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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목회자는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만 전해야 되는 직책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전하여 새 생명의 역사에 올바로 쓰임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한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하시고 기록하여 주신 성경의 말씀 속에 숨겨진 진리를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 삶에 바쁘게 쫓기느라 충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할 수는 없지만, 어디를 가든지 성경과 함께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를 소망하여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며 느끼고 깨달았던 하나님의 뜻과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다른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느꼈었고, 선포되는 말씀들이 대부분 감정을 자극하고 소망을 주는 것 같은데 궁극적인 해결책은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것에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던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강력하게 밀어 부치시며 인도하시므로,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으나, 공부를 하면서도 주어진 것이기에 공부를 하였을 뿐,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졸업과 안수도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 많았기에 부족함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고, 올바로 알지 못하고 전하는 것은 사탄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성경 말씀에 대한 공부에 전념하면서, 성경 번역상에 오류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여러 가지 번역본을 비교 대조하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세상의 지식으로 오염되지 않으려고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리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주석조차 보지 않고 말씀 안에서 답을 찾는 삶을 살아온 세월이 어언 8년째가 되어 이제는 확실하게 줄기가 잡혔고 조금 알 것 같아 이 글을 올립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분들께 묻습니다
첫째, 원죄의 문제는 해결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원죄는 아담의 죄이며, 그 원죄는 예수님께서 이미 대속하셨으므로, 우리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죄라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게 믿으신다면 원죄는 이미 대속하셨으므로 우리들이 스스로 저지르는 범죄만 회개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시겠지요?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할 수 있는 도덕적인 죄를 전혀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의인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은 왜 죄인으로 볼 수 밖에 없도록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선포하시고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단순히 죄인 아담의 후손이라서 죄인이라 하셨을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기준으로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라 밝히셨고, 아버지의 죄가 아무리 흉악할지라도 삼사 대를 넘기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이시므로, 아담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우리가 결코 죄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명백하니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 모두를 죄인들이라 하셨을까요? 성령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배우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지식으로 생명의 말씀을 연구하고 분석했던 신학자들이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으므로, 그의 후손들인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으므로 원죄에 대한 책임이 우리들에게는 있을 수 없고 우리들 스스로 저지른 죄에 대해서만 회개하고 용서 받으면 된다’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제가 성령의 가르침을 통하여 깨달은 바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심령 속에 원죄가 도사리고 앉아 주인이 되어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 원죄에게 속아 원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의 기준으로 볼 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죄가 없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죄로 여기는 살인한 자나, 세상에서는 전혀 죄인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웃어 넘길 수 있는 문제인 형제를 바보라고 놀리는 자나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이 죽을 죄인이라고 선포하셨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살인의 죄나 우상을 섬기는 죄나 음란한 죄나 우리가 범할 수 있는 모든 죄가 원죄에서 나오기 때문이지요. 그 원죄가 무엇인가 하면,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말했던 “하나님과 같이 되는 죄”가 바로 원죄의 본 모습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지켜야 되는 것이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인데,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내 물건이니까 내 마음대로 쓰고, 내 자녀들이므로 내 마음대로 가르쳐야 되고, 내 자녀들은 내 말에 따라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자신의 주인과 왕이 되고, 자신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원죄가 일으키는 죄로써, 예수를 자신의 구주라고 고백하며, 생명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우리들의 속에도 내재되어 각 사람 속에서 왕이 되어 원죄 속에서 나오는 욕심으로 죄를 범하게 만들고, 때로는 선한 것으로 가장하여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속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내가 아는 지식이나 상식의 범주 안에서 계획하고 실행하면서도 입으로는 주를 찬양하고 경배하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원죄의 역할이지요. 그런데도 원죄는 아담의 죄고 예수께서 이미 대속하셨으므로, 우리와 관련이 없는 죄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가르치셨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원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주셨던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서 온 것인데 사람들이 사탄의 것인 줄 모르고 그것이 마치 자기 자신인 줄 알고 원죄에게 종이 되어 죄와 사망으로 달려가기 때문이지요. 원죄를 버리지 않고 죽이지 않으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 고백하고 입으로는 찬양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마음은 변화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원죄는 아담의 죄로 이미 대속을 하셨으므로 나와 상관이 없다고 믿었거나, 그렇게 전하였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에게 이용당한 것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하여야 할 맡겨진 심령들을 사탄에게 끌어다 준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지요. 누구를 비난하거나 공박하려고 드리는 말씀이 결코 아니므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은혜로 그것을 깨닫고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아직까지 원죄를 해결하지 못했고 해결하여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며 간구하며 순종하는 삶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선포하셨던 것이며, 원죄에게 속아 사탄에게 이용당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자신들의 공로와 업적을 내세우며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항의할지라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처럼, 아무리 많은 일들을 놀라운 능력으로 이루었다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고 지옥으로 내어 쫓으리라 하셨던 것이랍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속히 돌이킬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둘째, 복음의 진리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에 겉으로 나타나는 표면적인 의미에 따라 ‘주여 믿습니다’ 외치고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 전하기만 하면 우리의 믿음이 다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그럴 수 있었다면, 우리들의 구주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리라” 가르치실 이유도 없었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선포하실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처럼 천국의 문 앞에 심판대에 앉으신 주님으로부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꾸지람을 듣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누굴까요? 쫓겨나는 자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나이까” 하고 항의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증거하듯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남들보다 더 많이 전한 사람들이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큰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복음을 증거하였던 사람들이라고 성경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안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불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의 일꾼으로 선택을 받아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과 구원의 사역에 쓰임을 받은 목회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왜 불법을 행하는 자이라 책망을 들어야 되고, 왜 천국에 들어가는 허락을 받지 못해 쫓겨나야 되고, 바라고 소망했던 영생은 얻지도 못하고, 오히려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을 받아야 된다는 말일까요? 그 말씀이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뜻은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구주 예수를 증거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고, 선한 일임에는 틀림이 있을 수 없지만, 아무리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을 통해 가르치시며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며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일을 했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성공한 목회라 칭송을 듣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인정을 받지 못하여 심판대를 통과할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돌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므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리라” 말씀처럼, 성령을 통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합당하게 순종으로 이룬 것들만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의 법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선택과 구원은 동일할 수 없고 별개라는 것을 증명되는 것이지요. 구원의 역사를 위해 선택하시고 사용하시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그 뜻에 철저하게 순종한 사람들만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구원과 전혀 관계가 없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고 심판하는 일에 사용하셨던 북쪽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나, 남쪽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도 “내 종”이라 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도 선택 받은 자들은 멸망을 당할 수 없다고 전할 수 있고, 그렇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 학설은 생명의 말씀을 성령으로부터 배우지 않고, 세상의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학식을 나타내고 자신의 것을 남에게 전하고 가르치려는 원죄와 사탄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그릇된 것일 뿐임을 성경이 증명하는데 말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선포하셨던 것이고, “끝까지 지키는 자와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게 된다” 가르치셨던 것이지요. 그만큼 목회자의 책임이 막중한 것이고, 막중한 책임이 있는 만큼 더 엄격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가르치셨던 것이지요.
셋째, 믿음이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말씀에 표면적인 뜻에 따라 회개하기 위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하여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부르짖고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면 그것이 진정 올바른 믿음일까요? 아니면 그에 더하여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나 복음을 위해 봉사하면 그것으로 올바른 믿음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하기 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는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에 대한 회개의 수준을 넘어 창조주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탄의 유혹에 따라 자신이 자신의 왕가 되고, 하나님이 된 원죄, 즉 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나를 위하여 모든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게 만드는 자아를 버리는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이지요. 때문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지니라” 가르치셨던 것이고, 원죄인 자아를 부정하고 버리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라고 가르치셨던 것이겠지요. 그 자아를 버리는 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하지요. 그들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지만, 유일하시고 절대적인 창조주의 뜻은 깨달았기 때문에 해탈을 주장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대로 추구하는 목적이 같으므로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려 하고, 자신들이 신이 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이룰 수도 없고 잘못된 것이지요. 다만 만물 속에까지 자신의 형상과 뜻을 새겨 놓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들도 깨달아 알 수 있었고, 절대자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유일하신 절대자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사랑으로 서로 돕고 섬기는 삶이라는 진리는 그들도 깨달아 알았기에, 그들도 자비를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만,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원죄도 알 수 없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의지할 수도 없으므로, 그들은 결코 이룰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성령을 통하여 제가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정한 믿음은 어떤 믿음이냐 하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정하신 구원의 법칙에 따라, 생명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말씀을 사랑하는 심령 안에 임하셔서 가르치시는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깨달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생명을 증거하는 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인데, 그런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다고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시는 값없는 대속의 은혜에만 매달리려는 학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값없이 주시기로 약속된 대속의 은혜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 때문에, 원죄의 노예가 된 자유의지를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이루어 주시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원죄를 내려놓지 않고 버리지 않기 때문에, 원죄가 가져다 주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의도적인 사랑으로 섬기며 영정적이고 맹목적인 헌신으로 율법주의에 빠지는 그릇된 믿음을 갖거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은 원죄의 욕망에 따라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서 성공하고 군림하려는 열정의 노예가 되는 편향적인 믿음에 빠지지요. 그러나 그런 믿음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는 부족하고 결핍되고 거짓된 믿음이므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했던 세례 요한의 고백처럼,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진리와 사랑으로 채워져 나를 내세우게 만드는 원죄인 자아는 점점 더 사라지고 변화된 마음 안에서 감동을 주시고 사용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내가 한다는 생각조차 전혀 없이 쓰임 받는 그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믿음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말씀이 증거하듯이, 우리들 인간으로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믿음이므로,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선별적으로 진정한 믿음이 되도록 성령께서 친히 이루어주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셨던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포하셨던 것이지요.
넷째, 강권적인 선택과 구원의 논리가 합당한가: 존 칼빈이 주장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믿는 대로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선택하시는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여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신 것일까? 그런 주장이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사실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참 사랑이나 공의가 거짓이 되어야만 그런 논리가 성립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온 세상 모든 만물들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면 아담이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셔야 했고, 또한 사탄이 아담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리지 않도록 창조하셨어야만 하나님의 공의와 참 사랑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한마디 말씀으로 “너는 천국으로 올라오라” 하거나 “너는 지옥으로 들어가라” 명령하시면 될 것을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피조물이고, 죄인인 사람들의 손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하셔야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이 넘치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께서 누구를 어떻게 버리실 수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고, 의도적으로 버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참사랑도 거짓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선택 받은 자들이 결코 멸망할 수 없다면,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선택을 받았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어야 마땅하지만, 그들이 과연 몇 명이나 구원을 받았느냐는 것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극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결론이 쉽게 나오고,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선택을 받아 무한하신 권능으로 이집트를 굴복시키고 인도하여 내셨고,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으로만 살도록 40년 동안 철저하게 훈련을 시켰던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만 약속의 땅에 들어간 역사적인 사건은 설명한 길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의 삶과 역사를 통해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선택은 구원의 복음, 생명의 말씀을 맡은 백성들로 선택하셨던 것일 뿐이고, 구원으로의 부르심에는 당시에도 하나님을 찾고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그들과 똑 같은 백성으로 여기라고 가르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듯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며, 구원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고백처럼,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이룰 가망이 없을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므로, 선택과 구원이 동일한 것이 결코 아니라 별개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강권적인 선택과 구원의 교리를 창안했던 칼빈이 그의 교리로 타락 할대로 타락했던 당시의 종교개혁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크나큰 공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유일하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무한하신 은혜에 현혹되고, 선택된 특별한 민족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그리스도조차 부정하여 죽이는 죄를 서슴없이 저질러 멸망의 길을 자초했던, 이스라엘민족의 선택 논리에 입각하여 쓰여진 성경의 일부 문장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주권을 최대 최고로 높여 드린다는 명목 아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우를 범하였고, 또한 자신의 지론에 맞추려고 하나님의 말씀들을 많은 부분 버리는 오류를 범했으며, 아담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심겨져 사탄의 요구대로 모든 사람들을 죄와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원죄의 의미를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에, 원죄인 자아에서 나오는 욕망이 선한 것으로 위장하여 속이는 열정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칼빈이 원죄의 다른 모습인 열정에 속아 만들어진 것이 그의 교리이기 때문에, 원죄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더 잘 와 닿게 되었고, 더 잘 화합할 수 밖에 없었으며, 때문에 전도하기가 훨씬 쉬워져 교세를 확장하고 교인들은 많이 양산할 수는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탄에게 이용을 당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사람들을 사탄과 사망에게 끌어다 주는 사탄의 도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제까지는 모르고 그의 교리를 따랐더라도, 이제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으로 돌아서서 변화되어 맡겨진 심령들을 사탄에게 이끌어다 주는 죄를 더 이상 범하지는 않아야 되고, 나의 영혼을 사탄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단 한 사람도 멸망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절대적인 공의를 가지신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탕자의 비유에서 가르쳐주듯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언제라도 기쁘게 받아주시는 참 사랑의 하나님이시라 밝히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섯째, 율법과 복음, 율법주의와 믿음의 차이는: 율법은 구약의 말씀들이 율법이라 생각하기 쉽고 신약의 말씀들은 복음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의 말씀과 오신 후의 말씀을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옳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기록하여 주신, 신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들은 받아 들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모두다 율법이 될 수도 있고, 새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절대적인 공의를 행하시는 천부 하나님의 두렵고 경이로운 심판만 바라보고 믿게 되면, 유대인들처럼 율법주의적인 믿음에 사로잡히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말씀들이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며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신 구약의 말씀들이 모두 다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하시는 것이겠지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는 말씀이 가르치듯이, 사탄의 것인 원죄에서 나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공의와 심판의 성부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적인 믿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고, 사랑과 은혜만을 바라보며 믿는 사람들은 올바로 믿지 못하게 충동질하는 원죄에게 속아, 공의와 심판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편향된 믿음에 빠져 사탄의 유혹에 빠졌던 아담처럼 원죄를 버리지 못하게 되고, 원죄인 자아의 노예가 되어, 입으로는 ‘믿습니다’ 고백하면서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 잠시 동안 나그네로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을 더 사랑하는 죄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지식은 있으나, 순종하는 믿음으로 자라지 못하여, 생각이 바뀌지 않고 삶이 변화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참 사랑이시며 대속의 은혜를 제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고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성령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역사하시는 은혜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맡기고 순종하려는 사람들에게만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참된 믿음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 창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법칙이기 때문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셨던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믿음의 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되다” 선포하셨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리스도 대속의 은혜가 아무리 크고 온 세상을 다 구하고도 남을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믿지 않으면, 기록된 말씀에 나타나는 외면적인 의미에 속아 욕심으로 믿거나 욕망의 다른 모습인 자신의 열정으로 믿는 믿음으로 인해 멸망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하리라” 선포하셨던 것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가르치셨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길이라 믿고, 생명의 길이라 생각하고 따라 가지만, 결국에는 멸망으로 끝나게 되는 길이 더 많으므로, 남들이 다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를 찾는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야만 약속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여섯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대속하신 은혜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대속의 은혜는 온 세상을 모두 구원하고도 남을 만큼 크고 위대한 은혜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지요. 그러나 그 대속의 은혜를 받는 길에 대하여 사람들이 만든 학설이 너무나 많고 다양하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또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계기가 율법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하려고 노력하였고, 믿음을 철저하게 강조하였던 바울 사도의 복음서에서 출발한 관계로, 하나님의 사랑만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만 의지하려는 편향되고 치우친 믿음으로 흐르게 된 것이 개신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겠지요. 그러나 말씀으로 돌아가고 믿음으로 돌아가자고 시작한 개혁의 선두 주자들뿐만 아니라, 이후의 수많은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까지도 사도 바울의 믿음을 강조하는 말들에만 현혹되어, 그가 율법주의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철저하게 배격하면서도 지켜 행하는 믿음을 강조했던 부분은 놓쳤거나, 아니면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외면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겠지요.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적인 공의를 철저하게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담에게 허락하셨던 자유의지를 결코 회수하시지도 않으셨고, 무시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죄인은 결코 용납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에, 아담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될 것을 미리 아시고,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벌써 죄인들을 대속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던 것이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에 따라 오시고 이루신 것이지요. 그러나 대속의 은혜가 아무에게나 그냥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고, 하나님께서 임의로 선택하여 ‘너는 조건 없이 내가 주는 구원을 받아라’ 하시고 주시는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도 사랑도 결코 충족시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다만 복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셨고, 예수께서 열어 놓으셨고 이루신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이지요. 때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선포하셨던 것이지요. 그런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도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있습니다만, ‘주를 믿습니다’ 고백하고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 잘 하고 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고 대속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문제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칼빈이 예정론을 주장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학설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사탄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의 지식과 원죄 속에서 나오는 열정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문제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며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셨기 때문에, 누구를 의도적으로 멸망으로 내어버리는 일은 결코 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잘못 알고 있던 우리의 믿음이 변해야 할 당위성이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 동안 잘못 전하고 가르쳤던 길에서 속히 돌아서지 않거나 잘못 믿었던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자신만 사탄과 함께 멸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인도하여야 할 사람들까지 사탄과 지옥으로 이끌어가는 너무나도 큰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일곱째,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을까요: 성자 예수께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하나님 본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온 세상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시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영원한 생명 그 자체십니다. 그러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아담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만드실 수도 있으셨고, 아담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린 사탄을 만들지 않으실 수도 있으셨으며, 아담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 때문에 아담이 죄에 빠졌다 할지라도 말씀 한 마디로 죄를 없애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수도 있으셨겠지요. 그러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흠이 없고 거룩하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말씀이 증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하실 계획을 창조 이전에 이미 확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도 있고, 사탄의 유혹에 속아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는 죄로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나고 사망에게 종이 되어 지옥으로 갈 수도 있도록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라”는 말씀이 가르치듯이,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고, 스스로 왕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의에게 종이 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으나,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말씀처럼,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고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법칙이지요. 그러므로 복음으로 부르시는 은혜를 받아 예수를 구주로 믿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우리들 심령 속에도,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내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려고 하는 원죄가 왕으로 도사리고 앉아 우리를 다스리며 죄와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다스리는 원죄에게 속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가르쳐 주시려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가르치셨던 것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스스로 왕이 되는 길을 버리고, 생명으로 부르신 하나님을 선택하여 생명의 말씀 속에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뜻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는 자들만 만나주시고 가르치시며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죄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가변적인 인간으로 만드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말씀 한 마디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능력이 넘치시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본성이신 절대적인 공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희생시켜야 되기 때문에, 영원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으로서는 결코 하실 수 없는 일이시지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하시되 원죄의 종이 된 자유의지를 스스로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 생명의 말씀에 스스로 종이 되려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참사랑도 충족시키시고, 공의도 충족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마음에 할례를 하라” 명하셨던 것이고,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가르치셨던 것이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 선포하셨던 것이고,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가르치셨던 것이며,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신다” 깨우쳐 주셨던 것이고,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하셨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창조 당시의 능력을 잃어버리신 것도 아니고, “돌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라 성경이 증거하고 있으므로,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지요. 그럼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왜 무엇 때문에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고난을 받으셔야 했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는 번거로운 길을 택하셔야만 했느냐 하는 문제가 있겠지요? 그것은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속아 하나님을 저버리고 자신이 왕이 되고 하나님이 되는 길을 택한 죄로 에덴에서 쫓겨나 사탄과 원죄의 노예가 되어 사망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일이고, 허락하셨던 사안이며,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정하셨던 계획대로 성자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사람들 가운데 선지자들을 세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시고,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처럼, 사람이 따라 지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생명의 법을 주셨고,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에서 하늘 양식으로 먹이시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순종하여 생명을 얻는 길을 가르치시고,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권유하시며,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하는 약속으로 소망을 주시며 인도하셨지만,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의 지식과 원죄에서 나오는 욕망의 노예가 된 하나님께 선택 받았던 이스라엘민족들이 그들 나름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고 그들 스스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은 전혀 드릴 줄도 모르고, 행위로만 지키려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사랑의 성자 하나님께서 원죄와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세상의 지식이나 원죄에서 나오는 욕망에 속지도 않고, 굴복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맡기시고, 순종하는 삶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직접 보여주시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선포하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던 목적은 첫째, 죄인들은 결코 만날 수도 없고 만나면 당연히 죽음을 당해야 하는 절대적인 공의의 하나님을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고, 둘째, 예수를 구주로 믿고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세상과 원죄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주시려고 오셨던 것이며, 셋째,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들이 원죄의 유혹에 속아 죄에 빠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회개하도록 깨우치시고 도우시며 저지른 모든 죄들을 덮어주시고 변화시키시며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대속의 은혜를 완성하시려고 오셨던 것이지요.
여덟째, 대속의 은혜는 어떻게 받을까: 한마디로 예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길을 믿음으로 따라가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대속의 은혜지요. 예수께서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셨다”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열심이셨으며,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하나님의 성전, 즉 성령께서 머무시며 역사하시고 새 생명을 이루실 성령의 전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으며,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는 말씀처럼, 자신의 사명을 정확하게 아시고, 천부 하나님의 집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음에도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사람으로서의 도리에도 최선을 다하여 지키며 섬기는 본을 보이셨으며, 수많은 능력을 행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으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선포하셔서, 우리의 믿음과 구원이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주시는 은혜지만, 우리의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과 구원의 법칙을 가르치셨으며,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는 말이 증거하듯이,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려는 원죄와 인간의 속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며 간구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셨고, 성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과 길을 속속들이 다 잘 알고 계시면서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간구하셨던 것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는 말씀이 증거하듯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속에 있는 원죄에서 나오는 생각에 속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이 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기는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기도였으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부르짖으셨던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심판과 정죄로 씻고 천국에 합당한 심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려고 성령께서 잠시 버리시고 떠나는 고통의 시산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런 고통의 순간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기도하셨던 것은, 죽음의 순간, 심판과 정죄의 고통스러운 시간에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내어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만, 예수께서 삼 일만에 부활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사망에서 다시 살아나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지요. 그러므로 요즘의 기독교인들처럼 사랑의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는 대속의 은혜를 받을 수 없게 되고, 사랑의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공의의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까지 모두 내어 맡기고 성령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되어야만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얻는 길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원죄에 사로잡혀 죽어버리고 노예가 된 내 영혼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원죄의 유혹과 역사를 이길 수도 없고, 깨끗하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그 더러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겨야 된다는 것이지요. 때문에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 돌아오라” 권고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은혜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올바로 알아야 하고,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며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되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말씀이 가르치듯이, 세상의 지식이나 장로들의 유전에도 매이지 않아야 되는 것이며,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만 성령의 가르치시는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하는 말씀처럼, 원죄에게 약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애통하는 가난한 마음이 될 때,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말씀처럼,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진리와 참 사랑으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고, 변화된 마음에서 변화된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성령께서 내주하시며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며 사용하시는 심령이 되어야만, 대속의 은혜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에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구원의 법칙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가르치시는 것이며, 자신의 육신에 심겨진 원죄에서 나오는 욕망의 다른 모습인 열정에게 속아서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무리 많은 능력을 행하고, 많은 일을 했다 할지라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이 증거하듯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룬 일들이 아니고,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이루어 주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이루어 가며, ‘하나님은 그저 뒤따라 오시며 나를 돕기나 하십시오’ 하며 이룬 일들이므로,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심판을 받는 증거자료만 되는 것이므로,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교회들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그릇된 일들이 많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일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제는 변화되어야 할 때이고 변화하지 않으면 결코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선포하셨고, 온 세상의 구주께서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시면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선포하셨으므로, 오랜 세월 믿어온 교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쉽게 이해하고 납득하고 호응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올리는 글이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깨닫고 돌이킬 사람이 분명하게 있으리라 믿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인터넷 공간에 공개적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이단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싶은 원죄의 유혹을 받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숨을 고르시고 자제하시며 성령께 여쭈어 볼 것을 권유합니다. 그런 후에 성경 말씀에서 어긋난 부분이 있는 것을 증거하고 돌을 던진다면 언제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믿고 가르치며 전하는 것과 너무 다른 가르침을 받고 남에게 전하기를 두려워하고 망설였지만, 믿고 맡기고 의지하며 순종하려는 사람에게 항상 동행하시며 지키시고 이루어주시는 은혜로 양육하여 주시는 믿음으로 이제는 복음의 진리를 위해 돌을 맞을 각오와 준비가 되었고,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는 바울 사도의 고백을 나의 고백이 되게 할 각오가 되었으므로 이 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라” 가르치고 있으며,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선포되었으며,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다” 증거하듯이, 심판이나 정죄의 권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나 천사에게도 주시지 않으셨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고유권한이라는 진리를 잊지 마시고,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여 자신을 스스로 심판과 정죄에 빠뜨리시지 않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내용에 대하여 의문이나 토론을 원하시면 언제라도 메일을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성령께서 결코 세상을 바라보거나, 인생의 의지하거나, 구걸하듯 남의 돈을 끌어다 일할 생각하지 말라 가르쳐 주셨으므로,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지키려고 단 한 번도 후원을 요청해보지 않았고, 나의 삶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이제는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자녀들의 도움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공급하시고 채워주시지 않아 굶게 되면 굶어 죽을 각오로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이날까지 살고 있지만, 까마귀를 통해서도 먹이시고, 찢어지게 가난한 과부를 통해서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은혜로 살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공론화 할 용기가 난 것이지요. 세상의 지식에 오염되지 않고 장로들의 유전이나 교리로 왜곡되거나 편향되지도 않은 진리와 생명의 복음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만 선포되고 성령께서 증거하시며 역사하시는 새 생명의 은혜로운 역사가 날마다 이어져 지역사회가 변화되고 나라와 민족을 변화시키고 온 세계로 번져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믿음을 찾는 새로운 형제자매들의 소식을 날마다 접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장병천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