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섬진강 변에서 만나는 정자 함허정
곡성에서 옥과 가는 길에 숨어 있는 정자가 함허정이다. 바쁜 사람들은 바빠서 지나치지만 조금은 한가한 사람이 쉬었다가 가는 정자 함허정은 조선 중기 문사(文士)인 제호정(齊湖亭) 심광형(沈光亨, 1510-1550)이 군지촌정사(涒池村精舍)를 짓고, 섬진강(순자강) 일대 구릉지에 건립한 정자다.
함허정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구성은 마루 1칸을 3면을 터 만들었고 2칸 반은 방으로 꾸몄다. 나머지 오른쪽 반 칸은 바닥을 한 단 높여 쪽마루를 두었다.
함허정 안에는 <함허정 기문>과 시인 묵객 등이 남긴 시문이 적힌 편액에 15개가 있고, 그들이 남긴 <함허정시문>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유실되었고, 함허정 현판은 전주 출신인 창암 이삼만 선생이 썼다.
함허정 일대는 풍수지리상 거북이가 용궁을 향해 입수하는 형국으로, 거북의 등 위에 함허정(涵虛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정자에서 바라보면 섬진강이 휘돌아가고, 절벽 아래 용소(龍沼)와 구암조대(龜巖釣臺)라 불리는 하 중암도가 있고, 거꾸로 ‘용(龍)’자를 새긴 용암(龍巖) 관련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옥과현지(玉果縣誌, 1788)』와『호남읍지제2책옥과현읍지(湖南邑誌第2冊玉果縣邑誌(1871)』 등에 의하면 심광형의 증손인 구암(龜巖) 심민각(沈民覺, 1589-1643)이 쇠락한 누정을 현재 위치로 이건하고, 정자의 이름을 ‘호연정(浩然亭)’으로 개칭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19세기에 창건 당시의 이름인 함허정으로 이름으 고쳤다.
함허정은 제호정 고택과 연계되어 특별한 장소로, 옥과현감을 지낸 위백규(1727-1798)와 최원(1788∼) 그리고 신위(1769-1845) 등의 이 정자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곳을 찾았던 문인들이 주변의 경관을 읊은 기문과 시문들이 전해지고 있어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머물면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다.
“당나라 사공도司空圖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중조산中條山에 살면서 정자를 짓고
삼의휴三宜休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재능을 헤아려보니 쉬어야 하고,
둘째로 분수를 헤아려보니 쉬어야 하고,
셋째로 늙고 눈마저 어두우니 쉬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나라 목종穆宗 때 공규孔戣라는 사람은 늙었다는 이유로
물러가기를 청했다. 이에 한유韓兪가
“공은 아무런 재산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나는 나이로 보아 물러가야 하고,
좌상左相이 되어서는 낭관郎官의 진퇴를 잘못했으니,
물러가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도
그대의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약졸李若拙의 자는 장용藏用이고 전운사轉運使를 지냈다.
스스로 세상 따라 부침浮沈한지가 오래되었다고 여겨서
오지선생전五知先生傳을 지었다.
그 내용은 때를 아는 것, 어려움을 아는 것,
명命을 아는 것, 물러갈 줄 아는 것,
만족할 줄 아는 것으로 되어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실린 글 한 편을 떠 올려도 좋으리라.
섬진강을 지나다가 한참을 머물다 가는 정자 함허정이 다시 그립다,
2024년 7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