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경찰도 없는 사막이다. 어쩌다 토정비결 운세가 실제와 맞아 떨어지면 스쳐가는 레인저의 순찰차를 조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는 한, 레인저도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점심 먹을 식당도 없지만, 우리 젓가락질을 구경해 줄 인간들도 안 보이고, 그들의 발자국조차 구경할 수가 없다. 정자나무 한 그루도 없고, 풍성한 땡볕만 차고 넘친다. 생사상태를 판정하기 곤란한 검은색 가시덤불들과 죽은 은행잎 색깔의 선인장들이 고갈사하고 있는 사막이다. 이렇게 섬뜩한 고독지경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울 것 같지만, 서로 귀찮게 생각한다. 자연과만 대화하고 싶고, 작위적인 인간과는 무관한 무아경으로 추락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이런 때 예쁘게 생기지도 못한 인간 하나가 눈치 없이 다가와, “Hello” 어쩌고 하면 퉁바리맞기 십상이다.
“왜 말 거니? 무아도취 입구에 서 있는 쎄마이 닌자(Semi-Ninja, 반도사)에게 말 시키지 마. 부정 탈라. 네 볼일이나 보그라.”
텍사스 서남단 사막지대의 골목길로 깊숙이 들어섰다. 의지할 그늘도 한 조각 찾을 수 없는 사막이니 어쩌랴? 자동차의 궁색한 그늘을 의지하여 챙겨온 점심상을 펼쳤다. 기억될 만큼 맛있는 점심은 아니지만, 오이지에 고추장과 양반김이 밥과 어울리니, 허기진 배는 너끈히 만족시킨다.
“구박 받아가면서 싸온 점심인데, 요긴하게 먹었네요.”
사서 먹든지 굶든지 하지 무슨 밥까지 해서 챙겨 가느냐고 엊저녁 아내에게 호되게 불평했던 일이 부끄러워진다. 밥도 안 가져왔으면 우리 두 내외는 꼼짝없이 신문에 날 뻔했다.
“늙다 만 코리언 아메리칸 부부 사막에서 아사하다.”
이런 제목으로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헤헤잇, 안 됐네 안 됐어! 그이들 돈도 좀 있었을 텐데 결국 굶어죽고 말았네.”
신문 읽는 사람마다 값싼 동정을 떨어뜨리며, 고소하다는 심정으로 킥킥 웃었을 것이다. 밥 가져온 아내 덕분에 뱃속도 든든해지고 마음도 뿌듯해진다. 아이스박스에서 얼음 녹은 물을 땅바닥에 쏟으니, 잉크로 마분지에 쓴 글씨만큼도 번지지 않고, 쏟아진 바로 그 자리로 물이 직접 스며들어 간다.
“조두냐, 석두냐? Quest for Water(물을 향한 추구)가 내 삶의 목푠 걸 보면 모르냐?”
누군가가 옆에서 소리를 빽 지르기에 휘둘러보았다. 카드보드 조각 같이 바짝 말라, 얼굴엔 심줄이 줄줄이 튀어나온 넙적 선인장이 코앞에서 불평하며 눈을 흘긴다. 배곯아 죽어가는 사람을 옆에 두고, 빵을 오물통에 버린 기분이라 가슴이 싸하고 아프다.
“아, 정말 미안해. 늙으니까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야.”
무거운 아이스박스를 들고 용암 같은 땡볕 속으로 방패도 없이 들어가, 조금 남은 얼음물을 선인장 쪽으로 따랐다. 찌꺼기 물 몇 방울 따랐으나 선인장 뿌리까지 도달하기도 전에 기화했을 성싶다.
“할 수 있니? 인체에서 나오는 제2차 Water라도 내가 흘려주고 갈게.”
“여보슈. 오줌을 누려면 정조준 하여 내 뿌리에 대고 누어야지? 잎사귀인 얼굴에 뿌려, 문턱만 오염시키고 말 걸, 뭘 바지까지 요란스럽게 내리고 난리시유?”
“낡은 제품은 원래 그랴 야. 그것도 멀리 쏜 거야.”
선인장에게 창피만 당한 나는, 할 수 없이 오이지 병에 남았던 시큼한 물까지 몽땅 따라주었다.
“맛은 있어 짭짤하고도 들큼하구랴. 메뚜기 이마에 솟아난 땀방울만큼 떨구는 물이지만.”
“미안햐. 불필요한 물질은 버리고 순수 H2O만 빨아들여 뱃속에 저장해라.”
열 식구가 굶어죽어 가고 있는 방안에 밥 한 그릇을 들이민다면, 그들에게 이득이 될까, 배고픔만 부추기는 악행이 되는 걸까?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다 쏟아 부어 몽땅 제공했건만, 좋은 일하고도 옆에서 지켜보던 가시나무에게 욕먹게 생겼다.
“흥, 조잡이다 야! 주려면 골고루 나눠주든가 넉넉하게 좀 줘라.”
이 믿기 힘든 가뭄과 지옥 비슷한 초강력 일광 밑에서도 생명을 연장하고 자손을 퍼뜨려 나간다는 사실은 신비다. 이 사막에는 목말라죽은 선인장과 늙어죽은 선인장 시체들이 허옇게 깔려, 여기저기서 미라인지 땔감인지로 되어가고 있다. 폭풍에 불법 린치 당하여 멍들어버렸는지, 시커멓게 맞아죽은 선인장 시체들도 흥건하게 널브러져 사막을 채우고 있다. 이토록 허옇게 말라죽거나 검게 타죽고 맞아죽은 시체선인장들이 즐비한데, 어떻게 선인장은 후대를 이어가며, 사막을 꿈틀거리게 하고 있는 것일까?
비가 올 때는 토네이도를 몰고 너무 많은 비가 오고, 가물 때는 염치없이 오래도록 메말라 버리는 지역이다. 이렇게 혹독한 기후 조건에서 선인장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험한 땅에서도 식물들은 물론이고 가지각색 동물들까지 골고루 살아간다니, 삶은 아무리 봐도 엄청난 수수께끼다.
불쌍하다는 눈길로 죽은 선인장들을 바라보던 나는 색다른 현상을 발견했다. 죽어 쓰러져 있는 거대한 시체 선인장 곁의 작은 틈으로는 항상 조그만 손자 선인장이 고개를 든다. 할아버지 모습을 닮은 아주 작은 아가선인장이 돌아가신 할아버지 품에 숨어서 방그레 웃는다. 통통하게 젖살이 오른 얼굴에, 거미베어(Gummy Bear)처럼 바들바들하고 동글동글한 새순가시를 달고, 부끄러운 듯 간신히 고개를 든다.
“아하, 요놈들은 요렇게 영생을 유지해 나가는구나.”
결국 선인장은 늙어죽기 전에 꼭 후손인 손자 선인장을 낳아 놓고 죽는다. 선인장은 아들대신 직접 손자를 낳는 유일한 생물인 셈이다. 여기 선인장은 장성하여 한창 정력이 왕성할 때에는 결코 자식을 낳지 않는다. 무자식 상팔자임을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기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 판국에 아들까지 낳아 놓으면, 아들과 맞붙어 물 쟁탈 전쟁이 일어날 테니까 자녀를 평생 낳지 않고 사는 것이기 쉽다. 그러나 선인장은 늙어 죽으면서, 꼭 그 주변 어딘가에 손자 아기를 하나 낳아 놓고 죽는다. 자기가 임종하는 데스베드(Deathbed)에서 자기 자리를 이어받을 아기를 하나 낳아놓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닮은 자기 손자이기도 하다. 늙고 병든 몸으로 죽어가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손자를 낳는 모습이 딱하다. 그러나 이 지독한 가뭄과 더위를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할 것도 같다. 그래서 사막에는 선인장이 너무 많이 확산되지도 않고, 씨가 마르지도 않는 모양이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