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_d3q9C0Mcfg?si=3lGRSjoJkavznPSc
구성과 특징
한때 하이든의 것이 아니라 하여 ‘가짜 논쟁’을 거치기도 한 곡으로 기교적인 중음주법 등 당대 기준으로서 탁월한 독주 부분의 기교는 결국 후세의 손길을 거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번 협주곡의 넘치는 활력을 지나 상쾌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곡으로, ‘알레그로’라는 표기가 무색한 첫악장의 한가로운 주제부터 전원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제 1악장/알레그로 모데라토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 1악장은 우아한 멜로디와 저돌적이고 경쾌한 리듬을 대조시켜 고전적 균형미의 극치를 이룬다. 투티가 1주제를 제시하면, 이를 첼로가 이중 제시를 한다. 이어서 빠르고 기교적인 삽입절이 지나면 낮은 음역으로 너그러운 2주제가 등장한다. 발전부에서 하이든은 분산화음과 아르페지오를 응용하여 첼리스트의 응용하여 첼리스트의 기량을 펼치도록 하는데, 이때 짧은 집시풍의 연결악구가 극적인 효과를 구사한다. 이어지는 재현부는 제시부를 충실히 반복하고 있다.
제 2악장/아다지오
첼로 솔로로 시작되는 2악장의 주제는 3음으로 만들어졌다. 이 3음은 다름아닌 1악장 1주제의 앞부분을 단락짓는 3음들로 차이든의 재치를 엿보이게 한다. 전체 분위기는 조용하고 명상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첼로 솔로 중 가장 아름다운 선율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제 3악장/론도 알레그로
가벼운 6/8박자의 민요풍이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3도와 옥타브에 의한 악절을 비롯해 넓은 음폭을 바르게 질주하는 기교적인 부분을 양념처럼 섞어 넣어 흥미를 돋우고 있는데, 크라프트의 조언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카덴차 대신 확대된 코다를 투티와 함께 프레스토로 연주하는데, 이 부분은 원작에는 없는 것으로 후에 추가되었다.
가치와 매력
하이든은 이 곡을 만들 당시 매우 행복한 작업환경에 처해 있었다. 첫만남 이후 그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과 영감을 불러일으킨 모차르트와 교류하고 있었고, 현악 4중주 작품 33번이 완성된 시기로 그 스스로가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작곡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곡을 통해 명쾌한 형식, 매끄러운 선율의 우아한 주제, 첼로의 개성을 살리는 기교, 솔로와 투티의 조화로 참다운 고전주의 협주곡의 모델을 제시했다. 카잘스에 의하면 하이든은 이 곡에서 첼로에게 마치 오페라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역할을 우벼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작품배경
하이든은 에스타르하지 후작에 봉사하던 약 30년간 6~8곡의 첼로 콘체르토를 작곡하였다고 여겨지나 현시점에 있어서 하이든이 직접 작곡했다고 확인된 것은 제1번 C장조와 제2번 D장조이다. 제1번 C장조는 200년 가까이 귀족의 문고나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것을 1961년 음악학자 플케르트가 프라하 국립 박물관에서 하이든 시대의 필사 악보에서 발견한 것이다. 제 1번 C장조는 원숙기에 쓰여진 제2번과는 달리 바로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하이든의 초기작품이다.제2번 D장조는 하이든의 콘체르토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슈만, 드보르작의 걸작들과 함께 3대 첼로 콘체르토라 불린다.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궁전 부악장에 취임된 후 근 30년을 아이젠 슈타트에 잇는 궁전에서 거주했다. 비록 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하이든 휘하에는 늘 일급 연주자들이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였다. 하이든은 그의 조언을 받아 이 협주곡을 1783년에 작곡했는데,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교라든가, 또 첼로의 서정적 성격을 완전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806년에 '작곡가의 원본에 의거하여'라는 주석을 달아 출간되었음에 불구하고 원작에 대한 논란이 오래 계속되었는데, 발설자는 다름아닌 크라프트의 아들 니콜라우스였다. 그러나 1953년 하이든의 친필 악보를 찾아냄으로써 의심이 풀렸고, 현재 원본은 빈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하이든은 이 곡을 원래 작은 실내합주를 위해 썼는데, 이를 19세기 말에 지휘자이며 음악학자인 제베르가 관현악 편성으로 확대시키고 솔로 부분과 카덴차를 보완했다. 1960녀대에는 장드롱이 원작에 좀더 가깝게 수정하여 출판했는데 요즈음은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Mischa Maisky (1948 ~ )
'첼로의 거장' 미샤 마이스키(55)는 장한나(20)를 세계적 음악가로 키운 스승이다. 그의 폭풍같은 격정은 자유분방한 연주 의상에도 잘 드러난다. 딱딱해 보이는 연미복을 거의 입지 않고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연주에 나선다. 정성스럽게 수염을 기르고 실크 블라우스 풍에 상당히 멋스럽고 우아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연주 스타일도 파격적이다. 과장에 가까울 정도로 박자와 멜로디의 즉흥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탓에 '박자의 합리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섬세한 기교와 마음을 울리는 서정성을 빼놓고 마이스키의 연주를 설명할 수 없다. 또 의심할 여지없이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와 함께 세계 3대 첼리스트에 꼽힌다.
첼리스트 마이스키의 인생은 음악 만큼 드라마틱하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그는 유태계 집안 출신. 65년 소련 음악콩쿠르에서 6위로 입상한 후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발탁되어 지도를 받았다. 행운이 찾아온지 얼마 안되어 곧 시련이 왔다. 69년 누이가 이스라엘로 망명하는 바람에 14개월 간 강제수용소에 갇혔으며 2개월 간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 71년 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마이스키의 음악에도 서광이 비친다. 천재적 음악성을 인정받은 그는 20여 년 동안 빈필, 런던필하모닉 등 세계적 악단들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https://youtu.be/5tAvhIyw-BY?si=KYoB7R_a_aWZl04d
자료출처: 참마음 참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