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멍든 12세 소녀의 편지 "판사님, 아줌마(계모)를 사형시켜주세요"
[자기가 동생 죽였다고 자백한 사건… 알고보니 '계모의 범행' 보고도 계속된 폭행 못이겨 허위자백한 것]
"네가 동생 죽였다 해" 繼母·아빠가 거짓 진술 강요 "시키는대로 안하면 나도 동생처럼 죽을까 겁났다"
-악몽 같았던 2년 말 안 듣는다고 청양고추 먹여… 귀에서 피날 정도로 목조르기도
-아동보호기관·경찰·검찰 뭐했나 "엄마가 때린다" 2년前 신고… 계모 말만 듣고 유야무야
-하늘나라 간 동생에게 "죽어서 널 만난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언니 노릇 못해 마음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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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12)양이 판사에게 쓴 편지.‘아줌마가 날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그런데 아빠한테 내가 발로 차서 고장났다고 하고. 나는 너무 괴롭다. 판사님 사형시켜 주세요’등 내용이 적혀 있다. /A양 고모 제공
작년 경북 칠곡에선 여덟 살 난 B양이 장(腸) 파열로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친언니 A(12)양이 "동생과 싸우다 발로 차서 죽였다"고 진술해 소년법원에 넘겨졌고, 자매의 계모(繼母)인 임모(35)씨는 A양을 거들어 B양 배를 한 차례 찬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8개월간의 재판 과정에서 동생을 죽였다는 A양 진술은 계모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계모가 B양을 수차례 밟아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매가 계모로부터 수년간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받아온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뒤늦게 진상을 파악한 검찰은 지난 2일 계모에게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 친아버지 김모(36·노동)씨에겐 자매를 학대한 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했다.법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작년 8월 14일 B양은 심한 복통을 호소하다 이틀 만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졌다. 강한 외부 충격으로 찢어진 내장에서 음식물이 흘러나와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몸 곳곳에선 시퍼런 멍과 화상 자국이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동생 인형을 뺏으려다 발로 차서 죽였다"고 진술한 A양을 '주범'으로 판단했다. 계모는 싸우는 B양의 배를 한 차례 때린 혐의와, 과거 B양을 학대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아버지는 학대를 방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A양은 지난 1월 법원에서 불처분결정을 받았다. 동생을 죽이긴 했지만 그도 아동 학대 피해자라는 점을 고려해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년원에서 나온 A양은 계모 석방과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날마다 법원에 냈다. '어머니가 구속된 지 ○일째인데 너무 보고 싶다.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A양은 작년 12월 법정에 나와서도 "어머니는 착한 분"이라 했다. 재판은 계모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 상해치사 혐의는 무죄가 나올 것이란 얘기도 돌았다.A양 변호인 측은 A양이 학대에 가담했던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 피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 보고 법원 허가를 받아 A양이 대학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게 했다. 진단 결과 A양은 '스톡홀름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인질로 잡힌 피해자가 공포심 등으로 인해 인질범을 옹호하는 증상을 말한다. A양은 지난 2월부터 아동보호 기관인 에덴원에서 살게 됐다. 변호인단은 소송을 통해 A양 친권과 양육권을 지난달 생모(生母)에게 줬다.이때부터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계모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양은 그동안 학대받은 사실을 대학교수인 고모에게 말했다. 병원 상담 의사와 변호인단에도 묻어둔 얘기를 조금씩 꺼냈다. 법원은 결심(結審)공판을 뒤로 미루고 재판을 한 차례 더 열었고, 지난달 19일 A양은 비공개 법정에 나와 모든 내용을 증언했다.B양 사망 이틀 전 아침 계모는 B양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작은 방에 가뒀다. 감금된 B양이 방문을 긁자 화가 난 계모가 B양의 배를 발뒤꿈치로 10여차례 짓밟았다. 그날 저녁 계모는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하는 B양을 벽에 세워놓고 다시 배를 발로 찼고, 잠을 못 자게 밤새도록 벌을 세웠다. 언니 A양은 "다음 날 아침까지 동생이 두 손 들고 벌을 섰고, 이어 '엎드려뻗쳐' 자세로 계속 벌을 받았다"고 했다. 계모와 아버지는 정신을 잃어가는 B양을 이틀간 집에 방치했고 사흘째 돼서야 구급차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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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A양은 수사를 받게 된 계모와 아버지가 '동생을 죽였다'는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했다. 계모에게 불리한 발언을 했다가는 나중에 돌아올 계모의 매질이 두려워 계모 석방을 호소하는 탄원서와 법정 증언도 했다고 했다.법원에 제출된 A양과 교사, 의사, 친척 등의 진술 증거에 따르면 계모의 학대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 계모는 자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청양고추 10개씩을 한입에 넣고 강제로 먹게 했고, 줄넘기 줄로 양팔과 다리를 묶은 뒤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렸다. 한겨울에 베란다에서 자게 했고, 이틀 동안 밥을 굶기며 물 한 모금 안 준 적도 있었다. 욕조에 찬물을 받아놓고 얼굴을 강제로 밀어 넣기도 했고, 그러다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몸에 뿌렸다.B양 담임인 양모 교사는 "수업 도중 양쪽 귀에서 피가 흘러나와 물었더니 '엄마가 목을 졸랐다'고 했다"며 "그날 집에 찾아가 계모에게 물었더니 '아이가 면봉으로 후비다 그런 것'이라고 말하곤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양 교사가 B양을 병원에 데려가 고막 손상 진단을 받고 치료받게 해줬다.A양 변호사는 "자매는 1년여간 상습 폭행과 협박에 시달렸다"며 "계모는 주로 아버지가 없을 때 자매를 때렸고 아버지 역시 학대에 가담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A양은 최근 편지지에 '나는 너무 괴롭다. 판사님 (계모를) 사형시켜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고, 고모는 그 내용을 판사에게 전달했다.◇관계 기관 관심 부족이 사건 키워관계 기관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계모의 학대와 어처구니없는 '거짓 법정 드라마'는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자매가 아버지, 계모 임씨와 함께 산 건 2012년 5월부터다. 2007년 부모 이혼 후 고모 집에서 지내던 자매를 아버지가 데려간 것이다. 폭력은 서너 달쯤 뒤부터 시작됐다. 행동이 느린 동생은 A양보다 더 심하게 맞았다. 아버지는 계모의 학대를 알고도 눈감았다.결국 2012년 10월 A양은 부모가 자신을 많이 때린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부부는 때린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며 아이의 상처는 자해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부모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다그치자 겁먹은 A양은 진술을 바꿨다. 그날 밤 A양은 계모로부터 더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같은 달 B양 담임 양 교사도 아동보호기관에 가정 폭력이 의심된다고 신고했다. 이웃 주민들도 비슷한 신고를 수차례 했다. 상담사들이 집을 방문했지만 자매는 "계단에서 넘어졌다" "어디 부딪혔다"고 했다. 화상 자국에 대해서는 라면 냄비를 엎질렀다고 하다가, 미역국을 쏟았다고 하는 등 계속 말을 바꿨다. 아동보호기관은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면서 경찰로 사건을 넘기지 않았다. 양 교사는 "신고까지 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며 "교사로서 무기력함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A양은 계모가 구타로 동생을 죽인 것을 목격했지만 수사기관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A양은 계모가 구속되기 전까지 한 달 반가량을 함께 지냈다. A양 변호사는 "계모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도 동생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경찰과 검찰은 초기 진술만 믿고 A양이 아동 학대 피해자일 가능성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다. A양이 경찰에 계모의 학대를 직접 신고한 적이 있고, 당시 A양 얼굴에 손톱자국이 있는 등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은 많았다. 계모는 A양이 경찰 조사를 받고 온 날이면 어떻게 대답했는지 일일이 확인한 뒤 잘못 대답했다며 손찌검을 해 얼굴에 멍이 들게 했다.현재 A양 변호인 측은 계모와 아버지를 상해치사죄보다 형량이 높은 살인죄로 처벌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4일에는 아버지 친권을 영구히 박탈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A양은 얼마 전 병원 치료 과정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죽어서 동생 다시 만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고, 내 딸로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잘해주고 싶다. 언니 노릇 못해준 게 제일 마음에 남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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