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오패
주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주가 중심 세력을 이루었던 정치세력 구도가 깨어졌다. 주는 견디지 못하고 BC770년에 낚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때부터를 동주 라고 하며, 춘추-전국 시대와 겹친다. 이후로, 周는 세력 회복을 못하고, 제후국보다 더 추락했다. 이 틈을 타서 제후국들은 패권을 차지하려 서로 싸웠다.
(*춘추 오패, 전국 칠웅 다음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다.)
싸움의 결과는 다섯 제후국이 다음 차례대로 패권을 차지하고, 중국을 호령했다. 이때의 특징을 꼽으라면, 힘으로는 주를 누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주를 천자국으로 인정했다.
오패를 차례대로 보면
1. 제의 환공 (BC685-BC643)
이때의 유명한 고사로는 ‘관포지교’가 있다.
2. 진의 문공(BC636 –BC628)
초의 시인 굴원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굴원이 전설적인 인물이라서 반드시 이 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후대에 진의 압박으로 나라가 위기에 부닥칠 때라는 것이 정설이다.
3. 초의 장왕(BC614 – BC591)
4. 오왕 부차(BC495 – BC473)
5. 월왕 구천(BC496 – BC465)
오월의 다툼은
오월동주,
와신상담 등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복수의 화신이라는 오자서 이야기도 이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