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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표 제공: 이시스(Isis)]
치명적인 그 남자. 2
"비켜."
은
서에게 미안하지도 않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여자에게 화가났는지 재진이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 여자아이를 쳐다보며
화를 누르고 있다는 듯이 비키라고 말했다. 다들 재진의 그렇게 차가운 모습은 처음 봤는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가 갈
수 있게 길을 내주었다. 김재진은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젠틀맨이였다. 그 누구에게도 화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항상 따듯한
말투와 행동으로 모두를 배려하고, 아무리 여자애들이 귀찮게 굴어도 냉정하게 내치는 법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는 차가운 모습을
보였다. 길이 열리자 그는 정신을 잃은 은서를 들고 양호실로 향했다.
"지..지금 재진이 화낸거야?"
"저런 모습 처음 봐..."
"근데... 차가운 모습도 멋있지 않니?"
"그러게, 재진이는 뭘 해도 멋있어."
재
진이 은서를 안아들고 양호실에 도착했지만, 양호선생님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어딜 가신거지? 재진은 한숨을 내쉬면서 은서를
양호실 침대에 눕혔다. 코에서는 피가 났었는지 마른 핏자국이 보였고, 재진이 말없이 일어나, 물티슈를 가져와 은서의 코 주변을
닦아줬다. 얼마나 세게 맞은 건지 코는 이미 부어올랐고, 그런 은서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재진은 얼굴을 구겼다. 그리곤
얼음주머니를 가져와 은서의 코를 찜질해 주었다. 얼음찜질을 하면서 재진은 은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눈. 코. 입.
"예쁘다."
"……."
재
진은 은서를 처음 만난 그 날을 떠올렸다. 계단에서 넘어질 뻔 했던 은서를 구해줬던 그 날. 은서의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띄었고, 눈은 놀란 모양인지 토끼눈 처럼 땡그래져선 자신을 쳐다봤었다. 그 때 부터였던 거 같다. 한은서라는 여자아이가 자신의
머릿 속을 하루에도 수만번도 더 돌아다니며 자신을 괴롭힌 것이. 사실 학교에서 멀리서 자신을 매번 쳐다보고 있는 은서를 봤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부담스러워 할까봐. 사실 아까 체육수업이 시작하기 전에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많은 여자아이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고, 분명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은서가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은서를 보니 너무나도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머리를 흐트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고 말았으니,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은서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걸 잘 알지만, 자신의 마음이 이미
은서에게로 향하고 있는 걸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겠다.
《치명적인 그 남자》
얼
굴의 차가운 느낌이 들어, 조금씩 정신을 되찾은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러자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김재진? 재진이가 뭐하고
있는거지? 그리고 여긴 어디? 나는 상황파악을 위해 눈을 이리 저리 굴렸고, 그런 내가 웃겨보였는지 재진이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여긴 양호실."
"아…. 근데… 너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네 얼굴이 너무 부어서 얼음찜질중."
"……."
재
진이의 말에 나는 다시한번 얼굴이 붉어졌다. 아 창피하게…. 얼굴 부어서 못생겨보일텐데, 하필 재진이가 날 양호실에 데리고
온거야…. 나는 창피한 나머지 재진이의 손에서 얼음 주머니를 뺏어들으려 했지만, 재진이가 꽉 쥐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내… 내가 할께. 재진아, 너 이제 가봐도 돼. 여기 계속 있으면 수업 못듣잖아."
"내가 할께. 넌 그냥 누워있어. 수업 한번 빠진다고 안죽어."
"으…응."
얼
음찜질을 하고 있는 재진이의 얼굴은 조금 화나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기분이 않좋은 걸까…. 근데 이런 나도 주책이다. 재진이의
화난 얼굴 마저 멋있어 보이니 말이다. 재진이에게는 가라고 했지만, 사실은 재진이와 이러고 있는게 너무나 꿈만 같다. 꼭 재진이가
남자친구가 된 거 같잖아. 재진이가 내 남자친구가 된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베시시 웃어버리고 말았다.
"왜 웃어?"
"응… 응? 아..아니야. 그냥…."
"……."
"……."
한
동안 어색한 정적만이 나와 재진이를 감싸안았다. 아,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 너무 어색하고 싫은데….
나는 재진이의 눈치를 보며, 불안한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듯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 없이
얼음찜질을 해주고 있는 재진이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화를 간신히 누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재진이 때문에 괜시리 더 긴장이
되고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 같아서, 나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때, 무거운 정적을 깨고 재진이가 무겁게 입술을
땠다.
"미안해, 은서야."
"응? 뭐가?"
"나 때문이잖아. 공 맞은 거."
"아..아니야! 나 괜찮아! 내가 몸치라서 바보같이 못피하고 맞은거야. 내 잘못이지 뭐…."
"풉-“
“왜… 왜 웃어?”
“이렇게 귀여우면 어떻해."
"응..응? 내가?"
"응. 귀여워. 너."
"자..장난 치지마."
"장난 아닌데."
"…….”
나
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거지? 아, 뭐지? 나 갖고 노는 건가? 아니야…. 재진이는 그럴 애가
아닌데. 그렇게 머릿 속이 하얘져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다행히도 수업종이 울렸다.
'딩동댕동'
아, 다행이다.
"수..수업종 쳤다! 나..난 교실로 가볼게!"
그
리곤 잽싸게 난 양호실을 나가버렸다. 휴우- 다행이다. 아직도 재진이의 목소리가 내 머릿 속에 울린다. 그때 종이 울렸으니
망정이지, 난 정말 그 때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자꾸 몹쓸 희망만 주는 김재진. 자꾸 그렇게 다정하게 굴면…
기대하게 되잖아. 재진이가 한 말로 가득차서 바닥만 보며 교실로 걸어가고 있는데, 그 때 탁- 하고 내 머리가 부딪혔다. 앞에
발이 보이는 걸 보니 누군가와 부딪힌 모양이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어? 이…차혁?
"……."
"미..미안해."
"…앞 보고 걸어."
"으..응…. 미안해."
그
런데 안가고 계속 내 앞에 서있다. 왜..왜 안가지? 나를 빤히 또 쳐다본다. 처음 만났던 그 날 처럼.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날
뚫어지게 응시하는 이차혁. 왜..그러지? 뭐가 마음에 안드나? 그러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며 내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손수건을 내 코 쪽으로 갖다대며, 어찌할 줄 몰라하며 허공에 맴돌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코
위에 있는 손수건을 쥐어준다.
"뭐..뭐하는거야?"
"피나."
"……."
"그렇게 잡고 있어."
“고마워….”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아까 다쳤던 코에서 다시 피가 나나보다. 다시 피가 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그러자 이차혁이 손을 들어 자신의 손가락으로 내 미간을 핀다. 남자치곤 손가락이 참 길고 예쁘다.
"인상 쓰지마. 못생겼어."
"…….”
“어디서 또 덤벙거리다 다친 거야.”
“어?”
“저번에 데일밴드는 잘 붙였냐.”
“무슨….”
그리고 문득 몇달 전에 혼자 복도에서 뛰어다니다 넘어진 일이 떠올랐다.
“아앗! 쓰읍…. 아, 무릎 까졌네. 아이, 아파라.”
창
문 밖으로 열심히 축구를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재진이를 한참을 내려다 보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미친아이처럼 뛰어다닌 게 화근이였다. 결국에는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먼저 누군가 있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렸고, 아무도 보이지 않아 안도했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행동했다.
“아무도 안봤으면 됐지, 뭐.”
점
심시간이 끝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내 책상 위에 조그만한 데일밴드 하나가 보였다. 어? 누가 여기에 놓고 갔지? 궁금증에
사로잡힌 것도 잠시, 무릎이 쓰라려왔고,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 데일밴드를 뜯어 무릎에 붙였다.
“어?! 그 때 그, 데일밴드가… 너였어?”
“여자가 칠칠 맞게 뛰어다니지 좀 마.”
나
에게 복도에서 뛰어다니질 말라며 충고를 하고는 다시 제 갈길 가는 이차혁. 서서히 멀어져가는 이차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원래 저렇게 다정한 아이였던가? 미주 말로는 자기 일 외에는 절대 상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의외인
구석이 있는 애다, 이차혁은.
《치명적인 그 남자》
그
날 이후, 나는 어색해 했지만,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진이는 곧잘 나에게 다가와 안부인사를 건내곤 했다. 나를 배려하는
것인지, 재진이는 항상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만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말은 학교에서 퍼질 대로
퍼져버렸다. 만인의 연인으로 남아야 하는 재진이가 나에게 보내는 관심이 많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질투심을 유발했고, 심한 정도는
아니였지만, 다음 수업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거나, 소지품을 숨겨놓는다거나 하는 유치한 장난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 괴롭혀
왔다. 정말 미주 마저 없었다면 친구하나 없이 쓸쓸히 학교를 다녀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치한 장난이 이어진지 몇달,
결국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미
주가 피곤하다고 하는 탓에, 나 혼자 화장실을 갔다. 미주 기집애, 나도 화장실 같이 안가줄거야. 치사한 기집애…. 혼자머리
속으로 미주를 욕하며 볼일을 보고 나와 손을 씻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뭐지? 하며 뒤를 돌아보자마자, 물벼락을 맞았다.
뭐..뭐지? 눈을 뜨기 위해 얼굴에 있는 물기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 앞을 보니, 여자애들 몇 명이 날 아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 여자애 손에는 비어있는 물통하나가 보인다.
"어머, 미안해서 어떻하니. 손이 미끄러져서."
"……."
"사과 안받아줄거야? 실수라고 했잖아."
"그..그래. 괜…"
"실수라고 했냐."
"차..차혁아. 여기 여자화장실인데…."
차
혁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어디서 난 건지, 물이 가득차있는 물통을 가져와 여자아이들에게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물을 쏟아버린다. 나처럼 흠뻑 젖어버린 여자애들은 악악- 비명을 지르며 비명을 지르기 바빠 보였다.
"차혁아! 이게 무슨 짓이야!"
"나도 실수. 미안."
"……."
“사과 안 받아 줄거냐.”
차
혁이의 행동에 놀란 것인지, 물벼락을 맞은 여자아이는 벙찐 표정으로 차혁이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차혁이는
그런 여자아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흠뻑 젖은 내 머리를 탈탈 털어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자."
어
색한 정적만이 감도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이차혁은 내 손을 잡고 여자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곤 날 끌고 계속해서 어딘가로
향하는데 어딜 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찌나 세게 잡은건지 손목은 찌릿찌릿 아파왔다. 이러다 멍드는 거 아닌지….
"차혁아. 아..아파…."
"…….”
그
렇게 차혁이가 날 끌고 온 곳은, 양호실이었다. 여긴 왜 온거지? 그리곤 말없이 날 의자에 앉히고는 양호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이차혁. 뭘 찾는거야? 그리곤 캐비넷을 열어보더니, 수건을 가져온다. 양호실에 수건도 있었던가? 수건으로 살살 내 머리를 말없이
말려주는 이차혁. 그리곤 난 그런 차혁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차혁은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런데 내 머리를 말려주는 손길은
한없이 다정하다.
"……."
"…….”
아
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내 머리를 말리고, 얼굴과 팔 주위를 닦아주는 이차혁의 손길은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또 다시 어색한
정적만이 흘렀고, 왠지 모르게 난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불편해 하는 날 의식한 건지, 차혁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당하고 있지마."
"……."
"김재진. 때문이냐."
"……."
"맞나보네."
"… 재진이한테… 말하지마."
"너. 김재진 좋아하냐."
-
공동: 오브 메모리아 (Aube Memoria)
http://cafe.daum.net/AubeMemoria
안녕하세요. 지아입니다. 로작연에서는 이미 20편까지 연재가 되었지만, 공동카페에서 선연재 시작할겁니다.
저번편에 댓글을 달아주신 '깊은 노란색'님, '털뭉치'님, '달래'님, '얌얌이.'님, '유밍'님 감사드립니다.
봄슬언니 제공♥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재진이를 더 좋아하시는군요! ㅎㅎㅎㅎ 다음편도 기대해주세요♥
두...둘다 좋은.......쿨럭!...ㅋㅋㅋㅋㅋ오늘도 재밌게 봤답니다아><
재밌게 봐주셨다니 기쁩니다♥
저는 차혁이가 더 끌리네요. 묵둑둑해도 자기 여자한테는 정말 잘 해 줄것 같아요. 차혁이 한테 한표.
차혁이의 매력을 알아보시는 군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