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서울의 봄은 시골의 봄보다 훨씬 춥고 어둡다.
빌딩들이 만들어 놓은 길고 어두운 그림자들이 온 도시를 뒤 덮고 있다.
도로들도 모두 시커먼 아스팔트로 감싸져 있어서 어느 구석에서 질경이들도
민들레도 소리쟁이도 냉이도 씀바귀도 나올 틈이 없다.
이들을 모두 짓누르고 있으니 추울 수밖에...
이들이 몸을 펴서 기지개를 켜면 해님도 그들에게 환한 빛을 비춰주어서
봄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졌었는 데...
서울에는 해님을 반기는 것들이 별로 없다.
가로수마저도 빌딩들의 그늘에 가려져 해님을 불러 오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학교 뒷 산이다.
사람들이 남산이라고 부르는 그 산에는 진달래, 개나리, 벗 꽃 나무들이 보이고
참 나무랑 소나무들도 보인다.
방학동안 교복도 다시 맞추고 교과서도 다시 받아서 외모는 그런 데로 서울 아이 같이
변해 있다. 머리모양도 고치고...
이제는 학교도 제대로 찾아 갈 수 있다.
나는 걸어서 학교에 가는데 많은 아이들이 시커먼 자동차를 타고 교문에 와서 내린다.
길도 좁은 데 옆에 있는 또 다른 노랑색 초등학교에도 시커먼 차를 타고 오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길이 어지간히도 복잡하다.
저런 시커먼 자동차는 시골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다.
3학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서울이라서 그런지 정말 열심히들 공부한다.
쉬는 시간에도 몇 명만 밖에 나가고 모두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 놓고 있다.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는 아이들...’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나는 쉬는 시간이면 자꾸 밖에만 쳐다 본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운동장 끝에 있는 개나리며 봄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 짝꿍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 같다.
교과서 옆에 요점정리를 너무도 잘해서 시험 볼 때 좋은 자료가 된다.
마음도 착하다. 나를 데리고 매점에 가 주었다.
매점이 뭔가 했더니 기차역 중간쯤에 있는 휴게소 같은 것이다.
주로 먹을 것들을 팔고 있었다.
대부분 이름 모를 것들이어서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다음에 용돈 받으면 한 번 사먹어 봐야지...
오늘은 비가 와서 체육시간에 지붕이 둥근 곳에 갔었다.
그렇게 넓은 마룻바닥은 처음 보았다.
큰 지붕 아래 전체가 마룻바닥이었다.
우리 학교는 농구부가 유명하다고 하던데 이곳에서 연습하는 곳인 것 같다.
농구 공대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며 목소리가 높은 천정에 울려서 신기한 소리를 낸다.
시골에서 비오는 날 체육시간은 교실에서 자습하는 시간 이었는데....
서울에서는 비가와도 체육을 할 수 있구나!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학교 갔다 오면 숙제하고 지쳐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일찍 정신없이 일어나서
다시 학교가고 그럭저럭 한 학기가 다 지나가고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느 고등하교 갈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중학교까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의 선택으로 밀려왔는데....
아무래도 고등학교도 비슷하게 될 것도 같지만 성적도 좋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걱정이 밀려온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
“현진이는 상고를 졸업해서 취직을 하고, 아버지가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도와야 한다”
‘상고가 뭐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길을 또 걸어야 할 것 같다.
드디어 여름 방학이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매일 다니던 남산이지만 꼭대기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부모님이랑 동생들이랑 케이불카를 타고 남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너무 높은 탑도 있고 팔각정이며 무엇보다도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서울의 광경에 입이 딱 벌
어진다.
서울은 크기도 하다.
빌딩들이 끝도 없이 세워져 있고, 성냥각만한 집들도 다닦다닦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남산도 좀 지쳐 보인다.
시멘트 덩이들이 남산을 많이도 덮어 버렸다.
저쪽 밑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펼쳐진 계단도 그렇고 팔각정과 남산타워, 식물원에 이르는
산꼭대기 정수리는 모두 시멘트로 덮여 있고 곳곳에 건물들이며 도로들이며
이것저것 이 작은 산에 많이도 지어 놓았다.
시골 산에는 작은 암자 하나 있거나 그것도 없는 산이 대부분인데...
어휴! 서울은 무겁다.
그래도 제일 시골을 닮은 곳 그곳이 남산이다.
우리 반에 어떤 아이가 몇 일전에 나를 찾아와서 ‘너 혹시 진짜 소 봤어?’
‘진짜 벼 봤어?’하고 물어봤는데...
우리 집에 키우던 소도 있고, 마을에는 소똥천지고 소똥구리도 많이 있었는데...
벼 심은 땅이 너무 많아서 머슴아저씨가 2명이나 있었고 엄마가 무척이나 힘들어 했었는
데...
어떻게 소를 말로표현하고, 누런 황토 흙에 자그마한 모를 심어서 나중에는 내 키 만한
벼 나무가 자라고 이삭이 나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설명 할 수 있겠니?
만약 내가 시골에 갔을 때 친구들이 서울에 대해서 물어봐도 역시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
어떤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훨씬 확실하게 와 닿는 것들이 세상에는 부지기
수다.
방학이 되니 시골 생각이 간절하다.
앵두랑 살구랑 벗지는 다 떨어졌을 테고 지금쯤은 산딸기랑 좀 일찍 심은 토마토랑
하우스에서 자라는 참외랑 수박 먹을 계절인데..
시골에 가보고 싶다.
논에는 개구리들이 많을 테고 벼는 내 무릎을 지나서 허리 쪽을 향해 자라고 있을 텐데...
너무 궁금하다.
학교 다닐 때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 생각도 못했는데
방학이 되고 보니 더욱 시골이 그리워진다.
지금쯤 냇가에서 천엽도 할 때가 됐을 텐데...
물에 빠진 나를 건져준 석이는 잘 있으려나?
내가 준 조개껍질 목걸이는 마음에 들었을까?
지금 또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 다가왔다.
석이에게 이 모든 것을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친구 하고 싶으면 답장해 달라고 말해야지.
고향 친구에게 편지 한 통 쓰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우체부 아저씨는 많기도 많은 편지를 가지고 다시시던데...
다른 사람들은 편지 쓰는 것이 쉬운가 보다.
나만 이렇게 어려운가?
처음해보는 서은 사소한 것도 힘든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시도해 보자.
'석에게'
그동안 잘 지냈니?
나 최현진이야.
나 기억나니?
서울로 온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시골이 너무 궁금하다.
살구꽃, 복숭아꽃은 벌써 졌을 테구 사과 꽃이랑 배꽃은 지금 한창이겠네.
자전거 타고 다니던 제방뚝도 보고 싶고 시냇물도 궁금하다.
참!
옛날에 냇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나를 구해준 것 정말 고마워.
늘 마음속에 고맙다는 생각은 많이 했는데 제대로 인사한번 못했다.
미얀해.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너랑 친구하고 싶어서 친구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도통 용기가 나지를 않아서 결국 이렇게 이사를 오고 시간이 지난후에 편지로
이야기하게 됐다.
마을에서 함께 자라서 모두 친구이지만 너랑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를 않았어.
지금 시간이 이렇게 지나고도 너랑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고삐를 늦추지를
않고 똑 같은 마음이야.
멀리 떨어져서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줄 알았는데 시골에 있을 때랑 똑같은 크기로
너랑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건 내 생각일 뿐이야.
친구가 혼자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혹시 너도 나와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답장해주면 고맙겠다.
방학동안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잘있어.
최 현 진 씀.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도 힘들었는데
답장을 기다리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마도 석이는 나와 친구하고 싶지가 않은 모양이다.
포기해야지.
혹시 잘 못 간 것은 아닐까?
그럴 리가 없다.
우리 마을 이름만 쓰고 사람 이름만 쓰면 잘 못 갈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더 보내고 싶지만 그것은 석이에게 부담만 더 주는 것 같아서
그만 포기하기로 하고 마음을 접어야겠다.
세상에는 어떤 일에 뜻을 세우고 용기를 내서 실행할 지라도 보상 받지 못하는 일이 있고
도리어 해가 되는 경우나 내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필요할 때 용기를 내서 소신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7.
현진이가 주고 간 조개껍질 목걸이가 나의 삶에 큰 용기와 힘을 준다.
3학년이 되면서 진로문제로 나름대로 혼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준이는 3학년 초에 서울에 있는 공고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 친척이 있는 곳으로
혼자서 올라갔다.
아마도 준이 말에 의하면 그 공업고등학교를 나오면 군대 가는 것도 면제가 되고 전기공사에
100% 취업도 되고 5년 동안 그곳에서 근무하면 사회 경험이나 경제적인 것이나
군대 갔다 온 사람보다 훨씬 바르다고 한다.
준이 녀석은 결단력이 강하고 남자다운 면이 있다.
멋있는 녀석이다.
서울 생활이 어떤지는 몰라도 쉽지 않을 텐데 훌훌 벗어버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용감하게 미래를 향해 뛰어 달리는 그 모습이 부럽다.
아마도 나는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는 힘들 것 같고
최소한 군에 있는 학교에 진학해야한다.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는 그냥 갈 수 있지만 군에 있는 학교는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3학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현진이와 같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현진이는 서울 어디로 갔는지 동네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조개껍질 목걸이가 들어있는 작은 털실 지갑에 무슨 주소나 전화번호라도 적어 줬으면
편지라도 했을 텐데....
목걸이 외에 아무것도 들어 있는 것이 없다.
무슨 의미로 이것을 주었는지도 자꾸 햇깔린다.
이것을 주고 아예 정을 떼어 버리려고 그랬나?
아니면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것인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고맙다. 최현진!
너의 손길을 느낄 수 있고 너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너의 분신을 남겨주어서....
정신없이 공부하다 틈이 날 때면 더욱 그리워진다.
너를 그리워하는 에너지를 공부하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쓰고 있다.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리고 더 많이 그리워해야지.
너는 나의 삶에 이모저모로 큰 힘을 주는 에너자이져다.
그리고 방학에는 너가 살고 있는 서울에 꼭 가 볼꺼야.
기다려라. 최현진!
우리 누나네 집은 봉천동인데 현진이는 어디에 살고 있으려나?
여름 방학이 길지를 않아서 빨리 갔다가 한두주 놀다 와야겠다.
서울에서 참고서도 좀 사고 필요한 것들도 좀 알아 볼 겸 좋은 기회다.
“큰 누나 나 이번 방학에 누나네 놀러가려고, 서울역에 몇 시 차니까 나와 있어줘.”
“알았다. 어머니한테 고춧가루랑 마늘이랑 참깨랑 들기름 좀 네 편에 보내 달라고해.
서울 것은 영 맛이 없어서...“
누나들은 시집을 가서도 꼭 우리집에 있는 것을 갔다 먹으려고 한다.
어머니 말씀에 딸들은 “눈 뜬 도둑놈”이라고 하시더니 맞는 듯 하다.
여기가 서울역이구나.
아마도 현진네도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될 텐데...
“누나 여기”
“수고했어. 아이구, 이거들고 오느라고 수고했다.
석이 많이 컸네. 언제 이렇게 컸어?
누나보다 훨씬 키가 더 크네.
어머니 아버지는 모두 아녕하시지?"
“응”
“가자”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오려면 서울을 눈여겨 봐두어야겠다.
누나에게 현진네 소식을 좀 물어봐야 할 텐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벌써 서울에 온지도 삼일이 지났다.
매형께서 서울 구경 시켜주신다고 밖에 나가자고 하신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어디에 왔는데 느낌이 산 중턱쯤 되는 듯하다.
서울이 저기 발 밑으로 다 보인다.
에스컬레이터라는 것을 생전처음 타고 남산이라는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이 기계는 신기하다.
산 중턱에서 줄을 드리워 산 꼭대기에 연결하고 그 줄을 따라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버스이다.
꼭 두 개의 선에서 두 개의 버스가 산 계곡 중간쯤에서 만나서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내려간다.
매형이 퇴근하고 오셔서 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은 오후 시간이다.
이 시간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줄이 끝도 없이 서서 기다린다.
몇 걸음도 안 돼 보이는 산이 구만 굳이 이것을 왜 타고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현진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빙둘러 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왜 이것을 타고 가는지 알 것 같다.
줄에 매달린 버스 안에서 서울 시내 사방이 다 보이고 만약에 걸어 올라갔다면
나무들 때문에 볼 수 없을 다른 풍경을 이것을 타고 느낄 수 있다.
저쪽에서 내려오는 케이불카를 한번 유심히 쳐다본다.
‘앗, 현진이다’
‘분명 현진이다. 현아도 있고, 아주머니 아저씨도 보인다.
현진네 식구 모두다 같이 소풍이라도 왔다 가나보다.
현진이는 어디를 보는 거야?
저 멀리 빌딩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르키고
즐겁게 웃고 있다
‘잘 지내고 있구나! 최현진!
내려서 따라가 볼까?
내려오는 케이불카 줄도 너무 길다.
벌써 어디로 가버렸겠지?
어휴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현진이를 봤으니...
어디 사는지만 알면 좋겠는데...
“큰누나 나 작은 누나네 좀 갔다 올게?”
“그래, 작은 누나 보고 데리러 오라고 해줘”
“작은 누나 잘 지냈어?”
“응, 왠 일로 우리 집까지..”
“누나는 바쁘지?”
“조금”
“누나 나 서점에 좀 데려다 줘”
“참고서 좀 고르게”
“알았어”
“내일 누나가 일찍 퇴근해서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응”
작은 누나 네가 사는 동네는 화곡동이라는 곳인데 좋은 집들이 즐비하다.
현진네는 부자 였으니까 이런 집으로 이사를 왔을까?
서점에 누나랑 같이 갔다.
왜 서점이 이리도 넓은지 우리 동네 장터보다 더 넓어 보인다.
“석아 잘 따라와. 아마도 참고서는 저쪽에 있을 것 같은데...”
“왠 참고서 종류가 이리도 많은 거야”
“누나가 필요한 것들 골라 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네가 고를까?”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쓸 것은 내가 고를게. 누나는 서울에서 제일 많이 보는
참고서 골라줘“
“알았어”
서울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참고서가 있으니 공부를 잘 할 수 밖에...
현진이도 이런 참고서를 보고 공부할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
2주일 동안이나 현진이에 대해 너무 궁금했지만 결국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작은 누나나 큰 누나 모두 현진이네 소식을 모르는 것 같다.
알면 혹시라도 말할 때 한번이라도 이야기가 있었을 텐데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용기라는 것이 무엇일까?
지혜란 무엇일까?
지혜는 필요한 시간 적절한 때를 골라서 현진이에 대해 용기를 내어 물어 보는 것인데 쉽지
가 않다.
지혜롭게 시간과 장소, 사람을 분별하기도 힘들고, 용기있게 소신있는 행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 많은 지혜와 용기를 갖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48.
2주일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잘도 돌아 다녔다.
사람들은 많이도 보았는데 내가 진정 만나고 싶은 사람은 제대로 보지를 못했다.
이런 느낌이 그런 느낌일까?
넓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느낌!
저쪽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보았는데 다시 가보니 벌써 모래 속으로 쓸려 들어가서
보이지 않고 다시 헤매야 하는 느낌!
이제 필요한 참고서들도 모두 챙겼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겠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현진이와 왠지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또 다시 멀어지겠구나...
현진이와 마지막 만났을 때라도 뭐라고 말이라도 할껄 잘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현진이를 볼 수 있고 다시 친구할 수 있을까?
케이불카에서 봤을 때 소리라도 지를걸 그랬나?!
아니면 다른 케이불카를 타고 따라 가 봤으면 덜 후회가 됐을까?
용기! 용기!
사랑을 가지려면 최소한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혜! 지혜!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면 마지막 때까지 나에게 주어지는 기회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큰 교훈이다.
이제 지혜와 용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지혜와 용기는 기회라는 녀석이 왔을 때 빛을 바라는 데 기회라는 녀석은 또 언제나 오려나?
“누나 나 이제 시골에 내려 가 봐야겠다.”
“벌써 가게? 우리 애들도 너 좋아 하구 나도 너 있어서 편했는데...”
“오늘 오후 기차로 내려가려고. 부보님도 걱정이 되고”
“응, 그래”
“누나 잘 있어. 아버지 어머니께 편지도 자주하구”
“알았어. 이것 갔다 부모님께 드리고, 자, 이것은 네 용돈, 그동안 수고했다.
조카들 돌보느라고,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
“고마워. 잘 있어. 누나”
“현이랑 진이도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말씀 잘 들어.
그러면 다음에 삼촌 와서 더 좋은 것들 많이 만들어 줄게“
“알았어. 삼촌 안녕!”
또 서울역에 왔구나!
이곳에 오면 왠지 현진이와 가까워지는 느낌인데 이제 좀 멀어지는 느낌이려나...
복잡하고 딱딱한 서울을 벗어나니 마음도 단촐 하고 머리도 시원하다.
서울역을 떠날 때 우울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렇지 않다.
서울역에 있는 몇 그루 커다란 나무에 신기하게도 까치들이 날아와 울고 있다.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
아직 서울에서 살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서울이 익숙하지도 않고 그리 좋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차가 점점 서울을 지나가면 갈수록 넓은 들이 눈에 들어오고 늘 보던 반가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지금 점점 현진이와 멀어지고 있는데...
세 시간이 후딱 지나 버리고 기차가 읍내에 들어선다.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집에다 엿을 붙여 놓고 온것도 아닌데 왜 이리 빨리 집에 가고 싶은지 나도 모르겠다.
지름길로 빨리가야겠다.
서울에서 사온 참고서들이 꽤 많아서 무겁지만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참고서 때문에 기분이 좋은가?
이 참고서로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면 현진이를
만날 수 있으니까 기분이 좋은가?
어휴! 이길 너무 반갑다.
자전거 타고 친구들과 다니던 길이 저기 보인다.
제방뚝에 많은 풀들이 자라서 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철도 길도 보이고 지금 한창 내가 걷고 있는 이 수리조합 똘에는 많은 물들이
흐르고 있고, 똘를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는 초등학교 작은 아이들이 속옷만 입고
수영을 하고 있다.
나도 어릴 때는 냇가는 너무 깊고 위험해서 수리 조합 똘에서 많이 놀았는데...
냇가가 좋은 점은 바닥이 모래라는 것이고 좋지 않은 점은 물이 깊고 물살이
빠른 곳이 곳곳에 있어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수리조합 똘의 좋은 점은 깊이가 그리 깊지가 않고 물살이 늘 같은 세기로
흘러가기 때문에 안전한 것이고 좋지 않은 점은 바닥이 진흙으로 되어있어
물이 더럽고 발의 감촉도 좋지 않다.
간혹 물풀이며 깨진 병조각도 떠내려 오는데 물이 더러워서 보이지를 않는다.
또 한 가지 폭이 너무 좁고 들어가고 나올 때 뚝이 잘 무너져서 어른들께 야단을 자주 맞는
다.
그래도 여름 피서지로 수리조합 똘은 제일 안전한 피서지이다.
이제 나도 많이 커서 수리 조합 똘은 그저 추억의 장소이고 작년까지만 해도 냇물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이번 여름은 거의 지나갔으니 냇가에 갈일도 별로 없을 것 같고,
현지네가 이사 가서 ‘천엽’도 주도하는 사람이 없어서
공부에 열중해야 할 것 같다.
2주전에 서울 갈 때 보다도 논에 벼들이 훌쩍 더 커있고
밭에도 많은 것들이 많이도 자라서 세상이 초록으로 뒤덮이고 있다.
나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제는 짙초록의 옷을 입고
어릴 적 나무 입의 기억은 아예 지워 버린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약간씩 다르게 느껴지는 구나...
“어머니 다녀왔어요”
“어휴, 우리 막내 잘 다녀왔나?”
“네”
“누나가 이것 갔다 드리래요”
“그래”
“빨리 씻고 저녁밥 먹자”
“아, 석아 서울에서 왠 편지가 왔던데...”
“예?”
“여기 있다”
최현지!
진짜 너가 보낸 편지냐?
믿어지지가 않는다.
날짜가 언제 온거야?
우표에 찍힌 도장에는 벌써 열흘은 지났다.
내가 서울가고 몇일 있다 왔구나!
아! 너무 기쁘다.
천하를 다 얻어도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고맙다 최현지,
미얀하다. 최현진
늘 네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게 해서‘
빨리빨리 이 보물을 뜯어 봐야겠다.
‘석에게’
나는 너에게 나의 이름만 불려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존재의 의미가 생기게 된다.
‘그동안 잘 지냈니?
나 최현진이야.
나 기억나니?‘
기억뿐이겠니? 너를 찾으러 서울에 갔다 방금 돌아왔다.
이곳은 걱정을 말아라.
모두모두 잘 자라고 네가 이곳에 있을 때와 별 다르지 않게 모두 그대로다.
내가 먼저 너에게 친구하자고 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답장 써 줄게.
앞으로 계속 편지 써 줄게.
49.
“사랑하는 현진에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하고.
현진이가 놀라서 더 이상 상대도 안 해주면 큰일이다.
“친구에게”
아직 아닌 것 같구.
우체부아저씨가 가지고 다니는 많은 편지들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쓰인 편지일까?
현진이를 찾으러 서울에 갔다고 하면 너무 속 보이는 것 같구.
옛날부터 친구하고 싶었다고 하면 그 동안 얼마나 내가 용기가 없는 놈인지
드러 날 것 같구.
부족한 내 마음은 안 들키면서 친구하고 싶다는 내용은 확실하게 전달해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 같다.
빨리 답장을 보내야 하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다 자꾸 시간만 지나간다.
방학도 거의 끝나가는데...
현진이가 얼마나 기다릴까?
오늘은 좀 부족해도 어떻게 해서든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다.
'현진에게'
편지 잘 받았다.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방학하고 서울에 있는 큰 누님 댁에 2주일간 갔다 오느라고 네 편지를 늦게
받는 바람에 답장도 늦어졌다.
미얀하다.
나는 군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고,
이번 서울에 갔을 때 공부에 필요한 참고서 많이 사왔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애.
네가 떠나고 무척 궁금했다.
네 소식을 들을 수가 없어서 좀 답답했는데 편지해줘서 정말 고맙다.
조개껍질 목걸이 정말 고마웠다.
네가 그리워질 때 너를 보는 것처럼 잘 가지고 있다.
나도 너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있는데 아직 미완성이라서 좀 더 있다 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나는 너랑 친구할 수 있다면 정말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 편지 받으면 다시 답장 해 줄거지?
더운데 몸조심하고 잘 지내라.
김 석 씀
우체부 아저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가끔 아저씨가 가져갔다가 다른 집에
갔다 주는 경우도 있으니까 빨리 읍내에 있는 우체국에 가서 이 편지를 붙여야겠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나간다.
중학교 1학년 때 초록색 자전거를 여왕처럼 타던 현진이가 생각난다.
현진이 자전거에 살짝 편지라도 써 올려놓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이제 진짜 친구가 되는 거다.
“현진이는 내 친구다”
기분이 너무 좋다.
지금 내가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빨리 가는 것으로 부칙까?
아니다. 그것도 좀 그렇다.
그냥 평범하게 지금 한번만 편지 할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할거니까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빨리 집으로가서 답장을 기다려야지...
아니다. 이직 가지도 않았지....
현진이도 편지 보내고 이렇게 마음 졸이며 답장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은 날씨도 좋고 네 잎 클로버를 찾으러 나가 봐야 겠다.
두 개만 더 찾으면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줄 수 있을 텐데....
클로버에 하얀 꽃이 피어서 향기도 그윽하다.
동네 어린 여자 아이들이 클로버의 통통한 하얀 꽃들을 모아서 반지며
팔지며 왕관도 만들어서 놀이를 하고 있다.
하얀색의 통통하고 향기로운 모습이 꼭 어릴적 현진이 모습 같다.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내 기억 속에 판화처럼 박혀 있는
너의 형상이 너를 닮은 어떤 것을 보기만하면 한 장씩 하얀 종이에
검은 잉크를 찍어 판화를 찍어 내듯 찍혀 나온다.
깨끗하고 고운 형상을 내 속에 찍어준 최 현진 정말 고맙다.
너무 흥분해서 그런지 네잎 클로버가 잘 보이지를 않는다.
좀 진정하고 다시 찾아 봐야지.
클로버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여름날 저녁때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디론지 흘러 가고 있고
태양도 걸음을 재촉해서 산마루를 넘으려고 한다.
휴!!
오늘은 안 되겠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켜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지 그러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불가능!
자! 자!
현진이 주소도 알았고, 현진이와 친구도 됐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냐?
너무 흥분되는 것이 문제다.
흥분하면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없다.
공부도 그렇고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오늘까지만 흥분하고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지금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께서 아무래도 내 마음을 알아버리실 것 같으니까
이곳에서 좀 더 있다가 해가 산에 넘어갈 때 나도 같이 가야겠다.
나의 너무 좋아하는 마음을 만나는 사람이 알까봐 사람을 만나기도 두렵다.
이번학기는 3학년 마지막 학기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 동안 현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공부하는 에너지를 얻었다면 이제는
‘친구 현진’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최 현진’ 너는 나와 어떻게 관계를 가지던 너는 나에게 늘 나의 삶에 큰 에너지 덩어리
다.
50.
기다림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겸손하게 해준다.
세상에는 내가 바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말해준다.
오늘은 방학 마지막 날이다.
벌써 답장을 포기한다고 머리에서 여러 번 말을 했지만 또 다시
마음에서는 답장을 기다린다.
어떤 문제를 상대방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하며 풀 수 없을 때
그저 혼자서 상상과 공상으로 허공과의 대화를 계속한다.
‘김석, 너는 나 싫어?’
‘물론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답장은 해 줄 수도 있잖아?’
‘석이가 나와 친구해주면 나는 행복할 텐데...’
‘나의 행복을 위해서 너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수는 없지’
휴! 힘들다.
‘나는 내 인생에 어떤 결정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요청에 “예”라고
대답해야겠다.‘
시골에서는 사람 말고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이 많이 있어서 그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 놓기도 했었는데 서울에서는 움직이는 것들이 자동차와 오토바이 뿐 기어다니는
벌래나 날아다니는 새나 곤충들 심지어 강아지나 고양이도 보기가 힘들다.
더 힘들 것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나 해님, 달님, 별들도
시골같이 자기 구실을 할 수가 없다.
밝은 가로등 때문에 달님은 아예 어디에 있는지 빌딩들 사이에서 본지도 오래됐다.
별은 아예 찾을 생각도 없다.
서울에서는 구름도 바쁜 것 같다.
흐르는 냇물이나 제방 뚝 수리 조합 똘 같은 곳은 찾을 수도 없다.
집 밖에 나가서 혹시 찾아보면 만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집 밖에는 무서워서 나갈 수도 없다.
허허벌판 시골에서도 거의 밖에를 못나간 내가 이 복잡한 서울 한 복판에
나갈 수가 있을까?
지난 학기에는 집에서 학교로 나서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향했고,
학교에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해도 마찬가지였는데
2학기 때는 새로운 목표를 한 가지 만들었다.
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에 들어가 보는 것과 그 옆에 떡볶이 집에 들어가서
떡볶이를 꼭 한번 먹어보는 것이다.
현아는 같은 학교여도 집에서 나갈 때는 같이 나가는데 몇 발짝 가지 않아서
‘언니 나 친구랑 갈게, 언니 먼저가’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늘 혼자 다니던 버릇이 있어서 혼자 가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다.
오늘 3학년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오랜만에 학교에 가려니 길이 더 멀어 보인다.
학교 뒷산은 짙초록으로 뒤덮여 있고, 한 학기 다닌 학교인데도 낮 서러 보인다.
개학을 할 때면 꼭 키가 많이 커서 돌아오는 아이들이 있다.
반면에 나 보다 적게 큰 아이들도 있다.
키대로 번호를 다시 정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서로 몸도 마음도 다투어 자라간다.
시골에서도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는데 서울에 오니 말도 못하게 성적이 뒤로 밀려났다.
이 성적가지고 어느 고등학교에 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사를 하고서 낮선 환경에 대한 불안과 그전에 살고 있던 너무 익숙하고 나에게
맞던 장소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석이에게 받은 첫 번째 상처,
나의 용기 있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보상 받지 못한 좌절감, 그리고 나의 외적인 열등감과
내적인 빈곤감, 전체적으로 내 인생의 컨셉은 ‘절망’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이들은 방학동안 벌써 2학기 내용을 예습해 왔다는 대화가 대부분이다.
어느 학원에 어느 선생님이 좋다느니 과외 선생님 이야기들 그리고
참고서들 이야기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나는 방학동안 엄마가하는 식사 준비나 도와주고 집안 청소나 할머니 할아버지
말동무 해드리고 공부는 하나도 한 것이 없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시골은 천국이었는데 서울은 꼭 감옥 같다고 하시며 힘들어 하신다.
그래서 이것저것 옆에서 말동무라도 해드리고 학교 이야기며 시장 이야기도 해드리고
시장에서 파는 떡이라도 한덩이 사다 드리면 그래도 그날은 또 하루가 지나간다.
시골에서는 그래도 부자소리도 들었는데 여기서는 중간쯤도 못되는 것 같고 그야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서민’에 속하는 모양이다.
이 ‘상대적 빈곤감’ 참 무거운 짐이다.
이 서울에 저 큰 건물들은 도대체 누구 것이며 저 많은 차들은 또 누구의 것인가?
피곤하다.
신은 왜 나를 이 땅에 두신 것일까?
나에게도 어른들이 말한 사춘기가 왔나?
자꾸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니 말이다.
오늘은 개학식이라고 공부도 하지 않고 일찍 학교에서 끝이났다.
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들떠서 난리이다.
같이 오랜만에 만나서 놀러간다는 데 서울에 어디에서 논단 말인가?
냇가도 없고 산도들도 없는데 어디 가서 놀지? 궁금해진다.
새학기가 되어서 짝도 바뀌어서 오늘은 아무것도 물어 보지도 못하겠다.
다음에 몇 번 말이라도 한 다음에 물어 봐야지....
오늘 새로 만난 짝꿍이름은 정희이다.
‘김 정희’
우리 시골에서 소풍갈 때 김정희 선생님이 사시던 생가로 간적도 몇 번 있었는데....
내 짝꿍 정희는 여자이다.
김정희 선생님 댁에 가면 가장 인상적인 것이 마당에 있는 백송(하얀 소나무)이다.
우리나라에 오직 이곳에 만 있다는 ‘하얀 소나무’
사실 하얀 소나무라고 해서 나무 전체가 하얀 것은 아니고 소나무 껍질이 약간 흰색이다.
직접 만져서 껍질을 살짝 벗겨 본적도 있는데 하얀 비늘 같은 껍질이 벗겨진다.
신기하다.
내 짝 정희도 글씨를 잘 쓰나?
추사 선생님 댁에 가면 특이한 필체로 한가를 멋지게 써서 군데군데 붙여 놓으셨던데...
글씨만 잘써도 유명해 지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유명해지려나?
이른 봄이라 아직 쌀쌀하다.
빨리 집에가서 쉬어야겠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그런지 공부는 않했어도 피곤하기 짝이 없다.
신기하다.
시커먼 빌딩들과 길을 따라 늘어선 전보산대, 그 위를 얼기설기 지나가는 전선들,
딱딱한 시멘트 바닥 그리고 빌딩 그림자 때문에 늘 컴컴한 서울에도 어디서 날아 왔는지
나비가 날아 다닌다.
저 나비는 길을 잃었나?
아니면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 주셨나?
너무 반갑다.
고맙다.
피곤하고 어둡던 나의 마음을 노랑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으로 모두 날려 버렸다.
그런데 어디 가서 꿀을 따려나?
아마도 오늘은 나보다 저 나비가 더 피곤할 것 같다.
“엄마 학교 다녀 왔습니다.”
“응, 잘 다녀 왔어?”
“네”
“아참, 현진아 편지 왔다.”
“무슨 편지요?”
“너 시골에 사는 석이 알지? 석이한테 편지가 왔던데....
석이는 참하고 말이 없던 녀석인데 그래도 너에게 편지를 보낸 것 보면
친구라고 의리 있는 녀석이다. 그런데 석이가 우리 주소를 어떻게 알았지?“
떨린다.
아마도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친구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닐까?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장편 ]
못생긴 여자 10
황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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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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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진아~힘내 ~!! 석이도 너랑 같은 마음이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생각이 드네여~~원래 마음이라는게 서로 연하게 다가와서 진하게 끌리는 거니깐여~~~~~^^ 현자님 오늘 즐거운 주말이네요 그쵸?^^ 제가 아가씨면 데이트라두 할껀데.ㅡㅡ,....아줌마라.. 컥........내 아까운 청춘 돌리도 현진아~니가 부럽다.~~~~앙~
둘이 너무 깜찍해요, 답장 기다리는 마음이란... 그건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간절하죠, 답장 그 오묘함이란.... 참.. ^^ 너무 귀여워요, 둘이. 오늘도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잊고 있던 중학교가 생각납니다...그때 내가 짝사랑했던 수학선생님은 뭘하고 계시려나...학교에서 유일한 노총각 선생님이셨는데....오늘도 잔잔한 글 잘 읽고 갑니다...즐건 주말 보내세여....^^
현진이는 제 딸이름이예요. 석이는 진짜 제 친구이구. 사랑도 모를 때 석이를 만나서 ... 아무 것도 모르고... 지금도 잘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