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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비행기보다는 요술을 부리는 기똥찬 방망이 하나 가 간절하다. 내 생각을 텔레파시로 보내고, 그것을 척척 받 아주는 방망이 말이다. 대견사를 찾아가는 차 안에서 봄날의 따뜻한 날씨가 내 영 혼을 데리고 멀리 여행을 갔다. 산길을 오르느라 부릉부릉하 던 자동차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더니, 이제는 그 소리도 들 리지 않는다. 몸은 의자에 의지하여 비스듬히 쓰러지려 하고 고개는 앞으로 수그러졌다.
여기가 어느 세상이고,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나 서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누, 누, 누구십니까.”
"누구긴, 네 놈이 나를 간절히 찾았잖아.”
“찾은 일이 없는데요. 도깨비가 가져다 준다는 ‘부자 방망 이’는 찾았지만…….”
“방망이가 날개가 달려서 저절로 날아오더냐. 내가 주어야 네 놈이 가질 수 있잖아”
“그럼, 도깨비이십니까.” “무식하긴, 아는 게 도깨비뿐이네, 나도 내 이름을 몰라. 아 래 세상에 사는 어떤 녀석이 욕망의 텔레파시를 보냈나 보지. 나를 내려가라고 한 것도 네 놈이 보낸 욕망의 텔레파시 때문 이구나. 내 참. 구름을 타고 이 세상 어디든지 갈 수도 있고, 네 놈처럼 원한이 사무친 놈들의 원한도 풀어줄 수 있는 높 고, 높은 분이다. 하여간에 그런 분이다.”
“그러면 선생님, 아, 선생님보다는 훨씬 더 높은 분인데 뭐 라 부를까. 아 도사님, 신선님, 신령님…. 그러면 도깨비방 망이가 아니고 도사 방망이인지 신령 방망이인지를 주실 수 있겠네요.”
“도깨빈지, 신령인지는 모르겠고, 너의 기氣가 통通하는 방 망이를 하나 주지. 꼬부랑말을 좋아하는 요즘은 기라 하지 않 고 텔레파시라고 하든가. 속어로는 ‘기똥 찬 방망이’라고 하 는 것을 하나 주겠네.”
허연 수염을 바람에 날리면서 서 있던 영감탱이가 눈 깜작 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야구 방망이를 닮은 몽둥이 하나가 놓여 있다. 뚝딱하고 두드릴 수 있는 자그마한 방망 이를 원했는데 무식하게 야구 방망이라니, 이건 뚝딱이 아니 고 아예 작살을 내버릴 몽둥이 같다. 어, 이것 봐라.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몽둥이는 어느 사이에 예쁘고 아담한 다듬이 방망이가 되어 있다. 조심스레 집어 들 었다. 무겁지 않았다. 내 힘으로 다루기에 딱 이다. 공중에 휘 둘러 보니 휘익하는 소리가 나니, 소리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작은 항아리를 내리쳐 보았 다.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조각조각 부숴졌다. ‘와장창’하는 소리에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신령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 만 내 마음을 바로 읽은 도사임은 분명하다.
기똥 찬 방망이라! 정말 내게 필요한 것도 해결해 줄까. 나는 다시 방망이를 들고 바닥을 살짝 두드리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만원짜리 한 장만 주십시오.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아, 이것 봐라 은행 에서 방금 찾은 듯한 신권 한 장이 눈 앞에 놓여있지 않는가. “이 방망이는 신용카드네. 어디서 오는 돈인지는 모르지만 현금 지불 카드네.” 나는 손오공 생각이 났다. 여의봉을 챙기고 먼먼 여행을 떠 나는 손오공 말이다. 손오공은 현장법사를 모시고 가면서 온 갖 악귀들을 여의봉으로 때려 부순다. 손오공의 여의봉이 악 귀를 박살 낼 때마다 기분이 얼마나 좋았든가. 통쾌, 상쾌, 유 쾌 하지 않았든가.
나도 이 기똥찬 방망이를 들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악당들을 박살 내는 여행을 떠나보자. 작은 배낭에 간단히 짐을 챙기고 둘러맸다. 방망이를 배낭 에 넣으려니 너무 크다. 노인네가 들고 다니려니 내 행색에 어울리지 않았는다. ‘좀 작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어, 이놈 봐라. 스르륵 작아져서 볼펜 크기가 되었다. 기똥 찬 방 망이가 맞네. 이건 나와는 완전히 텔레파시로 통하는 나의 아바타이네. 나는 안주머니에 챙겼다. 슬슬 여행이나 떠나보자. 발을 떼니 몸도 새털처럼 가볍고, 내가 마음만 먹으니, 그쪽 으로 발이 저절로 움직여서 걷고 있다.
- <기똥氣通 찬 방망이-1> 전문全文 <기똥 찬 방망이 3>
저녁녁이면 매일이다시피 아내가 작업하는 담미헌까지 걸 어서 찾아간다. 나의 일과이다. 이제는 운전 면허증을 갱신 하려 해도 치매 검사도 받아야 하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 면서 운전 솜씨를 못 믿겠다고 하니, 나도 자존심이 있다면 서, 구질구질하게 성질을 죽여가면서까지 면허증을 바꾸기 보다는 차를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아내의 작업실까지 4km쯤 되는 길을 걷는다. 내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의 하나가 ‘늙은이는 걷기 운동 이 건강에 최고다.’ 면서 걷기를 합리화한다. 내가 결정한 일 이 마치 종교적 신념이라도 되듯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 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펴고, 다리가 흔들리 지 않도록 걷는다. 그런데도 내 자세가 정말 꼿꼿한지 믿음 이 가지 않는다. 발이 헷갈리면서 뒤뚱거리지는 않는지, 걷 기를 할 동안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왠지 길의 보 도블록이 울퉁불퉁해 보인다. 내가 뒤뚱거린다면 보도블록 탓으로 돌린다. 길을 오고 가는 사람이 걸기적거려서 바른 자세를 하고, 똑바로 걷기가 힘이 든다면서 투덜거린다. 방망 이가 또 참견이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남이 잘못했다는 거지.”
“요즘 세상의 진리잖아. 내로남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우셔서 가지고. 이런 것도 원하는 대 로 들어 주어야 해요? 나더러 자꾸 이런 걸 원하면 내가 아무 리 주인님의 분신이더라도 말을 따르지 않는 수도 있어요.
” “방망이 씨,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당신의 숙명이 야. 당신은 나의 욕망이잖아. 하나님이 당신을 그런 용도로 만드셨잖아. 나의 욕망을 따라야 하는 것이 숙명이란 걸 인 정해야지.”
‘숙명’이란 말을 되씹더니 자기는 당신의 욕망을 이루어 주 어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서 방망이도 입을 다물었다. 하기 싫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욕망으로 만든 자기의 숙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차가 없어지고 나서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에는 관심이 멀어졌다. 길이 한산하든, 홍수 났을 때의 마을 앞 개 울처럼 차가 길을 넘쳐나도 남의 일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이 다니는 길, 보도라고 하는 것이 더 관심을 끈다. 보도라면 사람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니다. 길 위로 다닐 수 있는 것 들은 모두 다닌다. 다니라고 만든 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 탓할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도로 교통법으로는 차라고 한다. 자전거 가 보도로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은 법이 하는 말이고, 현실 의 자전거는 자기가 보도의 주인인 양 휘젓고 다닌다. 나도 다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마주 오던 자전 거가 내 곁을 지나가면서 내 왼쪽 팔을 툭 치고 지나갔다. 팔 을 보니 상처가 난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프다. 나는 멈춰서 서 뒤돌아보았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 았는데, 그 사람도 자전거를 멈추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나 를 돌아보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할 태도가 아니다. 뭔가 내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내가 사과를 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나더러 듣기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은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돌아섰다.
걸어오면서 생각해 보니 저 앞에 자전거가 오는데도 나는 내 길을 똑바로 걸어갔다. 나는 자전거가 비껴가리라고 생 각했고, 자전거는 자전거대로 부딪히면 당신이 손해니 네 가 비껴가리라고지 라고 생각했을까. 내 나이가 얼만데, 이럴 때 내가 가장 쉽게 들고나오는 무기가 나이이다. 앞에 영감쟁이가 어기적거리면 젊은 놈이 비켜가야지. 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방망이 씨, 내 말이 맞지.”
“누가 뭐래. 당신 말이 백 번 옳지.”
“기똥 찬 방망이 씨, 내 말이 옳으면 그 녀석에게 혼줄이 나 도록 해주어야지.”
“그러고 싶지만……, 그 녀석의 자전거가 꽈당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당신더러 치료비에, 뭐라더라 정신적인 뭐 뭐 하면서 돈을 청구할 텐데. 그래도 그 녀석을 길바닥에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도록 해줄까? 감당할 자신 있어요?”
“세상이 그렇게까지 험할라구.”
“허어, 이 영감탱이 봐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더 험하다오. 떠도는 이야기보다 더 험해요. 일부러 사고를 위장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뒤돌아보니 자전거는 이미 멀리까지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불을 환히 켠 오 토바이가 굉음을 울리면서 인도로 뛰어오르더니 저만치 앞 에서 다시 차도로 들어간다. 빨리 가야 할 텐데, 앞에서 우회전한답시고 차가 얼쩡거렸나 보다. 신호등 앞에 서 있던 나는 깜짝 놀라서 흠칫 뒤로 물러났다. ‘저러다가 사고를 나면 어쩔려구.’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방망이 씨가 잽싸게 대답한다.
“매스컴에서 한 말씀 하시겠지. 빨리 배달을 끝내고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50대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합니다. 집에는 등록금을 내야 하는 귀여운 딸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면서 눈물을 짜내는 온갖 언어들을 사용하여 슬픈 분위기를 만들겠지.”
“사실이 아니잖아. 무리하게 교통 법규 위반을 하다가 난 사고잖아. 그 사람 때문에 오히려 선량한 운전자가 피해를 보는데.”
“허허, 모르시는 말씀, 매스컴에서 배달하는 오토바이 운 전자가 잘못했다고 보도하는 걸 본 일이 있어? 뉴스가 관심 을 끌려면 평범한 사실로는 안 되지. 하층민은 무조건 정의 롭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상류층 사람에게 핍박받고 시달리려야 하고, 그런데도 가족을 위해서 개미처럼 열심히 살 아가는 사람이라고 해야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 그렇게 도색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매스컴을 외면하지. 뭐라더라. 자기들도 먹고 살려면 시청률에 목을 매야 한다잖아. 그렇게 하려면 사고를 낸 사람이 아니고 당한 사람이 악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거야. 매스컴도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고 질질 짜잖아.”
“사고를 당한 운전자는 잘못이 없는데도.” “자기 차를 운전하는 상류층이니 무조건 나쁜 놈이지. 왜 오토바이가 아니고 네 발 달린 차를 운전하고 다니느냐는거 야. 그게 죄지.”
“우와, 오토바이에 부딪히지 않았음을 감사, 감사. 또 감사 해야겠네. 까딱했다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을 잡아먹은 나쁜 놈이 될 뻔했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 한 방법입니다. 나, 기똥찬 방망이가 기똥 찬 충고를 하겠습 니다. 감성을 건드리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로 충고합니다. 인도이든, 차도이든 사고가 나면 젊은이보다는 늙은이의 사 망률이 훨씬 더 높아요. 이건 통계이고 과학입니다. 과학이 니, 미신이니 또 내가 옳니, 네가 거르는지를 따지기 전에 안 전이 제일이지요. 이것이 노인이 명심하고 살아가야 하는 방 법입니다. 노인의 소망은 감정을 만족시키기보다는 하루라 도 더 사는 것 아닙니까.”
“방망이 씨의 말, 명심하겠네.”
- 《기똥찬 방망이 3》 전문全文
나는 이런 형식의 글을 연작으로 12편을 써서, 수필집 《노 년의 일상》에 실었다. 나의 주변에서 일어났고, 내가 겪었던 일이니만큼 공상 세계 정도의 거짓은 아니다. 다만 내 상상력 으로 소설처럼 가공하여 수필이랍시고 쓴 글이다. 또 하나는 이와 같은 쓰기 기법으로, 수십 장의 원고지를 메워 단편에 가까운 글도 써서 《노년의 일상》에 실었다. 소재 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라기보다는 매스컴 등을 통한 간접 경험을 단편 소설처럼 써보았다.
수필이 아니고 소설이 맞을 듯하다. 그러나 형식에서는 <기똥찬 방망이>와 같은 방법이 다. 내가 100세까지 산다면 지금의 내 글을 오늘처럼 보게 될 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00세까지 살 리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지금, 새삼 내 글을 읽어보니 감회도 느껴지고, 헛되게 나이만 먹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더라도 남아 있는 나 날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수필이라는 글쓰기는 계속하 겠다고 다짐하면서, 수필집 《노년의 일상》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지금까지 내가 쓴 수필집을 다시 읽어 본 소회는, 4~50대 에 쓴 초기의 글에는 감성을 듬뿍 담은 회고 조의 글이 많았 다. 나이로는 60대였고, 수필 글로써는 중기에 해당하는 <뭐 하는 짓이고>와 <잘 사는 게 뭐지>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글이다. 감상문에서 방향을 조 금 튼 글이라고 읽었다. 최근에 쓴 수필집에는 우리 수필의 형식이나 내용에 대하여 회의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 보는 글이다. 내가 아홉 번째와 열 번째의 수필집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용보다도 새롭게 시도해 본 수필형식에 의미를 더 두 고 싶어서이다. 다음번의 수필집에는 또 어떤 글이 실릴까? 한 권의 책을 더 낼 수는 있을까. 노인일수록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 늘만, 현재만을 열심히 살라고 하지 않는가. 책을 생각하다 니… 쯧쯧. 살아 있는 나날 동안은 그냥 그렇게 글을 쓰다가 글이 모이면 책을 낼 수도 있고……. 모이지 않으면, 그 또한 나의 인생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생각했다. 남아 있는 날들에는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하지 말 자. 그냥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글로 만들어보고, 아니면 그냥 지나쳐 가고…(2024. 3.)
내 글을 내가 읽고, 나의 소감을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