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숙 첫시집 ‘바코드’
● 책소개
허영숙 시집『바코드』, 계간 <시안>의 신인상으로 등단한 허영숙 시인의 첫 시집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인 공광규의 작품해설을 수록했다. 유안진 시인으로부터 “언어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재치와 솜씨 역시 기발하고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저자소개
허영숙 :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안』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시마을 동인이다.
목차
1부
나비그림에 쓰다
바코드
씨앗을 파는 상점
홍살문
그림자극
한 컵의 안간힘
종려나무가 있던 집
나무의 필법
꽃의 출구
낮잠 1 -흉몽
동백 피다
환생
물별
숨어있는 책
낮잠 2 -젖은 꿈
2부
꽃싸움
파래소
이별에 관한 어떤 습관
고불암 가는 길
찔레
섬긴다는 말
푸른 기와
사과나무 그늘
사람이 풍경이다
편백나무 숲에 들다
칸나
낮잠 3 -회상몽
참말
굴참나무 그대
저물녘 억새밭에 가다
불안이 소름을 키운다
울다와 짖다 사이
가을체로 읽는 저녁
파란 바나나
3부
돌탑
아리랑
매직아이
곰소항
아버지는 아날로그다
낮잠 4 -꽃 꿈
새로 담근 술
반얀나무
우울한 폴더
고운 님 여의옵고
무창포
한때 소나기
여름 한낮
달콤한 슬픔
4부
햇살 수제비
꿈꾸는 정물
눈금
반성
일광역에서
중심
나무의 시뮬레이션
저녁의 앙금
자작나무 편지
눈발 경문經文
과월호
속눈썹 하나가
폭설
푸른 답장
살구꽃이 피었다
해설-공광규 인생을 조망하는 원숙한 시선
● 서평
자신은 가볍게 살아가도 자신의 시만은 가볍지 않기를 바라는 허시인의 소망은 이 첫 시집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편편에 기울인 심혈이 이미 한 세계 한 경지를 이루지 않았는가. 예컨대 꽃술 꽃독 꽃등 꽃값 꽃싸움(花鬪)등으로 언어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재치와 솜씨 역시 기발하고 대단하다. 따라서 나무의 그림자극도 하나의 種으로 만들어냈고, 나무의 필법까지도 만들어냈다. 가을체로 저녁을 읽을 줄 알며, 목이 젖어서야 나오는 소리인 울다와 짖다의 차이포착도 놀랍다. 따라서 낮잠 역시 그냥 낮잠이 아니라 흉몽 젖은 꿈 회상몽 휴업으로 변조시켜가고 있고, 멍자국을 푸른 기와로 포착한 시인의 시안은 시안 출신다움의 감수성과 기량과 품새를 보여주어, 추천자였던 한 사람으로서 무척 기쁘다. 이제 이 시집을 딛고 다음번 시집에서는 좀 더 울퉁불퉁하고 모험적이고 낯선 기법과 시세계로, 우리 시단에 독특하고 이례적인 작품을 기대하며, 첫 시집의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유안진(시인ㆍ전 서울대 교수)
결국 시는 몸에 살고 있었다. 그가 몸에 새긴 기억들은 일제히 지면으로 불려나와 선명하게 찍혔다. 오래 삼켜 뼈마디에 스민 말들은 몸을 스쳐간 시간의 바코드였다. 꽃 안의 일도 꽃 밖의 일도 두근거리는 중심이 되어 흉금에 꽃술을 품고 분粉을 품은 흔적들이 한 장 한 장 붉은 꽃잎이다. 책장을 넘길 때 질량이 다른 햇살과 바람이 만져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행여 꽃술을 사모하여 맴돌지는 말아라. 오래전 날개를 다치고 이곳에 먼저 닿은 사람이 더운 붓끝으로 말하지만 그는 이미 꽃술을 품은 시인. 독한 꽃가루에 눈이 멀지언정, 한 송이의 안간힘으로 詩의 마디를 파랗게 세운다. 잠에서 깬 울음이 꿈밖으로 번져 나가듯, 꽃씨가 먼 기슭까지 날아가 터지듯, 꽃물 든 손톱으로 생각을 매단다. 한 획을 기울여야 또 한 획이 기댈 수 있는 “나무의 필법”으로 시를 쓰고 몸을 쓴다. 물밑에 뿌리를 두고 잠든 꽃처럼 그는 詩에 단단히 매달려 출렁인다. 속눈썹 하나가 가슴으로 뛰어내렸을 뿐인데 종일 파문이 일고 겹겹의 하늘이 고여 시의 그늘이 빼곡하다. 이토록 촘촘한 기울임으로 허영숙은 지금 핏빛으로 터지는 중이다.
―마경덕(시인)
바코드
A4용지 한 장의 분량으로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 한다
나무 한 그루 다 갈아엎어도 쓸 수 없는 낮과 밤을,
그 안에서 생겨난 만 갈래의 길을
접고 또 접어서 써라 하니 난감하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어느 길 위에 이른 내 몸에서는 새 잎이 돋고
또 다른 모퉁이에서는 다시 그날의 눈이 쏟아진다
길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새우깡 겉봉에 찍힌 바코드를 본다
저 굵고 가느다란 세로 줄에 기록된 것은
출고일자 혹은
여기로 오기까지의 경로 표시에 불과할 뿐
분말로 든 새우의 길에 대해
기억 안에 있거나 기억 밖으로 밀어 낸
파랑의 날들에 대해 모두 기록할 수 없다
찬물에 돌미나리를 씻으며 울고 싶었던 이유가
시린 손 때문이라고만 쓸 수 없다
밟아온 길을 다시 일으켜 세워 바코드를 만든다
고음으로 내질렀던 푸른 날의 한때를
굵게 긋다가 올려다 본 하늘
정오의 햇살이 내 몸의 바코드를 환하게 찍고 간다
첫댓글 이 달의 시인으로 와 주셨던 허영숙 시인님이 첫시집을 상재하셨네요....'문학의 전당'에서 나왔군요. 첫시집 상재를 축하드립니다.
엊그제 송년 모임때 뵈어서 시집을 선물 받았는데, 아,,, 뭐랄까,,, 나는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이 팍팍, 들게 만드는 시집이었습니다.
허시인님의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