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에는 간증, 그리고 두번째 글입니다.
이 나눔 글에 쓰려고 하는 글 역시 간증 2편 이라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본문에 맞는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이 간증 글에 이은 또 다른 글의 넋두리거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 내용이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좋습니다.
22세 시절 .. 유아세례는 아니지만 일반 세례를 받고 이제 7년차 교회에 정착하고 동역자들과 신앙적인 교재를 나누려 하지만 아직 하나님깨 가까이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말씀을 듣고 또 한 주를 살아고 있는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의 가정은 제가 어렸을 때 명절 적마다 차례를 지내며 큰 댁에 시제나 제사가 있을 때마다 가곤 했는데 그 당시 저도 어렸지만 제사 라는 것이 그져 차려놓은 음식들만을 먹는 행사 라고만 여겨서 부모님으로부터 핀잔을 들었습니다 .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까지도 들었습니다.
" 넌 니 아빠 닮아서 제사를 좋아하고 큰집에 가서 푼수를 떨거냐 ?"
우리 어머니의 그 말이 지금까지도 상처가 되고 언제 해결될 지 몰라서 30이 된 지금까지 골몰하고 있는 제가 이렇게 용기를 내서 글을 쓰기전 많은 생각을 집에 오면서 했습니다.
달리는 전철 안에서도 눈물을 흘릴 것이 없는데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고 24~25세 사이에 비로소 교회 란 곳은 뭘 하는 곳인지 내가 예배를 드릴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알기 쉽게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형식적이 되진 않는지 ..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나고도 예배만 끝나고 오면 늘 초상집에 다녀온 것 마냥 아무 생각이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저는 예배의 처소를 집 근처가 아닌 타 지역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는 이유는 간증 고백 방에 써논 글을 읽으신 지체 분들은 대충 아실 거라 믿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처럼 저는 교회 다운 교회라 생각되는 지역의 예배 처소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예배를 하고 또 친교 교재와 목장 모임을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 같지만 저에게 있어 하나님은 편한 것 같지만 편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여겨 졌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많은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경험과 은사들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 .' 라는 의미는 내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비숫하지만 과정이 다른 것이지 결코 틀리다 라고 해석되지는 않는 다는 의미입니다. 사과와 배의 공동적인 특징이 과일 이면 그 맛은 다릅니다.
배는 달달하고 사과는 신 맛이 납니다.
이것이 서로 다른 점이고 공통 점은 과일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찬가지의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많은 차이를 두는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그 문장 하나 하나에서 우리는 실수를 범합니다. 비 그리스도 인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 에이 그 딴거 뭐하러 믿어?" " 그 시간에 돈 벌어 놓은 걸로 그냥 놀러나 다니지 . 하며 거부 반응을 보이는 반면 믿는 사람의 경우는 그들에 비해 너무 미혼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함정을 파놓고 있습니다.
저도 믿는 사람의 입장이지만 같은 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에 대해 다 알지 못합니다.
이를 테면 어떤 옷을 입었으며 또 중 고등학교 때 무슨 꿈을 꾸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들은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한가지 예화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부대껴본 일입니다. 이 곳은 아니지만 크리스챤 들끼리 모인 온라인 사귐방에서 섬김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겪은 일 중 하나는 소개방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실례가 되지만 비교를 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서 아름다운 싹을 틔우고자 하는 취지는 좋다 칩시다. 그 들 중 대부분이 자매는 안 보입니다. 대다수가 형제이며 모태신앙인 사람도 있고 그렇더라도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빈말이지만 저는 처음 회원으로 들어와서 활동할 때는 엄청 활발하게 하다가 이제 30초반이 되어서야 그 활동들이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은 그 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좁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저는 그동안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듯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라는 말씀처럼 배우자를 찾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그 분의 뜻을 따라 한걸음 더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뭐든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잘 앎에도 전혀 마음에 깨달음이 없는 형제들을 보고 한마디를 했을때는 나의 문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글 속에 나의 모습도 그들의 모습과 전혀 똑같은데 말입니다. 제 딴에는 억을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하며 자신만의 직업이나 부모님의 신앙기록이 있지만 저는 그런 것이 없었던게 무척이나 억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섬기는 공동체의 목사님께 살며시 이야기를 한 결과 " 그들을 향해 긍휼히 여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 에서는 상대도 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보여지곤 했습니다.
마음이 아팠던 것은 왜 그들이 혼자 살고 있으며 재혼자는 왜 생겨 났는가 ?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친구를 찾으면 자신의 신앙 체증이 풀릴 거라고 예상을 하는 형제들도 적지 않고 또 심지어 자매가 글을 남기면 좋아요 를 누르듯 댓글을 다는 형제도 가끔 보여 졌는데, 그 것은 인간적으로 볼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감정 때문에 전화번호를 공개 하고 싶어 안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자기 믿음을 체울 수 있는 믿음의 반려자 정도로 생각을 한 비율이 한 60%는 훨 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합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것 어렵습니다.
그러나 포기 해서도 안됩니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자신이 세례를 받아서 의무감 때문에 no no
그런거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세례를 받아서 라고 한다면 세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 예화로 북한 정권이 싫어서 탈북한 새터민이 있습니다.
그 탈북 여정 결코 쉬운 길~ 고속도로의 길이 아닙니다.
탈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용과 수고가 있었겠습니까
비교를 하긴 뭐하지만 탈북자로서의 삶과 신앙인으로서의 삶은
극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그 길까지 인도하신 이가 누구인지.. 주체의 차이입니다.
탈북은 확률 게임이며 살면 남쪽으로 오는 거고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만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길은 그런 확률이 없는 대신에
전혀 그런 생활로 산 사람이 아닌 이가 갑자기 이상한 놈이 되 버리면
바로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며 친구들이 멀리하거나 가족들이 멸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길입니다.
"쟤 왜 저래 ?" 라는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는 티낸다 라고 할 사람들 분명히 많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는 모든 주권 그리고 천국의 시민권을 보장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태도나 인물됨됨이 등은 모두 하나님이 만들어 가십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 믿음의 형제들은 적어도 믿음의 자매들은 많으니까 조급해 하지 말라." 고 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계 여러나라들을 여행하는 것은 항공료 , 여권 그리고 여행 경비 등을 통해서 할 수 있지만 가장 어려운 나라는 천국 임을 저는 믿습니다.
하나의 가식도 안 떨고 감히 신앙을 한다고 말 하기는 뭐합니다.
신앙을 한다는 것은 같은 공동체의 사람들끼리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성숙한 길로 나아가는 길 인데 그 길은 머나먼 탈북 여정 보다, 외국 여행을 하는 길보다 더 어려운 길. 그것이 바로 하나님깨 가까이 가는 길입니다.
그 가치관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모든 지체들 되길 소망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