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천_진성도예_가을밤을_함께하다
테이블을 옮기고 먹거리를 준비하였다. 각자가 장을 봐온 것들을 씻고 썰고 부친 후, 진성도예의 우아한 그릇들에 담아 상을 차리다. 플로라가 직접 키운 파로 부친 연수님의 쪽파부침개는 막걸리를 생각나게 하였다.
이스크라표 구이바다 겉바속촉 삼겹살은 플로라가 직접 키운 상추(씨앗이 떨어져 절로 돋아난 상추)에 쪽파와 풋고추에 쌈 싸먹는 맛은 가을 달밤의 쌀쌀함을 저만치 잠시 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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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날 새참으로 라면을 끓이다
구이바다표 라면이다. 국물이 짬뽕 국물 같았다. 쪽파와 미나리, 풋고추와 홍고추를 송송 썰어 넣었다. 해장 라면이었다. 국물이 끝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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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맞은편 야산 산책과 계곡 탐방
야트막한 산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딱 알맞은 산이었다. 숲길에는 곳곳에 꽃들이 피어 있다.
"이 꽃은 이름이 뭐야?"
"산부추 꽃"
플로라는 거의 모르는 꽃이 없다(물론 아는 꽃만 안다고 플로라는 말하였다).
"나는 꽃 이름은 듣고 돌아서면 까먹어"
이러니 셋이서 같이 산책하며 나는 꽃이름 물어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신작가님은 망원경을 챙겨왔다. 그러고는 멀리 있는 것을 본다.
"적의 동태는 어떠한가? 오버"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오버"
플로라가 망원경을 잡고 본다.
"누구의 산소인가? 반드시 이름을 찾아내야 한다. 오버"
이러고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정자에 도착했는데, 이 정자에 사용한 나무는 마감이 매끄러웠다. 니스칠인가? 옻칠인가? 정자는 산책하는 동네 분들이 늘 닦아 놓는가 보다. 깨끗하니 좋았다.
신작가님은 지난번에 송이를 발견했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낙엽들 위만 보게 되었다.
"'송이 색상과 낙엽 색상이 거의 똑같으니 안 보일 거 같아요"
이렇게 말하고는 나는 계속 낙엽 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송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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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탐방
지난 비 피해로 계곡 길이 유실되었다고 신작가님은 말하였다. 길이 없는 계곡은 작은 돌들이 가득하였다.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계곡을 조심조심 걷는 기분은 스릴이 있었다.
바위와 돌들이 가득한 계곡이었다. 엄청난 비가 돌을 많이도 끌고 내려왔다. 우리는 우리 맘에 드는 돌을 골라보았지만, 무거워서 가지고 갈 수 없다. 몇 개만 주었다. 공기놀이 돌도 골랐는데, 전성도예 테이블에 놓고 왔다.
세 사람이 그때 돌들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다니, 아무래도 그때 우리에게는 돌들이 황금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빗물에 휩쓸려온 돌들은 대리석 같기도 하고 시멘트가 굳은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였는데, 깨진 단면들이 매끄러웠다. 결대로 잘 깨져 있었다.
"돌 보기를 황금처럼 보라"
계곡을 따라 바위들을 거치고 내려가며 조금 평지에 도달하자 그곳에 주저앉아 다시 돌을 골랐다.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다른 돌로 바꿨다. 계속 돌을 교체하면서 계곡을 내려오는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플로라는 물물교환처럼 느껴졌었나 보다(오늘 밤은 낭독회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로 한참을 웃었다).
그때는 '한스'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마패'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들고 내려온 돌은 '마패'였던 것이다. 마패로 말을 교체한 후 타고 가듯이, 우리는 돌을 위에서 아래로 운반해주고 다시 돌을 고를 수 있는 재량을 갖게 된 것이다.
플로라는 "돌이 이동하고 싶어서 우리를 조정한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 돌이 뭐라고 계곡을 내려오면서 돌을 들고 내려오면서, 또 서로 돌을 받아주면서 바위를 타고 내려오는 그 풍경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웃음이 나왔던 것이리라. 돌을 들고 내려오던 그때 우리 손에 쥐어진 돌은 어떤 무게였다. 많이도 아닌 딱 그 무게만큼만 허용되는 순간에서 우리는 그 돌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모종의 협약을 한 것이다.
벌통을 치는 농가 부근에 도착하니 큰 개 작은 개가 나와서 우리를 보고는 호되게 짖는다. 돌을 손에 들고 있어서였을까.
"응 그래그래 알았어. 우리는 금방 지나갈 거야"
부러 주인장분께 말도 걸어본다.
"안녕하세요"
"길도 없는데 어떻게 거기서 와요"
"예 계곡 탐방했어요"
큰 개들과 작은 개는 우리가 자신들의 주인과 말을 섞자 조금씩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것도 같았다.
이내 저수지가 나온다. 우리는 계곡을 벗어났다고 좋아했다. 저수지 풍경은 한적했다. 저쪽 산자락에 앉아 저수지를 감상하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 곳은 다음에 탐방하기로 했다. 물론 나 말고 모두 탐방한 곳이지만 말이다.
"돌을 저수지에 던질까?"
점점 무거워지는 돌을 저수지에 던지면 시원할 것 같았다. 플로라는 "수풀에 숨겨놓고 다음에 찾으러 올까?"
신작가님은 집에 다 왔다고 하시며, 처음 그 자세 그대로 걷는다. 안정적인 자세였고, 플로라의 돌을 하나 받아서 마저 들고 걷는다.
나는 찻잔 받침으로 사용하고 싶은 작은 돌 몇 개를 외투에 달린 모자에 담고 걸었더니, 외투의 모자는 점점 뒤로 쳐지면서 어깨에 걸쳐지게 되었다(내가 플로라에게 모자 안에 넣어 달라고 했었다). 이렇게 이상한 옷차림새로 변하면서도 손에는 돌 하나가 들려 있다.
속으로 돌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돌과 다기는 잘 어울린다. 자연물과 인공물의 만남이지만, 왠지 그때 다기는 자연물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연물과 인공물의 대비에서 도자기만큼 자연물과 잘 어울리는 것도 없으리라.
인공물은 어떤 완전한 형체로 자연물 안에 있을 때 낯선 풍경을 연출한다. 역으로 자연물은 인공물 안에 있을 때 그 장소에 한적한 풍경을 연출한다. 본래의 용도에서 다른 곳에 놓일 때 그 낯선 느낌이 시선을 끄는 것이며, 마음에 파동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예술적 효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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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의 가이드로 계곡 탐방하니 정말 좋네요"
이렇게 말하는 플로라의 말을 내가 받았다.
"우리 이렇게 셋이서 터벅터벅 걷고 있으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랬다. 현지인의 가이드로 길이 없는 계곡탐방을 한 것이다.
"이런 컨셉으로 영상 찍으면 재밌겠다. 그리고 돌을 수풀에 숨기는 것으로 영상을 마무리 하는 거야"
그러자 신작가님은
"내 복장도 현지인 복장이지" 라고 말하였다.
'현지인'이라는 그 말로 한참을 말장난하며 놀았다. 현지인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렇다. 우리는 현지인의 가이드로 계곡 탐방을 스릴 있게 마무리한 것이다. 이제 현지인의 집에 도착했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고, 멀리 저수지 위에 서녘 햇살이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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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도예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돌 무게를 저울에 달았다. 남는 것은 힘이었나 보다. 신작가님의 돌은 10kg이 넘었고, 내 돌은 5kg이 조금 넘었고, 플로라의 돌은 3kg 정도였다. 돌을 어깨에 메고 걸었더니 목 근육이 얼얼하다. 돌을 세제로 잘 닦아 때를 뺀 후 솔로 박박 문질러서 말려 놓았다. 마르면 기름칠을 할 것이다. 자천 계곡의 돌, 계곡 홍수로 쓸려 내려온 돌, 탐방 기념으로 자천 계곡의 돌을 차도구로 잘 사용해 보려고 한다. 계곡의 돌들은 계속 쓸리고 쓸려 닳아지거나 밑으로 내려올 것이고 언젠가는 모래가 될 것이고 또 그 언젠가는 흙이 되어 이내 도자기를 빚는 흙이 되기도 할 것이다. 어떤 돌들은 돌담이 되고 어떤 돌들은 정원 담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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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신고 왔던 이스크라는 야산 산책 도중에 다시 내려갔는데, 안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우리도 계곡 탐방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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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 밧데리가 '졸'하여, 계곡 탐방 사진은 없습니다.
첫댓글 좋은 시간 보냈네요^^
네 가을맞이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