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명가 안명규 사장과의 인터뷰
1. 커피명가가 지나온 역사가 꽤 된다. 그 시작이 경북대 후문 부근이라고 들었다. 카페를 처음 열게 된 계기는?
경북대 후문 쪽에서 처음 카페를 연 것이 맞다. 당시 나는 커피보다 ‘공간’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다. 사람들이 카페에 가는 이유가 주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닌가. 꼭 커피가 좋아서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학교 주변이나 시내를 다니다보면 다양한 공간들이 많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머무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공간, 혼자와도 편안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음 했다. 감성발전소라고 불러도 될까, 자신만의 타임캡슐 같은 공간을 만들고 나는 그 공간지기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을 ‘커피명가’라고 짓게 된 것이다. ‘명가’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흔히 유래가 깊고 큰 집, 유명한 집.. 그런 식으로 이해를 하던데, 사실 내가 처음 명가라는 이름을 지을 때 밝을 명(明)자를 쓴 것이다. 이 공간에 오면 밝음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커피’는 이러한 공간을 운영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이자 에너지원으로 선택한 것이다. 당시엔 내가 이만큼 커피에 대한 애착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선 공간이 가장 중심이었고, 이후 커피를 선택한 것인데, 커피라는 말이 히랍어로 “원기를 주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공간과 커피를 통해 사람들에게 밝음과 에너지를 줄 수 있었음 하는 마음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자립했다. 처음 공간을 만들 때 내가 하고싶단 생각만 있지 자본이 있는게 아니었다. 그래서 공사장 일부터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면서 그때 배운 것들로 내가 직접 공간하나하나 다 꾸몄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공간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색다르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 그런 공간이 흔하던 시절l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일대 학생들에게 커피명가가 커다란 이슈였고 아주 쇼킹한 일이었다. 처음 공간을 어디에 만들까 했을 때 대구와 구미, 포항을 두고 고민을 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구미시가 유리할 것 같더라. 회사가 많으니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발전적일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겠다 싶었고, 대구 중에서도 경북대가 대구경북권의 중심 대학이고 하니까 싶어 그곳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인정을 받으면 앞으로 어디 가서든 잘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고, 학생들이나 교수들을 통한 인적 인프라 구축도 할 수 있으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 문을 연 날이 7월 23일이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상권 형성이 되어있지도 못했다. 문을 열고나니 첫날에 5명이 왔다갔는데(웃음) 그뒤 다녀간 사람이 아는 사람을 데려오고 입소문이 나고 그러니까 한 달 만에 150여 명이 다녀갔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통제불능이 될 정도였다. 앉아서 즐길 여유도 벗고 공간도 협소해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한 일이 정확하게 두 달 만인 9월 23일에 카페 전 구역 금연을 지정했다. 당시에 그런 곳에서 금연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쇼킹한 일이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보자면 그린 인테리어로 갖다 둔 화분도 살리고, 공간 안에 커피향도 살리고 또 아내도 임신한 상태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했을 수도 있다. 일단 나로서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게 크다. 그리고 내가 만든 공간이 사회적으로 좋은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데서 구상하게 된 계기도 있다. 사실 담배가 좋은 속성도 물론 있다. 나름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배려문화도 있고... 당시 금연한다고 맞아죽는 줄 알았다.(웃음) 반응들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다.
그 공간이 비즈니스 자체는 정말 잘되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30명에서 50명 정도는 그 골목에 줄을 쭉 서서 기다리고 했었다. 그 골목이 그런 유래가 없었는데 우리 공간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게 되자 주변 상권이 같이 살아나게 되었었다. 그래서 공간이 있던 건물이 시세가 오르고 프리미엄이 붙으니까 건물 주인이 팔아버렸다. 건물 팔면서도 새 주인한테는 우리 공간이 장사 잘 되니까 잘 붙들고 있으라고 했다는데, 당시 임대차보증 그런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결국 쫓겨나게 된 거다. 그때가 92년 5월경인데, 새 주인이 나가라면서 내가 하나하나 꾸며놨던 내부 인테리어를 다 가져라가는 거다. 사실 벽에다 해놓은 거 뜯는다고 다시 다른 곳에서 그대로 쓸 수도 없는 거고 그 건물 내부 자체에도 좋을 게 없는데 주인이 그러니까...나도 내 손으로 공들인 거라 진짜 다 뜯어왔다. 사실 그 건물이 큰 손해를 본 걸거다.(웃음) 그때 새로운 공간을 찾아 지금 있는 시내로 오게 된 것이다.
2. 커피명가의 커피만의 특징이랄까,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무언가가 있는가?
나는 커피 맛이 곧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카페명가가 추구하는 것은 ‘느낌’으로서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맛있는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은 영화 한편을 보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그냥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과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마시는 것이다. 맛있는 커피는 어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미묘한 맛이 있다. 내가 공간에 있으면서 볼 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그 맛을 느끼면 그 표정에서 그 사람의 감정이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되도록 커피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 기쁨을 보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커피가 맛이 있으면 그 느낌이 입속에 꽉 찬다. 그 느낌이 쉽게 이야기하자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냥 맛있다고 마시는 게 아니라 그 느낌을 좋아하고 마시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그런 문제가 아니라, 집에서 하는 솥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밖에서 아무리 좋은 밥을 사먹더라도 집에서 갓 지은 솥밥을 먹었을 때 느끼는 그 만족감은 어느 것도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커피도 느껴지는 그 맛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주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커피가 가지고 있는 성분 중에 감각을 활성화시켜주는 물질이 있지 않은가. 마약도 마찬가지일거지만. 아, 일단 그 단서에는 커피가 기본적으로 맛이 있어야 하긴 하다.(웃음)
커피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다가섰던 1988년경부터다. 그때부터 3년 정도 공부하며 준비해서 시작했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커피 맛을 내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때부터 거의 18년 기간 동안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했는데 그 기간 동안 급격하게 쭉 좋아졌다든지 하는 건 없다. 처음 시작해서 1990년까지 3년 동안 이루었던 비약적인 발전에 비하면 사실 그리 나아진 것은 없다.(웃음) 다른 예이겠지만 조용필씨가 30대, 40대에 인기 최정상에 있고 50대 들어서도 여전히 최고 가수다. 그런 가수가 인기 최정상일 때보다 지금이 노래를 훨씬 더 잘한다는 건 아니지 않겠나. 30대엔 30대에 맞는, 50대 들어선 50대에 맞는, 그때 들어 그에 맞는 감성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3. 얼마 전에 CF에 출현했다. 그 이후 달라진 점이 있는가
우선 먼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이루고 싶은 두 가지 명제를 달고 싶다. 첫 번째는 ‘동서’를 이겨보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 일본을 넘어야된다라는 것이다. 나도 처음 커피를 마실 땐 인스턴트 커피가 전부인 줄 알았다. 80년대에 경제가 조금 나아지면서 커피에 대한 개념이 먹고 마시는 데에서 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뀔 무렵에도 커피는 여전히 독과점 상품이었다. 당시 커피 매출은 동서 식품이 거의 잡고 있다시피 했고, 네슬레 시초인 MJC, 롯데가 미미한 그 정도였다. 국민들이 좋아하는 거면 왜 커피 문화에 대해 알려고 하고 즐기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을 상대로 한 우민정책과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고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문화를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문화는 상승될 것이고 그 문화를 통해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선 변화에 따라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서’를 몰락시키고자 한 게 전부가 아니라, 그들의 독과점 마케팅 구조를 바꾸게 하는 것이 내가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CF 광고는, 네슬레에서 광고에 연예인을 쓰기 보다는 전문가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인격과 전문성을 통해 질 좋은 커피로 인정받고자 하는 취지였던 것 같다. 회사 측은 커피에 관한 영향력이나 경력, 실질적 가치 정도를 두고 사람을 골랐다고 한다. 마지막엔 5명을 추렸다. 이후 카메라테스트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가 1위로 결정되었다고 하더라. 광고가 대중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내가 광고에서 이 제품이 좋으니까 사라는 게 아니라 커피에 대한 평을 내리는 것으로, 고민을 좀 하긴 했지만 결국 촬영을 수락했다.
지난번 금호주택 전시관에 정식 공간 조성이 아니라 임시 입점 형태로 진행했었는데 그 곳에서 느낀 게 내가 만든 이 공간이 전시관의 ‘허브’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나는 카페 주인만 현명하다면 그리고 열정이 있다면 그 지역의 사회문화를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전시관 오프닝 식에서 테이프 컷팅을 하는 데 디자이너 이상봉씨, 연극인 박정자씨, 윤석화씨 등등 유명인들 10명 정도가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뒤에서 시음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요즘 추세를 보자면 파티쉐, 요리사, 디자이너, 헤어디자이너... 다들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것을 인정받고 예술가처럼 칭송받는데 카페주인은 왜 그러질 못하나. 카페주인이라고 물주전자만 붙잡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중에 10년 전 요리사 협회장을 지내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젊었을 때는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다. 그분에 협회장 지내시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셔서 지금은 우수한 요리사들은 거의 장인 대접받고 있지 않은가. 커피 바리스타도 충분히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테이프 컷팅식에 서있던 유명인들 모두 아티스트로 초청받아 온 것 아닌가. 이런 부분이 CF 촬영을 수락한 이유도 있다. CF 촬영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기업이나 관청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는 점이다. 요즘 커피나 와인이 문화인으로서 지녀야할 소스로 인식되는지라 금융계 쪽에서도 강연이 들어온 적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는 연극에 커피가 소스로 쓰인다 하여 자문을 한 것도 있다.
두 번째 명제, ‘일본을 넘자’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커피는 크게 향 50%, 맛 50%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를 이야기 하자면 남는 여운이 있겠지. 이런 점들이 우리 삶의 부분들과 정말 많이 닮아있다. 커피가 좋은 향과 맛을 가지기 위해선 정직하게 순리대로 과정을 거쳐야지 맘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커피도 좋은 재료를 구해서 좋은 기술의 로스팅과 신선함을 살린 과정을 통해 정해진 대로 해야 향과 맛이 만들어진다. 커피에 대한 정보 수집과 관리 능력은 나 스스로 자부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선 커피에 대한 정보 교류가 그다지 특화되어 있지 못하다. 앞에서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했지만 기본적으로 커피쟁이는 커피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 커피를 지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맛을 뽑는 좋은 기술과 좋은 재료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현재 남에게 뒤지지 않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래서 작업을 어느 정도 해두면 항상 좋은 재료를 구하러 다녔다. 이곳저곳 다녀보니 좋은 재료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내가 취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횟집 주방장이 좋은 회를 내놓기 위해선 우선 생선이 좋아야 하지 않은가. 양식보다는 자연산이어야 한다는 건데, 자연산 중에서도 남보다 훨씬 좋은 재료를 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최고의 방법은 주방장이 직접 선주(船主)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자면 재료를 구할 수 있는 물까지 관리해야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본이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의 커피와 우리의 것을 비교하면 사실 기술이나 기술자들의 숙련도는 우리가 훨씬 앞선다. 일본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섬세하다. 근데 일본은 재료가 참 좋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재료들과 비교하면 등급 차이가 확연하다. 그들은 직접 커피 농장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농장에서 좋은 재료 수확이 이루어지면 다른 댓가 없이 자연스럽게 바로 일본으로 모두 이동되는 것이다. 그 나머지 하위등급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판매가 되는 것이다. 일본을 피해 좋은 재료가 생산되는 곳을 찾기가 힘들고, 발견했다 하더라도 구입하는 것도 참 힘들다.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질 높은 재료를 구입하려면 머리라도 조아려야 하고 사정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점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커피가 생물이라 구입해서 신선도를 유지하며 바로 가져오는 것이 참 힘들다. 자본문제도 있고 해서 혼자서는 힘들어 몇몇 사람들과 동업을 해서 재료를 구입해오고자 하였다. 그래도 막상 구입 당시 발 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 빈 부분들은 내가 다 뒤집어써야 할 부분이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도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도록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처럼의 일부 독점 형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재료의 자주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와인과 커피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가능한 요소이다. 그래서 잘사는 나라일수록 좋은 재품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는데, 일본은 농장주가 되었다는 것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좋은 원두를 대부분 점유한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케냐의 세계 1위 원두를 정당하게 구입해올 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일본이 만들어놓은 원두 시장 문화와 이를 당연시 받아들인 세계에 한방 제대로 먹인 거라고 생각한다. 정당한 대결을 통해 얻은 성과이기 때문에 이번 일에 일본을 넘었다라고 큰 가치를 두고 싶다.
4. 바리스타 교육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바리스타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지원자들의 동기는 대체로 어떠한가.
커피 문화와 바리스타가 사실 거의 동시에 수면위로 떠올랐다고 본다. IMF 경제위기 직후쯤이었을 것이다. 그 전엔 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해외출장 많이 다녀본 사람들, 외국에 거주해본 사람들, 특정 종교 관련자들이나...대부분 사회 지배층, 지식인층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2000년대 들면서, 일반사람들이 일상대화 속에서 같이 커피 한잔 하자고 하면 ‘나 오늘 커피 5잔이나 마셨다.’라는 말들 자주 했는데, 그 말이 정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단 의미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나는 커피를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지배층과 같다,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 식의 과시적 성향을 나타내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실업자 구제 및 경제상황 회복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자영업 규모가 커져버렸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빵집과 커피숍이다. 빵집은 창업비용이 많이 드는데 커피숍은 상대적으로 창업비용이 적고, 게다가 사회지식인층이 많이 찾는 커피숍을 가진다는 게 너도나도 인텔리가 된 듯한 느낌이 있어서 그런가 커피숍이 그때 많이 늘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커피숍을 경영하기 위해 전문 교육을 받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모이고 교육을 마련하는 움직임은 90년대 말경부터 있어왔다. 그리고 외국 기업 중 특히 스타벅스가 들어오면서 서울 시내에 노른자위 땅에 들어섰다. 그 자리들은 원래 은행이 있던 곳이었는데 구제금융위기 이후 비게 된 땅이었다. 한국에서 스타벅스의 성공 이후 사람들에게서 창업 붐도 함께 일어났다.
1994년 2학기에 대구보건대에서 커피 관련 전공 학과가 최초로 설립되었다. 1999년에는 단국대에서 사회교육원 커피 강좌가 만들었졌다. 지금 경북대에서 하는 수업 학생수는 약 150명 정도인데 20대, 30대가 많지만 그 이상 연령층도 많다. 젊은 사람은 창업을 위해, 조금 나이든 분들은 부업을 위해 삶을 준비하는 목적인 것 같다. 쉽게 말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당장 취업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 취미로 배우는 경우도 많다. 교수, 의사 같은 직업을 가진 분들도 꽤 있다. 가게를 꾸려오고, 강의를 하면서 사회 인맥도 많이 늘었다.
5. 커피명가 지점이 생겨나고 있다. 본점과는 다른 지점 운영방식이나 다른 지역에 있는 지점만의 특성이 있는가. 커피문화란 게 있다면, 우리 생각에 커피명가의 문화도 있는 것 같다,
지금 있는 지점들은 다행히 각자 지역에서 사랑받고 있는 듯하다.(웃음) 커피명가가 잘되면서 프랜차이즈 의뢰를 받은 게 한 3000건은 넘는다. 근데 대부분 거부를 했고 지금은 대구근교 몇 곳과 전북 익산, 울산광역시에 각각 한 곳씩 있다. 서울에는 프랜차이즈로 분점을 낸 것은 아니지만 컨설팅 방식으로 관여하는 곳이 30여 점이 있다. 사실 프랜차이즈를 하면 수익 면에서 나에게는 좋다. 그러나 지점이라고 해도 그 공간은 그 주인의 것, 그 지역의 것인데 왜 남에게 묶여서 일부 돈을 뺏기고 해야 하는가. 프랜차이즈는 돈벌이수단일 뿐이다. 나는 그 점이 싫어서 의뢰 들어오는 것을 대부분 차단했는데 건수가 많아서 차단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타 지역에 지점을 낸 것도 사실 우리 명가에서 5년 내지 10년 동안 함께 일을 해 와서 어느 정도 커피에 대한 정신이 같은 사람들이 하고자 해서 가능했다. 그러나 그 지점들도 지역 특성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 커피명가와는 같은 점이 없다. 그 공간들은 그 지역의 사람들이 원하는 디자인이나 품목, 가격이 그곳의 문화와 어우러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커피명가의 경쟁자가 다른 커피 브랜드가 아니라 소주나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커피나 술은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게끔 하는 매개체이니까 말이다. 와인은 세계를 시장으로 완성된 상품이 이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피는 수입된 원료로 여기서 완성을 시키는 점이 다르다. 좋은 원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자 가져가더라도 그에 대한 정성, 관리와 기술을 반영시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것 까지 모든 과정을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와인과는 생성되는 문화가 전혀 다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커피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거의 정상에 올라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감성이란 게 커피 문화를 만들기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사회 분위기가 와인보다는 커피가 조금 더 대중화되어 있기 때문에 와인과 비교해 커피 문화가 불리한 점은 없다.
예전에 ‘된장녀’를 이야기 하면서 그들의 커피 소비문화도 같이 거론됐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비 행동은 커피가 아니라 그 공간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된장녀의 커피 소비가 커피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본다. 그런 곳에 가서 커피마시는 것을 보고 스타벅스의 문화가 이렇네 저렇네 하는데, 정말 묻고 싶은 게 그렇다면 과연 스타벅스 만의 문화가 뭐냐는 것이다. 스타벅스 만의 문화가 있는가? 나는 없다고 본다. 시기적 적절성을 틈타서 입점한 상황을 스타벅스가 이미지 포장을 잘 한 것뿐이다.
나는 카페를 ‘터미널’이라고도 표현을 하는데 그 이유는 이 공간에 오는 사람들끼리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커피명가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손님들이 직접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한다. 가게에 있는 LP, CD 음반들도 손님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들이 많다. 사람들이 커피명가에 오면 그 분들의 추억을 그리는 비용이 커피 값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박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이 공간에서 계속 만들어 보여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문화적인 의미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7. 서울이 아니라 대구에서 이처럼 이름을 전국적으로 알렸다는 점이 대단하다. 모든 것이 서울중심인 현실에서 대구가 커피 문화가 이끄는 한 축이 될 수 있을지.
커피명가는 대구지역 고객들이 사랑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90년대 말부터는 수도권 지역에서 컨설팅 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단국대 강의를 하다보면 1주일에 절반 이상을 서울에서 보낼 때도 많았다. 서울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서 ‘대구에 커피명가 말고는 커피 마실만한 곳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조금 당황했던 일이 있다. 물론 나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랬을 것이고, 대구에 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일거다. 어쨌든 내가 그렇게 바라던 나의 공간도 내팽겨치고 서울에서 뭐하는 것인가, 서울에서 내가 잘 나가게 되더라도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서울에 앞으로 지점을 낼 수도 있다. 아직 서울에 지점을 내지 않은 것은 커피에 대하여 커피명가와 같은 정신을 가진 공간이 필요한 것이지, 커피명가가 그대로 옮겨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요즘 들어 처음 내가 생각한 데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커피 문화의 형성에 도움을 주는 건지 반성을 해보게 된다. 대구 시내에 넘쳐나는 커피숍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딴 이야기지만, 동성로 도심부에는 1년에 평균 2번 꼴로 가게 간판이 바뀐다. 삼덕 소방서에서 구 동인호텔까지 이어진 길에서 십몇 년 동안 바뀌지 않은 곳이 두 군데인데 하나는 커피명가, 다른 하나는 작은 슈퍼마켓이다. 그 슈퍼마켓도 주인이 바뀐 걸로 아는데, 그렇다면 커피명가가 가장 오랫동안 꾸준해왔다는 것이다.
우리 커피 명가에서는 ‘명가 음악회’를 꾸준히 하고 있다. 기억이 맞다면 첫 회가 1991년 10월 30일이었다. 음악회를 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에게 커피 그 자체를 좀더 잘 느끼길 바라는 맘이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커피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냥 마시는 거지 특별히 느낌을 받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느낀다는 건 입뿐만 아니라 코로도, 귀로로, 눈으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커피말고 다른 것, 음악을 가져와 봤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게 지금 로스팅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는데 그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매우 무미건조한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그와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베토벤 월광 소나타가 나왔는데 그 눈빛이 바뀌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아, 음악이 이런 구실을 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명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경북대 학생들이 많았다. 그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던 부분들이 뭐였냐면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이 일에 대한 신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보냈는데 다방 같은 곳에서 서빙하고 있으니 못마땅해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들이 나에게는 첫 번째 고객이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이 명가에 대한 만족과 애착이 있어야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명가로 부모님들을 한 번씩 모셔오라고 했다. 부모님들이 명가에 와서 직접 우리 공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학생들 몇몇이 부모님을 모셔오더라. 그분들이 직접 오셔서 자식들이 일하는 곳이 단순한 다방이 아니고, 대학 교수, 의사 등 사회지배층들도 찾는 문화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고 가시니까 학생들을 믿어주시는 거다. 그 학생들이 부모님의 믿음을 ‘라이센스’로 얻게 되니까 더욱 신나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좋았다. 음악회도 그렇고 모든 것은 믿음이 바탕을 이루어야 되는 것 같다. 커피맛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위해서, 집에서 커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한 가지만 소개 부탁드린다.
보통 집에서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어렵다. 재료의 신선도 유지도 큰 문제이다. 커피는 생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신선도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최대한 맛있게 드시려면 조금씩 자주 갈아서 드시는 게 좋고, 한번 원두를 사면 아낌없이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선물용이든 구입용이든 커피를 100g 이상 판매 안했으면 좋겠다. 100g 분량은 아무리 부지런히 마셔도 일주일 분량이다. 요즘 가정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던데, 가격대도 꽤 높을뿐더러 사실 에스프레소 머신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 나는 그라인더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라인더는 좋은 것을 구입하면 거의 평생 쓸 수 있다.
커피 향을 이야기할 때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로스팅할 때의 고소하고 맛있는 향, 그리고 원두를 갈 때 생기는 향, 그리고 커피를 추출하면서 나는 마시기 직전의 향, 커피를 마실 때 입안에 차는 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시고 난 후 여운으로 남는 잔향인데,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커피가 가진 최고의 향은 바로 원두를 갈 때 나는 향기다. 원두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가느냐가 그 향을 유지하고 앞으로 느끼는 것에 가장 중요하다. 근데 일반 가정에서는 많은 양의 원두를 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다 갈아버려서 가져오지 않나.
좋은 커피까지 대접을 받았다. 몹시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흥미롭게 답해주신 점 감사드린다.
(인터뷰 - 윤규홍 / 기록 - 유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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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대구인데.......북대후문이면.......자주가는곳인데.....함 보자구요
숨이 다 참니다그러니까 커피가 좋다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