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 2 (렘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도 "절망에서 희망"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암흑한 상황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상황이 어둡다 해도 웬만해야 견디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상황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집도 잃고, 제사장도 왕도 기업도 사라지고, 백성의 대부분은 죽고 끌려가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마저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이스라엘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끝난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말씀하십니다.
절망을 이길 희망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계획이 희망입니다.
11절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미래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낮추고 낮추며 하나님을 붙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신앙훈련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낮추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숨도 쉬도록, 다니엘이나 그 친구들, 혹은 메데 파사시대에는 에스더를 통해 높여주시면서 신앙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알면 낙심하지 않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사람은 현재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를 안다면 절망할 수 없고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광야 이스라엘에게도 그랬습니다. 신8:2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시며 16절에는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혼자인 것 같아도 혼자가 아닙니다. 우연인 것 같아도 우연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러든 저러든 온전히 하나님 사람이 되게 하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이 희망입니다.
10절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너희를 돌아오게 하리라." 반드시 언제 어떻게 돌아오게 하시겠다. 분명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횃불 언약을 통해 약속하실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창15:13-14에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약속이 희망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곧 돌아온다.", "조금만 참아라" 하며 거짓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칠십 년이 차야 돌아온다." 말씀하셨습니다. 일제 36년도 긴데 70년은 너무도 긴 시간입니다. 그런데 70, 이 숫자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완전한 믿음을 이룰 때라는 의미입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10일도 충만과 전부를 가리키는 수입니다. 행1:14에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2:42에도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만, 이처럼 우리 몸과 마음이 전부 하나님께 드려질 때를 권능을 주십니다.
예레미야를통한 분명한 약속, 이렇게 분명한 제시가 있습니다. 막연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천국, 일시적 회개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하십니다. 하늘 가는 길은 밝은 길입니다. 희미하지 않아요. 절망에서 소망의 방법 분명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마음 중심에 아니다는 생각이 들거나 도저히 할 생각이 없으면 하지 마세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거슬렀다가 얼마나 고통을 당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이랫다 저랫다 아닙니다. 분명하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찾는 것이 희망입니다.
12-13절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포로 생활이 싫어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딱 하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군사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경제가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회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했습니다.
요엘도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2-13) 그랬습니다. 진실로 신앙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도의 위대한 전도자 선다 싱은 성도의 고난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평탄하게 자란 나무는 작은 가뭄에도 금방 말라 죽는다. 반면, 거친 태풍과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은 곳까지 내린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절망의 폭풍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영적 뿌리를 오직 하나님이라는 반석 깊숙이 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성경을 찾았습니다. 기도를 찾았습니다. 회당도 그때 생겼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회당에 모아 율법을 필사하고 낭독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삶을 반전시킨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절망은 사라지고 소망을 이루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