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전북도민일보 2019년 5월 16일자 <5·18 유공자 하연호 씨 “당시 광주상황 전주에 알리려 노력”> 기사에는 5·18 국가유공자 하연호 씨가 39년 전 광주항쟁을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3525&sc_section_code=S1N8
그해 5월 16일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사진전에서 하 씨는 1980년 5월의 기억을 꺼냈다. 그는 5월 18일 광주의 상황을 접한 뒤 김제에서 야학을 함께 운영하던 동료 교사들과 광주로 향했다. 언론이 통제된 상황에서 광주의 현실을 전주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가 포위됐다는 소식에 길은 막혔다. 그때 순창을 거쳐 전주로 넘어온 김현장 씨에게서 광주 상황을 담은 유인물을 건네받았다. 하 씨는 밤과 새벽을 이용해 전주 시내를 돌며 집집마다 유인물을 뿌렸다.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뿌린 유인물만 수만 장에 이른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는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도록 뒤에서 도운 일도 털어놓았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바깥에는 이미 장갑차와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하 씨는 5월 27일 전주경찰서로 연행됐고, 지하에서 보름 가까이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치아와 무릎, 어깨 등 온몸에 깊은 상처가 남았다.
하 씨는 5·18을 둘러싼 왜곡과 망언이 반복될 때마다 “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5·18 유공자들이 연금 등 특별한 혜택을 누린다는 오해도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실제 처우와 거리가 먼 편견이 유공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26년, 하연호 씨는 어디에 있는가.
통일뉴스 5월 4일자에 실린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의 기고 <감옥에서 온 편지>는 그의 현재를 전한다.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6403
이 교수는 전주 지역에서 오랫동안 농민운동과 통일평화운동을 해온 선배 시민운동가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그 선배가 바로 5·18 국가유공자 하연호 씨다. 그는 군산교도소에서 전주교도소로 옮겨져 독방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농민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과 북의 농민들이 만나 통일시대의 농업을 이야기하던 자리였다. 하 씨는 그곳에서 만난 해외 동포와 이후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고,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상을 나눴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몇 차례 만남도 있었다. 분단선 밖에서 해외 동포를 만난 일이 과연 감옥으로 이어질 만큼 중대한 죄인가.
국정원은 그 만남과 연락을 ‘북한 공작원’과의 회합, 통신, 첩보 교환으로 판단했다. 하 씨와 시민사회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나, 2심은 일부 혐의를 추가로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끝내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1980년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던 하연호 씨는, 40여 년이 지나 다시 국가권력의 처벌 대상이 됐다. 국가는 이번에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하연호 선생이 누구인가? 1950년대 김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야학을 시작했고, 교사로 일하던 시절 유신 반대 활동으로 해직됐으며, 이후 평생을 농민과 노동자, 소외된 이웃의 권리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살아온 분이다. 그런 그가 일흔을 넘긴 나이에 병든 몸으로 독방에 갇혀 있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물은 바 있다. 3·1운동,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을 이어온 민(民)의 힘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다시 일어섰다. 12·3 비상계엄 사태 앞에서도 주권자들은 민주주의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런 시대에 5·18 국가유공자가 5월 18일을 감옥에서 맞는 현실은 참담하다. 국가는 그의 삶을 기려야 마땅하다. 하연호 선생의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주권자의 양심과 사상을 억누르고 통일을 가로막는지 보여준다.
올해도 광주의 5월은 돌아온다. 망월동 묘역에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산 자들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다시 부를 것이다. 하연호 선생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한다. 전북을 비롯한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그의 가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아래 링크에서 서명에 동참할 수 있다. 그를 홀로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북개헌운동본부 하연호 공동상임대표 가석방 촉구 탄원서
https://forms.gle/EKFfL2v6tZuhCSo97
하연호 선생의 석방을 요구한다. 그의 양심과 삶을 이대로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살아온 그의 시간을 더는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첫댓글 토이님
문재인 정부에서 왜 5.18에 대한 야기를
하는 것을 법으로 막았을까요.
님이 언급한 하선생의 행동 일자가 정확하다면
아주 문제가 큼니다
더군다나 민간인이 도저히 접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5.18전에도 광주 기타 도시에 좋은 말로 민간봉기
속명으로 데모꾼 천지인데
꼭 찝어 야기한 것이 문제네요
님이 언급한 날짜에 하선생이 한 행동은
민주화는 뒷전이고 정부전도로
밖에 보이질 않아요.
좌우간 고맙습니다
사건의 진실에 자꾸 가까와 지는
느낌이 드니
재주는 곰이하고 돈은 때놈이 걷지요
노무현전대통령과 문재인의 차림새와 집안살림을 서로 비교해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언제나 수수하고 검소한 옷차림과 살림을 유지하셨던 노무현전대통령님과는 달리 문재인은 지지자들과 군중들 앞에서 차려입은 옷차림만해도 사치와 허영, 과시 그 자체였죠. 문재인이 지지자 앞에서 유세떨때 히말라야 놀러갔을때 입었던 윈드스토퍼복장 그대로에 스위스산 명품안경,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산 샤넬 고급 바지와 점퍼, 양말까지 차고있었던 사치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아직 확연하게 드러난건 없지만 문재인이 안기부의 녹화사업, 잠입감시용으로 투입된 이중프락치이자 이중간첩이었다는 어느분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문재인을 대표하는 단어가 몇 개 있다면 그것은 이중성과 위선, 과시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오래지난 일이긴 하지만 과거에 국정농단사건 터졌을때 취재할려는 기자카메라를 손으로 퍽 밀어버리면서 기자들한테 인간이하멸시, 거만함과 오만방자한 행동을 그대로 저질렀던 최순실모습 다들 기억나시나요? 그런데 그 최순실이 검거된 이후에 갑자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소리치면서 난리판을 쳤던모습도 기억나시죠? 서로 완벽히 반대되는 두 모습을 비교하면서
별로 수준도 없는 얼뜨기가 어느덧 날개쭉지가 쭉 꺽이고 권력과 재산을 빼앗기고나니 겉모습에 포장된 그 초라하고 볼품없으며 찌질한 속모습과 진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면서 최순실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비굴, 비겁한 인간인지 그대로 읽히죠. 아마 유치원생도 읽을수 있을겁니다. 문재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냥 여담이지만 문재인의 부친(문용현)이 월남한 이유와 그 내막에 대해서는 베일에 가려져있으며 미스테리로 남아있기는한데 그중 가장 유력한 가설들중 하나가 바로 북에 새정부가 드러선이후 자신(문용현)이 지금까지 저질러온 친일행위들과 수탈,착취,강제징용,횡포와 만행들이 그대로 드러나 로동당에의해 처단될게 두려워 LST선에 타고 거제로 도주했다는 그런 가설도있죠.
그런데 밀항하면서 문용현만 혼자 갔던게 아니라 함흥일대의 다른 친일부역자들 역시도 단죄될게 두려워 문용현과 한배를 탔다는 얘기도있죠. 그런데 그 밀항부역자들과 그 후손들이 거제와 경남, 부산일대로 밀항한이후 그 말로를 모른채 행방불명 이들도 수없이 많았고 매우 비참하고 처참하게 끝난 이들도 많습니다. 당시 문용현과 함께 임시피란수도로 내려온 친일부역자들중 수용시설, 군부의 정화사업에 끌려가 사라진 이들도 있고
@바나나 누가 들어도 황당할 코흘리개 어린애도 안 넘어갈 감언이설과 혹세무민 또는 가령 자신한테 고려시대 문관 강감찬의 후손이 틀림없다거나 아니면 중국호걸의 후손이 틀림없다는등 허황되고 황당거짓된 구슬리기에 넘어가 노동력금전착취사업체, 건달폭력조직, 수련주술사교집단 앵벌이로 넘어가 자기인생 전부 엔딩쳐버린 그런 이들도 많았습니다, 간혹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문재인이 문선명과 같은 친척이라거나 또는 서로 친밀하고 같은 경제공동체, 동업자였다는 소문도 있다고하죠? 얘기를 돌려서 이 "문선명"이라는 인물에대해 풀어보자면 간단히 말해 문선명은 미쳐서 떼돈을 번 사람입니다. 소위 "순결캔디" 먹으면 누구든지 천국가고 매음굴에서 수십년동안 성매매하고 집단돌림빵, 성폭행 당해도 이거 하나만 먹으면 몸이 다시 회복되고 순결해진다는 그 전설의 "순결캔디" 다들 들어보셨죠? 초등학교 1학년도 안 속아넘어갈 이 순결캔디구라와 맥콜, 런요거트등으로 재수잘만나 수조대재산 벌은게 바로 이 문선명인데 이 문선명은 만약 자신의 사기극이 실패했으면 그렇게 자신이 자랑하는 "참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정신병원에 쳐박혔을 인간입니다. 그런데 재수 너무 잘만났죠. 이 문선명과 같은 동료가 문재인이었다는
@바나나 얘기가 있습니다. 문재인 아버지와 친했다는 얘기도 있고.......
과거 백범김구선생님 암살한 안두희와 문재인아버지 그리고 문선명.... 묘하게 삼각관계가 다들 그려지지 않나요?
안두희-문재인-문선명 뭔가 수없는 유사점, 공통점들과 그 수식,그래프와 복선 힌트가 나오지 않나요?.
문재인은 그 실상만 화려한 복장과 사회적명성과 지위, 학력에 숨겨있을뿐이지 그 실상은 매우 초라하기 짝이없는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인물상입니다.
제가 전자에 언급한 이외 두 인물역시도 안기부와 주한미군, CIA,국정원의 끄나풀이자 프락치 꼭두각시로 평생살수밖에 없는 인물들입니다.
자신을 비난하거나 무덤팔려는 인간들을 직접 상대하거나 치고박으며 한판붙기는 겁나고 그런데 자기 직업과 재산, 직위, 학력 있는거와 자기아는 지식들 자랑질은 하고싶어하는데 그런데 실상황에 부닥치면 아무것도 할줄아는게 없고.... 그런게 문재인입니다.
자기아비 왜 거제도에 내려왔는지 어떤 인간이었고 어떤 굴레와 족쇄에 갇혔다가 죽었는지 그 내막을알면 문재인 이 양반이 그런 자랑질과 유세떨기가 안 나올 것입니다.
아무튼 얘기하다가 길어졌네요....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바나나 그리고 과거 김대중대통령님이셨기에 수십년에 걸친 옥고를 치루고 견뎠지 문재인같았으면 3시간도 못 견디고 백기투항 했을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의 고충,고해에대한 실감과 처신, 대내외적정책에서도 크나큰 차이가 나는것이었죠. 판문점정상회담 당시 북도 "문재인"이란 인간의 면모와 수준, 사고력과 지능이 어느수준인지 어떤인간인지 잘알기때문에 "삶은 소대가리"라는 소리가 나왔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과거 김대중선생님이나 이재명대통령께서 방북하셨다면 그런 반응이나 대접이 나왔을까요?
문재인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인간인것 같습니다. 노무현을 비롯한 다른 민주대통령들은 그렇지 않았죠. 그런데 유달리 문재인만 그렇습니다. 자기 학력과 명성 유세떨기나 바빳죠. 김대중전대통령께서는 십수년을 감옥에서 계셨지만 문재인은 과거 청량리교도소 투옥된지 단 하루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 내막이 다들 궁금하지 않나요?
곽상도 2
댓글들을 읽고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선고받고서도
환하게 웃던 박노해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무엇이 죽음앞에서도
그토록 환하게 웃음을 지게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제가 문득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또 무엇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