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며 소백주가 밖으로 나갔다. 정말 이 밤이 소백주와 이별의 밤이란 말인가? 꽃피는 봄날 기약 없이 만나 꿈결 같은 나날을 보냈건만 그 세월도 이제 끝이 나야한단 말인가!
길을 떠나야만 하는 김선비의 마음도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쓸쓸했다. 그러나 어쩌랴! 밖으로 나간 소백주가 걸게 주안상을 차려왔다. 김선비와 소백주는 이별의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아늑한 등잔불 발간 방안에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지고 김선비와 소백주는 서로 마주하고 앉았다. 3년을 마주하며 살아온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건만 늘 새로운 사람과 살아온 것 같은 풋풋한 싱싱함이 묻어나는 소백주였다.
차가운 칼바람 아래서도 다가올 봄을 예견한 듯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꽃 같은 상큼하고 굳센 정신이 깃든 듯 그러나 진한 향기가 먼저 코끝에 다가와 여인네의 포근한 살 향기로 늘 자신을 덮쳐버리고 말던 소백주! 김선비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학이 나래를 펴고 비상하는 그림이 그려진 말간 청주가 담긴 술잔을 손에 잡았다. 차가운 술잔의 온도가 손끝에 느끼어 왔다.
불을 지핀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바깥은 무서리가 내리는 차가운 늦가을 밤이었다.
북녘 멀리서 기러기가 날아올 이 차가운 밤에 고향에 두고 온 늙은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은 밥이나 굶지 않고 몸이나 따뜻하게 있을까 생각하니 또 숨은 눈물이 가슴 밑바닥에 솟구치려 했다.
조선 천하의 미색 소백주와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니 될 일이었다. 글공부를 한 죄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급기야 벼슬을 사러 올라왔다가 3년 동안 가산을 모조리 탕진해 버리고 굶어 죽게 되었다는 식구들 편지를 받고 내려가다가 아름다운 젊은 여인 소백주의 향내 나는 품에 퐁당 빠져 장장 3년을 지내버렸으니 돌이켜보면 이건 도무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아니 될 일을 하고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