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미래 지향형의 사업이라 주변의 햡도와 관심이 많았고 쟈정상 어려움 때문에 절친의 도움으로 도동리 매일시장 부근에 중앙 컴퓨터 학원으로 개칭확장 하여 본격적으로 학원다운 학원을 열었다.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도 서울을 오가며. 국내 유수의 기업들을 찾ㅔ아 다니며 동분서주 하던 시절이었다
영광 여중고, 군남 고등학교, 법성 상업고등학교, 고창 강호 상업고등학교 등에서 학원버스로 학생들을 실어 나르며
혼신을 다해 학원 사업에 전념했다.
물론 천주교 영광교회에 미사 참례도 가능하면 빠지지않고 하였다.
자기하느님의 가르침이 그의 마음에 있어 그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 시편 37,31 )는 말씀처럼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때였다.
군 단위 학원치고는 많은 취업생을 배출시키기도 하였다.
새로운 사업에 대한 열망으러 나는친구에게 학원을 물려주고 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홀홀 단신 서울로 올리와 학교 동창인 친구에게 사무실물 한편을 의 빌리고
한달동안에 한개의 부스를 얻어 Computer 판매를 시작했다
Computer 판매시장에 뛰어들어 청계천에 컴퓨터 가게에서 경험을 싸았고 한동안 전국 시장을 누비며
상당한 호황을 누렸고 신생 용산 전자상가 (나진상가)에
매장을 열었으며 아울러 기업의 ERP, 또는 시스템 관리, PC또는
Computer 판매와 soft ware 개발에 뛰어들었다
주변의 협조와 관심이 많았고
절친의 협조를 얻어 최초로
열심히 NCR (중형 Computer) 판매 (기술 영업)에 힘입어
상당한 금액을 벌었고
당시 상당한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아울러 당시 산업자원부 전기·전자 부문
컨설턴트로
정말 분주한 나날을 보냈었다.
전국의 제조업을 방문하여 기술지도를 하는 등 시간을 쪼개기조차 힘들었던 시절이라 자연스럽게 냉담의 시간도 길어졌고
당시 용산 전자 상가에서는
할인( 덤핑) 시장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 64bit Computer 의 기종 변화 속도는 매우 빨랐고, 보조 주변 기기 역시 그 추세를 따라 가고있었고 돈을 벌어 쌓아가는 경제적 노예가 된 까닭으로
작은 교만의 시간이 늘어 나고 있던 기간이었다.
메이저급 매장들이 월말 실적 맞추려고 전자제품등과
H-8bit - 16 bit-bit32
변화 속도가 걷잡을 수 없던 시절
시장에 파고들어 대량 구매와 판매를 하던 일에 손을 미치기 시작했다.
호황에 취해서 걷잡을 수 없는 경우에 대비하지 못함으로 하느님께서 정신차리라 철퇴를 내리셨다.
중간 달리 2명에게 사기를 호되게 당하여 사업을 마감하고 고양시에 작은 아파트 하나를 매입하여 은둔의 생활을 시작했다.
참으로 힘든 나날이 있다.
( 그렇게 울부 짖어도 그 분께서 대답 하지 않으시니 악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
욥기 35,12)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 가래처는 각종 핑게로 나를 회피하고 내가 변제를 해주어야 하는 거래처는 악착같이 니를 찾아내어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나를 압박해 왔다. 아내가 다니던 회사의 우리사주 , 퇴직금등을 팔아 모두를 변제하였다.
악몽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던 업체는. 오리무중 찾을 수가 없었다.
참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시편 43,2 당신은 제 피신처 하느님이시건만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원수의 핍박 속에 슬피 걸어가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