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붙들고 애쓰는 것과 주님께 맡겨진 믿음
3년 전엔가
한 자매님 한테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자매님은 그 말을 받아 드리고 방향을 전환했다.
순종해서 간다면 갈수 있다는 자매님였습니다.
한 자매님한테 그 말을 하니
"그 것 마져 놓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당황해 했고 불안해 했다.
또 다른 자매님한테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라고 했드니
그럼 여태 믿은 것은 무엇이냐고 거부감이 컷습니다.
이삼일간 전화도 않받고 감정이 많이 상한 것 같았습니다.
그후 이런 말을 했다.
"형제님 말이 옳았지만 감정이 도저히 용납지 않았다"고 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다
"예수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은 해도
주님이 말씀하신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다는 것은
종교심으로 행하는 지킴과 자기 의지로...
더 낫게는 자기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여 행하는 종교심입니다.
무엇인가를 지키고 행함으로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는 도저히 할 수 없고
않된다는 것을 확실히 안 다음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자신을 보는 회개와 삶가운데 자백이 있어야합니다.
선한 양심의 고통과 부르짖음이 있어야합니다.
사도 바을과 같은 고백이 나오기까지는
최선을 다한 열심과 노력 끝에
자신의 할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때가 와야 합니다.
로마7:22-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말씀을 믿지않고 마귀의 말을 받아 먹은
아담으로부터 온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전에는
믿음이라는 것은 시작도 되지 않은 것입니다.
계명과 율법의 요구를
죄의 몸인 자신이
먼저 자신의 힘으로 행하고 지켜보려는 안깐힘이 있어야합니다.
그 후에 복음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믿음의 법"을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안"에 있음을 보게됩니다.
갈라디아서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1:1-5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
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면
믿음의 법안에 있는 자들이
계명과 율법아 아래에 있는 자들보다
행함이나 삶이 못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영혼이 그 은혜와 사랑에 적셔짐으로
주님의 성품이 멸매 맺어 결실되어 짐으로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음으로
그 가지가 포도 열매를 맺음과도 같은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지
그 가지가 혼자의 노력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믿음의 법는
복음을 받고 그 안에서
그 은혜 그 사랑을 누리는 자만이 아는
감추인 만나요 비밀인 것입니다.
나는 죽었고
주님이 사시도록 맡기고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사는 단계와
주님이 나를 사시는 단계는 다릅니다.
내가 붙들고 매달려있는 불안한 단계와
구조장비 안에 타고 있어 믿고 안심하는 단계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자와 안식을 누리는 자의 차이입니다.
확신과 능력의 차이가 큽니다.
다만 듣고 읽어서 머리로 아는 믿음과
"성령의 큰 능력과 확신"으로 믿어진 믿음과의 차이입니다.
히브리4:10-11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아멘!!!
2023. 06: 03 02:44
청천홍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