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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은 |
1. 생 |
2. 양육 | |
3. 가르침 |
첫 째는 낳아주신 것이다. 자력 없는 몸으로서 저절로 장양될 수 있었을
것인가 둘째는 양육이죠. 만약, 이 몸을 낳지 못하고 장양되지 못했다면
그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젊은 애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부모님이 밉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니만 이뻐하고 때로는
아들만 좋아하고 딸은 미워했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일만 하고
동생들 키우다 고생만 했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학교도 다니다 말고
동생 키우고 일만 시켰다고 미워합니다.
보면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애아로 나와서 부모를 원망하고
또는 가난한 집이라고 부모를 원망하고 못 생겼다고 또는 무슨 병이
들었다고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한다. ‘부모의 은혜 속에서
원망하고 있다. 부모가 없으면 원망할 수 있는 생각도 없고 그 몸도
없다. 그 원망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기 때문에 원망할 수 있다.’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맞습니까? 그렇죠?
자신을 엄마가 안 낳아줬으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어요? 지 욕심이죠.
지 욕심이 부잣집에 이쁘게 날씬하게 영리하게 태어나는 것. 욕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인과입니다. 그래서 신앙문은 인과보응의
도입니다.
지난 주에 했던 응용무념의 도도 인과보응의 도와 응용무념의 도가 함께
섞인 것이다. 인과보응에 바탕한 응요무념의 도이고 오늘
무자력자보호의 도가 부모은의 핵심이다. 왜 부모의 은혜가 크냐? 내가
무자력자이었을 때 즉 자력이 없었을 때 힘이 없을 때 너무나 미약할 때
내가 보호를 받고 은혜를 입었다. 그것은 인과보응에 따른
무자력자보호의 도이다.
여기서 잘 이해해야 할 것이 있는데 부모가 나를 선택했는가?
내가 부모를 선택했는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또 부모와 나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어떤 인연인가 하는 거죠.
불교의 교리에 보면 부모와 자식은 팔천 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형제는
구천 겁이라 그런다. 사제간은 일만 겁의 인연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제간이 된다고 나와있다. 부부간은 칠천 겁이라 그런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인연 중에는 두 가지 인연이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갚으러 온
인연이 있고 다른 하나는 빚 받으러 온 인연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제일 이쁠 때 죽어버린다. 부모는 그것 때문에 한이
맺힙니다. 인과를 모르면 부모가 미쳐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과를 알면 저와 나는 어떤 인연이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교단에 김정각(定覺) 이란 분이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김삼한(三限)이었습니다. 한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남편이 일찍
죽었다. 두 번째는 당신 눈에 장애가 있었다. 세 번째는 당신 아들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대종사님을 만나서 자기의 한을 이야기 하니까
‘너는 김삼한(三限)이라고 하자.’ 법명이 삼한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했죠.
대종경에 나옵니다. ‘제가 공부를 해보니까 남편을 일찍 죽은 것도, 내가
눈에 장애가 있는 것도, 그리고 내 자식이 죽은 것도 알고 봤더니 인연
소치더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러자 대종사님이 ‘네가 인과의 이치를
제대로 깨쳤구나. 지금부터 너는 김정각(定覺) 이라고 해라’ 하셨다.
기본적으로 어떤 부모도 미련한 아이, 멍청한 아이, 장애 있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공 들여서 낳는다. 그래서 쌍둥이도 성격이
다릅니다. 형제간에도 다릅니다. 저도 형이 둘 있는데 둘이
정 반대입니다. 우리 작은 형은 사교형 이고 큰 형은 사색형 입니다.
둘이 맨날 싸웁니다. 내가 중간에서 화해 시킵니다.
분명히 한 배에서 낳는데 그렇게 다르다. 왜 그런가? 자기가 전생을
통해서 길들여 왔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부모를 선택한다. 어머니의
인연과 자신의 선택이 맞물려서 부모 자식 간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엄마가 나를 이렇게 낳네 남들 보다 어떻네 합니다.
인과보응의 이치를 깨치지 못하면 고마운 생각이 들다가도 때로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저번 주 천지은에서 깨쳐야만 알 수 있는
것을 말씀 드렸는데 오늘도 마찬가지 일반인이 생각하는 현실적
부모은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심지의 안락과 육신의 봉양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스승과 제자는 다 보은의 은혜입니다. 삼세와
인과의 이야기입니다. 이 원리를 여러분들이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낳아주신 은혜도 내가 선택하고 부모의 인연이 아주 지중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인연도 때로는 아까 제일 고을 때 죽어버린 것이
죽으면서 그 영가는 이런 답니다. ‘어이 시원하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죠? 빚을 갑아 버린 것입니다. 악연이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몰라요.
삼세의 인과를 알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빚 받으러
온 인연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가르쳐주신 은혜입니다. 참 낳아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고
길러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낳을 때 기억이 없고
길러줄 때도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에서 배속의 태아 사진을
찍습니다. 은덕교우의 싸이(싸이월드)에 태아의 발 얼굴 사진을 올려
놓았더군요.
저도 딸이 둘 있는데 어릴 때 다 찍어 놓았습니다. 나오기 전 배 불렀을
때, 낳은 후에 찍고 클 때 찍어 놓았습니다. 왜? 낳아주고 길러준
은혜를 기억이 없으니 잘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영아가 50명씩 두 그룹이 있었다. 한 그룹은 부모가 낳아서
직접 기르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부모에게 버려진 영아들은 영아를 잘
키우는 전문교육을 받은 간호사들이 키웠습니다. 엄마가 직접 키운
그룹은 한 명도 죽은 아이가 없는데, 영아전문간호사가 키운 그룹은
37%가 죽었습니다. 왜 전문 교육을 받은 간호사 그룹은 37%가
죽었어요? 부모가 자식에게 준 그 사랑의 기운 그 정성은 아무리 교육
받은 사람이라도 따라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공호흡은 한 어머니가 발명되었다고 합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
자식이 물에 빠졌습니다. 숨을 못 쉬고 다 죽어가는데 분명히 공기를 못
마셔서 그런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가 아들의 입을 벌리고 공기를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이 물을 뿜고는 살았습니다. 그래서
인공호흡이 발명됩니다. 교육 잘 받은 의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 엄마의 헌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기억이 없어서 기른 은혜에 대해서는 잘 모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낳기 전부터 잘 찍어두세요. 엄마는 뱃속에서부터
다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자식은 하나도 기억이 없습니다.
원불교에서는 낳아주시기만 해도 부모입니다. 부모는 세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낳아주기만 해도 부모고 길러주기만 해도 부모고 가르쳐
주기만 해도 부모라는 것이 원불교의 부모의 개념입니다.
우리 성식교도 아들 원민이가 뭐라고 하면 얼른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안깁니다. 자식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장 편안한 품 속이요 가장
의지할 데가 거기 아니에요?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큰 것입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그렇게 큰 것이고 교무도 그렇습니다. 다 그 사랑 받고
컸습니다. 맞아요?
옛말에 부모와 스승은 간격 없이 다 바쳐주고 키웁니다. 제자를 키우고
자식을 키웁니다. 그런데 자식이 반만 효도하면 국가에서 상 받을
정도다. 제자가 스승의 마음을 반만 알아도 법이 건넨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떤 할머니 교도에게 ‘아들이 참 효자던데 부모 마음을 반 정도
알면 효자일까요?’ 하고 물었다. 그 할머니가 ‘하이고 10분의 1만
가져도 효자지요’하더라. 부모가 느낀 것 10분의 1만 잘 해도 효자다.
그걸 못 느끼니까 자식이나 개는 병원에 데려가도 부모를 병원에 데려갈
때는 돈 계산을 합니다. 가르쳐 주신 은혜. 가르침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죠? 제가 교육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이 세상에 가장 교육자는
바로 부모입니다. 학교 선생님 몇 % 차지하지 못합니다. 학원 선생님,
교당 교무님도 크게 영향을 못 미칩니다. 어릴 때 무의식 세계에 어떤
것을 경험하고 어떤 것을 길들여왔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합니다. 대개 도둑질 하는 아이들의 환경을
보면 가정 환경이 안 좋거나 부모가 그것을 안 가르쳐 주었을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큰 교육자는 부모다.
제가 간부를 많이 해 보았습니다. 언제 한 번은 사람은 너무 좋은
사람인데 성격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잘할 때는 너무 잘하느데 못할
때는 너무 특이했습니다. 이해를 못할 정도로 얄미웠습니다. 우연히
제가 그 사람의 가정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자기 맘대로 큰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부로서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잖아요?
어머니는 따스한 사랑으로써 끝까지 희망을 갖게 해주고 끝까지 기를
살려주시는 것이 어머니예요. 그래서 형식을 다르지만 어머니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역할이 빠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친구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없어졌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요즘 상담하는 사람들은 어릴 때 환경을 묻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불교에서 제 일의
천성은 성품이라고 한다. 이것은 다 똑 같습니다. 평등합니다. 그러나
길들여 온 것이 있다 그것이 두 번째 습관입니다. 전생의 습관을 길들여
놓으면 똑 같은 형제 간에도 다릅니다. 세 번째가 환경이다.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컸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과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래서 중매할 때도 부모를 보는 것이다. 아무리
이쁘고 맘에 들어도 부모님을 보고 판단하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 그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근본은 부모님이다.
특히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
제가 출가를 하고 나서 생각하기를 내 스스로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24살 때 출가를 결정했는데 남들은 이때 이런 생각을 잘
못하고 돈 벌고 집 장만하고 차 장만하고 멋진 여자 만나서 이쁜 자식들
낳고 여행가는 것만 행복으로 아는데 나는 그것이 관 속에 들어 갈 때는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을 해보니 이 법을 공부하는 것 수행을
통한 재미 또는 봉사하는 재미 또는 세상에 도움을 주는 재미 또 마음의
원리를 아는 재미 이치를 아는 재미의 세계에 대해서는 눈을 뜬
것입니다. 아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제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아버지가 천일 기도하고 계속 정성들인 공덕으로 내가 출가를 했는데
내가 얼른 생각하기에 내가 똑똑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왜 드리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전문직에 있는 사람 때로는
좀 잘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가 잘 나서 된 줄
압니다. 부모와 스승께서 가르쳐 주신 은혜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출가 했다고 생각했듯이 사실은 엄청난 은혜 속에서 성장한
줄은 모르고 내가 잘 나서 성공했다. 그러니까 부모나 스승이나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서비스해라 나는 그것을 이용해서 내가 잘 났으니 계속
누리고 살겠다. 이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요즘 대학생 1, 2학년들을 보면 아주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기운이 아주
머리에 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공부만 시켰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명문대에 온 놈들이 더 그런다. 자기가 명문대에
오기까지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는지 또 내가 살아가면서
인과보응의 원리를 알려주신 대종사님 같은 스승님들의 은혜 그
지속적이면서 한량 없는 은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스승님의 마음을
몇 % 알아? 부모의 마음을 몇 % 알아?
친구가 밥 한 번 사주고 놀러 가자고 하면 친구 최고, 삼촌이 용돈 주면
우리 삼촌 최고 그럽니다. 이런 어린이 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큰 은혜는 지속적이면서 근원적이면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 원불교의 신앙이다.
그러니까 내가 명문대 들어오고 잘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해요?
나는 은혜를 더 입었다고 생각해야죠. 내가 잘 났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바드에서 1학년 신입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명문
하바드를 왔는데 하바드생의 기초는 반드시 이 사회에 공헌해야 그것이
바로 하바드생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 정말 훌륭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잘 난 사람일수록 더 이 사회에 공헌하고 무자력자를 위해서 더
베풀고 내가 크기까지 은혜를 준 사람에게 더 보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잘 났으니까 누리고 살자. 난 누릴만해 나는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나 돈 투자했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인과의 이치나
근원적 은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못된 사고다. 맞죠?
자 부모 피은의 조목. 부모가 있으므로 만사 만리의 근본이 이 몸이라고
했다. 몸은 만사 만리의 근본이다. 불교에서는 몸을 지•수•화•풍 4대가
엮어진 것이고 결국 허망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허망한 것만 알면
그것은 무자리에 빠진 것이다. 몸이 허망하고 백 년 안에 없어지겠지만
한 것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기다 영과 기운을 담아서 어떤 일과
이치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몸이다. 이것이 근본이다. 그래서
옛날 증자는 이 몸을 낳아주신 부모가 가장 큰 은혜라고 했습니다.
대종사님의 은혜는 이런 것들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서 피와 살을 준 부모의 은혜만이 아니라. 대종사님은 이런
유교적인 종적인 윤리를 넘어서서 대 사회의 윤리까지 펼쳤는데 뒤에
나옵니다.
모든 사랑을 이에 다 하사 온갖 수고를 잊으시고 자력을 얻을 때까지
양육하고 보호하여 주심이요. 이것이 길러주신 양육에 대한 것입니다.
세 번째가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 인류 사회로 지도하심이니라.
의무와 책임. 의무를 이행 할 때 책임이 똑같이 비례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권리는
누리려고 합니다. 요구는 많습니다. 이것은 배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의무와 책임을 다 하면 권리를 알아서 따라옵니다.
보은의 강령입니다. 보은이라는 것은 신앙의 행위입니다. 부모가 신앙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행위가 바로 보은입니다. 그래서 보은 즉
불공인 것입니다. 무자력할 때 정신 육신 물질로 나에게 힘 미치는 대로
다 해주셨다. 그런데 보은의 강령을 보면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줄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무자력한 부모에게가 아니라 무자력한
사람입니다.
원불교에서 말한 부모는 신앙의 대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세의
부모 즉 현재 내 몸을 낳아주신 부모만 아니라 나의 전생의 부모님도
계실 것이고 또 내생에도 부모님이 계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보은의
개념은 이 부모의 개념을 넘어서서 무자력자까지가 보은의 개념이다.
지금 유교 사회에서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 악착 같이 자식을 낳으려고
기도하고 양자로 삼는 것이 유교의 편협한 생각인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무자력자는 누구나 내 자식과 같이 내 부모와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불교의 신앙은 전체 신앙이라고 합니다.
부모 보은의 조목을 봅시다. 1조는 특이하죠. 일반인들은 2조를
생각합니다.
[ 2. 부모가 무자력할 경우에는 힘 미치는 대로 심지의 안락과 육체의
봉양을 드릴 것이요.’ 보통 자식은 무지하게도 심지의 안락보다는 육신의
봉양만을 생각합니다. ]
용돈 주면 되는 줄 압니다. 부모에게 물론 용돈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심지의 안락입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왜 1조에다
[ 1.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 없이 밟을
것이요. ]
라고 하셨을까? 그것을 대종사님이 풀어주셨는데 인생의 요도는
신앙길입니다. 사은사요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공부의 요도는
삼학팔조를 실행하는 것 즉 수행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견과
부처님의 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원불교 공부를 해서 무량 복혜를 얻어 나가면 그것만큼 큰 보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큰 대도다. 원불교에서는 큰 효가 있고
작은 효가 있습니다. 작은 효는 2조를 말합니다. 대효는 1조를 말합니다.
큰 것은 작은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생에는 이 둘 다 하자는
것이지만 만약에 이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못하는 일이 있다면 작은
것을 때로는 포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예는 많이 있습니다. 왜 이것이 효도라고 생각 하냐 하면 삼세의
인과를 생각하면 정답이 나옵니다. 삼세의 인과를 생각하지 않으면
정답이 안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서 출가하지 않았습니다. 왜 부모가
반대하니까? 그것은 작은 효를 실천하다가 큰 효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이 좁은 사람 삼세의 인과를 모른 사람은 자꾸 헷갈려야
합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삼학팔조 사은사요를 공부해서 법위가 법강항마위가
되어야 불효자를 조금 면한다고 하셨다. 일반 범부•중생으로 살아가면
아무리 심지의 안락의 육신의 봉양을 드린다고 해도 불효자라는 것이다.
저도 원불교에 들어와서 군대 가기 전에 부모은을 배웠습니다. 그 뒤로
제가 부모님에게 걱정 끼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 20여 년간
큰 걱정 끼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왜 전 그때 부모은을 배워서..
그렇듯이 원불교의 신앙을 제대로 하면 실지로 내 부모에게도 효도를
하는 것입니다. 원불교의 법강항마위에 올라가면 당연히 부모님에게 더
잘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효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면 소희사위, 중희사위, 대희사위에 올려드립니다.
이것이 큰 효다.
대종사님이 당신의 어머님이 위독 하실 때 동생을 보내시면서
‘내 대신 네가 가라 그러면 너도 원불교의 창립주가 된다.’고 했습니다.
정산종사님과 대산종사님의 효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효 때문에 큰 효를 놓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경험해 보면 현실
세계에서는 작은 효 때문에 큰 효를 놓치는 경우는 많습니다. 신앙과
수행길을 잘 걷는 것이 부모에 대한 큰 효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세 번째, 웃기죠?
[ 3. -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와 같이 보호할 것이요. ]
아니 내 부모가 아니라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 같이 해라. 이것은
사요를 이해해야 합니다. 다음에 사요가 나옵니다. 타인의 부모에게
하는 것은 양로원을 내가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교당 교화가 잘 되면
그런 생각도 합니다만 될지 안될지 모르겠습니다. 노인 요양원을 교당
위에다 하고 싶습니다. 경제적으로 손실도 안 나고 그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와 같이 하는 것.
이것이 원불교의 삼세의 효도다.
네 번째 [ 4. 부모가 열반하신 후에는 역사와 영ㅌ상을 봉앙하여 길이
기념할 것이니라. ]
역사와 영상을 봉양해서 계속 부모님을 마음으로 모시고 6일 대재나
명절 대재 때 기념해라. 영혼 천도를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삼세보본을
해라.
원불교의 부모 보은의 조목 4가지 중에 2조. 하나 현실적인 부모의 보은
외에 나머지 1, 3, 4조는 삼세보본이에요. 그 영역이 다릅니다. 그래서
영구적인 효로 삼세 부모에 대한 효로..이것이 유가의 혈족 사상을
넘어서서 우주 전체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나라는 것이 일원상과 하나인 이치. 즉, 무아인
나가 이 우주와 하나인 나와 함께 통한 사상이라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나와 부모가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부모가 하나이고 더
나아가서는 일체 우주생령이 나와 둘이 아니다.
마음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부모 배은
부모 배은은 알지 못하는 것. 실행하지 못하는 것 즉 부모님이 신앙의
대상인 줄도 모르고, 부모님께 핑계 대고 사실 신앙도 못한 것이다.
이것은 배은이다.
부모 보은의 결과
내적으로 행복해집니다. 배은 하면 불행해집니다. 외적으로 사회적으로
효 사상이 증장 됩니다. 배은 하면 사회적으로 못된 풍조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위로를 받고 자손의 효성을 받고 중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인과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참 묘하죠? 내가 내 부모에게 효도를 했는데 사람들이 이쁘다고 합니다.
내가 내 부모에게 못했는데 사람들이 욕을 합니다. 왜 그렇죠?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자녀들 앞에서 내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스승님들을 잘 모셔야 합니다.
제가 스승님 못 모시고 내가 스승 대접 받으면 안됩니다.
똑같습니다. 내 자식들에게는 부모 대접 받고 내 부모님에게는 대충하고
안되잖아요. 미안하지만 인과의 이치로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옛날
지게 이야기 알죠? 옛날 조선 시대에 자신의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에
버리니까 자신의 어린 자식이 지게를 들고 내려오더랍니다. 아버지가
‘지게를 왜 들고 오냐?’고 하니까. 어린 자식이 ‘나도 나중에 아버지
갖다 버려야지.’ 보고 그대로 배운다는 것입니다. 부모 배은의
내용입니다.
부모은도 사은 신앙이다. 불공의 행위다. 이것은 삼세의 인과의 내용이
같이 들어있고 더 나아가서는 우주 만유 전체가 신앙의 대상이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에 살아계신 부모님께 전화라도 하세요.
바쁘다고 핑계 그만 대고..
타이핑:
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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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8월25일~
고맙습니다 ^^v
26일 → 25일 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안암교당 달력은 26일이 두 번 있네요ㅋㅋ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어릴 때 무의식 세계에 어떤 것을 경험하고 어떤 것을 길들여왔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