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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터졌다.
드라이크린 기계 안에서 잉크펜이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솔벤트 기름 올려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오이지처럼 아작하게 짜 주고 굉음을 울리며 말리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여지는 기계는 아무일 없다는 듯 일정에 따라 옷을 빨고 말리기를 마치고 삐~삐 소리 울려대며 종료를 알려준다.
이 곳, 목련꽃 나무의 지명을 가지고 있는 매그놀리아, 시애틀의 명소 스페이스 니들과 마운틴 레이니어와의 조화를 이뤄 한 눈에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탁 트인 바다를 전경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그림처럼 멋진만큼, 저택을 가지고 사는 부자 동네다.
세탁소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올린지 7년쯤 된 듯하다.
그간 아무 사고 없이 일을 해 왔는데, 아무리 이 잡듯이 뒤져도 찾아내지 못했던 펜 하나가 날씬한 자객이 되어 숨어들었다. 덕분에 옷마다 제 각기 다른 문양의 문신이라도 새겨 넣은 듯 선명한 자국을 옷마다 숨결처럼 심겨져 기계로부터 나왔다.
다행히 값비싼 브랜드의 옷이 그 날 없어서 그나마 여유있게 숨을 쉴수 있었다.
잉크 빼는 케미컬로 옷 사이사이 밀어넣고 비비고 문지르고 손톱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염원을 담아서 혼신의 힘으로 푸른 자욱을 지워내고 있었다.
결국 몇개의 면소재의 옷은 잉크 토해내기를 거부하여 나도 그만 손을 들었다.
손님으로 오시는 미스터 린포드 할아버지의 옷은 크레딧을 줄 요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당신의 옷이 잉크에 물들어 제가 최선을 다해서 해 보았지만 이렇습니다. 당신의 옷을 변상해 드리기 원합니다.”
“오우~ 그렇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그 옷은 한 두번 더 입다 버릴 참이었어요. 오래 입기도 했으니 그럴때도 되었지요"
인자한 그의 웃음기 머금은 눈은 사랑가득한 이웃의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젊을 적 직업이 파이럿이었다 한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는 80대 중반의 노인의 모습에서도 위엄이 있어 보인다. 한살 연상의 아내와 수를 누렸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코비드 시절에도 마스크 쓰지 않은 모습으로 두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외출하지 않고 집 안에 콕 박혀 있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살 만큼 살았으니 지금 가도 괜찮다 하시는 것 처럼 느껴졌었다.
무사히 아무일 없이 3년의 코비드를 끝내고 한살 연상의 아내인 에리카는 치매증상이 두드러져 간병인을 12시간씩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당 $30불을 지급하다 보니 한달에 만불가량을 간병인 흑인여자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사실에 놀라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괜찮아. 내가 이제는 좋은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돈 쓸일은 이런것 밖에는 없지 않겠니?”
우리 사는 인생이 다 거기서 거기구나 싶었다. 젊어서 비교적 안정된 직업으로 많은 은퇴 자금이 있어 자신의 노후를 자신이 해결하는 미국 노인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라의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타민족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 나라에서 기초연금과 간병인, 의료혜택을 다 주는 미국이니까..
그런 혜택을 누리고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꾸미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민을 와서 치열하게 내 삶을 엮어왔다.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주 6일을 오픈하고 문을 닫으면서 충실하게 살고 있다.
인종차별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가 겪은 백인들은 대체로 너그럽고 여유가 있었다.
오히려 유색인종끼리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땅이 아닌 미국땅에서 서로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정을 나눌수 있다는 것에 감사가 된다.
지금도 자주 오시는 린포드 할아버지를 보면서 오래도록 건강하게 계시기를 기도하게 된다.
한국 공우재단 암수기 곰모전 수상
한국일보 팬데믹수기 공모전 수상
제16회 뿌리문학신인상 시부문 당선
제16회 시애틀문학신인상 시부문 당선
제25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수상
(현)서북미문인협회 회원
(현)뿌리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