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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즉신(敝則新)
옷이 해지면 새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하는 것만 아니라 낡은 것은 언제나 새것으로 교체되고 또 새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당위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敝 : 해질 폐(攵/7)
則 : 곧 즉(刂/7)
新 : 새 신(斤/9)
한자는 왜 ‘새롭다’는 뜻을 신(新)으로, ‘한 해’를 연(年)으로 그렸을까? 연(年)은 원래 화(禾)와 인(人)으로 구성돼 볏단을 지고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수확’의 뜻을 그렸다. 365일이 넘는 긴 주기를 측정하기 힘들었을 옛날, 수확에서 수확까지의 주기를 1년이라 했고 그것을 연(年)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신(新)은 조금 복잡하지만 신(辛)과 목(木)과 근(斤)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 목(木)은 나무를, 근(斤)은 도끼를, 신(辛)은 형벌 칼을 그렸다. 나무를 쪼개 다듬는 모습에서 신(新)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새롭다’는 개념과 연결됐을까?
나무를 쪼개 다듬으면 새로운 기물이 만들어진다. 근(斤)이 도끼라면 신(辛)은 문신을 새기던 정교하게 다듬는 칼이다. 도끼와 칼로 통나무를 쪼개고 다듬어 필요한 기물을 만들던 모습이 잘 반영됐다.
지금도 목재는 인류에 더없이 중요한 소재다. 옛날에는 더 그랬다. 각종 기물은 물론 앉을 의자도, 잠을 잘 침상도, 살 집도, 이동할 수레와 배도 모두 나무로 만들었다.
가공하기 전의 통나무를 박(朴, 樸)이라 한다. 질박(質朴, 質樸)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것이다.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둔 통나무는 별 소용없는 존재다. 그러나 아무리 큰 통나무라도 쪼개 다듬으면 유용하고 멋진 다양한 새로운 기물로 재탄생 한다.
통나무뿐 아니다. 사람의 사고도, 관념도, 제도도, 역사도 모두 그렇다. 깨트리지 않으면 새로워 질 수 없고, 새로워지지 않으면 진보도 발전도 성공도 없다.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 복제하던 시대에서 새로움을 창조해야 하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더 그렇다.
신년에는 우리 모두 속에 든 낡은 개념들을 스스로를 깨부수며,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야겠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헤져 쓸 수 없게 되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그래서 노자는 “해지면 새로워진다(敝則新)”고 했다.
폐즉신(弊卽新)
옷이 해지면 새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전육혜(我全六慧)는 나를 보전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한다. 살아가면서 나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이든 나를 보전하여야 이룰 수 있다. 내가 사라진 이후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 중에는 무리하여 자신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고 곤혹을 겪다가 죽기도 한다. 예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잘 보전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자신을 잘 보전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지혜롭게 천명을 다하여 살라는 뜻이다.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나를 보전(保全)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하였다. 그것은 곡즉전(曲卽全), 왕즉직(枉卽直), 와즉영(窪卽盈), 폐즉신(敝卽新), 소즉득(少卽得), 다즉혹(多卽惑)이다.
노자 도덕경 제22장에 나오는 말이다. '옷이 해지면 새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하는 것만 아니라 낡은 것은 언제나 새것으로 교체되고 또 새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당위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는 무위자연의 법칙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 그 법칙은 거역할 수 없으며 그 법칙을 거역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는 것이다.
1.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
고대 그리스의 현자 탈레스에게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못마땅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탈레스는 '늙은 참주'라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탈레스만 아니라 솔론, 킬론, 피타고라스 등 그리스의 현자들 대부분이 그 '늙은 참주'를 싫어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참주'는 민주정치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비합법적으로 독재 권력을 확보한 지배자들을 말하지만, 나는 오늘날 정치의 세계에서 나이가 들어도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권력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맴돌며 죽는 그 순간까지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낡고 늙은 정치인들로 대체하려 한다.
탈레스 등 그리스 현자들은 왜 '늙은 참주'를 싫어했을까? 늙은 참주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하에서 비합법적인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 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의 이익에 몰입하고 변화보다는 권력 유지와 자기 보신에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도 비슷하다. 한번 정치적 기득권을 가지고 국회의원 등이 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죽는 날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겉으로는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빠져 정쟁에만 몰입하고 끊임없이 출마하려고 한다. 혹여 정계를 떠났어도 때만 되면 한마디씩 하며 자기의 존재와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 그 하는 짓이 탈레스가 싫어했던 그리스의 늙은 참주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선거를 앞두고 정계가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나이 든 늙은 정치인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훈수를 두며 자기의 세와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또한 공직과 고위직을 정년퇴직한 관료출신들이 다시 총선에 출마하려고 출사표를 던진다. 국회의원을 수없이 한 정치인들이 또 출마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권력은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어려운 아편과 같다.
사람들에게는 권력의 자리는 한번 가지면 떠나지 못하는 속성이 있는가 보다. 그러나 물이 한 곳에 오래 고여 있으면 부패하듯이 권력도 오래되면 부패하기 쉽다. 그리스의 늙은 참주들은 죽는 순간까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가장하여 권좌에 앉아 겉으로는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자기 권력과 이익을 향유하고 있었다.
지금 한국의 나이 많고 오래된 정치인들이 그 낡은 목소리로 자기의 정치적 색깔을 내며 정치의 세계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나라와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위한다고 겉으로는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고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목적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무기가 된 늙은 참주와 같은 사람들일지 모른다.
이 나라는 어찌 된 일인지 장관이나 차관을 하고 나면 당연히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것만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시장 등을 역임한 사람이나 국장 등 고위직으로 정년퇴직한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또 정치에 입문하여 그동안의 자기의 직위를 이용하여 자리를 차지하려 든다. 물론 그동안의 경험으로 행정이나 정치에 기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태의연한 경우가 더욱 많다.
정년퇴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공직에서 물러날 나이가 되었으니 나머지 삶은 사회에 봉사를 하며 조용히 살라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공직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또 권력의 자리를 탐하고 있으니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는 것이 분명히다.
그것만 아니다. 한때 정치계에 이름을 올렸던 나이 든 인물들이 총선을 앞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한다. 그 사람들의 훈수가 별 의미가 없는데도 언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며 부각시킨다. 그래서 그들이 존재를 과시하게 한다. 그들 역시 조용하게 세상에 봉사하며 노년의 자기 관리를 하고 후세들이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정치 일선에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일 것이리라.
사람이나 자연이나 세월이 흐르면 다음에 올 존재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봄에 만발한 꽃은 다음에 올 열매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거침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한동안 꽃의 존재를 잊게 한다. 여름의 무성한 잎사귀들은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모두 떨어져 나무의 겨울나기를 위해 자리를 양보한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 그렇지 못하다. 한번 차지한 자리와 부를 놓을 줄 모르고 죽는 순간까지 움켜쥐려 한다. 권력은 더욱 강하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대통령에 있었을 때보다 은퇴하고 난 후가 더욱 빛났다. 자리를 떠날 줄을 알았고 스스로의 사명을 깨달아 실천할 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은퇴하고 난 후에도 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또 사람들은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회에 후광정치(後光政治) 같은 것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국민도 그 후광정치(後光政治)에 편성하니 참신하고 신성한 젊은 정치인이 나타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낡은 것이 고집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새것이 싹트고 자리를 잡기 어렵다. 헌 옷을 고집하면 새 옷이 가치를 발휘하기 어렵다. 오래되고 늙은 정치인들이 자리를 고집하면 참신하고 젊은 정치인들이 성장할 기회가 없다. 젊은 정치인들은 혁신적이고 새로운 사고와 변화에 익숙하지만, 늙은 정치인들은 자리를 지키고 이익을 챙기는 것에 익숙하다.
옛날 왕들도 젊은 시절에 큰 업적을 이루었지, 늙었을 때는 큰 업적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솔로몬은 40년 집권 동안 전반기는 지혜의 정치를 하였으나 후반기는 철권 독재정치를 하였다. 이를테면 늙은 참주보다 강했던 것이었다. 결과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었다.
미국의 노련한 정치인으로 알려졌던 닉슨은 그 경력이 화려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그러나 젊은 정치 신인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은 비록 짧은 기간 재임했지만, 미국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에서나 집안에서나 나이가 들면 자리에서 물러나고 후세에게 물려주는 것은 미덕이며 후세를 위한 자리 비움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이 듦, 즉 늙음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늙음의 덕과 지혜를 스스로 발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선거구획정 문제를 보아도 그렇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 2에 의하면 선거구획정은 1년 전에 결정하게 되어 있음에도 서로 간에 기득권과 이익을 계산하느라고 난항에 난항을 겪는다. 비례대표제를 두고도 서로의 이익과 계산에만 몰입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에서는 기득권 정치가 판을 치고 공정한 게임의 룰이 적용되기 어렵다. 특히 정치 발전과 변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한국 정치의 병폐다. 그 중심에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영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국민이 그들에게 표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사법적인 구설을 안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다.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세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오래되고 늙은 정치인들은 자리를 떠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오래되고 늙은 정치인은 굳이 나이만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구태의연하게 자리싸움과 정쟁만을 일삼는 모든 정치인을 통칭하여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공직에서 정년퇴직하였으면 조용히 사회에 봉사하며 후세를 위한 마음의 봉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들, 한국인들은 유독 자리 욕심이 강한 것 같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들에게 집중된 그 많은 특권이 제거된다면 과연 그러할까? 우리나라 의원들에게는 특권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더욱 자리에 집착하는 것 같다.
이런 시점에 노자가 말한 폐즉신(弊卽新)을 새겨본다. 옷이 해지면 버리고 새 옷을 입는다. 낡은 것은 반드시 새것을 오게 한다. 늙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세대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 권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낡아진다는 것, 오래된 권력은 낡게 된다는 것, 세상의 모든 법칙은 변화한다는 것 등등은 사실임과 동시에 당위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2. 노자가 말하는 폐즉신(弊卽新)
노자는 도덕경 제22장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지혜로 폐즉신(弊卽新)을 강조하였다. 이는 '옷이 해지면 새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 낡은 것은 새것을 오게 한다. 그것은 자연현상으로서의 사실임과 동시에 당위이다. 따라서 낡은 것은 반드시 새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되면 낡게 되어 있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새것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 그 법칙은 거역할 수 없으며 그 법칙을 거역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거역하는 것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낡은 것은 언제나 새것을 오게 한다. 나뭇잎도 가을에 낙엽이 지기 전에 이미 새봄에 돋아날 새싹이 마련되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는 아득한 태고 시절부터 내려온 낡은 것이지만 이 도(道)를 꾸준히 지니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덕(德)이 쌓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낡은 것이 새것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이다. 그것은 덕이요 진리다. 그 덕과 진리를 쌓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인간의 도리다."
이런 노자의 무위자연의 도인 폐즉신(弊卽新)의 도리를 따른다는 것은 권력의 경우 영구히 그 자리에 집착하여 권좌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물러나는 것이 덕이요 지혜다.
그런데 그리스의 늙은 참주들은 죽는 순간까지 권력에 집착하며 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현자들은 그들을 싫어하였다. 이러한 이치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때가 되면 물러나 줄줄 아는 것은 덕(德)을 쌓는 일이며,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세상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길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변화하며 그 변화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3. 폐즉신(弊卽新)의 지혜는 발전과 평화를 지키는 일
중국 송대에 성리학을 열었던 두 학자인 정이천과 정명도는 형제였다. 정이천은 성리학에 금자탑을 세웠고 정명도는 유학뿐 아니라 도학에도 밝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어느날 형 정명도와 동생 정이천이 고을의 회갑 잔치에 초대받았다. 한참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대청에 앉아 주연을 즐기던 정명도가 마당에 내려와 민중(하층민, 일반사람들)들과 어울려 장구를 치며 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동생 정이천이 보기에 선비로서 체면을 구긴 것 같아 민망하였다. 그러나 정명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에 흥이 돋아 상것들(당시의 신분사회의 용어로 서민들)과 한바탕 실컷 놀고 있었다. 술과 흥에 취해 바지는 내려와 밟히고 도저히 지체 높은 선비 학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물 무렵 두 형제는 회갑 집을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이었다. 아침 일찍 동생 정이천이 형인 정명도를 찾아가 문안하였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두 형제가 앉았다.
정이천이 형에게 한마디 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어제는 좀 민망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정명도는 말했다. "허허, 자네는 어제 먹은 술이 아직 덜 깼는가? 회갑 집에서 할 일은 즐겨주는 것이 본질일세, 나는 그 본질에 충실했을 뿐. 인생은 무조주조도행(無所住鳥道行)일세."
이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새기게 한다. 회갑 집에서는 즐기고 축하해 주는 것이 본질이라는 것, 삶은 그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보면 본질보다는 상당 부분 허상에 몰입하여 산다는 것 등등을 성찰하게 한다.
두 번째로 '인생은 무조주조도행(無所住鳥道行)'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등의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의 큰 새인 붕새(장자 내편, 제1 소요유)지만 그가 날아간 흔적은 하늘에 남지 않는다. 새는 날아간 흔적을 하늘에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무조주조도행(無所住鳥道行)이라는 것은 무조주(無所住) 즉 거처하는 곳이 없으며, 조도행(鳥道行) 즉 새가 하늘을 날아간 것처럼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한 자리나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지 않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삶을 산다는 의미다. 새가 하늘을 날아간 자취는 남지 않기 때문이다. 정명도의 이 말에 담긴 것은 성리학적이라기 보다는 도학적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권력이나 돈, 명예를 한 번 차지하면 죽는 순간까지 그것에 집착하고 내려놓을 줄 모른다. 지나친 인간의 욕망과 집착 때문이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장관직과 권력에 집착하느라 온갖 비리가 드러나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가? 권력은 마약 같은 특성이 있어서 한번 집착하면 내려놓기 어렵다. 자리와 업적에 집착한 나머지 저지르는 오류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권력을 가지면 일정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자기 대에 모두를 이루려 하니 무리수를 던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강과 낙동강만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그 오류를 점검하며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다음 정권에까지 하였다면 문제는 적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 자기의 정책과 업적을 내세우려 하니 이전 정권의 한 일을 묵살하고 비리로 난도질한다.
그렇다. 옛말에 '큰 말이 없으면 작은 말이 큰말의 구실을 한다'고 하였다. 물은 흘러가기 마련이며 흘러간 물의 자리는 새로운 물이 채우게 된다. 붕새는 엄청나게 큰 새지만 한곳에 평생을 머물지 않으며 날아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의 권좌에 영원히 앉아 있으려고 하지 마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인생의 법칙이다. 그것이 폐즉신(弊卽新)의 지혜다.
대학(大學)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즉 생각과 행동 생활을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라고 하였다. 하나의 생각은 오래가면 낡게 마련이기 때문에 매일 성찰하며 새로운 생각과 생활과 덕으로 쌓아가라는 것이다.
요즈음 권력과 명예 자리에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 폐즉신(弊卽新)의 지혜를 새겼으면 좋겠다. 폐즉신(弊卽新)의 지혜는 평화를 지키고 자기와 사회의 발전을 다지는 일이다. 진정 자신을 지키고 나라의 발전을 이루려면 폐즉신(弊卽新)의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자리에 집착을 버리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떠날 줄 아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큰 덕이요 지혜이기 때문이다.
▶️ 敝(해질 폐)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敝(폐)는 ①해지다 ②깨지다 ③지다 ④버리다 ⑤황폐(荒廢)하다 ⑥해지다 ⑦줌통(활의 한가운데 손으로 잡는 부분) ⑧겸사(자기의 겸칭으로 쓰이는 접두사) ⑨가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헌신짝을 폐리(敝履), 헌 신을 폐사(敝屣), 낡은 선박을 폐선(敝船), 옷이나 기구 같은 것이 낡고 더러워져 못 쓰게 된 것을 폐건(敝件), 자기 가문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폐문(敝門), 임금이 자기 나라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폐복(敝服), 자기 회사를 낮추어 일컫는 말을 폐사(敝社), 폐습이 많아 어지러운 고장 또는 자기 고장을 겸사하여 이르는 말을 폐읍(敝邑), 자기 집을 낮추어 이르는 말을 폐옥(敝屋), 자기 상점을 겸손하여 이르는 말을 폐점(敝店), 자기 학교를 겸사하여 이르는 말을 폐교(敝校), 흉년이 들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식량이 부족함을 겸폐(歉敝), 해어진 옷과 부서진 갓이라는 뜻으로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를 이르는 말을 폐의파관(敝衣破冠), 해진 옷과 부러진 갓이란 뜻으로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를 일컫는 말을 폐포파립(敝袍破笠), 다해진 빗자루지만 스스로는 보배로 생각한다는 뜻으로 사람들은 남들이 쓸모없는 것이라 해도 자신이 보배로 여기는 것이 있다는 말을 폐추자진(敝帚自珍) 등에 쓰인다.
▶️ 則(법칙 칙, 곧 즉)은 ❶회의문자로 则(칙/즉)은 간자(簡字), 조개 패(貝; 재산)와 칼 도(刀; 날붙이, 파서 새기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물건을 공평하게 분할함의 뜻이 있다. 공평의 뜻에서 전(轉)하여 법칙(法則)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則자는 '법칙'이나 '준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則자는 貝(조개 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則자의 금문으로 보면 貝자가 아닌 鼎(솥 정)자가 그려져 있었다. 鼎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鼎자는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則자는 이렇게 신성함을 뜻하는 鼎자에 刀자를 결합한 것으로 칼로 솥에 문자를 새겨 넣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금문(金文)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 솥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솥에는 어떤 글들을 적어 놓았을까? 대부분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들을 적어 놓았다. 신이 전하는 말이니 그것이 곧 '법칙'인 셈이다. 그래서 則(칙, 즉)은 ①법칙(法則) ②준칙(準則) ③이치(理致) ④대부(大夫)의 봉지(封地) ⑤본보기로 삼다 ⑥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⑦성(姓)의 하나, 그리고 ⓐ곧(즉) ⓑ만일(萬一) ~이라면(즉) ⓒ~하면, ~할 때에는(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을 원칙(原則),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을 규칙(規則),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을 법칙(法則),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규칙을 벌칙(罰則),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표준으로 삼아서 따라야 할 규칙을 준칙(準則), 어떤 원칙이나 법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법칙을 변칙(變則), 변경하거나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을 철칙(鐵則), 법칙이나 법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헌칙(憲則),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기껏 해야를 과즉(過則), 그런즉 그러면을 연즉(然則), 그렇지 아니하면을 일컫는 말을 불연즉(不然則), 궁하면 통함을 일컫는 말을 궁즉통(窮則通), 서류를 모아 맬 때 깎아 버릴 것은 깎아 버림을 일컫는 말을 삭즉삭(削則削), 가득 차면 넘치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오래도록 번성하기는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만즉일(滿則溢),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圖謀)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흥하면 한번은 함을 비유하는 말을 월영즉식(月盈則食), 말인즉 옳다는 뜻으로 말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잘못을 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다는 뜻으로 자기의 잘못을 덮어두고 남만 나무람을 일컫는 말을 책인즉명(責人則明),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겸청즉명(兼聽則明), 예의가 너무 까다로우면 오히려 혼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예번즉란(禮煩則亂),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쉬움을 일컫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세상에 도덕이 행해지면 즉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나아가서 활동함을 일컫는 말을 유도즉현(有道則見), 논밭 따위의 등급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나역등칙(那易等則), 만물이 한 번 성하면 한 번 쇠함을 일컫는 말을 물성칙쇠(物盛則衰), 죽어서 남편과 아내가 같은 무덤에 묻힘을 일컫는 말을 사즉동혈(死則同穴),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즉휴(月滿則虧), 꽉 차서 극에 달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 짐을 일컫는 말을 영즉필휴(零則必虧),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충성함에는 곧 목숨을 다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해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충칙진명(忠則盡命), 예의를 잃으면 정신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운 상태가 됨을 이르는 말을 예실즉혼(禮失則昏), 물의 근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도 맑다는 뜻으로 임금이 바르면 백성도 또한 바르다는 말을 원청즉유청(源淸則流淸), 무엇을 구하면 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구즉득지(求則得之), 자기가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공중이 지켜야 할 법칙이나 준례를 만듦을 이르는 말을 이신작칙(以身作則), 새가 쫓기다가 도망할 곳을 잃으면 도리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는 뜻으로 약한 자도 궁지에 빠지면 강적에게 대든다는 말을 조궁즉탁(鳥窮則啄), 짐승이 고통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을 문다는 뜻으로 사람도 썩 곤궁해지면 나쁜 짓을 하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수궁즉설(獸窮則齧) 등에 쓰인다.
▶️ 新(새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근(斤; 도끼)部와 木(목)과, 음(音)을 나타내는 辛(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辛(신; 바늘)과 木(목; 나무)으로 이루어진 진(榛; 개암나무, 잡목숲)의 옛 글자에 斤(근; 나무를 베는 도끼)을 더한 글자이다. 나무를 베어 땔나무를 하는 일을 말한다. 나중에 나무를 하다가 되었다. 땔나무의 뜻은 초목(草木)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를 더하여 薪(신)이라 쓰고, 新(신)은 베다, 새롭다, 새롭게 하다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新자는 '새로운'이나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新자는 辛(매울 신)자와 木(나무 목)자,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新자를 보면 辛자와 斤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辛자는 발음요소이고 斤자가 '자르다'라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木자가 더해지게 되면서 지금의 新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新자는 본래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든다는 뜻이었지만 후에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라는 뜻이 확대되면서 '새로운'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新자가 '새롭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艹(풀 초)자를 더한 薪(섶나무 신)자가 '땔감'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新(신)은 (1)어떠한 명사(名詞) 뒤에 붙이어 새로운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중국(中國) 나라 이름의 하나. 왕 망(王莽)이 전한(前漢)을 쓰러뜨리고 세운 나라. 주례(周禮)에 따라 복고적인 개혁(改革)을 했으나, 적미(赤眉)의 난으로 망(亡)하여 광무제(光武帝)의 후한(後漢)으로 바뀜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새, 새로운 ②새로, 새롭게, 새롭게 다시 ③처음, 처음으로 ④새로움, 새것, 새로운 일 ⑤새해, 신년 ⑥새롭개 안 사람 ⑦새로 개간(開墾)한 땅 ⑧나라의 이름 ⑨새로워지다, 개선되다 ⑩새롭게 하다, 새롭게 고치다 ⑪친하다, 친하게 지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옛 고(古), 옛 구(舊)이다. 용례로는 새로운 세계를 신세계(新世界), 예술계나 체육계나 어떤 사회에 새로 등장한 신진의 사람을 신인(新人), 관직 같은 데에 새로 임명됨을 신임(新任), 새로 지어 만듦을 신작(新作), 새로 들어옴을 신입(新入), 출판물을 새로 인쇄하여 내놓음을 신간(新刊), 새로운 물품을 신품(新品), 새로운 형을 신형(新型), 새롭고 기이함을 신기(新奇), 새로운 소식이나 비판을 신속하게 보도하는 정기간행물을 신문(新聞), 완전히 새롭게 어떤 일을 하는 일을 신규(新規), 새롭고 산뜻함 또는 채소나 생선 따위가 싱싱함을 신선(新鮮), 새로 설치함을 신설(新設), 새로 건축함을 신축(新築), 늦은 봄이나 초여름의 초목에 돋은 새 잎의 푸른 빛을 신록(新綠), 갓 결혼한 남자 또는 결혼하여 새서방이 될 남자를 신랑(新郞), 갓 결혼한 색시 또는 결혼하여 새색시가 될 여자를 신부(新婦), 일체의 묵은 제도나 방식을 고쳐서 새롭게 함을 혁신(革新), 묵은 것을 없애고 새롭게 함을 쇄신(刷新), 모든 것이 개혁되어 새롭게 됨 또는 묵은 제도를 아주 새롭게 고침을 유신(維新), 취향이 매우 새로움을 참신(斬新), 옛 것을 고쳐 새롭게 함 또는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을 경신(更新), 가장 새로움을 최신(最新), 묵은 것을 새롭게 고침을 개신(改新), 새로운 것을 앎을 지신(知新), 새로운 것을 맞아 들임을 영신(迎新), 아주 새로워짐을 일신(一新),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읽기가 좋음을 일컫는 말을 신량등화(新凉燈火),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거나 들어서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신진대사(新陳代謝), 새로 정이 들어 얼마 되지 아니할 때를 이르는 말을 신정지초(新情之初), 새 것과 헌 것이 교대한다는 말을 신구교대(新舊交代), 새 것이 들어오고 묵은 것이 나간다는 말을 신입구출(新入舊出), 새로 두각을 나타낸 신인으로서 의기가 날카롭다는 말을 신진기예(新進氣銳), 땔감을 동나서 불이 꺼진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을 신진화멸(新盡火滅), 새봄 좋은 명절이라는 말을 신춘가절(新春佳節),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 짐을 일컫는 말을 개과자신(改過自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법고창신(法古創新),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뜻으로 세상에 대한 체면이나 명예나 사물의 모양이나 일의 상태가 완전히 새롭게 됨을 이르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