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술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술은 없어서는 안 될 좋은 기호식품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술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서 쫓겨날것 같은 분위기여서 매우 조심스럽고, 술이라면 대가있는 집안인지라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깊어 가는 가을 날 호젓한 산장 계곡에 온갖 나무들이 오색 단풍으로 물이 들어갈 무렵 술 한잔 기울이고픈 생각이 들기에 친구들과 함께 구름 한 조각 떠있는 술잔을 기울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술에대한 어원부터 말하자면 술이란 '물에 불이 붙는 것' 또는 '불타는 듯한 화끈한 물'이란 의미의 수불/수블(水火)에서 시작하여 '수울/수블'을 거쳐 '술'로 발음됐다는게 일반적인 어원이 아니겠습니까.
술은 마시는 동기와 장소에 따라 적당히 마셔야 하고 즐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적당히'란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고 또한 즐기는 방법이 서로 다른데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허무와 고난을 술에 의지하면서 근심을 떨쳐 보려고 마시기도 하고 또한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마시기도 합니다. 호방하게 술을 마시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과 그윽하게 마시고 적당히 취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풍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폐가 망신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 술을 마시는 이유와 이름도 다양하구료.
큰 바다나 저수지에 빠져 사망한 사람보다 작은 술잔에 빠져 헤매인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데 아마 저희 조부모께서도 작은 술잔에 뛰어들어 수영 미숙으로 다른 강어귀에 도착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와 술 이름을 들어보면 수없이 많겠지만 몇 가지 들어보면 들판에서 농부가 일하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농주, 일반인이 운동 경기 후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시는 갈증주, 사회 생활 중 뭇괴로움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마시는 일탈주, 인간관계의 조화를 위해 마신다는 화해주, 인간의 미숙한 감정을 환각적인 정신으로 돌려 보려는 환각주, 조부모 등의 제사상에 올리는 제주, 입택, 돌, 등 잔칫집등에서 마시는 갖종 행사주 등 마시는 이유에 따라 수 이름이 한없이 많고 또한 마시는 방법에 따라 폭탄주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이름들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내 고장의 술과 향기는.
꽃은 활짝 피지 않고 반 이상 피어 고유의 진하디 진한 아름다운 색상을 발 할 때 보기 좋듯이 술은 너무 취하지 않고 적당히 취하도록 마시면 인생의 무한한 가취(佳趣)를 느낄 수 있겠지요?
우리 조상들은 지역에 따라 독특한 방법으로 술을 빚어 맛과 향기를 즐겼는데 이 모든 술의 맛과 향기를 음미해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각 지방에서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술 이름도 다양한데 대표적인 술 이름을 들어보면 먼저 경기도 지방의 백세주, 흑미주, 쳔대홍주, 옥로주, 백하주, 송절주, 포천 이동막걸리, 삼해주, 한주, 부의주, 향온주, 인천 칠선주, 광주산성소주, 김포 별주, 파주 백향호 경천로불주가 있고, 강원 지방은 옥수수술, 토밥소주, 율무주, 춘천 옥로주, 원 엿술(원주), 평창 감자술(서주), 홍천 옥선주가 있고, 충청도 지방은 금산 인산백주, 당진 면천 두견주, 아산 연엽주, 중원 쳥명주, 논산 가야곡 왕주, 계룡 백일주, 옥천 한주, 청양 구기자주, 방문주, 단양신선주, 추성주, 청주산성 대추주, 한산 소국주, 보은 송로주, 대전 송순자가 있고, 영남지방은 경주법주, 안동소주, 금정산정토산주, 가지산송엽주, 봉화 선주, 선산 약주, 안종 송화주, 함양 국화주가 있고, 호남지방은 해남 진양주, 진도 홍주, 동방주, 영광 법성포 토종주, 장성 진고색주, 낙양 사삼주, 보성 강하주, 지리산 오가피주, 전주 이강주, 완주 송화백일주, 김제 송순주, 고창 복분자주, 여산 호산춘, 금산 송죽 오곡주, 의미인주, 죽력고(주)가 있고, 제주지방은 오메기술, 쉰다리, 우슬주, 모주, 고소리술, 오합주, 한라산 허벅술, 경면 녹파주가 있고, 이북지방은 평양 감홍로(장미로, 매화로, 박하로, 자소로, 감국로, 생강로, 모과로, 산사로등), 평안도 벽향주, 계명주, 함경도 문배주가 대표적인 듯 한데 가능하다면 각 지역 그럴싸한 곳에서 술 향기에 흠뻑 젖어봄직도 하구료!
- 장소와 계절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던데.
술은 계절에 따라 즐기는 맛이 다른데 적당히 어우러진 장소에서 마시면 기분이 가일층 좋지 않겠습니까. 봄이 오면 복숭아 꽃, 진달래 꽃 흐드러지게 핀 뜰에서나 강가에서 마시고, 여름에는 정자나무 아래 멍석이나 계곡 반석 위에서 마시고, 가을에는 낙엽 쌓인 산장이나 강가 매운탕 집에서 마시고, 겨울에는 하얀 눈 쌓인 골목집이나 도심 네온싸인 번쩍이는 주점에서 마셔보는 것도 괘찮겠지요.
술 마실 때의 기분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술맛이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지만 되도록이면 주변 환경이 경치에 어울리게 마시는 것이 술맛을 한층 복돋우지 않을까요. 술은 마시는 동기와 장소에 따라 적당히 마시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꼭 적당히 마셔야 되지 않을까요. 즐거운 날 술을 마실 때는 품위를 유지하면서 거나하게 취하게 마시고, 슬픈 날 술은 취한 듯 마시고 뒤끝을 좋게 맺을 것이며, 송별회에 마시는 술은 이별의 정을 담아 지난 날들의 일들을 함께 칵테일 할 것이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들 때는 감회를 더한층 돋우기 위해 얼근히 취하게 마시는 것도 괜찬겠지요. 그리고 낮술은 피하되 마실 경우 야외에서 마시고 즐겨야 할 것이며 뭇 사람들에게 술 냄세를 풍기지 말아야하고, 밤술은 달과 별을 벗삼아 적당히 취하는 것 또한 좋지 않을까요!
- 술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면.
요즈음은 술의 종류와 안주가 다양해 술을 즐겨 마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집에서 술을 빚어먹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또한 이를 단속하기 위해 군이나 세무소에서 조사가 나오면 온 동네가 떠들썩하였습니다. 어쩌다 집에서 제주나 농주로 쓰기 위해 술을 빚을 때가 있었는데 조부모님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 짚더미나 나무 속에 감추어놓고 일부러 들로 일하러 나간 기억들이 생생합니다. 누구네 집에서 미처 술을 숨기지 못하고, 밀주 단속 공무원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크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온 동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며 걱정하곤 하였습니다. 지금은 먹고 살기에 조금은 걱정이 없는 세상이라 좋은 술 마음대로 빚어 먹을 수 있고 향기에 취해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조부모님이 저 세상으로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좋은 술과 안주 장만하여 푸짐하게 대접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걸요. 살아 생전 정성껏 대접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 제사상 걸게 차려놓고 하염없이 흐느낀들 속이 시원하게 풀리겠습니까. 제사상에 상 차릴때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 - 조부모님이 그렇게 술을 좋아하셔서 다른것은 빼고 사발로 술잔을 차려주시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그랬을까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은 핵가족 시대라 하여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도 않고 모실려고 신경을 쓰는 자식 며느리가 얼마나 있을까요? 간혹 씁쓸한 소식을 들을 땐 세상이 이렇게 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월은 덧없이 흘러 우리 세대 또한 늙어지지 않겠습니까!
옛 시인 이규보의 시중에 '아들과 조카에 알림'이란 시을 보면
가련해라 이 한 몸
죽고나면 백골되어 썩어지리니
자손들 철따라 무덤 찾아와 절한다 해도
죽은 자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게다가 백년 뒤에 가묘하고 돌보겠나
어느 자손이 찾아와 성묘하고 돌보겠나
무덤 앞에서 누런 곰이 와서 울고
무덤 뒤엔 외뿔소가 부르짖겠지
고금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쌓여있지만
넋이 있고 없는 것을 뉘라서 알겠나
조용히 앉아서 혼자 생각해 보니
살아 생전 한 잔 술로 목을 축이는 것만 못하네
내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말하노니
이 늙은이가 너희를 괴롭힐 날 얼마나 되겠는가
꼭 고기 안주 놓으려 말고
술상이나 부지런히 차려다주렴
천 꿰미 지전을 불사르고 술 석잔 바친다 마는
죽은 후이니 받는지 안 받는지 어찌 알랴
호화로운 장례도 네 바라지 않노라
무덤 파 가는 도둑에게 좋은 일 시키겠지
이 시는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죽음이란 무엇이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케 한 시인데 인생의 석양녘에 얼마 남지 않은 햇살을 바라보며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뒤돌아 보면서 여생의 소망을 자식들에게 꾸밈없이 이야기한 시인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뒤돌아보고 싶을 뿐입니다.
- 술에도 급수와 단이 있다던데.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바둑에 급과 단수가 있듯이 술을 마시는데도 급수와 단이 있다고 하였는데 아주 재미있게 급수와 단을 정한 것 같습니다. 주법의 단은 때와 장소에 따라, 그 환경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강등이 심한데, 다만 이 강령만은 확실한 것 같고 유단의 실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원 들것이며, 수행연한 또한 수십 년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배우기를 원하시면 저한테 연락주시길..^^;;
*9급 : 부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지 않으나 안 먹는 사람
*8급 :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술을 겁내는 사람
*7급 : 민주(憫酒) -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6급 : 은주(隱酒) - 술을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급 : 상주(商酒) - 술을 마실 줄도 알고 좋아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때만 술을 먹는 사람
*4급 : 색주(色酒) - 여자를 좋아하기 위하여 술을 먹는 사람
*3급 :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술을 먹는 사람
*2급 :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먹는 사람
*초급 :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면서 먹는 사람(酒卒)
*초단 : 애주(愛酒) -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酒徠)
*2단 : 기주(嗜酒) - 술의 진미에 반한 사람(酒客)
*3단 :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酒家)
*4단 :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한 사람(酒恁)
*5단 : 장주(長酒) - 주도 삼매를 든 사람(酒仙)
*6단 :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7단 :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 하는 사람(酒聖)
*8단 :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酒宗)
*9단 : 폐주(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 읽어 보시고 어디에 속하지 가늠해보시길...저는 초단에 들어선것 같네요..^^;;
조지훈의 주도 유단론은 우리들의 인간 세상사를 잘 반영하고 있는듯 하고, 예나 지금이나 우리 곁을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이 술이기에 자기 분수에 알맞게 술을 즐겨야 할 것이며, 무 격식 속의 절제의 아름다움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술 문화가 대단히 고상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어 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흔히들 술을 음식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음식물로 인정한 우리 민족은 술 자체를 숭상할 뿐 아니라 술에 따른 그릇 즉 주병과 잔을 특별하게 제작하였고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침으로써 누구나 술 마시는 범절이 깍듯하였습니다.
술을 마심은 사교의 자리였고, 술로 인한 추태와 분쟁이 거의 없는 풍속의 고장 예의의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술 먹는 법도를 익혀 술자리를 고상하게 승화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그 덕성스러운 행실에 젖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는 술 먹는 방법을 크게 뉘우쳐 조상들의 음주 풍속을 되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가족님들 저같이 약주 많이 드시지 마세요...^^"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흐메 손아프넹...^**^"
언제 설에 함 올라가면 소주 석잔에 함 취해 보게요.
오늘 정말 짧지만 즐거운 대화 많이 나누었네요
첫댓글 ㅎㅎ 수08님~~ 럭키 술 마시면 안되는데 ㅡㅡ; 글이 너무 길어서^^; 담에 또 읽을께요~^^
크 글에서 주향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네,,,크 취한다..
저는 8급 이나 7급 정도여.. ^^;; 근데 와~~ 장난이 아니네여... 무슨 논문 발표 하신거 같아요... ^^;;
어머 어머~~저는요...밀밭 근처에만 가두 어지러워서요.....어머어머.....ㅎㅎㅎ
앗! 저는 7급 이네여... ㅎㅎ
지는 석주가 맞는것 같네요....오낙 술을 좋아해서 삼육오로 안 마시면 입에 가시가 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