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인생(2) “원수를 사랑하여라”
2025.3.15.사순 제1주간 토요일 신명26,16-19 마태5,43-48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시편119,1)
어제 복음이 예수님의 독특한 “제1 대당명제:성내지 마라”가 주제였다면 오늘 복음은 훌쩍 뛰어넘어 “제6 대당명제:원수를 사랑하라”를 다룹니다. 참고로 “제2 대당명제;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제3 대당명제:아내를 소박하지 마라, 제4대당 명제: 맹세하지 마라, 제5 대당명제: 보복하지 마라”입니다. 모두가 “하지 마라”는 부정명령인데 오늘 복음의 대당명제만은 긍정형으로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명품인생의 절정이 원수사랑입니다. 오늘 강론제목은 어제에 이어 명품인생 시리즈 2번째에 해당됩니다. 어제 강론은 참 많은 분들이 공감하며 좋아했습니다. 어제는 미사가 끝난후 미사도구를 치우는 젊은 수도형제 셋과 악수하며, “수사님, 명품수도자가 되십시오.” 격려하니 수줍은 듯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도형제 한분한분이 다 명품수도자로 보였습니다. 수도자뿐 아니라 평소 예사롭게 대하던 형제자매들 역시 명품인생으로 보였으니 놀라운 발견이요 깨달음이었습니다.
새삼 깨닫는바 마음 깊이에는 누구나 명품인생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소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의 명품인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많은 분들에게 보낸 격려의 메시지였습니다. 자기 삶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명품인생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은 사랑임을 뜻합니다. 사랑해서 사람이고 하느님을 닮아 본연의 품위있는 명품인생으로 만드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온 인류의 어머니 같은 사랑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연인간의 에로스 사랑이, 친구간의 필리아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 일방적 사랑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어제는 강론과 더불어 “사랑을 노래하라”는 시계 그림을 나눴고, 이어 작가의 같은 제목(sing of love 6)의 그림 하나를 다음과 같은 해설과 곁들여 선물 받았습니다. 70이 넘은 작가가 지금도 그리는바 어렸을적 바다같은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어릴적 어머니가 불러주시던 섬집아기 노래말이,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는 혼자남아...’라는 노래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도 그리워지고, 바다의 파도소리는 사랑으로 아기를 재워주지요. 또 바다밑 고래와 물고기 등 많은 생물을 품어주지요.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노래하며 안아준답니다.”
이에 대한 제 답글입니다.
“섬집아기 동요는 제가 2절까지 산책시 자주 부르는 애창곡이지요. 80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동요를 부릅니다. 어머님이 참 자상한 분이 셨네요! 신림때 뵈었던 어머니는 사려깊고 어질고 지혜로운 모습이셨지요.”
바다같은 어머니의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바다’라는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바다가
바다에 가다니요
그냥 있으세요
당신은
늘 깊고 넓은 바다예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이런 바다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좋아하라는 것이 아니라, 최종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한없이 인내하며 그냥 인간에 대한 기본적 존중과 배려, 측은지심의 사랑을 지니고 품위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십니다. 내눈에 원수지 하느님 눈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악이 사랑의 결핍이듯, 원수라하지만 뭔가 모르는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라 해도 그 어머니에게는 우주같은 자식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를 품에 안고 키우는 바다를,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으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진정 명품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기대수준은 이토록 높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망애를 말하지만 역으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신망애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를 한없이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이런 유유상종의 끼리끼리 사랑은, 동호회의 동아리들이 주고받는 그런 사랑은 누구나 합니다. 이런 유유상종의 사랑을 넘어 하느님 아버지의 차별없는 공평무사, 대자대비하신 사랑을 닮으라는, 다음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는 이들 누구나에게 주어진 평생 숙제입니다. 하늘을 향해 끝없이 열려 있는 사랑의 완전함입니다. 이래서 우리 삶은 하느님 사랑을 닮아가는 하닮의 여정, 사랑의 여정이라 하는 것이요, 삶의 과정과 더불어 점차 완성되어가는 명품인생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완전함(perfection)은 온전함(wholness)입니다. 거룩함(holiness)과 온전함(wholness)이 영어 발음도 똑같습니다. “둥근 삶, 둥근 마음”이란 제 저서의 말마디처럼 온전함은 둥근 사랑을 뜻합니다. 성인이라 일컫든 옛 유엔 사무총장 함마슐드의 언급도 신선한 충격의 감동이요 우리의 책임감을 고무합니다.
“여러분의 책임은 실로 놀랍습니다...여러분은 하느님께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과연 여러분은 하느님을 위한 책임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평생 과제의 책임을 끝까지 이행할 수 있는가 묻습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과제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다는 선물인생은 평생과제의 사랑 책임을 다하면서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가, 명품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신의 성장은 멈추고 노쇠해가도 하느님 향한 신망애는 끊임없이 성장, 성숙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집중적 영성수련으로 욕심을 비우고 몸은 가볍고 맘은 즐겁게 눈길은 주님께 두고 초연히 영적으로 살아야 할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새 모세인 예수님이 신명기의 모세가 명령한 말씀을 구체화 한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신명기 말씀중 오늘이란 말마디가 무려 3회 나옵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입니다.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 규정과 법규가 새 모세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5-7장)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산상설교의 절정인 원수 사랑의 경지에 이를 때 모세를 통한 주님의 약속대로 주님은 우리를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고, 우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며,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 합니다. 이 거룩한 명품종교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명품 미사 전례 은총이 우리 모두 '하닮의 여정'중 명품인생이 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시편119,2).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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