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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즉혹(多則惑)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는 뜻으로, 욕심이 많으면 미혹에 빠지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으로 인해 오만과 혼돈에 빠진다. 그래서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多 : 많을 다(夕/3)
則 : 곧 즉(刂/7)
惑 : 미혹할 혹(心/8)
자전육혜(我全六慧)는 나를 보전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한다. 살아가면서 나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이든 나를 보전하여야 이룰 수 있다. 내가 사라진 이후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 중에는 무리하여 자신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못하고 곤혹을 겪다가 죽기도 한다. 예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잘 보전하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 자신을 잘 보전한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지혜롭게 천명을 다하여 살라는 뜻이다.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나를 보전(保全)하는 6가지 지혜를 말하였다. 그것은 곡즉전(曲則全), 왕즉직(枉則直), 와즉영(窪則盈), 폐즉신(敝則新), 소즉득(少則得), 다즉혹(多則惑)이다.
노자 도덕경 제22장에 나오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는 뜻이다. 많으면 좋다 즉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하지만 때로는 많아서 화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욕심이 많으면 미혹에 빠지고 지식이 많으면 그 지식으로 인해 오만과 혼돈에 빠진다. 그래서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는 것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숙어와도 통한다.
여기서 말하는 많은 지식은 첫째는 잘못된 지식을 말하고 둘째는 오만한 지식인을 말한다.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인다고 하듯이 지식이 많되 겸손하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알면 나서게 되어 있고 나서다 보면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무위자연의 법칙은 많이 아는 것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에 중점을 둔다. 많은 지식과 그 지식의 축적은 인위적인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인위적인 지식이 때로는 인간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의 겸허를 강조한 말이다. 지식의 겸허를 지키려면 무위자연의 법칙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다즉혹(多則惑)의 이치를 깨닫는 일이다.
1. 지식이 넘치는 시대에
현대를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지식인도 넘쳐난다. 잘 정제되고 고증(考證)된 지식과 정보는 유익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식과 정보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제대로 정제되고 고증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나와 곳곳을 돌아다닌다. 많은 사람이 그 정제되지도 고증되지도 못한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또 곳곳으로 퍼 나르고 그것에 빠져들기도 한다.
특히 유튜브, 각종 SNS 등의 도구를 타고 사방으로 번져 나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정제되지도 고증되지도 못한 지식에 빠져들어 혼돈에 빠지고 심지어는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믿고 그런 지식과 정보를 신념으로 받아들여 확증편향에 빠져든다. 또 그 확증편향으로 왜곡된 사상과 행동을 유발한다. 그것이 지식정보사회라는 현대의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큰 원인 중의 하나이다.
정제되지도 고증되지도 않은 지식의 상당수는 가짜 지식이다. 가짜 지식은 그 해독이 크다. 그 해독은 자기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병들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혼돈에 빠지는 상당한 이유 중의 하나는 유튜브, SNS 등 온갖 정보 매체에 의해 퍼지는 잘못된 지식과 정보에 사람들이 빠져들고 그것으로 인해 확증편향에 빠지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교육과 상담차 제소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일부 분야에는 상당히 해박하다. 마약범은 마약의 유통과 효과, 마약의 유해성에 대하여 박사 수준이다. 성범죄자는 여자의 심리와 행위에 대하여 잘 안다. 명문대학교에 다니다가 들어온 사기범도 있다. 사기범은 돈의 흐름에 대하여 지식이 해박하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한 친화력이 있으며 말도 잘한다. 절도범은 절도의 방법에 대하여 고수다. 그들은 자기가 몰라서 문제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문제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는 것을 옳은 곳에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익과 유희와 향락에 이용하였기에 아는 것이 독이 되었다.
그들을 접하면서 마약범에게 마약의 해로움에 대하여 상담과 교육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기범에게 사기의 반사회성에 대하여 강의와 상담을 아무리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들에게는 그 해독을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올바르게 체득하고 활용할 줄 아는 지혜와 절제의 결핍이 문제행동의 원인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에 오래 있거나 여러 번 들어갔다 나오면 해당 범죄의 방법과 관련법률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이런 경우 그들은 식자우환이다.
올바른 지식을 많이 아는 경우도 해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지식이 올바른 지식이 되려면 그것을 그저 익혀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깨닫고 이치를 깨우칠 때 진실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저 익혀 아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활용하려는 경우 낭패를 보게 된다. 그 지식이 상황에 맞지 않거나 지식으로 인해 상황을 흐려지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은 그것이 발휘되고 활용될 때 상황에 맞아야 하고 적절해야 한다. 대화 중에 아는 것이 상황에 맞지 않거나 넘쳐서 낭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전에 어떤 토론회장에서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토론자의 한 사람은 나이가 들었는데 어법(語法)에 지식이 상당해 보였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이 발언하면 그 말을 중간중간 막고 그 말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그 사람의 그 습성은 발언자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되는 지적질로 토론의 흐름을 방해하였다. 견디다 못한 나는 그의 발언을 저지하였다.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어법(語法)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이 병이 되었다.
많이 아는 것이 병이 되는 경우는 또 있다. 알기 때문에 나서야 하지 않을 때도 나서고 윗사람과 대화나 토론 때 알기 때문에 나서지 않아야 할 상황인데도 나서기가 쉽다. 그러면 그는 배척받는다. 옛날 전제왕권 치하에서는 많이 알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많이 알면 겸허를 잃기 쉽다. 오만해지기 쉽다. 지식인이 오만해지면 지식은 자기와 타인을 해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이 갖는 지식은 대부분은 참된 지식이라기보다는 기억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소문도 마찬가지다. 소문은 미확인된 말들이다. 소문은 대체로 좋은 것보다 나쁜 것들이 많다. 요즈음 소문에 가까운 뉴스들이 너무도 넘친다. 이른바 ‘카더라 뉴스’다. 특히 유튜브, SNS 등을 통해 퍼 날라지는 ‘카더라 뉴스’는 정도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 ‘카더라 뉴스’는 세상을 분열시키고 증오심을 유발하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카더라 뉴스’를 퍼 나는데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편향으로 신념을 가지고 퍼 나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의식이 정제되지 않은 병든 사회다.
나에게 참된 지식이 되려면 그 지식과 정보를 음미하고 곱씹어 스스로 새기고 소화하고 정제하고 고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지식의 체화(體化) 과정이다. 잘 정제되고 고증되어 체화된 지식은 진리의 지위를 가지고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런 지식은 자기에게 큰 힘이 된다. "타인에게 배운 진리는 그저 몸에 살짝 달라붙어 있지만 스스로 발견한 진리는 몸의 일부가 된다(로랑 구넬 Laurent Gounelle 1966.8.10. 프랑스 코칭전문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
우리는 현대의 넘치는 지식과 정보가 나의 몸의 일부가 되어 나의 자양분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지식과 정보를 잘 정제하고 고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넘치는 지식과 정보로 인해 정신이 병들 수도 있다.
상당수의 사람은 몰라서 미혹에 빠지는 것보다 많이 알아서 미혹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모르면 좀 늦게 가더라도 물어서 가면 탈이 없지만, 잘못 아는 것을 믿으면 묻지 않고 빨리 가다가 낭패를 본다. 특히 잘못 아는 길을 잘 안다고 믿고 고집을 부려 가다가는 낭패를 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참된 지식과 정보를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아무 생각 없이 자기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들을 마구 퍼 날라서는 안 된다. 잘못된 지식과 정보는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게 한다. 현대 지식정보화 사회가 병드는 이유 중 상당수는 거기에 있다. 특히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유튜브, 각종 SNS의 폐해가 얼마나 큰가? 내가 제대로 읽지 않은 지식과 정보, 내가 제대로 정제하고 고증하지 못한 지식과 정보를 퍼 나르는 일도 삼가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더 병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치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지식과 정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정제되지도 고증되지도 못한 지식이 넘치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그 지식과 정보를 체득하여 깨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믿고 퍼나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넘치는 지식을 상황을 무시하고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식이 사람을 미혹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상당수 사람은 그런 지식으로 인해 미혹에 빠져 있다. 정치적으로 팬덤화된 많은 사람도 그런 경우이며 왜곡된 욕망으로 증오와 불신의 언어를 남발하는 정치인도 그런 경우이며 정치인에 무조건 줄 서는 지식인그룹들도 그런 경우이다.
옛날에도 가짜 뉴스가 난무하였고 지식으로 인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노자가 多則惑(다즉혹)을 강조한 것 같다. 노자가 말하는 多則惑(다즉혹)은 지식인이 가져야 할 자세를 충고하는 말이다.
2. 노자가 말하는 다즉혹(多則惑)
노자가 도덕경(제22장)에서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꾸며낸 지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가짜 뉴스다. 확인되지도 않고 증거도 근거도 없는 지식과 정보를 말한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도 가짜 뉴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 시절 그런 것을 유언비어(流言蜚語)라고 하였다. 이 유언비어의 폐해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 고문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 옛날 고대에도 유언비어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였던 모양이다.
두 번째는 많이 아는 지식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며 지식으로 인해 겸허를 잃고 함부로 나서기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이다. 노자는 지식이 많으면 인위적인 잔꾀를 많이 부리게 되어 있고, 과다한 욕심이 생겨 마음과 몸을 엉뚱한 곳에 집중하여 고달프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귀중한 본성까지를 잃게 하고 결국은 몸을 망가뜨리고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고 하였다.
위에서 지식이 사람의 귀중한 본성까지 잃게 한다는 것을 보면 노자는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노자의 입장에서 인간성을 보면 인간성의 자연 상태는 선한 것이며 거기에 인위적인 것이 투입되어 악하게 되고 욕망이 넘치게 되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의 도(道)는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성찰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 무위자연의 도를 깨닫는데 많은 지식은 불필요하며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인위적인 지식은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는 것이다.
위학일익(僞學日益)이요, 위도일손(爲道日損)이라 하였다. 학문을 배우면 날로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날로 줄어든다. 학문을 배우면 무엇이 늘어나는가? 욕심과 욕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도를 닦으면 무엇이 줄어든다는 것인가? 욕심과 욕망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지우손(損之又損)이면 이지무위(以至無爲)라 하였다. 즉 욕심과 욕망을 줄이고 줄이면 무위의 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위에 이르면 하지 못할 것이 없고, 이르지 못할 곳이 없다(無爲以無 不爲)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를 취하려면 항상 무위로서 취하여야 한다(故로 取天下 常以無事) 무위(無爲)에 이르지 않고 유위(有爲)에 머물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고 하였다. 무위자연의 도와 덕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내는데 근본이라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48장, 위학일익僞學日益 편)
지금까지 노자가 도덕경에서 한 말은 지식을 가지지 말라는 무지식(無知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식의 근본 속성인 진리와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일보다는 지식을 욕망 충족의 도구로 삼고 타인을 지배하는 권력과 투쟁의 도구로 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지식은 흉기가 되고 세상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는 무기가 뒬 수 있다. 또 잘못 알고 있는 지식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 알고 있는 지식으로 엉뚱하고 과대한 욕망을 가지게 되면 자신과 세상에 해를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넘치는 가짜 뉴스가 그 해악 중의 하나이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퍼 나르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할까? 자기의 존재성을 각인시키고 또 돈이 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존재 의식과 정치적 욕망 때문이다. 사기꾼이 사기의 방법을 많이 알면 사기의 욕망과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도둑이 도둑의 방법을 많이 알면 도둑의 유혹에 많이 빠지기 쉽다. 그것은 굳이 사기꾼이나 도둑이 아니라도 그런 잘못되고 나쁜 지식을 많이 알면 그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은 올바른 지식이라야 하며 알되 겸허와 절제를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노자가 말한 다즉혹(多則惑)의 지혜는 지식을 축적하는데 집중할 일이 아니라 무위자연의 도(道)를 깨우치는데 집중하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올바른 지식을 바르게 가지되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지식에 겸허와 절제의 덕이란 옷을 입혀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지식을 축적하는데만 힘을 쏟을 일이 아니라 이치를 깨닫는 일에 힘을 쏟으라는 것이다. 인간사의 모든 불행은 과다한 욕심과 과다한 지식과 과다한 권력과 과다한 재물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즉혹(多則惑) 또한 겸허와 절제,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한 것이리라.
3. 다즉혹(多則惑)을 피하는 삶을 위하여
퇴계 이황 선생(李滉)은 젊은 날 이기론에 관한 나름의 이론을 정립하여 책을 펴냈다. 나이가 들어 학문이 깊은 연후에 그 책을 읽어보니 오류와 문제점이 많았다. 이황 선생은 세상에 죄를 짓는 것 같고 마음이 불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잘못된 글과 책은 사람들을 교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람들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전국 곳곳에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지은 책을 수거하게 하고 모아온 책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이러한 이황 선생은 숙흥야매잠주(夙興夜寐箴註), 역학계몽전의(易學啓蒙傳疑), 심경후론(心經後論), 성학십도(聖學十圖), 자성록(自省錄) 등 지금도 전하는 불후의 명저들이 많다.
퇴계 이황 선생의 이러한 일화는 학자(지식인)가 가져야 할 자세 중 자기의 말과 글에 대한 겸허함과 사회적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준다.
오늘날 수많은 말이 쏟아져 나오고 책이 넘쳐난다. 그런 가운데 정말 편협하고 세상을 교화하고 세상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풍속을 어지럽히고 세상을 편협하게 만드는 것들도 많다. 글을 쓰는 사람들, 책을 짓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사회적 책임감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명성을 얻고 심지어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 우린 넘치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미혹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그 첫째는 항상 올바른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올바른 지식이란 인간에게 이롭고 세상에 이로운 지식이다. 진리의 반열에 오르는 지식이다. 그리고 출처와 근거가 확인된 지식이다. 사상과 논리가 체계적인 지식이다. 그런 지식을 가지려 노력하는 일은 바로 올바른 지식인이 되어가는 노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세상에 이름을 구하기 위한 지식을 얻으려는 경우가 더 많다.
둘째, 증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지식과 정보는 일단 의심해 보고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습관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이 바쁜 시대에 언제 그것을 확인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증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지식과 정보가 자신의 인간적인 신뢰와 사회의 건전성에 해를 끼치는 경우를 생각하면 시간이 걸려도 이로움이 더 크다.
셋째, 발달한 SNS 시대에 자기에게 날아 온 온갖 메시지와 영상 등을 함부로 퍼서 옮기는 일을 삼가야 한다. 나에게 날아온 지식과 정보는 적어도 자기가 먼저 읽어보고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판단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아무것이나 함부로 퍼 옮기면 자신의 인격을 의심받는다. 나에게 날아오는 각종 지식과 정보를 접할 때 가끔 이 사람이 이것을 읽어보고 보내는가 하는 의심을 가질 때가 많다.
넷째, 특히 정치적인 정보를 접할 때는 균형감을 지니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매우 정치적인 동물이라 자신이 특정의 정치적 입장에 서면 그 입장만을 고수하고 옹호하려 하고 다른 정치적 입장은 배제 혹은 배척하려 드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그것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더 심해진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다 보면 지지하는 후보는 옹호하고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무조건 비난 배척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은 매우 위험하며 사회를 분열시킨다. 그 자신은 자신의 행위가 민주주의와 국가를 우한 일이라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와 국가에 해를 끼치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인 지식과 정보에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도 국민도 공부하여야 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시민의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다섯째, 중요한 것은 겸허와 절제를 익히는 일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다. 지식이 많으면 그와 함께 겸허함도 몸에 익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식의 속성상 드러나는 것이 기본이라 겸허와 절제를 실천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은 하여야 한다. 그래야 지식이 엉뚱한 욕망과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지식이 엉뚱한 욕망과 욕심의 노예가 되도록 놔두면 그 지식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세상에 해로움을 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노자가 말한 다즉혹(多則惑) 즉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는 것은 오늘날 지식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가지되 올바른 지식을 가지려 노력하며, 지식을 가지되 겸허와 절제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머리와 입으로만 드러내는 지식이 아니라 지식이 갖는 이치와 진리를 깨달아 삶에 녹여 넣고 실천하라는 것일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인 오늘날 어쩌면 지식은 많이 가질수록 좋다. 사실 노자를 읽어보면 노자도 지식이 풍부한 학자였다. 그가 지식이 많으면 미혹에 빠진다고 한 것은 그 지식으로 인해 과다한 욕망과 욕심에 빠질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多(많을 다)는 ❶회의문자로 多는 夕(석; 저녁)을 겹친 모양이 아니고 신에게 바치는 고기를 쌓은 모양으로 물건이 많음을 나타낸다. 뒷날에 와서 夕(석;밤)이 거듭 쌓여서 多(다)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多자는 '많다'나 '낫다', '겹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多자는 夕(저녁 석)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실은 肉(고기 육)자를 겹쳐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서는 肉자가 서로 겹쳐진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금문에서는 夕자와 肉자가 매우 비슷하여 혼동이 있었다. 多자는 본래 고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많다'라는 뜻을 갖게 된 글자이다. 그래서 多(다)는 ①많다 ②낫다, 더 좋다, 뛰어나다 ③아름답게 여기다 ④많게 하다 ⑤두텁다 ⑥붇다, 늘어나다 ⑦겹치다, 포개지다 ⑧도량이 넓다 ⑨중(重)히 여기다 ⑩크다 ⑪남다 ⑫공훈(功勳), 전공(戰功) ⑬나머지 ⑭단지(但只), 다만, 겨우 ⑮두터이 ⑯많이 ⑰때 마침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적을 과(寡), 적을 소(少)이다. 용례로는 모양이나 양식이 여러 가지임을 다양(多樣), 운수가 좋음이나 일이 좋게 됨을 다행(多幸), 수효가 많음 또는 많은 수효를 다수(多數), 분량이나 정도의 많음과 적음을 다소(多少), 일이 바싹 닥쳐서 매우 급함을 다급(多急), 매우 바쁨이나 일이 매우 많음을 다망(多忙), 복이 많음 또는 많은 복을 다복(多福), 많은 분량을 다량(多量), 인정이 많음이나 교분이 두터움을 다정(多情),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다채(多彩), 많이 읽음을 다독(多讀), 많이 발생함을 다발(多發), 근원이 많음 또는 많은 근원을 다원(多元), 많이 알고 있음으로 학식이 많음을 다식(多識), 많은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다중(多衆), 가장 많음을 최다(最多), 너무 많음을 과다(過多), 소문 따위가 어느 곳에 널리 알려진 상태에 있음을 파다(播多), 매우 많음을 허다(許多), 여러 가지가 뒤섞여서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잡다(雜多), 번거로울 정도로 많음을 번다(煩多),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진리를 찾기 어려움 또는 방침이 많아 할 바를 모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다기망양(多岐亡羊),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는 말을 다다익선(多多益善), 정이 많고 느낌이 많다는 뜻으로 생각과 느낌이 섬세하고 풍부함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감(多情多感), 여러 가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난(多事多難),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함을 이르는 말을 다다익판(多多益辦),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남다구(多男多懼), 유난히 잘 느끼고 또 원한도 잘 가짐 또는 애틋한 정도 많고 한스러운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정다한(多情多恨), 밑천이 많은 사람이 장사도 잘함을 이르는 말을 다전선고(多錢善賈), 수효나 양의 많고 적음을 헤아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다소불계(多少不計), 재주와 능력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능(多才多能), 재주가 많은 사람은 흔히 약하고 잔병이 많다는 말을 다재다병(多才多病),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학식이 넓음을 이르는 말을 다문박식(多聞博識), 말이 많으면 자주 곤란한 처지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다언삭궁(多言數窮), 일이 많은 데다가 까닭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단(多事多端), 일이 많아 몹시 바쁨이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다망(多事多忙), 일이 가장 많을 때나 가장 바쁠 때 또는 흔히 국가적이나 사회적으로 일이 가장 많이 벌어진 때를 이르는 말을 다사지추(多事之秋),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쩌다가 사리에 맞는 말도 있음을 이르는 말을 다언혹중(多言或中), 재능과 기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다재다예(多才多藝),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바쁨을 이르는 말을 다사분주(多事奔走), 종류가 많고 그 양식이나 모양이 여러 가지임을 이르는 말을 다종다양(多種多樣), 좋은 일에는 방해가 되는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호사다마(好事多魔),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박학다식(博學多識), 준치는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는 뜻으로 좋은 일의 한편에는 귀찮은 일도 많음을 이르는 말을 시어다골(鰣魚多骨), 일이 얽히고 설키다 갈피를 잡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복잡다단(複雜多端),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하는 글을 이르는 말을 건양다경(建陽多慶),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일컫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등에 쓰인다.
▶️ 則(법칙 칙, 곧 즉)은 ❶회의문자로 则(칙/즉)은 간자(簡字), 조개 패(貝; 재산)와 칼 도(刀; 날붙이, 파서 새기는 일)의 합자(合字)이다. 물건을 공평하게 분할함의 뜻이 있다. 공평의 뜻에서 전(轉)하여 법칙(法則)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則자는 '법칙'이나 '준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則자는 貝(조개 패)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則자의 금문으로 보면 貝자가 아닌 鼎(솥 정)자가 그려져 있었다. 鼎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솥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鼎자는 신성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則자는 이렇게 신성함을 뜻하는 鼎자에 刀자를 결합한 것으로 칼로 솥에 문자를 새겨 넣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금문(金文)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이 솥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솥에는 어떤 글들을 적어 놓았을까? 대부분은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들을 적어 놓았다. 신이 전하는 말이니 그것이 곧 '법칙'인 셈이다. 그래서 則(칙, 즉)은 ①법칙(法則) ②준칙(準則) ③이치(理致) ④대부(大夫)의 봉지(封地) ⑤본보기로 삼다 ⑥본받다, 모범으로 삼다 ⑦성(姓)의 하나, 그리고 ⓐ곧(즉) ⓑ만일(萬一) ~이라면(즉) ⓒ~하면, ~할 때에는(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을 원칙(原則),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을 규칙(規則),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을 법칙(法則), 법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규칙을 벌칙(罰則),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표준으로 삼아서 따라야 할 규칙을 준칙(準則), 어떤 원칙이나 법칙에서 벗어나 달라진 법칙을 변칙(變則), 변경하거나 어길 수 없는 굳은 규칙을 철칙(鐵則), 법칙이나 법령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헌칙(憲則), 행동이나 절차에 관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정한 규칙을 수칙(守則), 기껏 해야를 과즉(過則), 그런즉 그러면을 연즉(然則), 그렇지 아니하면을 일컫는 말을 불연즉(不然則), 궁하면 통함을 일컫는 말을 궁즉통(窮則通), 서류를 모아 맬 때 깎아 버릴 것은 깎아 버림을 일컫는 말을 삭즉삭(削則削), 가득 차면 넘치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오래도록 번성하기는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만즉일(滿則溢),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圖謀)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사즉생(必死則生),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임전훈을 이르는 말을 필생즉사(必生則死),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보이게 된다는 뜻으로 한번 흥하면 한번은 함을 비유하는 말을 월영즉식(月盈則食), 말인즉 옳다는 뜻으로 말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언즉시야(言則是也), 잘못을 하면 즉시 고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다는 뜻으로 자기의 잘못을 덮어두고 남만 나무람을 일컫는 말을 책인즉명(責人則明), 너무 성하면 얼마 가지 못해 패한다는 말을 극성즉패(極盛則敗), 예의가 지나치면 도리어 사이가 멀어짐을 일컫는 말을 예승즉이(禮勝則離),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겸청즉명(兼聽則明), 예의가 너무 까다로우면 오히려 혼란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예번즉란(禮煩則亂), 너무 세거나 빳빳하면 꺾어지기가 쉬움을 일컫는 말을 태강즉절(太剛則折), 세상에 도덕이 행해지면 즉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나아가서 활동함을 일컫는 말을 유도즉현(有道則見), 논밭 따위의 등급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나역등칙(那易等則), 만물이 한 번 성하면 한 번 쇠함을 일컫는 말을 물성칙쇠(物盛則衰), 죽어서 남편과 아내가 같은 무덤에 묻힘을 일컫는 말을 사즉동혈(死則同穴), 달이 차면 반드시 이지러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월만즉휴(月滿則虧), 꽉 차서 극에 달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 짐을 일컫는 말을 영즉필휴(零則必虧), 물건이 오래 묵으면 조화를 부린다는 말을 물구즉신(物久則神),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충성함에는 곧 목숨을 다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해서는 안됨을 일컫는 말을 충칙진명(忠則盡命), 예의를 잃으면 정신이 흐리고 사리에 어두운 상태가 됨을 이르는 말을 예실즉혼(禮失則昏), 물의 근원이 맑으면 하류의 물도 맑다는 뜻으로 임금이 바르면 백성도 또한 바르다는 말을 원청즉유청(源淸則流淸), 무엇을 구하면 이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구즉득지(求則得之), 자기가 남보다 먼저 실천하여 모범을 보임으로써 일반 공중이 지켜야 할 법칙이나 준례를 만듦을 이르는 말을 이신작칙(以身作則), 새가 쫓기다가 도망할 곳을 잃으면 도리어 상대방을 부리로 쫀다는 뜻으로 약한 자도 궁지에 빠지면 강적에게 대든다는 말을 조궁즉탁(鳥窮則啄), 짐승이 고통이 극도에 달하면 사람을 문다는 뜻으로 사람도 썩 곤궁해지면 나쁜 짓을 하게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수궁즉설(獸窮則齧) 등에 쓰인다.
▶️ 惑(미혹할 혹)은 ❶형성문자로 或(혹)과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혹시, 혹은의 뜻을 가진 或(혹)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惑자는 '미혹하다'나 '의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惑자는 或(혹시 혹)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을 지키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혹시'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혹시라도 적이 쳐들어올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心자가 더해진 惑자는 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며 수상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惑자는 그런 의미에서 '의심하다'나 '미혹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惑(혹)은 정도(正道)의 장해(障害)가 되는 일이나 마음에 혹시, 혹은 하고 생각하다의 뜻으로, ①미혹하다 ②미혹케하다, 현혹시키다 ③의심하다, 의아스럽게 여기다 ④미혹(迷惑), 의혹(疑惑), 현혹(眩惑) ⑤번뇌(煩惱)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미혹할 미(迷), 미혹할 영(覮), 의심할 아(訝)이다. 용례로는 어떤 것을 너무 지나치게 즐김을 혹기(惑嗜), 사람을 홀리는 말이나 주장을 혹설(惑說), 어지러운 세상을 혹세(惑世), 반하여 꼭 믿는 믿음을 혹신(惑信), 끔찍이 사랑함을 혹애(惑愛), 사람을 미혹하는 술책을 혹술(惑術), 미혹되어 어지러움을 혹란(惑亂), 몹시 반하여 제 정신을 잃고 빠짐을 혹닉(惑溺), 수상하게 여김을 의혹(疑惑), 나쁜 길로 꾐을 유혹(誘惑), 어지럽게 하여 홀리게 함을 현혹(眩惑), 마음이 흐려서 무엇에 홀림을 미혹(迷惑), 곤란한 일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을 곤혹(困惑), 생각이 막혀서 어찌할 바를 모름을 당혹(當惑), 어떤 일에 즐겨 빠짐을 익혹(溺惑), 매력으로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매혹(魅惑), 남을 아첨하여 유혹함을 영혹(佞惑), 남을 속이어 홀림을 광혹(誑惑), 남을 꾀어 속임을 고혹(蠱惑), 속이어 미혹하게 함을 기혹(欺惑), 망령되이 혹함을 망혹(妄惑), 놀랍고 의아로움을 경혹(驚惑), 크게 반함을 대혹(大惑), 미쳐서 혹함을 광혹(狂惑), 의혹을 풀어 버림을 파혹(破惑), 의혹을 풀어 버림을 해혹(解惑), 미혹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 살을 일컫는 말을 불혹(不惑),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이르는 말을 혹세무민(惑世誣民), 후처에게 홀딱 반함을 일컫는 말을 혹어후처(惑於後妻), 글자가 잘못 쓰였다는 뜻으로 여러 번 옮겨 쓰면 반드시 오자가 생긴다는 말을 어시지혹(魚豕之惑),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지자는 도리를 깊이 알고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지자불혹(知者不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