경직되지 말아라. 자신의 성취와 직위에 취하여 다른 것을 못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라.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말아라.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주체성을 살려 삶을 보전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겸허한 마음과 행동으로 주변을 살피는 유연성이 필요하며 그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주도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가장 큰 핵심은 '겸허하라'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인들은 곧고 굳게 목적을 향해 나아가되 화합과 존중의 유연성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젊은 날에 성공한 사람들이 젊은 날의 영광과 화려한 성공에 취하여 오만해지면 자신을 망친다. 모두가 노자가 말하는 곡즉전(曲卽全)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은 더욱 평화로워지리라.
곡즉전(曲卽全)
굽히면 온전해진다는 말이다. 부드러워 휘어져야 마치 폭풍 앞에서도 온전해 꺽이지 않는 갈대처럼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길도 구부러져 있고, 멀리 가는 강(江)도, 땅 속 나무의 뿌리도 굽어져 척박한 땅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굽히면 온전할 수 있고, 구부리면 마침내 곧게 된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공로를 인정받게 되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간다, 무릇 다툼이 없어 천하 누구도 이런 자와는 다투지 못한다"고 하였다.
곡즉전(曲則全) 휘면 온전할 수 있고,
왕즉직(枉則直) (자벌레처럼) 몸을 굽혀 다시 펼 수 있고,
부자긍고장(不自矜故長)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니 존경을 받아 오래간다.
-노자 도덕경 22장에서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키듯, 때로는 휘어지고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처럼, 때로는 구부리고 휘어져 멀리 가게 된다는 것이다. 휘어지고 구부린 상태는 오래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곧게 편 상태는 부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직선'보다 좀 느긋하게 참고 돌아가는 '곡선'의 유연함이 오히려 온전하고 평화로워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은 인위적으로 물리적 힘을 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엄숙하고 긴장감을 주는 경직성이 있지만, 자연이 주는 곡선(曲線)은 평온한 안정감을 준다. 직선은 인간적 선이고, 곡선은 자연의 선이다. 그래서 인디언 속담에도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했다.
곡선은 자연 그 자체요, 신(神)이 만든 선이다. 해와 달도 둥글고 지구도 둥글다. 천수를 누리는 거북의 등도 둥글고 학(鶴)의 목도 휘어지고 구부러진 곡선(曲線)이다. 멀리 흘러가는 장강(長江)처럼, 인간 또한 굽힐 줄 알아야 온전하고 오래 간다.
굽힌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이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평화로워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처럼(曲則全), 굽혔다 다시 펴는 자벌레처럼(枉卽直)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동중정(動中靜)의 삶이 있다. '물동이 속의 바가지'가 그것이다.
내 어린 시절 만 해도 마을에 우물이 1-2개 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이면 동네 어머니나 누나들이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이고 오셨다. 그럴 때면 으레 물동이 속의 물이 출렁거려 이마에 쏟아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물동이 속에 바가지를 하나 엎어놓아 물의 흔들림을 바로 잡았다. 바가지가 출렁이는 물의 구심점이 되어 흔들림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물동이 속의 바가지’ 나긋나긋 흔들려 곧 쏟아질 것 같으면서도 쏟아지지 않는 ‘동중정(動中靜)’의 삶이었던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도 이와 같은 '동중정'의 삶의 자세가 있다.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아, 명경지수와 같이 맑은 마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평상심(平常心)이 그것이다. 평상심의 '평(平)'은 너와 나, 주(主)와 객(客)의 차별이 없는 공간적 평등이요, '상(常)'은 고금(古今)과 유무(有無)의 변환에도 흔들리지 않는 시간적 평등의 경지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흔들림에도 고요한 마음의 상태가 유지될 때 이것이 곧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것이다.
강(剛)하고 곧은 것(直)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굽히고(曲) 오므려(枉)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마음이 흔들리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그 마음의 흐름과 근원을 깨달아 중심을 잡는다면, 그게 바로 흔들리고 구부러지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곡즉전(曲則全)의 삶이 아닌가 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또 다른 의미는 굽은 나무라야 수명을 온전히 마치게 된다는 것이다. 굽은 나무는 제 수명을 다 한다는데,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제대로 빗대어 말한 것이다. 굽으면 온전하다는 옛말이 어찌 빈말이겠는가? 강하면 부러지고 곧으면 휘어진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몰아세우면 자기에게 돌아와 누구나 비난과 비판의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비난만 일삼으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려면 비난하기보다 용기와 위안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조급증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없으나 이 조급증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코 큰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작은 일을 참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 '옹정제'가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지도자다. 이는 곧바로 나아가기보다 조금 돌아서 가는 편이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곡즉전(曲則全)이란 말이 유래한다.
곡즉전(曲則全)이란 구부러지면 완전하다. 노자 도덕경 22장에 나오는 말이다.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이 완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훗날 노자풍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처세 철학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즉각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직선적 사고라면, 비난할 일이 있어도 느긋하게 참고 견디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곡선적 사고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서 매몰차게 비난하고 몰아세우면 언젠가는 보복을 당한다.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밀한 논리를 펼쳐 상대방이 반론할 여지를 주지 않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처지도 배려해야 한다. 언젠가는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충돌이 생겼을 때는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인은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목적을 향해 곧장 달려들어 벽에 부딪쳐도 무리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장점이 있지만 상승하는 속도가 빠른 만큼 하강하는 속도도 빠르므로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 직선적 사고 유형일 것이다. 위대함을 만드는 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거늘 '굽은 나무는 제 수명을 다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제대로 말한 것이다. 장자(莊子)의 인간세(人間世)편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 쓸모없는 것도 때에 따라 쓸데가 있다. 산에 나는 나무는 유용한 까닭에 베어지니 이는 자기가 자기를 베는 것이요. 등잔불은 불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재가 저를 태운다. 계수나무는 그 뿌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칠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어찌된 셈인지 세상 사람들은 다 유용한 곳의 용도는 알면서도 무용한 곳의 용도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가라고 설파 했다. 잎만 무성한 나무를 나무꾼이 쓸모가 없다고 해서 자르지 않는 것 은 나무꾼의 눈에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는 자기 수명을 다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 지킨다'는 역설의 지혜를 잊지 않아야 한다.
물은 우묵한 웅덩이로 흘러 모이게 되고, 옷은 낡아 해어져야만 다시 새 것을 입게 된다. '장태원'의 노자이야기에서 굽히면 온전할 수 있고, 휘어지면 펴질 수 있으며, 패여서 오목해야 채울 수 있고, 해지고 낡아야 새로워진다. 적어야 얻을 수 있고, 많으면 헛갈리고 현혹된다고 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굽은 나무는 제 수명을 다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인생의 진리를 제대로 말한 것이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한 가지 재주는 가지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유용하게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유용한 것이 가능할 수 있다. 조그마한 재능을 내세워 우쭐댄다면 제 몸만 망치기 마련이다. 즉 곧으면 오히려 부러지기 쉬운 법이다.
굽히는 자가 꼿꼿한 자를 이긴다
위대함을 만드는 곡선 사고의 힘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때 사람들을 비난하기를 좋아했다. 젊은 시절 링컨은 곧잘 다른 사람을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조롱하는 편지나 시를 지어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길가에 놓아두곤 했다. 이런 편지 때문에 일생 동안 링컨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에도 신문 투고를 통해 상대방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곤 했다.
한번은 너무 지나쳐 큰 말썽이 났다. 서른네 살 때인 1842년 가을 링컨은 허세를 잘 부리고 시비 걸기를 좋아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을 조롱하는 익명의 투고를 '스피링필드 저널'에 보냈다. 그 글이 실리자 사람들을 쉴즈를 비난하고 비웃었다. 화가 난 쉴즈는 링컨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미시시피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만나 결투하기로 했다.
링컨은 육사를 졸업한 사람에게 기병대용 장검으로 결투에 대한 교습을 받으며 준비해야 했다. 목숨 건 결투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쌍방 입회인의 중재로 화해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한 죄과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이다. 혼쭐이 난 링컨은 그 후 다시는 남을 조롱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남북전쟁 때인 1863년 포토맥지구 전투사령관 미드 장군은 참패를 거듭했다. 그런데 포토맥 강이 홍수로 강물이 불어나 남부군의 리 장군을 사로잡으면 단숨에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링컨은 미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고 전투 개시를 요구하는 특사를 보냈는데 어쩐 일인지 미드 장군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결국 강물이 줄어들었고 리 장군은 병력과 함께 포토맥 강을 무사히 건넜다.
링컨은 격노했다. 링컨은 미드 장군을 엄중히 질책하는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미드 장군. 남부군은 궁지에 몰려 있었고 최근 승리한 기세를 몰아 조금만 더 밀어 붙였다면 이번 전쟁은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군이 효율적으로 부대를 통솔할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이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링컨 사후 그의 서류함 속에서 발견됐다. "남의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 링컨의 말이다.
상대방을 나쁘게 말할 때도 링컨은 "그 사람들을 비난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처지였다면 우리도 역시 그렇게 했을지 모르니까요…"라고 말했다. 비판하기 잘하던 사람에서 비판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모하면서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됐고 결국 노예해방이라는 역사적인 개가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남을 비난하지 않았던 링컨은 평생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다. 그가 노예해방을 단행하려고 하자 암살단까지 공공연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비난과 협박에 시달리던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주머니에서는 낡은 신문 한 조각이 발견됐다. 그 쪽지에는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상대를 몰아세우면 자기에게 돌아와
리더라면 누구나 비난과 비판의 유혹에 직면한다. 비난하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인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려면 비난하기보다 용기와 위안을 주어야 한다. 또 리더라면 누구나 조급증의 유혹에 빠진다. 이때 조급증을 이겨내지 못하면 결코 큰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작은 일을 참아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 옹정제가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리더다. 옹정제는 "급함을 경계하고 참아야 함을 단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옹정은 청 번영의 기반을 구축한 황제로 평가받는다. 옹정은 황제의 보좌에 오르기 전에 45년 동안 황자 생활을 했다. 45년 중 30여 년을 황태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보냈다. 그것은 황태자였던 윤잉의 폐위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태자 쟁탈전’이 시작돼 30년동안 지속된 것이다.
황태자 후보로는 강희의 35명 아들 중 맏이 윤시, 셋째 윤지, 넷째 윤진, 여덟째 윤사, 열넷째 윤제 등이 부각되었다. 이 중 윤사는 활달하고 인맥이 넓었다. 신하들이 그를 추천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강희는 신하들의 이런 강권하는 분위기에 노여움을 드러냈다. 결국 윤사는 태자에서 탈락했고 작위까지 빼앗겼다. "누구든지 사당을 만들어 태자의 자리를 꾀하는 자는 나라의 적으로 간주하고 엄벌로 다스리겠다."
윤진은 이때부터 '두드러짐'을 극도로 경계하고 격렬한 태자 싸움으로부터 짐짓 달관한 듯한 태도를 취했다. 승려들과 교유하면서 사원을 짓고 천하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인 척하며 열심집(悅心集)이라는 책까지 지었다. "인생 칠십 사는 사람 드물다고 하지만, 유년과 후반의 노년을 제외하면, 중간의 시간들도 많지 않고, 그것마저도 번뇌로 점철되어 있다…."
윤진은 차근차근 역량을 키우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강희의 총애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강희가 강조한 형제들과 우애에 신경을 썼다. 윤진은 강희가 자신을 친왕(親王)이라는 가장 높은 작위를 내리자 다른 형제들에게 줄 것을 간언한다. 이는 물론 계산된 발언이었다. 그러자 강희는 윤진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며 신뢰하기 시작했다. 결국 윤진은 태자 쟁탈전에서 최후 승자가 됐다.
상대 자존심 배려해야 나도 인정받는다
링컨 대통령과 옹정제의 승리는 노자가 말한 곡선 사고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즉전(曲則全)이라며 곡선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두 발 전진을 위해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곡즉전에서 곡은 구부려 힘을 모으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구부린 상태는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곧게 편 상태는 부러지기 쉽다. 이는 곧바로 나아가기보다 조금 돌아서 가는 편이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곡전'이란 말이 유래한다. 이는 훗날 노자 풍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처세 철학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천하란 얻으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얻으려고 하면 균형을 잃고 잡으려고 하면 멀어진다."
즉각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직선 사고라면, 비난할 일이 있어도 느긋하게 참고 견디며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곡선 사고라고 하겠다. 곡선 사고를 나타내는 말로 '궁구에게는 달려들지 말라(窮寇勿迫)'는 말도 있다. '궁구'란 궁지에 몰린 적이다. 이때 적을 공격하면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반격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볼 수 있어 공격해선 안 된다.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한쪽 길을 열어 두라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가 잘못했다고 해서 매몰차게 비난하고 몰아세우면 언젠가는 보복을 당한다.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밀한 논리를 펼쳐 상대방이 반론할 여지를 주지 않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완벽하게 제압했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상대방의 처지도 배려해야 한다. 언젠가는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충돌이 생겼을 때는 먼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게 곡선 사고다.
일본인은 직선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목적을 향해 곧장 달려들어 벽에 부딪쳐도 무리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장점이 있지만 상승하는 속도가 빠른 만큼 하강하는 속도도 빠르므로 지속할 수 없다. 전력을 다해 질주하므로 여유가 없다. 지금의 일본을 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이 직선 사고 유형일 것이다. 직선으로 빨리 가려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라. 위대함을 만드는 것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변(變)해야 오래 산다
공자가 나이가 들어 좋아한 책이 '주역(周易)'이었다고 한다. 집에 있을 땐 책상 위에 놓고 보았고, 밖에 나갈 땐 배낭 속에 넣고 다니며 읽을 정도로 이 책을 좋아하여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고 한다. 공자가 이처럼 좋아한 '주역'의 요점은 '세상의 모든 것은 두루 바뀐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천지자연의 이치를 잘 깨달아 처신해야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열반경'에 나온 제행무상(諸行無常)도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만고의 진리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누누이 강조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君子之學 必日新). 날마다 새로워지지 아니하는 사람은 반드시 퇴보(退步)하게 될지니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동양의 고전 '대학'에서도 변화가 군자의 필수 덕목임을 강조하고 있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는 종(種)들은 도태되고 변화를 받아들인 종(種)들은 살아남게 되었다. 육지에서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멸종하고만 공룡과, 새로운 먹이를 찾아 바다로 들어가 진화한 고래의 경우도 그것이다. 도태냐 진화냐 이 갈림길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 변화가 곧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원액(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섞어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스팀 밀크를 넣어 카페라테를 만들고, 우유 거품을 넣어 카푸치노를 만들어 가는 커피의 변신도 생존의 한 방식이다. 변화가 곧 지속이다. 그러고 보면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혁신과 도약의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본 철학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변화 속에서도 항상 지켜가야 할 불변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에 그냥 무턱대고 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습은 변해도 근본, 곧 본질마저 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찍이 CNN 창업자 섬너 레드스톤 회장이 강조한 '변화 속의 지속성'과도 같은 맥락이다.
줏대 없는 변신과 변심에는 생명이 없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신념과 철학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의 정체성이요, 변화를 생명의 창조 과정으로 보면서도, 변화 속의 질서로서, 천지자연을 지탱케 하는 우주의 질서요 도(道)인 셈이다.
난초는 부드러우면서도 매서웁고, 대나무는 흔들리면서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난초와 대나무의 생명은, 모나지 않고 부드러워 온전하게 자기를 지켜가는 곡즉전(曲卽全)의 철학에 있다. 곧 우유부단(優柔不斷)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자성어가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부드러워야 끊어지지 않고 오래 간다’고 여겨 즐겨 인용한다고 한다.
10여 년 전인가? 태풍과 지진이 잦은 일본에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新) 건축법이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소위 '이동 하중법'이라는 건축 기법이었다. 외부의 충격을 스스로 흡수하여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건축물을 견디게 하는 건축법이었다. 이것이 나긋나긋하면서도 쉽사리 동(動)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철학이요, 동중정(動中靜)의 삶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궁하면 통하고(窮則通) 통하면 변하고(通則變) 변하면 오래 간다(變則久)고 '도덕경'은 말한다. 난초 잎이 흔들리고 대나무가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뿌리가 그 아래 굳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변하면서도 변치 않은 ‘변화 속의 지속성’으로 문 자기의 생을 굳건하게 지켜가는 자기 주도적 삶이 아닌가 한다.
▶️ 曲(굽을 곡/잠박 곡, 누룩 국)은 ❶상형문자로 麯(곡)의 간자(簡字)이다. 대나무나 싸리로 만든 바구니 모양의 굽은 모양을 본뜬 글자로 굽다를 뜻한다. 曲(곡)은 ㄴ,ㄷ,∪와 같은 모양을 한 도구나 그릇, 굽히다, 굽다, 작은 변화가 있는 일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曲자는 '굽다'나 '바르지 않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曲자는 曰(가로 왈)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말씀'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갑골문에 나온 曲자를 보면 L자 모양에 눈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길이를 측정하는 '자'를 그린 것이다. 다만 曲자는 굽은 형태에서 연상되는 '굽다'나 '바르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曲(곡)은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곡조(曲調)나 노래 또는 어떤 곡조(曲調)나 노래 이름을 나타냄 (2)곡조나 노래를 세는 단위 (3)곡조, 악곡(樂曲) (4)이곡(理曲)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굽다 ②굽히다 ③도리(道理)에 맞지 않다 ④바르지 않다 ⑤불합리하다 ⑥정직하지 않다 ⑦공정(公正)하지 않다 ⑧그릇되게 하다 ⑨자세하다 ⑩구석 ⑪가락 ⑫악곡(樂曲) ⑬굽이 ⑭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⑮잠박(蠶箔: 누에 기르는 채반) ⑯재미있는 재주 그리고 ⓐ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굽힐 굴(屈), 굽을 만(彎), 굽을 왕(枉), 굽을 요/뇨(橈), 노래 가(歌), 에돌 우(迂),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곧을 직(直)이다. 용례로는 구부러진 선을 곡선(曲線), 옳고 그름을 곡직(曲直), 타원면 등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면을 곡면(曲面), 구부러져 꺾임을 곡절(曲折), 가사나 음악 등의 가락을 곡조(曲調), 굽이쳐 흘러감을 곡류(曲流), 간곡하게 정성을 다함을 곡진(曲盡), 길을 잘못 든 학문을 곡학(曲學), 곡예의 기술을 곡기(曲技), 구부러지게 쌓은 성을 곡성(曲城), 굽은 형상을 곡형(曲形), 정상이 아닌 방법으로 그린 그림을 곡화(曲畫), 비틀어 곱새김을 왜곡(歪曲), 말이나 행동을 빙둘러서 함을 완곡(婉曲), 간절하고 마음과 정성이 지극함을 간곡(懇曲), 이리저리 꺾이고 굽음을 굴곡(屈曲), 악곡을 창작함 또는 그 악곡을 작곡(作曲),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간사스럽고 꾀바름을 간곡(奸曲), 악곡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의 총칭을 음곡(音曲), 휘어 구부러짐 또는 휘어 굽힘을 왕곡(枉曲), 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정도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을 곡학아세(曲學阿世),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뜻으로 화근을 미리 방지하라는 말을 곡돌사신(曲突徙薪), 말이나 글의 조리가 분명하고 널리 통함을 이르는 말을 곡창방통(曲暢旁通), 옳고 그름을 묻지 아니한다는 말을 곡직불문(曲直不問),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적어진다는 말을 곡고화과(曲高和寡), 빈한하여 팔을 베고 자는 형편일지라도 도를 행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으면 참다운 즐거움을 그 속에서 얻는다는 말로 즉 청빈한 가운데에서도 도를 즐김을 일컫는 말을 곡굉지락(曲肱之樂), 굽음과 곧음을 묻지 않는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일을 처리함 또는 잘잘못을 묻지 않고 함부로 행함을 일컫는 말을 불문곡직(不問曲直),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이 굽이 사무친 마음속 또는 깊은 마음속을 일컫는 말을 구곡간장(九曲肝腸), 서려 있는 계곡과 구불구불한 길이라는 뜻으로 일을 바른 길을 좇아서 순탄하게 하지 않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되고 억지스럽게 함을 이르는 말을 반계곡경(盤溪曲徑) 등에 쓰인다.
▶️ 卽(곧 즉)은 ❶회의문자로 即(즉)의 본자(本字)이고, 皍는 동자이다. 먹을 것을 많이 담은 그릇 앞에 사람이 무릎 꿇고 있음을 나타낸다. 식탁에 좌정한다는 뜻에서, 전(轉)하여 자리 잡다의 뜻으로 되고, 밀착(密着)하다의 뜻에서, 전(轉)하여 '곧', '바로'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卽자는 '곧'이나 '이제', '가깝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卽자는 皀(고소할 급)자와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皀자는 의미와는 관계없이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卽자의 갑골문을 보면 식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식기에는 담겨있는 음식을 막 먹으려는 모습이다. 그래서 卽자의 본래 의미는 '이제(먹는다)'였다. 하지만 후에 '먹다'라는 뜻은 사라지고 '곧'이나 '이제'라는 뜻만 남게 되었다. 卽자는 식기 앞에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가까이하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卽(즉)은 ①곧 ②이제 ③만약(萬若), 만일(萬一) ④혹은(或-: 그렇지 아니하면) ⑤가깝다 ⑥가까이하다 ⑦나아가다 ⑧끝나다 ⑨죽다 ⑩불똥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則(법칙 칙, 곧 즉)이다. 용례로는 그 자리에서나 금방이나 바로 그때나 당장에를 일컫는 말을 즉시(卽時), 진작이나 좀 더 일찍이를 진즉(趁卽),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흥치 또는 그 자리 생각이나 내킨 맘을 즉흥(卽興), 일이 진행되는 바로 그 자리를 즉석(卽席), 곧 그 시각에를 즉각(卽刻), 임금될 이가 식을 올리고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일을 즉위(卽位), 곧 전하여 보냄을 즉전(卽傳), 즉시 금전을 지불함 또는 그 금전을 즉전(卽錢), 돈이나 물건을 즉시 바침을 즉납(卽納), 곧 출발함 또는 즉석에서 폭발함을 즉발(卽發), 약 같은 것의 즉시 나타나는 효력 또는 어떤 일의 즉시에 나타나는 좋은 반응을 즉효(卽效),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거기에 곧 응함 또는 곧잘 적응함을 즉응(卽應), 곧 이제 지금 당장 또는 그 자리에서 곧을 즉금(卽今), 곧 감 또는 이내나 곧 실행함을 즉행(卽行), 일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나 당일 또는 바로 그날을 즉일(卽日), 사람이 죽어 이 세상을 떠나감을 즉세(卽世), 바로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죽음을 즉참(卽斬), 당장 그 자리에서의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느낌을 즉감(卽感), 당장에 멸망함을 즉멸(卽滅), 병이 곧 나음을 즉차(卽瘥), 바로 그 자리에서 곧 청함을 즉청(卽請), 그 자리에서 즉시로 의결하거나 결정함을 즉결(卽決), 당장 그 자리에서 만듦을 즉제(卽製), 즉시에 단정함을 즉단(卽斷), 즉석에서 곧 승낙함을 즉낙(卽諾), 예매나 또는 예약을 아니하고 상품이 놓인 그 자리에서 곧 파는 일을 즉매(卽賣), 곧 항하여 감을 즉향(卽向), 곧이나 때를 넘기지 아니하고 지체없이를 즉변(卽便), 그 자리에서 곧 빨리나 즉시로를 즉속(卽速), 매우 급함을 즉급(卽急), 바로 당장에 보거나 듣거나 한 일을 즉사(卽事), 즉결로 처분함을 즉처(卽處), 자리에서 곧 대답함을 즉답(卽答), 당장 그 자리에서 곧 이루어지거나 이루는 일을 즉성(卽成), 당장에 문초함을 즉초(卽招), 그 자리에서 곧 죽음을 즉사(卽死), 그 자리에서 보는 광경이나 경치를 즉경(卽景),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음을 즉살(卽殺), 곧 바로를 일컫는 말을 입즉(立卽), 그날 밤을 일컫는 말을 즉야(卽夜), 형체는 헛 것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에 형태가 있는 것은 모두 인연으로 생기는 것인데 그 본질은 본래 허무한 존재임을 이르는 말을 색즉시공(色卽是空),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우주 만물은 다 실체가 없는 공허한 것이지만 인연의 상관 관계에 의해 그대로 제각기 별개의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반야심경을 이르는 말을 공즉시색(空卽是色), 사물의 관계가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음 또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 또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이를 이르는 말을 부즉불리(不卽不離), 사람을 만나는 족족 이야기하여 세상에 널리 퍼뜨림을 이르는 말을 봉인즉설(逢人卽說), 그 경우에 적합한 재치를 그 자리에서 부림 곧 임기응변 또는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추어 즉각 재치 있는 언동을 함을 이르는 말을 당의즉묘(當意卽妙), 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재빨리 싸워 전국을 결정함을 이르는 말을 속전즉결(速戰卽決),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으로 깨달아서 얻는 나의 마음이 부처 마음과 같으며 따로 부처가 없다를 이르는 말을 즉심시불(卽心是佛),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서 행실이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즉불리(相卽不離),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이르는 말을 비조즉석(非朝卽夕), 돈이나 재물이 많으면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부즉다사(富卽多事) 등에 쓰인다.
▶️ 全(온전할 전)은 ❶회의문자로 㒰(전)은 본자(本字)이다. 많이 모은(入) 구슬(王, 玉) 중에서 가장 빼어나고 예쁜 구슬로 온전하다, 완전하다를 뜻한다. 여기서 모은(入)은 完(완)의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같아서 모든 것을 덮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全자는 ‘온전하다’나 ‘갖추어지다’, ‘흠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全자는 入(들 입)자와 玉(옥 옥)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入자는 무언가를 끼워 맞추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들이다’라는 뜻이 있다. 全자는 이렇게 ‘들이다’라는 뜻을 가진 入자에 玉자를 결합한 것으로 옥을 매입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값비싼 옥을 사들일 때는 제품의 상태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全자에서 말하는 ‘온전하다’라는 것은 ‘흠이 없다’라는 뜻이다. 全자는 옥에 흠집이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완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全(전)은 (1)한자(漢字)로 된 명사(名詞) 앞에 붙어 온 모든 전체(全體)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온전(穩全)하다 ②순전(純全)하다 ③무사(無事)하다 ④상처(傷處)가 없다, 흠이 없다 ⑤갖추다, 갖추어지다 ⑥온전(穩全)하게 하다 ⑦병이 낫다 ⑧완전히, 모두, 다 ⑨흠이 없는 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온몸 또는 전신을 전체(全體), 통틀어 모두를 전반(全般),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전체의 모양이나 형편을 전모(全貌), 사물의 모두를 전부(全部), 전체의 인원을 전원(全員), 액수의 전부를 전액(全額), 어떤 일의 전부를 맡는 것을 전담(全擔), 위임된 어떤 일을 처리하는 일체의 권한을 전권(全權), 편안하여 탈이나 위험성이 없음을 안전(安全), 본바탕대로 고스란히 있음을 온전(穩全), 부족이나 흠이 없음을 완전(完全), 건강하고 온전함 또는 튼튼하고 착실함을 건전(健全), 보호하여 유지함을 보전(保全), 완전하여 조금도 빠진 것이 없는 것 또는 아주 안전한 것을 만전(萬全),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기울임을 전심전력(全心全力), 어떤 일이나 다 알아 행하는 신불의 절대 지능을 전지전능(全知全能), 어떤 일에 모든 힘을 다 기울임을 전력투구(全力投球), 몸과 정신의 모든 것을 전신전령(全身全靈), 아주 돌보아 주지 아니함을 전불고견(全不顧見), 한 떼의 군사가 죄다 결단난다는 전군함몰(全軍陷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